소설리스트

216화 (216/218)
  • 특별 외전 8화

    * * *

    “어머 레, 벌써 나온 거야?”

    그대로 지하 감옥을 박차고 올라간 레티시아가 본 건, 감옥 앞에서 서성대던 미사였다.

    “네가 걱정되어 기다리고 있었어, 어디 다친 덴 없니? 어서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레티시아는 대답 대신 미사에게 달려들어, 목 끝에 칼날을 들이 댔다.

    미사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레……?”

    레티시아가 말했다.

    “추리가 끝났어.”

    “추, 추리라니?”

    “잘 생각해 보니 내가 선물받은 청동 구슬은 2개였지. 그래, 이런 못된 저주 같은 마법엔 항상 매 개체가 필요해. 그러니까 그 청 동 구슬이 매개체이자, 널 내 머릿속에서 활동하게 해 주는 방법 이었던 거야.”

    레티시아가 턱 끝에 손을 대고 끄덕였다.

    “그리고 네가 내 꿈에 침입해 날 심문한 이유는…….”

    레티시아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닥터 시벨이 ‘내 머릿속에 숨겨 둔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지, 안 그래?”

    “레, 나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칼 내려.”

    “미사.”

    레티시아는 그 말에 칼을 내리 기는커녕, 칼날을 더욱 가까이 들이댔다.

    “난 미사라는 이름의 친구가 없 어.”

    레티시아가 말했다.

    “네 행동 방식은 상당히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어. 월터, 시벨에 의해 이용당하다 죽은 내 소꿉친구.”

    “…….”

    “넌 그 애를 흉내낸 거야.”

    미사의 입가에서 미소가 천천히 사라졌다.

    “원래대로라면 우리 사이엔 마탄총이 어울리는데, 안타깝게도 여긴 없네?”

    “뭘 하고 싶은 거야?”

    미사가 천천히 물었다.

    “쉿, 연기는 끝났어.”

    레티시아가 말했다. 그리고 한 손에 들어 있는 청동 구슬을 보여 주었다.

    “미사.”

    레티시아가 싱긋 웃었다.

    “나이젤.”

    정확히는 빈스이자 미사. 나이 젤.

    “1인 3역은 처음이다, 그렇지?”

    미사의 얼굴에서 미소가 천천히 사라졌다.

    “아아-.”

    미사의 얼굴빛이 순간 흐릿해졌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쓰지 않은 가면처럼.

    이내 미사의 얼굴은 천천히 나 이젤의 이목구비로 변모해 갔다.

    ‘닥터 시벨의 애제자이자, 탈옥 수 나이젤.’

    레티시아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이젤이 비틀린 미소를 짓고 말했다.

    “들켰네? 역시 우등생은 다르다. 와아- 대단해.”

    “고마워. 덕분에 닥터 시벨 그 자식이 내 머릿속에 심어 둔 것이 기억났네? 자, 내가 할 말은 끝났으니…… 더 길게 말할 것 없지?”

    레티시아는 그대로 단검을 그었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이번에도 미사, 즉 나이젤이 뒤로 쓰러졌다.

    레티시아는 미사의 복장에 나이 젤의 얼굴을 한 그녀가 부스스 사라지는 걸 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도 청동 구슬 한 개가 남았다.

    “두 개의 구슬.”

    레티시아는 구슬을 꺼내 들었다.

    “이게 날 이 세계에 가두는 매 개체 였어.”

    그리고 레티시아는 단숨에 두 개의 구슬을 한꺼번에 바닥에 던져 부쉈다.

    파앗!

    구슬이 가루가 되어 부서지며 레티시아의 눈앞이 번쩍했다.

    * * *

    그리고 레티시아는 눈을 감았다.

    눈을 뜨자, 이단 심문관 사무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레티시아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 었다.

    ‘기억나, 이때……. 난 세뇌되어 닥터 시벨의 성에 끌려와 있었어.’

    눈앞의 레티시아는 당구대 앞에 앉아 있었다. 검은 레이스 드레스를 입고, 검은 나비 리몬을 머리 양옆에 묶은 그녀는 다리를 의자 아래에서 천천히 까딱이고 있었다.

    〈레티시아.〉

    탕. 시벨이 당구대 위에 몸을 숙이고 큐로 볼을 쳤다. 그리고 타닥이며 볼들이 부딪치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선물을 주죠.〉

    레티시아는 고개를 들어 눈을 깜빡였다.

    〈무슨 선물이요, 선생님?〉

    〈백마법사의 유산을 당신에게 넘겨줄게요.〉

    〈…….〉

    〈백마법사의 수장, 콘단. 그자는 흑마법사 가문의 르웰턴 공작에게 죽었습니다. 하지만 J. 시체는 빼돌려져, 백마법사의 후예들에 의해 오래전부터 준비 되어 있던 무덤으로 보내졌죠.〉

    〈들어 본 적 있어요. 콘단의 무덤에는 엄청난 보물들이 숨겨 져 있다죠.〉

    〈네. 그리고 콘단이 설치한, 인세의 지옥 같은 함정들도 동 시에 존재하죠.〉

    시벨이 가볍게 웃으며 당구 큐를 내려놓았다.

    〈하지만 암호만 풀면 됩니다. 무덤 입구에서 백마법사들 사이에 전해지는 암호만 풀면, 그 안에 있는 비밀 병기와 무기, 생전 썼던 책들에 접근할 수 있죠. 그가 남겨 놓은 수많은 보 물들은 덤이고.〉

    진심으로 흥미가 생긴 레티시아는 입술을 핥았다.

    〈그 무덤이 어디 있는데요?〉

    〈나도 모릅니다.〉

    시벨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언젠간 발견되겠죠. 콘단은 예언을 남겼 거든요. ‘나와 나를 따르는 자들의 무덤은 언젠가 다시 세상에 나타날 것이다.’라고요.〉

    시벨은 간략하게 설명했다.

    콘단의 무덤에는 암호 판독기가 설치되어 있다.

    그 암호 판독기는 문양 여러개. 그 문양을 순서대로 눌러야 무덤의 문이 열린다. 그것도 아주 복잡한 순서였다.

    〈한 번이라도 암호를 잘못 누르면 콘단의 무덤은 무너지고, 유산은 영영 사장됩니다.〉

    〈아깝네요!〉

    〈네. 그 안에는 인류를 학살한 아주 멋진 무기들이 가득하니까요. 내 애제자라면, 그런 컬렉션을 놓칠 수 없겠죠.〉

    〈그러게요.〉

    레티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암호를 지금부터 보여 줄게요. 하지만 그냥은 안 돼요. 그건 아주 중요한, 무시무시한 백마법사들의 비밀이니까.〉

    시벨이 시계추를 품에서 꺼냈다.

    〈당신에게만 그 비밀을 알려 주고, 그다음 기억을 지울 거예요. 당신은 살아 있는 내 암호 보관 소가 되는 거죠.)

    〈하지만 시벨 선생님, 그러면 제가 필요할 때 그 암호를 어떻게 꺼내 써요? 선생님은 제게 콘 단의 유산을 물려주시려는 게아 닌가요?〉

    〈당신의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잖아요.〉

    〈…….〉

    〈나이젤이 당신의 무의식에서 그 비밀을 찾아내는 방법을 압니다.〉

    시벨이 말했다.

    〈난 나이젤을 믿진 않지만 당신 다음가는 제자인 건 맞거든. 그 러니까 두 사람에게 비밀을 나누어 상속하려 합니다.〉

    〈나이젤은 절 증오하는데요?〉

    레티시아가 말했다.

    〈만일, 나이젤이 당신의 머릿속에서 비밀을 꺼낼 때가 되면 당신에게 잘해 줄 거예요. 그때는 나이젤을 믿고 따르세요.〉

    “그래. 이건 내 기억이야.”

    레티시아는 그 기억을 되새기며 눈을 감았다.

    * * *

    반짝. 레티시아는 눈을 떴다.

    “세드릭?”

    “레티시아! 괜찮아요?”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선명 하고 아름다운 보랏빛 눈동자.

    세드릭이었다.

    “갑자기 의식을 잃어서 놀랐습니다.”

    “내가 얼마나 의식을 잃었어요?”

    “20분 정도요. 곧 의사가 올 겁니다.”

    “의사……. 의사가 중요한 게 아니죠. 세드릭, 노트!”

    레티시아는 벌떡 일어났다.

    “……네?”

    “세드릭, 지금 의식불명의 여자 친구가 일어나자마자 세드릭을 불신의 눈으로 한 번 쳐다본 뒤 갑자기 노트를 찾는 상황, 완전 이상하다는 거 나도 알거든요! 하지만 정말 중요한 일이니 날 믿고 도와줄래요? 아아, 내가 노트를 어디에 뒀지? 그리고 잉크도 색깔별로 줘요!”

    “……레티시아가 비논리적으로 논리적인 행동을 하는 게 처음은 아니니 알겠습니다. 여기 노트와 펜이요.”

    세드릭은 급히 레티시아를 대신 해 노트와 펜을 가져다주었 고…….

    “레티시아, 지금 울어요?”

    “으흑, 반가워서요. 역시 이런 상냥한 세드릭이 좋아……. 꿈속의 그런 남자는 싫다고요.”

    레티시아는 울먹이며 급하게 노트에 자신이 기억하는 문양들과 그 순서를 적어 넣었다.

    “그리고 또 뭘 할까요?”

    세드릭이 물었다.

    “다음은…….”

    레티시아가 숨을 들이켜곤 씩 웃었다.

    “오랜만이네요. 사냥이요.”

    “오랜만은요. 지난번 사건 이후 한 달도 안 지났습니다.”

    “어머, 제 장총에 그때 묻었던 범인의 피도 아직 안 말랐겠네요.”

    레티시아가 말했다.

    “바알.”

    그리고 레티시아는 침대 머리맡에 있던 마탄총, 장총을 꺼낸 후 또각또각 걸어 나갔다.

    “내가 계산한 시간이 맞는다면, 아직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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