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4화 (214/218)
  • 특별 외전 6화

    * * *

    레티시아는 이단 심문관 본부에 도착하자마자 짐짝처럼 감옥 안에 던져졌다.

    ‘하아, 내가 감옥행이라니.’

    레티시아가 누굴 감옥에 처박은 경험은 풍부해도, 감옥에 잡혀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생각을 해 보자. 이 이상한 세 계에서 나갈 방법이 있을 거야.’

    레티시아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만일 나쁜 마법 같은 것에 걸린 거라면……. 그게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만일 이게 정신계 마법이라면, 백마법사들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럼 이 마법의 시전자를 찾아야 할 텐데.’

    그렇다면 마법에 빠지기 직전의 상황이 단서가 될 텐데. 문제는 최근 며칠간의 기억이 불완전하 다는 것이었다.

    “아가씨.”

    그때 작은 목소리가 났다.

    ‘세드릭의 부하.’

    아까 세드릭의 옆에 있던 측근 기사였다.

    “면회입니다.”

    “면회요?”

    “네, 이 감옥은 면회인이 음식을 주지 않으면 수감자가 굶어야 합니다.”

    그자가 그리 말하고 등을 돌렸다.

    “하……. …

    이 나라 왜 이래?

    ‘하지만 아까 길거리에서 본 사람들은 유복해 보였어. 뒷골목은 몰라도 거리는 깨끗했고.’

    범죄자엔 잔혹하게. 그리고 평민에겐 다정하게. 세드릭 뭐 이런 종류의 폭군이라도 되나?

    레티시아는 순식간에 행간을 읽고 미간을 찌푸렸다.

    “레!”

    그때 미사가 울먹이며 뛰어왔다.

    ‘아, 내 친구라고 주장하는 미사.’

    레티시아는 그녀를 보았다.

    “바보야, 또 잡혀 온 거야? 어떡해! 이번에야말로 너 진짜 수 감되는 거 아냐?”

    “진정해.”

    레티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먹을 걸 좀 가져왔어.”

    미사가 레티시아에게 작은 빵 덩이를 내밀었다. 레티시아는 엉겁결에 그걸 받았다.

    “네가 억울하게 끌려온 거 알아.”

    미사가 말했다.

    “하루 이틀이 아니니까.”

    “하루 이틀이 아니라고?”

    “응. 너 매일 이런 위험한 일에 휘말리곤 하잖아.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

    듣고 보니 레티시아는 조금 억울해졌다.

    ‘맞아, 나 범죄자를 끌어들이는 일종의 특수 체질이었지…….’

    여신 휘아나가 그렇게 말했다. 한 번 죽었어야 할 원래 ‘레’의 운명이 미친놈들을 끌어들인다고.

    ‘하지만 그 운명, 원래 내 세계에서 극복한 거 아니었냐고! 여기 진짜 싫다!’

    레티시아는 울고 싶어졌다.

    “미사, 말해 줘. 세드릭이 내게서 찾는 게 뭐야?”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똑같이 이어진 인연, 세드릭.

    그 세드릭이 자신에게서 무언가를 찾고 있다면, 아마도 그게 이곳을 탈출하는 해답일지도 모른다.

    레티시아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글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미사는 한참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아, 네게 무슨 문양을 찾으라 고 했어!”

    “……문양?”

    “그래.”

    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끈. 그때 레티시아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뭔가 생각날 듯 말 듯해. 하지 만 하나의 문양이 아냐. 그건 여러 개의 문양이었어.’

    레티시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왕의 가족들. 즉, 선왕 전하 일가를 죽인 백마법사 일가들의 문양. 네가 그걸 봤대.”

    “……내가?”

    “그자들은 네게서 정보를 사고, 선왕 전하 일가를 도륙한 후, 널 찾아갔대. 자신들의 얼굴을 본 너를 제거하려고. 하지만 넌 겨우 그들에게서 탈출했고, 그때 그 사람들이 입은 옷을 봤다고 했어. 그 옷에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대……. 고대 백마법사 가문의 문양 말이야.”

    “…….”

    “왕은 그자들을 찾아내기 위해 네게 문양을 찾아내라고 하는 거야.”

    “그럼 난 문양을 말해 주면 그 다음에 세드릭에게 죽을까 봐 입을 다물고 있는 거고?”

    “응. 맞아. 그러니까 넌 제대로 찍힌 거지.”

    “…….”

    문득 레티시아는 물었다.

    “미사, 너 내가 운이 없다고 그랬지? 도대체 지금까지 내가 몇 건의 사건에 연루된 거야?”

    하지만 미사에게선 대답이 없었다.

    “97건.”

    그 대답은 다른 곳에서 돌아왔다.

    “자, 레 아가씨.”

    세드릭이 말했다.

    “이리 와.”

    “…….”

    “즐거운 심문 시간이니까.”

    세드릭이 아름다운 얼굴로 미소 지었다.

    * * *

    레티시아는 차가운 철제 테이블 앞에 앉혀져 있었다. 사방엔 피 묻은 고문 도구들이 낭자한 곳에 서.

    ‘무서워!’

    이 세계의 세드릭, 장난 아니잖 아?

    레티시아는 생각했다.

    ‘이런 고문실을 갖고 있다니. 혹시 현실의 세드릭도 갖고 있는 건 아니겠지?’

    레티시아는 침을 꼴깍 삼켰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때 아까 현장에 있던 세드릭의 측근 기사가 다가왔다.

    “저어…….”

    “빈스입니다. 여러 번 뵈었는데 오늘따라 왜 그러시는지.”

    그가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아가씨, 국왕 전하는 그래도 인정을 아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찾는 문양을 알려 주시면 죽이진 않을 겁니다. 운 좋으면 종신형으로 끝날 거고요.”

    빈스가 친절하게 소곤거렸다.

    ‘그게 말이 됩니까?’

    어머, 종신형이라니 기뻐요. 목 숨은 건지겠네. 이렇게 즐거워할 사람이 어딨다고!

    ‘그것도 연인에 의해 감옥 가는 건 더욱 사양이거든요.’

    빈스가 눈치 없이 말을 이었다.

    “여기 이 고대 백마법사 가문의 문양들을 보고, 답을 골라내세요. 분명 기억해 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레티시아 앞에는 수많은 가문의 문양의 그림들이 놓였다.

    어떤 건 사자 모양도 있었고, 어떤 것은 독수리 모양. 심지어 망구스 모양까지 있었다.

    방패부터 검, 그리고 채찍까지. 마치 심리 테스트라도 하는 것처럼 계속해서 다양한 기호의 문양 이 놓였다.

    레티시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정말로 나 이 문양들을 본 적 있어.’

    누군가가 이걸 순서대로 보여 주었다.

    〈기억하세요. 가장 중요한 문양의 순서대로…….〉

    “제가 딱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빈스가 말했다.

    “전하께서 직접 고문을 하시면 장난이 아닙니다. 이런 조그만 아가씨가 버텨 내실 수 있는 수 준이 아니라고요.”

    “세드릭이 나를…….”

    레티시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전하께서 이성을 잃고 아가씨를 죽이실까 봐, 제게 먼저 심문 하라고 하셨거든요.”

    “…….”

    레티시아는 멍하니 빈스를 보았다.

    “이대로면 정말 죽을지도 모릅 니다.”

    빈스의 눈빛이 달라졌다.

    “말로 하는 건 이번이 끝입니다, 국왕 전하께서 제게 고문도 허한다고 하셨으니까요. 저도 이런 불쌍한 아가씨에게 못되게 굴 고 싶진 않지만, 이건 아가씨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날 위한 일이라고요?”

    “그렇습니다.”

    “…….”

    “어서 기억해 내세요!”

    탕.

    빈스가 책상을 거세게 내려쳤다.

    레티시아는 뚫어지게 그 문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빈스를 보았다.

    어느새 이성을 잃은 듯한 빈스의 얼굴을 보고 레티시아는 생각 했다.

    ‘이 세계가 정말 나쁜 마법의 한중간이 라면.’

    혹은 누군가의 함정이라면.

    ‘이 세계가 제작된 목적이 있을 거야.’

    그리고 그 목적은…….

    똑딱.

    똑딱.

    똑딱.

    레티시아의 머릿속에서 시곗바 늘이 돌아갔다.

    〈이 시계가 거꾸로 돌기 시작하 면 당신은 모든 것을…….〉

    달칵. 그리고 머릿속에서 톱니 바퀴가 맞아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이봐요, 미쳐 버린 겁니까?”

    빈스가 말했다.

    “여러 사람 애먹이지 말고 얼른 말하세요. 채찍 맛 좀 봐야 정신을 차리겠습니까. 응?”

    레티시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세드릭이, 내 고문을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고?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날 다그치고 채찍질해도 된다고 말했다라.’

    레티시아의 입가에는 살며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럴 리가 없지. 우린 죽여도 서로를 직접 죽일 만큼 진하게 얽힌 사이라고.’

    혼란과 약간의 두려움이 가득했 던 눈빛도 없었다.

    ‘아, 그래. 이제 다 알았어. 수수께끼, 전부 접수 완료. 상황 파악 끝.’

    레티시아는 차분히 말했다.

    “세드릭을 불러요.”

    “뭐라고?”

    “고문, 지금부터 받을 테니까요.”

    레티시아가 속삭이듯 말했다.

    “빨리 와서 직접 해 달라고 전해 줄래요? 단둘이서, 은밀하게 말이에요.”

    빈스는 귀신을 본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불겠다고 전해요.”

    레티시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를 돌아보았다.

    “그거 만지지 마십시오.”

    빈스가 레티시아가 고문 도구들을 만지려 하자 황급히 말렸다.

    벽 근처에는 눈을 가리기 위한 용도인지, 긴 끈 형태의 안대들이 있었다.

    ‘아니면 이걸로 사람을 목을 조른 적이 있을지 모르지.’

    레티시아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도 태연하게 그 끈을 가져가 큰 셔츠를 입은 허리춤에 묶었다.

    “옷차림을 가다듬으려는 것뿐이에요.”

    레티시아가 으쓱했다.

    “그런데 전하가, 자기 호위 기 사가 제가 몸단장하는 걸 보는 걸 좋아할까요?”

    “…….”

    “제가 보기엔 그 전하께서 제 몸에 관심이 많은 것 같던데.”

    “…….”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스스로 내 고문을 시작해 버릴지도 몰라요. 아, 세드릭이 날 거칠게 고문 해도 된다고 했다고? 그럼, 어디까지 거칠어도 된다고 했으려나? 예를 들면 전치 한 달쯤 되는 상처?”

    레티시아가 도발적으로 미소 지었다.

    “어서 세드릭을 안 부르면 스스로 내 몸에 상처를 낼 줄 알아요.”

    빈스는 그 말에 움찔하더니 고 문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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