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1화 (211/218)
  • 특별 외전 3화

    “어머나 세상에. 어떻게 이런짓을!”

    마가렛이 입을 막았다.

    “저주받은 무시무시한 구슬을 지금 아가씨께 버리겠다는 거예요? 이런 나쁜 사람.”

    “당했네.”

    레티시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당했다뇨?”

    “이런 종류의 마법이 있다고 들었어. 저주받은 마도구들을 다른 사람에게 떠맡기는 마법. 말이든, 글이든 양도를 받았다, 혹은 주겠다. 그런 말과 함께 물건을 받으면 마법이 성립된대.”

    “그럼 어떻게 해요? 아가씨께서 저주를 받으시면 안 되잖아요!”

    “흐음-.”

    레티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가져서 조사해 보지 뭐!”

    “……네?”

    마가렛의 눈이 커졌다.

    “내게는 마신이 있는걸. 그 마 신이 내가 죽을 정도로 위험한 마도구라면 차단해 줄 거야.”

    어느새 레티시아의 눈빛이 반짝 이고 있었다.

    “꽤나 흥미롭네.”

    “아가씨이…….”

    마가렛은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저어, 윗분들에게 의논해 보는게 좋지 않을까요? 공작님이라든가…….”

    “그래도 상관없지만. 마가렛, 정말 생각나는 거 없어?”

    “예?”

    “은발에 푸른 눈의 대단한 미남자. 그리고 누군가의 무덤. 게다가 이 편지는…… 흐음, 사이레이 나무 향이 나네. 북부 알혼스테라 지역에서는 그 나무로 만든 종이를 즐겨 쓰지.”

    “북부라면……?”

    “그래.”

    레티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편지를 쓴 사람은 고대 백마법사의 수장, 콘단의 무덤에 갔다 온 거야. 그리고 콘단을 만나 연회에 참석한 후 이 구슬을 선물로 받은 거지.”

    “…….”

    “마가렛?”

    레티시아는 눈을 크게 떴다. 마가렛은 공포의 마법사 콘단이라는 말에 그만 참지 못하고 기절해 버린 것이다.

    “어머나, 마가렛!”

    레티시아는 구슬을 받았을 때보다 더 놀랐고, 결국 다른 사용인들이 와서 마가렛을 부축해 갔다.

    “담력이 없으면 이런 일에 호기 심을 가지면 안 되지!”

    레티시아는 그런 마가렛을 보며 혀를 찼다.

    * * *

    저녁 식사 후,

    레티시아는 어두워진 시간까지 청동 구슬을 조사했다.

    “특별한 점은 없는데.”

    “레티시아.”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방 안으로 들어온 건 세드릭이었다.

    “낮에 큰일이 있었다면서요?”

    “아아, 겁 많은 시녀가 기절한 것뿐이에요. 그보다, 이 구슬에대해 이야기를 들어 봐요.”

    그리고 자초지종을 들은 세드릭은 한숨을 쉬었다.

    “안 돼요, 이런 위험한 물건을 가지는 건. 제가 가져가죠.”

    “세드릭. 잠시만요. 내가 그냥 갖고 있을래요. 으응?”

    레티시아와 세드릭이 구슬에 동시에 손을 댄 그때였다.

    ‘어라?’

    레티시아는 현기증을 느꼈다. 그리고 휘청, 바닥에 쓰러지는 몸을 느꼈다.

    ‘뭐야, 이거? 나 지금 기절한 거야?’

    레티시아가 눈을 감기 직전 떠올린 생각은 그것이었다.

    〈항상 내게 다정해서 고마워요, 세드릭. 언제까지나 그대로만 있어 줘요.〉

    레티시아는 꿈을 꾸었다.

    〈레티시아, 지금부터 선물을 줄겁니다. 제가, 당신에게…… 유산을 물려주겠습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사내의 목소리. 싸늘하고 차가운, 하지만 한없이 벌꿀처럼 달콤하고 위험한.

    ‘이건 닥터 시벨의 목소리.’

    언제 있었던 일이지?

    ‘이 기억은, 뭐지?’

    지잉,  하고  머릿속을 강타하는 두통과  함께  레티시아는 천천히

    눈을 떴다.

    “으음…….”

    레티시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 여긴……?’

    그곳은 레티시아가 어릴 적 살던, 뒷골목이었다.

    ‘여기 내 전용 자리!’

    낡은 모포와 적은 짐들. 그리고 밀짚을 깐 자리. 겨울이면 숨어 살던 헛간이었다.

    ‘내가 왜 여기?’

    레티시아는 휘청이며 밖으로 나갔다.

    ‘그보다 나 지금…….’

    레티시아는 헛간 너머, 여자 노동자들이 대기하는 창고를 보았다. 그곳에는 늘 낡은 거울이 달려 있었는데…….

    “어어어어어?”

    거울 안에 비친 자신을 본 레티시아의 눈이 커졌다.

    ‘이 사람은.’

    분명 스물 남짓의 레티시아, 자신이었다.

    하지만 헝클어진 머리. 낡은 옷. 검뎅이 묻은 얼굴.

    ‘빈민 혹은…… 거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몰골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기억하던 자신, 공녀 레티시아보다 훨씬 작고 여 위었다.

    ‘말도 안 돼! 내가 거지로 돌아 갔다고?’

    레티시아는 저도 모르게 칼렌의 저택 쪽을 보았다.

    ‘우리 가족들은 어디……?’

    히히힝.

    말발굽 소리가 났다.

    레티시아는 휘청이며 밖으로 나갔다.

    “이단 심문관들이다.”

    “다들 눈 마주치지 마.”

    “전하께서 직접 오셨다! 왕을…… 조심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또 목을…….”

    레티시아의 귓가에 사람들이 소곤대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이단 심문관이라면……’

    예전에는 이단 마법사들을 단속 하는 기관이었으나 현재는 ‘왕가의 해결사 집단’인 곳.

    다름 아닌 레티시아의 연인 세드릭이 단장인 기관이었다.

    “그렇다는 건, 세드릭!”

    레티시아는 사람들 앞으로 나갔다.

    ‘세드릭이다……’

    말 위에 올라탄 이는 세드릭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진 모르겠지 만 세드릭을 만나니 반갑네.’

    세드릭을 만났으니 되었다. 이 상황에 대해 물어보자.

    ‘요 며칠간의 기억이 잘 안 나. 혹시, 나 거지 분장하고 작전 수사라도 들어가 있는 중이었나?’

    레티시아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이었다.

    “세드릭 드 베스티온, 이 악마!”

    누군가가 외쳤다. 그리고 레티시아를 지나쳐, 세드릭을 향해 칼을 들고 덤벼들었다.

    ‘어?’

    레티시아는 저도 모르게 치맛단에 손을 가져다 댔다.

    ‘허벅지의 내 마탄총, 없어…….”

    “안 돼, 세드릭!”

    레티시아가 외쳤다.

    레티시아의 외침에, 말 위에 올라탄 세드릭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다음 순간은 레티시아의 눈에 아주 천천히, 느릿하게 보였다. 칼을 든 사내가 세드릭에게 솟구쳤다. 그리고…….

    촤아아악!

    “아?”

    레티시아는 눈을 깜빡였다.

    세드릭은 그대로 칼을 뽑아 던졌다. 그 칼은 사내의 목 줄기에 제대로 들어박혔다.

    “꺄아아악!”

    목에서 피를 뿜는 사내는 레티시아 쪽으로 넘어졌고…….

    ‘으아아아!’

    레티시아의 온몸과 얼굴이 피범 벅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이게 누구야?”

    세드릭이 레티시아와 눈을 마주 쳤다.

    그리고 가벼운 동작으로 말에서 내려, 천천히 다가왔다.

    그 순간 레티시아가 한 생각은 그것이었다.

    ‘이 사람, 내가 아는 세드릭이 맞나?’

    눈부신 백금발에 보랏빛 눈. 신이 공들여 빚은 인형 같은 외모에 큰 키도 여전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달라.’

    세드릭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고 표정은 싸늘하기 그지 없었다.

    ‘세드릭이 이렇게 체구가 컸나?’

    자신에게 뚜벅뚜벅 다가오는 세드릭이 순간, 오싹할 정도로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살려 주세요.’

    ‘눈을 마주치자 마라, 절대로…….’

    레티시아는 사람들이 들불처럼 속삭이는 것을 똑똑히 들었다.

    ‘사람들이 세드릭을 무서워해?’

    레티시아가 아는 세드릭은 인기 있고 백성에게 신뢰받는 왕족이었다.

    길에서 세드릭을 마주치는 백성 들은 겸손하게 고개를 숙여야 했지만, 지금처럼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박아 시선을 피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

    세드릭이 손을 뻗어 피범벅이 된 레티시아의 턱을 치켜들었다.

    레티시아의 초록색 눈이 휘둥그 레 졌다.

    “세드…….”

    “오늘따라 예뻐서 몰라봤네, 우리 레 아가씨.”

    세드릭의 큰 손이 레티시아의 뺨을 꽉 눌렀다. 점처럼 피가 튄 레티시아의 여윈 뺨에 수채화처럼 피가 번졌다.

    “읏!”

    그리고 세드릭이 싫증이 난 듯, 그녀의 턱을 놓았다.

    “내 눈에 한 번만 더 띄면 어떻게 한다고 했어요?”

    “…….”

    “지난번 사건 이후로 내가 경고 했을 텐데. 두 다리로 걸어 다니고 싶으면 내 눈에 띄지 말라고.”

    레티시아는 숨이 턱 막혔다.

    뭐라 말을 해야 하는데…….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혹은 자신을 남 보듯 보는 세드릭이 너무 낯설어서였다.

    겨우 레티시아는 대답을 했다.

    “세드릭, 나한테 왜 그러는 거예요?”

    “머리라도 이상해진 거야? 하긴. 넌 늘 그랬지.”

    세드릭이 가볍게 말했다.

    그는 시체를 향해 손짓했다.

    “다 치워. 시체도, 저 바보 같은 표정을 한 여자도.”

    “네.”

    이단 심문관들이 일제히 레티시아에게 다가왔다.

    “세드릭!”

    “쉿! 조용히 하세요.”

    세드릭의 호위 중 한 명이 레티시아의 입을 막았다.

    “오늘은 전하의 기분이 좋지 않으시니, 어서 물러나세요.”

    “누구세요?”

    “하, 정말이지 엉뚱한 아가씨네. 어서 치워!”

    레티시아는 세드릭을 불렀지만 무시당했다.

    심지어 기사들에게 끌려가 뒷골 목에 내던져졌다.

    ‘뭐? 나 지금 세드릭한테 찌꺼기 취급받은 거야?’

    세드릭이 레티시아를 보던 표정, 그건 조금 과장해서 벌레를 보는 눈빛이었다.

    레티시아는 실로 오랜만에 당황이라는 걸 해 보았다.

    “이게 도대체 뭐야?”

    레티시아는 입을 벌렸다.

    “여기, 이 세계 이상해!”

    물에 젖은 낙엽처럼 골목길에 주저앉은 레티시아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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