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0화 (210/218)
  • 특별 외전 2화

    * * *

    레티시아는 세드릭과 가벼운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안 가요? 오늘 저녁은 왕궁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텐데.”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세드릭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 직후, 레티시아의 몸이 자연스럽게 쏙, 하고 세드릭의 품 안에 들어갔다.

    ‘아, 심장 뛴다.’

    사귄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새삼 이렇게 설레는 건…….

    ‘나, 역시 얼굴을 밝히는 걸까?’

    레티시아는 세드릭의 품에 안겨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왜 또 그렇게 예쁘게 쳐다보고?”

    “그냥 본 거죠.”

    “……참기 힘들어지니까 그러지마요.”

    “그럼 뭐 어디 봐요?”

    “눈 감아.”

    레티시아는 눈을 꼭 감았다. 그러자 새털 같은 키스가 쪽, 하고 입술에 떨어졌다.

    “갔다가 내일 또 올게요.”

    “또 올 수 있어요? 공무 쪽도 쌓여 있을 텐데.”

    “괜찮아요. 당신 만나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이니까.”

    레티시아는 낮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 남자.’

    정말이지 다정하다고 할까.

    ‘언제까지나 이대로만 있어 줘요.’

    레티시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세드릭의 손을 만지작대다, 아쉬움에 차 그를 보내 주었다.

    ‘만일 세드릭이 변한다면 정말 큰 충격일 것 같아. 세드릭은 이제 내 일상의 가장 소중한 부분이야.’

    결국 세드릭과 수다를 떠느라 레티시아는 편지를 다 뜯어보지도 못했다.

    레티시아는 편지를 방에서 읽기로 했다.

    “아가씨, 도와드릴까요?”

    그때 레티시아의 찻잔을 치우러 온 시녀가 말했다.

    “아. 좀 도와줄래요?”

    “네, 아가씨.”

    시녀는 싱긋 웃었다.

    “고마워요. 마가렛.”

    레티시아는 바구니를 가져와 편 지와 소포들을 넣는 마가렛을 보고 말했다.

    마가렛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요?”

    “아뇨. 그 유명한 공녀님께서 제 이름을 기억해 주실 줄은…….”

    “피리네의 후임인데 당연하죠.”

    마가렛은 뺨을 붉혔다.

    “피리네가 아가씨는 아주 상냥 한 분이라고 했는데 진짜였네요. 아…….”

    그때 마가렛은 긴장했는지, 테이블 위에 있던 소포 하나를 떨 어뜨렸다.

    데엥. 소포가 바닥에 부딪치자, 안에서 무언가가 파동을 일으키는 듯 영롱한 소리가 났다.

    “안에 뭐가 든 거죠? 어머 죄송 해요……. 고장 났으면 안 되는데.”

    “흐음, 안에 뭐가 있는지 열어 보죠.”

    레티시아는 울상이 된 마가렛에게 소포를 받았다.

    “보내는 사람 미상의 소포네?”

    낡은 갈색 종이 포장지 위에는 보낸 사람의 주소가 적혀 있지 않았다.

    ‘북부 알혼스테라 지방의 우체 국 직인이 찍혀 있고.’

    레티시아는 주욱, 소포 포장지를 뜯었다.

    “안에 뭐가 들었어요? 비싼 물 건인가요?”

    마가렛은 고개를 급히 들이밀었다.

    “상자 안에 또 상자가 있네요.”

    레티시아는 그 상자도 열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물건에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이건?”

    작은 상자 안에는 솜이 가득 차 있었고, 그 솜 사이에는…….

    “청동 구슬?”

    만든 지 100년은 넘었을 것 같은 몹시 낡고 초라한 청동 구슬 두 개가 들어 있었다.

    레티시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 이거 안 좋네.”

    “네, 아가씨?”

    “이런 수상한 물건들은 조심해야 하거든요.”

    레티시아는 손짓했다.

    마가렛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바알 ”

    검은 뱀 모양의 마신, 바알이 허공을 헤엄치듯 나타났다.

    “이거 좀 봐 줄래? 혹시 몸에 나쁜 거야?”

    바알이 눈에 보이지 않는 마가렛은 눈을 둥그렇게 떴다.

    “뭐, 뭐예요, 아가씨?”

    “아, 가끔 내가 이러는데 익숙 해지는 게 좋을 거예요.”

    바알이 레티시아에게 뭐라고 속삭였다.

    레티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러니까 생명에 지장을 주는 건 아니라는 거지? 정확히 무슨 물건인진 너도 모르겠다고? 아, 응. 알았어. 칼렌의 마신이었을 땐 알 수도 있었다는 거구나…….”

    본디 칼렌 소유의 마신이었던 바알.

    마신 서열 최상위의 아주 대단한 마신이지만, 레티시아는 공작가의 직계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었다.

    여러 가지 일을 겪은 끝에 칼렌의 마신인 바알이 레티시아에게 깃든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레티시아는 칼렌만큼 바알을 자유자재로 다루거나, 의사소통을 능숙하게 하지는 못했다.

    ‘뭐, 평범한 몸으로 태어나 바알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만 해도 기적이지요.’

    레티시아는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그렇다면 뭐가 더 있나 조사해 볼까?”

    레티시아는 상자를 거꾸로 휙 뒤집었다.

    “편지가 있네요.”

    마가렛이 말했다.

    “읽어 보세요, 아가씨!”

    “그건 어렵지 않지만. 마가렛, 지금 흥분한 건가요?”

    아닌 게 아니라, 마가렛은 거의 콧김을 뿜고 있었다.

    “어머머. 죄송해요. 그 유명한 천재 공녀님이 사건을 해결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니 조금 흥분해서! 혹시 방해라면 저기 멀리 떨어져 있을게요. 조오기- 저 정자 밖에서 몰래 볼게요.”

    그런 마가렛에 레티시아는 맥이 풀렸다.

    “혹시…… 마가렛, 이 저택에 취업하기 전에도 날 알았어요?”

    “네에- 사실, 저 공녀님의 팬이 거든요.”

    마가렛이 수줍게 말했다.

    “천재 탐정 공녀! 온 국민이 공녀님이 해결한 사건에 열광한다고요.”

    레티시아는 픽 웃었다.

    “하긴. 구경을 하는 사람이 있어 나쁠 건 없죠. 여기 동봉한 편지를 우리 함께 읽어 봐요.”

    마가렛은 몹시 감격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나서 마가렛과 레티시아는 편지 위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편지의 말머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도무지 상담할 곳도, 도움을 청할 곳도 없어 이렇게 어렵게 편지를 씁니다.]

    “흠, 여기까진 다른 편지들과 시작이 비슷하네.”

    레티시아는 말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편지 내용은…….

    [제가 살아온 마을에는 오래전 부터 유명한 ‘바위꽃 무덤’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봄이 되면 바위 틈으로 꽃이 돋아나는 숨겨진 명소지요. 어느 날 저는 그곳에 산책을 갔다가, 발을 헛디뎌 비탈 길로 굴러떨어졌습니다.]

    “뭐가 이렇게 서론이 많아요, 아가씨? 답답해 죽겠네. 그래서이 청동 구슬과 그 일이 무슨 상관인데요?”

    “마가렛,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 봐요. 자아- 글을 아는 것 같으니. 내게 읽어 주세요.”

    레티시아가 말했다.

    마가렛은 큼큼,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비탈길에 굴러떨어져 의식을 잃고 난 후 눈을 떠 보니. 세상에, 저는 한 성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비탈길 아래에 성이 있다고?”

    레티시아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곳은 이름 모를 성의 홀 안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홀 안쪽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그 안에서 아름다운 시녀들이 몰려 왔습니다. 그리고 저를 보고 말했죠.〈손님이신가요? 어서 이리오세요. 손을 씻고 만찬을 드세요!〉”

    “…….”

    “그리고 저는 훌륭한 만찬이 차려진 연회장으로 안내되었습니다.”

    ““……흐음.”

    레티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가렛도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 이어 읽었다.

    “그리고 저는 그 성의 주인을 만났습니다. 그 사내는 제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사내였습니다. 은발에, 아주 완벽한 시리고 푸른 눈을 가진 사내였죠. 그 사내는 저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 고, 손수 술을 따라 주었습니다.”

    “…….”

    “그리고 연회의 말미에. 은발의 사내가 제게 싱긋 웃으며 선물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마가렛이 헛기침을 하더니  사내 처럼 톤을 낮추어 사내의  말을

    옮겼다.

    “지금부터 근사한 선물을  드릴 겁니다. 하지만 이 선물은 한번 받으면 절대 ‘버릴 수가’ 없는 선물입니다. 하지만 이 선물을 정버리고 싶거든 당신보다 더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양도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 외엔 선물과 철썩 붙어서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마가렛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점점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는 그때 만취하여, 무조건 네네, 하고 대답했죠.”

    “그리고요?”

    “그렇게 술에 취해 저는 정신없 이 잠에 들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요? 제가 눈을 떴을 때 본 건 사방이 새카만 어둠 입니다. 주변에서는 축축한 흙냄 새가 났고, 제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점점 편지 내용은 심상치 않아 졌다.

    마가렛의 손이 달달 떨렸다.

    “그리고 눈을 떠 보니…… 꺄악!”

    “왜, 왜 그래요, 마가렛!”

    “전 너무 무서워서 못 보겠어요.”

    “내가 계속 읽을게요.”

    레티시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한참 멍하니 앉아 있자니, 겨우 눈앞에 희미한 빛이 들어오더 랍니다. 그렇게 닥치는 대로 벽을 더듬어 나오니, 제가 나온 곳은 한 지하실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있는’ 큰 흙더미요. 나올 때 지팡이 삼아 손에 쥔 막대기를 보니. 그것은 사람 뻐였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무덤에서 밤새 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흐익!”

    마가렛이 귀를 막았다.

    “그리고 괴이한 일이 시작된 건 그다음 날부터였습니다.”

    레티시아는 이를 꽉 깨물었다.

    “이 두 개의 청동 구슬.”

    마가렛이 눈을 깜빡였다.

    “그날 집에 돌아온 저는, 두 개의 청동 구슬이 바지 주머니 안에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재수 없는 일을 겪었다 생각해 청동 구슬을 바깥에 내다 버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버려도 버려도 이 구슬은 저를 따라옵니다. 어느새 집 안에서 이 구슬이 저를 지켜보고 있는 겁니다.”

    “…….”

    “그날 이후, 저는 밤에 잠을 자지도 못하고. 낮에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공포에 떨며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레티시아의 미간이 자연히 좁혀졌다.

    “그날 밤, 은발의 사내가 말한 사실이 기억나는 겁니다. ‘이 선물은 너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만 양도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구슬을 저는 레티시아 드르웰턴 공녀님께.”

    레티시아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양도하고 싶습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