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9화 (209/218)
  • 특별 외전 1화

    1. 두 개의 구슬과 백마법사의 무덤

    바람은 살랑 살랑.

    뺨은 부들부들.

    ‘으음. 기분 좋아.’

    레티시아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에 들어오는 건, 잔잔한 햇빛이 부딪치는 테이블과 그 위에 가득 쌓인 편지와 소포들이다..

    ‘아, 나 잠깐 졸았나 보네.’

    레티시아는 눈을 비볐다.

    레티시아는 정원 한가운데 놓인 새하얀 정자 안에 있었다.

    정자 안에는 푹신한 쿠션이 깔린 긴 의자가 놓여 있었고, 레티시아는 그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운 상태였다.

    “하암.”

    레티시아는 기지개를 펴며 자리에 앉았다.

    ‘요즘 계속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간만에 잘 잤네.’

    레티시아는 생각했다.

    ‘역시 집에 돌아와서,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가 봐.’

    레티시아는 2년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수도에 돌아온 참이었다.

    2년간의 여행. 그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칼렌과 살인범을 잡거나, 제이드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거나. 마리아네의 신전에 놀러 가 그 이권 싸움에 엮이기도 하고…….’

    그렇게 그럭저럭 해결한 사건들이 여럿이었다.

    물론, 그 여행엔 가족들만 함께 한 것이 아니다. 당연히 세드릭도 함께했다.

    ‘생각해 보면 원래 여행 출발할때 세드릭과 세상사를 뒤로하고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게 목적이었는데.’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 가족들도 참. 세드릭과 둘만 여행하는 건 절대 안 된다는 이유로, 번갈아 가며 여행을 감시하며 따라다니다니.’

    여행 중 해결한 사건들 덕에 레티시아의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던가.

    괴짜 공작 일가에 대한 전설이 여러 개 생긴 건 덤이었다.

    ‘하지만 세드릭, 우리 가족들의 감시에도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여행 내내 다정했지.’

    바스락.

    어젯밤 비가 내려 소복하게 쌓인, 정원 아래의 마른 나뭇가지와 낙엽들을 누군가 밟으며 다가왔다.

    “세드릭?”

    세드릭이 오랜만에 보는 이단 심문관 제복 차림으로 레티시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레티시아.”

    레티시아의 얼굴빛이 환해졌다.

    레티시아는 세드릭을 향해 손짓 했다.

    “나 정원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해가 좋으니까 나와 있을 것같았거든요.”

    그리고 세드릭은 미소 지었다.

    ‘아, 눈부셔.’

    매일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이잘생김엔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십대의 청년 세드릭.

    넓은 어깨, 단단한 몸. 그리고 천사 같은 미모까지. 이제 미남 이라는 말도 과소평가 같았다.

    세드릭은 가벼운 걸음으로 정자안에 들어왔다. 레티시아는 자리를 권했다.

    “국왕 전하와 왕비 전하께서는 잘 지내세요?”

    “네. 제가 오랜만에 돌아와서 서운하면서도 반가우신가 봅니다.”

    “좀 더 가족들과 시간 보내지. 바로 또 우리 집으로 왔네요.”

    “둘만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드물잖아.”

    세드릭이 말했다.

    “아, 그렇지요. 오늘은 우리 아버지와 제이드가 나란히 외출했 으니까요.”

    “두 분은 영지 일로 외출하셨다고 했지요?”

    “구실은요.”

    “구실?”

    레티시아는 책상위에 가득 쌓인 편지 중 하나를 집으며 말했다.

    “지방 영지에 간다는 건 구실이고, 거짓말하고 다른 데 가셨거든요.”

    “근거는?”

    레티시아는 아침 식사 메뉴 말 하듯 가볍게 말했다.

    “두 사람의 거동과 시온의 부재죠.”

    “흥미로운데, 계속 말해 봐요.”

    “칼렌은 지방 영지에 갈 때는 5 분 정도 마차를 늦게 타곤 하죠. 하지만 오늘은 마부가 대문 앞을 서성대지 않더군요. 타겠다고 한 시간, 정시에 마차를 타신 거죠. 아, 왜 늦느냐 하면, 남부 시골을 종종 지루하다고 생각하시거든요. 그게 무의식에 반영돼서 항상 마차에 타는 시간을 멋대로 바꾸시는 거랍니다.”

    “그리고? 집사 시온은 이 일과 무슨 관계죠?”

    세드릭이 물었다.

    “오늘 저택에 제이드도 없고, 칼렌도 없고 시온도 없잖아요. 그러면 세드릭이 올 건 뻔하죠. 하지만 아버지는 우리 둘만 두는 걸 싫어하니까.”

    “……높은 확률로 시온을 남겨 두고 우리 사이를 감시하는 샤프롱으로 두셨겠군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

    “네에.”

    레티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죠. 시온은, 영지 일을 보러 칼렌 대신 내려간 거예요. 그리고 칼렌은 제이드와 함께 ‘다른 중요한 임무’를 맡으러 간 거죠. 그것도, 굳이 제이드와 동행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일 말예요.”

    세드릭이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이서 직접 나서셔야 할만큼 중요한 일이라……. 예를 들면 어떤 일 말이죠?”

    레티시아는 신문을 들어 보았다.

    [백마법사의 수장. 고대의 사악 한 마법사 콘단의 무덤이 발견되다.]

    헤드라인으로 난 기사였다.

    “이곳에 가신 게 분명해요.”

    세드릭의 표정이 묘해졌다.

    “역시 알고 계셨군요?”

    “역시 우리 이단 심문관 단장님도 알고 계셨나 보네요?”

    레티시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 아빠는 내게 백마법사들에 대한 정보를 차단한다고요. 그 이유는 알 것 같지만요.”

    “백마법사들의 잔당이 아직 남아 있다는 소문이 도는 데다, 나 이젤이 탈옥했으니까요.”

    세드릭이 말했다.

    “게다가 이전에 닥터 시벨, 그 사내에게 잡혀갔을 때 레티시아는 죽을 뻔했습니다. 그러니 전 공작님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데요.”

    “그렇지만 내가 보는 신문 내용에서 ‘백마법사’에 대한 기사를 일부러 빼돌릴 정도면 너무하지 않아요?”

    “아니요. 안 그래요.”

    “세드릭, 너무해. 다른 덴 항상 내 편이면서…….”

    레티시아는 볼이 부었다.

    세드릭이 그 모습을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공작님이 신문을 조작한 건 어떻게 아셨죠?”

    “담당 시녀가 서툴더라고요. 그 애가 어설프게 일을 처리하다 들켰죠. 아침에 신문의 일부 페이지를 빼고 있던데요.”

    레티시아는 혀를 찼다.

    “피리네의 후임 시녀 말입니까?”

    “네.”

    레티시아의 몸단장 시녀이던 피리네.

    그녀는 작년, 결혼하며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후임으로 온 시녀는 피리네의 고향 친구라는 소녀였다.

    “콘단의 무덤을 직접 조사하고 싶어요?”

    세드릭이 부드럽게 물었다.

    “몸이 근질근질하다는 표정이네요, 레티시아.”

    “과연 어떤 보물들이 숨어 있을지 조사해보고 싶어요.”

    백마법사의 무덤. 그것은 언제나 흥미진진한 뉴스거리였다.

    고대에는 대단히 부유한 백마법사가 많았고, 그들은 자신의 무덤에 엄청난 소장품들을 숨겨 두 었기 때문이다.

    “보물에 관심 있는 거예요, 그 무덤에 걸려 있을 저주나 함정이 궁금한 거예요?”

    정곡을 찔린 레티시아는 움찔했다.

    “백마법사의 무덤에 들어가면 저주를 받는다니. 너무 비과학적 이잖아요. 어떤 수수께끼가 있을지 궁금하지 않아요?”

    “백마법사의 무덤에 들어갔다오면 저주받는다, 그런 말을 믿나 봅니다?”

    “그럼요.”

    레티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어릴 적에 유행했어요.〈백마법사의 무덤을 파헤치지 말라 - 저주 시리즈〉.”

    “……그런 공포 소설이 유행하기는 했죠.”

    백마법사의 무덤에 함부로 들어간 도굴꾼들이 저주를 받았다거나, 살아도 귀신에 들린 미치광이 신세가 되었다든가.

    혹은 무덤에 종속된 해골 병사 신세가 되어 노예로 일하고 있다거나.

    레티시아가 어릴 적부터 계속 유행하던 괴담이었다.

    “그런 무덤에 설치된 저주나 마법들은 몹시 위험하니까. 공작님이 직접 나서실 만도 합니다. 심지어 이 경우는 백마법사의 수

    장, 콘단의 무덤이니까요.”

    “제이드는 백마법사의 무덤에 관련된 논문을 준비하는 모양이 더라고요.”

    레티시아는 은근히 세드릭의 눈치를 살폈다.

    “세드릭…… 있죠, 이단 심문관에게 백마법사 무덤에 대한 우선 수사권이 있지 않아요?”

    “그렇게 쳐다봐도 안 돼요. 콘단의 무덤에 데려가 줄 순 없습니다, 레티시아.”

    부드럽고 단호한 거절에 레티시아는 입술을 내밀었다.

    “이젠 내 마음을 읽네요.”

    “내가 항상 당신 마음만 생각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

    “말이라도 못하면.”

    레티시아는 어깨를 으쓱하고 테이블 위에 놓은 편지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치, 좋아요. 난 여기서 재미없는 의뢰서들이나 읽을 테니까.”

    세드릭의 입꼬리가 살짝 호선을 그렸다.

    “그건 그렇고 편지가 많군요.”

    “네에. 당분간 ‘의뢰는 안 받겠다’라고 했는데도 다양한 사연들을 편지로 보내 주었네요.”

    스무 살의 레티시아는 이미 ‘그 유명한 탐정 공녀’로 전국에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하지만 ‘잃어버린 애완동물 찾기’ 같은 의뢰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요.”

    “조심해요. 편지 뜯다가 또 손 다칠라.”

    세드릭이 성급하게 편지를 뜯는 레티시아를 만류하고 편지를 대신 뜯어 주었다.

    ‘참 자상하다니까.’

    레티시아는 그런 세드릭을 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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