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화 (72/218)
  • 72 화

    "여신의 푸른 눈물을 가지고 있는 자가 배신자다, 이 말이군요. 당신들은 평소에 동료들의 얼굴이나 목소리도 모른 채 같이 일하는가 봐요."

    이것도 환상에서 힌트를 얻은 것. 키옌이 움찔하는 걸 보니 다 맞는 말인 것 같다.

    "그걸 도대체 다 어떻게 눈치채는 거지?"

    "그냥 추리한 거죠."

    그럼, 그 배신자를 어떻게 찾느냐인데…….

    '그럼 내가 지목한 사람이 죽게 되는 건가?'

    그건 좀 그런데. 찝찝하다고. 나는 팔을 주물렀다.

    오늘 아침에 새로 신은 구두를 신은 발로 자리에 우뚝 일어난다.

    콩콩. 발을 한 번 굴러 본다.

    쓰읍. 심호흡.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

    칼렌이 알게 되면 구하러 올 거다.

    오늘 엄청 중요한 궁정 회의가 있다고 했으니까. 바로는 아니라도, 언젠가는 분명히.

    '일단 시간을 끌자.'

    나는 더 말해 달라는 듯 키옌을 바라본다.

    "네 말이 맞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얼굴도 모른 채 동료가 된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공통점은 신앙심과 도둑질 수법뿐이지."

    흐음, 그거 말 되는 구조다.

    동시에 이상한 구조.

    그러니까…… 서로의 신분을 모른 채 위의 지시만 받아서 작업을 하는 건가?

    "그럼 서로 만날 때는 없어요?"

    지금은 다 모여있는데?

    "그때는 복면을 쓰고 얼굴을 가리지. 또, 암호를 통해 서로를 확인하고 '임무'만 마친 후 바로 헤어지지."

    "그게 다예요?"

    "물건을 훔치고 나면, 은신처에 숨겨둔다. 이번에도 그랬지. 그리고 다음 날 은신처에 가서 보물상자를 열어 보니, 그 안은 텅 비어 있었지. 우리 교단의 비밀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보물을 빼돌린 게 분명해."

    "은신처의 존재는 누구누구가 알아요?"

    "나와 내 부하, 열한 명. 총 열두 명."

    나는 도적들을 둘러본다. 키옌을 포함해서 도적은 열한 명뿐.

    '역시 도적이 한 명 비는군.'

    그럼 나머지 한 명의〈배신자〉는 이 안에 정체를 숨기고 숨어있는 건가?

    '오후 2시라.'

    나는 오늘 오후 2시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유리 천장 아래로 환하게 부서지는 햇빛과 콸콸 소리를 내며 아래로 흘러내리던 물들. 예쁜 수정 분수의 모습.

    '생각을 해야 해.'

    누굴까? 이곳에서 유클레르 남작과 만나기로 한 '배신자' 는.

    '가장 유력한 범인은 윌이나 데일…….'

    젊은 나이, 남성.

    보석 상자를 통째로 들고 뛰어 도망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체력.

    범인의 상상도에 가장 가깝다.

    '그렇게 생각하면 시벨 선생님도…….'

    좀 수상한 사람이긴 마찬가지지? 하지만…….

    "여신의 푸른 눈물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아요?"

    "모른다. 모든 보물상자를 통째로 들고 훔쳤거든. 아마 푸른 사파이어겠지."

    난 바르톨리 백작 부인의 초상화를 떠올렸다.

    〈부인께서는 리스트를 만드는 대신, 묘안을 내셨습니다. 본인이 가진 모든 보석들을 걸치고 그림을 그리신 거죠. 그러니 이 초상화가 부인의 보석 목록입니다.〉

    부인의 목에 걸려 있던 푸른 목걸이.

    '마법사가 아니고서야 그만한 사이즈의 사파이어 목걸이를 몸안에 숨기고 지금까지 들키지 않는 건 불가능하지.'

    내가 배신자라면 어찌했을까?

    '미리 박람회 장소에 도착해 안전한 곳에 물건을 숨겨 뒀겠지.'

    그걸 품에 넣고 돌아다니는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안전한 장소가 어딜까?'

    보석은, 강하다. 물에 녹슬지도 쉽사리 깨지지도 않는다.

    '뭔가가 떠오를 것 같은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뭔가 내가 본 것 중에 그냥 스쳐 지나간 것이 있다.

    '그게 뭐지?'

    찜찜하게 마음 한구석에 계속 걸려 있는 것. 그걸 찾아내 끄집어내면 마지막 퍼즐이 맞아떨어질 것 같았다.

    '기억하자. 분명히 기억나. 초상화가 어떻게 생겼는지…….'

    바르톨리 백작 부인의 초상화를 떠올린다.

    목에는 푸른 보석 목걸이를, 손가락마다 반지를. 하늘하늘한 드레스에 가슴에는 커다란 브로치가 한 개.

    그리고 무릎에 얹혀 있던 엄청 많은 보석들.

    "그건 그렇고 여신의 푸른 눈물이라니."

    시벨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눈물이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요?"

    "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지?

    그 순간이었다. 나는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다.

    '아…….'

    그랬구나. 이젠 알겠다.

    첨벙. 나는 분수로 뛰어들었다.

    "이봐, 뭐 하는 거야."

    키옌이 외쳤다. 시벨은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보고 있다.

    '2시에 천장에서 햇빛이 비추면…….'

    햇살이 부서질 거다. 그리고 여신상의 주변에 있는 촘촘한 작은 조각들. 나는 미소 지었다.

    "찾았어요."

    나는 분수대 바닥에서 '그것' 을 찾아냈다. 반짝이는 보석.

    "이게 바로 '여신의 푸른 눈물' 이에요."

    나는 보석을 들어 보였다.

    그랬다, 여신의 푸른 눈물은 사파이어도, 블루 다이아몬드도 아니었다.

    푸른 여신의 눈물은 카메오였다.

    카메오란, 주로 목걸이나 브로치로 쓰는 장식품이다. 둥글고 긴 타원 형태. 그 옆에 여인의 옆얼굴을 조각한 것이 많다.

    '주로 조개나 자개 같은 걸로 만들었다지?'

    이것도 전생의 책에서 읽은 지식.

    내 손에 들린 카메오에는 눈물을 흘리는 여신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었다.

    '이런 브로치를 바르톨리 백작부인이 가슴에 달고 있었어!'

    나는 카메오를 뒤집었다.

    "파란 보석이에요."

    카메오 뒤는 새파란 보석으로 꽉 차 있었다.

    "블루 다이아몬드군."

    키옌이 묘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당신들이 찾던 게 이거죠?"

    나는 카메오를 내밀었다. 키옌이 다가왔다.

    "이리 줘, 꼬마."

    나는 뒤로 주춤 물러났다.

    "무서우니까 여기 와서 가져가요."

    내가 움직이자 물이 찰랑이며 첨벙이는 소리를 냈다.

    "장난치지 마. 다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키옌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줄 거예요. 이리 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키옌이 내게 다가왔다. 칼은 허리춤에 찬 상태였다.

    그 순간이었다. 나는 키옌에게 '여신의 푸른 눈물' 을 집어던졌다.

    "앗!"

    키옌의 얼굴에 적중했다.

    "꼬마!"

    키옌이 으르렁댔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가 더 빨랐다.

    난 곰돌이 가방에서 마탄 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키옌을 정확히 조준했다.

    "움직이지 말아요."

    푸른 과녁이 키옌의 어깨를 비췄다. 좋아, 이제 방아쇠만 당기면 된다.

    "내가 그런 말을 들을 것 같나? 가소로운 꼬마군."

    "아뇨."

    철컥. 나는 바로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오빠는 말 지지리 안 듣게 생겼거든요. 나보다 더."

    탕.

    마탄종 소리가 나며 키옌이 뒤로 넘어졌다. 쿵! 소리가 났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죠. 한 시간은 꼼짝 못 할 거예요."

    나는 총구를 내려놓고 말했다.

    동시에 시벨이 품 안에서 비수를 꺼내 들어 눈앞의 상대를 공격했다.

    '보통 저런 걸 가지고 다니나?'

    멍하니 내가 그 생각을 떠올린 순간이었다.

    쿵. 쿵. 쿵.

    바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균형을 잃고 바닥에 넘어졌다. 그리고 고개를 쳐든 내 눈이 경악에 물들었다.

    분수대의 물이 모두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그리고 천장이 열렸다.

    유리 천장이 일순간에 날아간 것이다. 벽이 달그락거리고, 유리가 깨졌다. 그리고 모든 문이 벌컥 열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았다.

    "괴물! 괴물이다!"

    기괴한 모습의 생물들이 문 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투명한 뱀에게 들려 공중에 떠 있었다.

    '아, 이건 칼렌의 뱀이다.'

    열린 문틈으로 사람 한 명이 걸어 들어왔다.

    뚜벅. 뚜벅.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칼렌, 내 아빠였다. 그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레티시아."

    내 마음속에 안심이 퍼졌다. 나는 칼렌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빠 왔다."

    "……."

    "그래서, 누가 내 딸을 인질로 잡았다고?"

    아무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흑발에 붉은 눈의 칼렌이 선 모습이 몹시도 위험해 보였으니까.

    마신들을 거느린 모습은 누가 봐도 공포 그 자체였다.

    "아아, 일단 수상해 보이는 놈들부터 족치면 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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