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218)
  • 13 화

    이내 소리가 끊겼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집 안은 죽은 듯 조용해졌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불길했다. 혹시, 벌써 칼렌이 당했나?

    내가 아는 소설 내용이 순식간에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점쟁이에 대한 단서를 찾은 칼렌은, 새벽녘에 이곳에 침입한다.

    그리고 우리 속에 갇혀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나' 를 발견한다.

    그리고 칼렌이 내게 시선을 빼앗긴 사이,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칼렌을 공격한다.

    그러면, 내 예상이 맞는다면.

    '방 안에 누군가가 잠복해 있거나, 점쟁이에게 패거리가 있을 가능성이 있어.'

    최악의 상황은 저 안에서 칼렌이 이미 화살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거다.

    나는 현관문을 향해 다가갔다.

    제이드가 뒤에서 어깨를 잡았다.

    "도대체 넌 뭘 아는 거야?"

    제이드도 칼렌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는 안다. '사냥' 에 대한 것 말이다.

    그렇지만 오늘 밤 이 집 안에서 칼렌이 무슨 짓을 하는지까진 모른다.

    "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확인해 봐야겠어요. 감이 안 좋아요."

    제이드가 내 어깨를 놓았다. 믿을 수 없다는 눈이었다.

    "도대체……?"

    "제이드, 이미 나랑 약속했어요. 도와주세요, 네?"

    나는 빠르게 속삭였다.

    "제이드, 문이 열리면- 문 근처의 벽을 주시해 주세요. 그리고 그게 누구든, 사람이 있다면 달려들어요."

    제이드는 공작가의 사람이라 튼튼하고 강건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미 웬만한 어른만큼 훤칠하니까.

    '화살이 날아온 방향은 문 쪽이었다고 했지.'

    나는 문고리를 손에 쥐었다.

    단 1, 2초의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오늘 밤 '레'는 원래 여기서 죽을 몸이다.

    하지만 전생처럼, 아니 그보다 더 어린 나이에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아. 살고 싶어.

    그래도……. 역시 제이드가 상처 받는 건 싫어. 역시 칼렌이 다치는 건 싫어. 여기까지 왔으니 내겐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모습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먼저, 방 안은 천장이 높은 구조였다. 지하실이되 난간을 통해 1층과 천장을 공유하는 구조였다.

    그다음으로 내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게 두려워하던 '우리' 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여자 하나는 충분히 들어갈 만한 크기인 그 우리는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난간을 통해 이어진 밧줄에 대롱대롱 목이 매달린 사람 한 명이 발버둥 치고 있었다.

    긴 드레스를 입은 사람이었다.

    '이번 사건의 범인…….'

    점쟁이 살인 사건의 진범.

    그자는 입에 재갈이 물린 채 한 손으로 필사적으로 밧줄을 쥐고 버티고 있었다.

    "읍! 읍!"

    그러나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밧줄 끝은 칼렌의 손에 잡혀 있었다.

    나는, 칼렌이 살인하는 장면을 본 것이다.

    새까만 정장을 입은 칼렌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칼렌이 우릴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칼렌은 무사했다. 그러나 안도할 새도 없었다. 본능적인 공포가 내 등에 오소소 돋아났다.

    "공작님?"

    "이게 무슨 일이지?"

    칼렌이 나른하게 말했다.

    "제이드, 여긴 어떻게 알고. 뜨고 아이는 여기 왜 데리고 온 거지? 지금 바쁘니, 데리고 나가라."

    칼렌이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정말로? 그게 다야? 나는 어이가 없다는 생각마저 했다.

    "너, 나중에 이야기하자."

    칼렌이 날 보며 속삭였다. 그리고는 당황하기는커녕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흐으, 으윽……. 윽……."

    칼렌의 손등에 힘줄이 돋아나고 매달린 범인의 저항이 거세졌다.

    "설마 했더니. 이리 와, 레. 나중에 혼나야겠구나. 아직 이런 걸 보기엔 일러."

    "죽을 때까지 안 보면 더 좋은 광경이었을 것을."

    내게 그렇게 말하는 제이드는 맥 풀린 표정이었다. 제이드가 나를 끌어당겼다.

    그때였다. 나는 점쟁이가 포기한 듯 손을 늘어뜨리는 걸 보았다. 불길했다.

    내 온몸의 예감이 외쳤다.

    본능적으로 나는 제이드의 손을 피했다. 그리고 칼렌을 향해 뛰었다.

    "여기 있으면 안 돼요, 공작님!"

    죽은 것 같았던 범인은, 마지막 힘을 다해 -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 손가락을 꼼지락댔다.

    '반지?'

    범인은 자신의 손에 낀 반지를 만지작댔다. 그리고 나는 반지에 박힌 알이 움직이는 걸 분명히 보았다.

    그 직후 범인은 시체처럼 축 늘어졌다.

    드르륵.

    그리고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나는 칼렌에게 뛰어들었다.

    "공작님!"

    그 뒤에 일어난 일은 너무 빨라서, 나는 그게 현실인지 아닌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린 칼렌, 느슨해진 밧줄을 쥔 그의 손.

    쿵!

    덕분에 바닥에 인형처럼 풀썩 떨어진 범인.

    순간, 바람 소리가 내 고막을 찢는 듯했다. 벽이 열리고 작은 틈에서 화살이 내쏘아졌다.

    '아, 그렇구나. 화살 장치 함정이 있는 거였어.'

    그랬다. 괴한이 화살을 쏘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함정 장치를 움직일 수 있는 건 범인의 반지였다.

    '위험해!'

    나는 칼렌을 밀치려 했다.

    그러나 고작 그의 앞을 막아서고, 팔을 뻗는 것이 다였다. 정신을 차려 보니 칼렌이 놀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푹.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내 등을 관통하는 통증을 느꼈다.

    "아……."

    어깨가 부서질 듯한 통증이었다.

    "레!"

    제이드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칼렌의 손이 나를 붙잡았다.

    "아가?"

    눈앞이 붉어졌다. 내 눈이 이상해…….

    "아……."

    나는 칼렌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손으로 그의 몸을 더듬었다.

    칼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깨가 아파요."

    나는 속삭였다.

    범인이 바르작대며 내 옆으로 기어가는 것을 보았다. 제이드가 내게 달려오는 것도 보았다.

    '나, 죽는 거야?'

    내 눈앞이 가물가물해졌다. 신기하게 고통에서 점점 정신이 멀어졌다.

    "정신 차려, 의식을 잃으면 안 돼. 괜찮아, 자. 착하지? 날 봐."

    칼렌이 외쳤다.

    '그렇지만, 너무 아파…….'

    다음 순간 나는 환상을 보았다.

    눈앞에 터지는 환한 불빛에 대한 환상.

    내 위로 드리워진 사람들의 얼굴. 나를 보며 걱정하는 사람들.

    전생의 엄마와 아빠가 날 보고 울고 있었다.

    아, 이건 전생에 아팠던 내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의 기억이다.

    점점 시야가 돌아왔다. 눈앞의 아빠의 모습이 사라져 갔다.

    "아빠……."

    내가 중얼거렸을 때, 환상 속의 아빠의 모습은 칼렌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의 품에 안겨 떨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너무 아프면 눈물이 나오지도 않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파요, 아빠……."

    눈앞이 점점 어두워졌다.

    "정신 차려. 제발."

    제이드의 목소리였다.

    나는 그가 그렇게 애타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심장이 빠르게 뛸 때마다 머리가 쿵쿵 울렸다. 적어도, 책 속의 이야기와 똑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저 우리 안에 사지가 잘린 내가 갇혀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적어도, 반만 일어나서 다행이다.

    "다행이에요."

    나는 속삭였다.

    그리고 다음부턴 내 말 들어줘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혀가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가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히익……."

    이 사건의 진범은 여장 남자 점쟁이였다. 나는 그자가 사내임을 알고 있다.

    고개를 돌리자 그가 신음 소리를 내며 바닥을 기어 문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퍽!

    그리고 문을 열고 나온 키 큰 인영이 로드로 점쟁이의 머리를 내려쳤다.

    점쟁이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자를 내려친 건 시온이었다. 시온은 집 사복을 입은 채 그자의 머리통을 짓밟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가씨와 도련님이 사라지셔서……."

    날 발견한 시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가씨……?"

    시온의 눈이 나를 향했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천천히 눈이 감겼다.

    "미안해요."

    처음부터, 칼렌에게 모두 말했으면 좋았을걸.

    오늘 밤 왜 여기 오면 안 되는지 설명했으면 좋았을걸.

    내가 차라리 모든 걸 알았다면 좋았을걸.

    '하지만 정말 여기까지밖에 모르는 걸.'

    그것도 미안했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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