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218)
  • 6 화

    "'레'아가씨에 대한 보고입니다. 빈민가 세튼 지역 거주, 부랑아. 주변인들은 비슷한 빈민가 아이들밖에 없으며, 구속된 적 없고 소매치기를 한 적도 없습니다. 구걸로 살아오셨으며 해당 지역에서는 근 1년간 특정한 질병이 돈 적 없어 현재 건강하십니다. 특별히 접촉 중이던 조직은 없습니다. 세튼 구역은 번화가 바로 뒤의 지역으로, 우리 가문의 소유지입니다. 빈민 아이들을 제외하고 소매치기나 조직원들은 이미 한차례 다 소탕한 바 있죠."

    칼렌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다가 시온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신발."

    칼렌이 속삭였다. 시온이 다가가 무릎을 꿇고 그의 구두끈을 풀었다.

    "일단 그 애에게 수상한 점은 없군."

    "그렇습니다."

    잠시 침묵하던 시온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분을 입양하시기로 한 건, 역시 '그 꽃'때문입니까?"

    "아아, 그래. 내가 애타게 찾던 붉은 꽃- '그 꽃' 을 가져왔단 말이지."

    "……."

    "그것도 내 어머니를 죽인 놈의 유일한 단서를 말이야."

    이름조차 없는, 기괴한 모양의 붉은 나팔꽃. 황금색의 장식 무늬가 있는 그 꽃은 그가 전국을 찾아 헤매도 찾을 수 없던 물건이었다.

    "'그 꽃' 이 '그자' 와 관련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래."

    칼렌은 소년기 때부터 악당들을 처단해 왔다. 대부분 손쉽게 놈들을 잡았고 처형했다. 그런단 한 명의 살인마만은 잡지 못 했다.

    "기괴한 살인 사건에는 항상 이 꽃이 발견되었지. 하지만 경찰은 단서를 잡지 못했어. 나도 마찬가지고."

    "……네."

    그리고 그 꽃은 칼렌의 어머니가 죽은 자리에도 놓여 있었다.

    범인은 찾지 못했지만 이후 칼렌이 조우한 몇몇 사건들에도 이 꽃이 놓여 있었다.

    '범인은 각기 다른 사건이었지만 그 뒤에는 분명 놈이 있을 거야.'

    칼렌은 얼굴도 없는 자와 계속 대치하고 있었다.

    "놈은 나를 지켜보고 있어."

    칼렌이 속삭였다.

    "레 아가씨가 타깃일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그래. 다음번엔 이 애를 죽이겠다- 그런 예고로 놓은 꽃일 수도 있지. 그게 아니면 놈의 스파이일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내 곁에 두고 지켜봐야겠다."

    "……."

    "귀여운 아이지만……. 홀리지 마라, 시온. 넌 애와 동물에게 너무 약해."

    "제이드 도련님은 어찌할까요?"

    "놔둬. 키우던 키메라가 죽은 후로 그다지 정을 주는 게 없으니 친하게 지내면 좋은 거지."

    "네."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홉 살짜리 아가씨가 스파이일 것 같진 않군요."

    "방심하지 마."

    칼렌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본인이 괜찮다고는 했지만 '레' 라는 이름은 좀 그렇지 않나?"

    "제대로 된 이름을 하나 내려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생각해 보지."

    칼렌은 집사를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아주 완벽히 어울리는 이름으로 하면 좋겠군."

    칼렌은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왕실에서는 뭐라 하시는지요?"

    "사람을 죽일 거면 제발 밤에 남몰래 죽이라는데."

    "……그러시겠지요. 대낮에 때려죽이신 건 너무했습니다."

    "덕분에 오래간만에 식사했잖아."

    "이론상으로는 1년에 한 번만 드시면 되잖습니까?"

    "먹을수록 중독돼. 이 정의의 맛이라는 것에."

    칼렌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속삭였다. 시온은 그가 농담하는 것을 알았다.

    "의자가 좀 움직이는데."

    "죄송합니다. 약을 생각보다 적게 쓴 것 같습니다."

    칼렌의 의자 아래에는 꽁꽁 묶인 사내 한 명이 몸을 비틀고 있었다.

    그는 30명을 죽인 다음, 신체 일부를 수집하는 죄를 지은 현상범이었다. 오늘 아침에 막 잡아온 신선한 사냥감이기도 했다.

    "내 사냥용 장갑 가져와."

    칼렌이 속삭였다.

    시온은 의무적으로 미소 짓고 장갑을 가져왔다. 칼렌은 장갑을 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구두를 벗은 맨발로 가볍게 로드를 휘둘러 보았다.

    이내 어딘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 * *

    〈엄마, 난 커서 나쁜 사람들 잡는 일 하고 싶어. 나도 할 수 있겠지?〉

    또 전생의 꿈을 꾸었다.

    '그런데 왜 정작 〈르웰턴 공작가의 나날들〉에 대한 기억은 나지 않을까?'

    내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 생각이었다.

    큰 창문 너머로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꿈 때문일까?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현실을 의심하게 돼.'

    지금 내 몸에 걸친 건 제이드가 어릴 적 입던 셔츠였다. 나에게 맞는 옷이 없어 그의 잠옷을 잠깐 빌려 입고 있다.

    살며시 뺨을 꼬집어 본다.

    "역시 꿈이 아니야."

    호사스러운 방.

    몸에 스치는 부드러운 시트.

    내가 평소 덮고 자던 조각조각 기운 초라한 담요나, 볏짚단을 쌓은 잠자리와는 달랐다.

    나는 눈을 비비고 거울을 보았다.

    뽀송뽀송한 머리. 깨끗한 피부.

    킁킁 냄새를 맡아보았더니 어김없이 좋은 냄새가 난다. 청결이라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지 몰랐다.

    나는 날듯이 문을 열고 나갔다.

    아침 식사 시간은 분주했다. 접시를 나르는 하인들 틈에서 나를 발견한 시온이놀라 다가온다.

    "아가씨, 하녀들은 어쩌시고요?"

    "어……."

    "너무 일찍 일어나신 모양이군요. 공작님과 도련님은 아직 주무실 시간이거든요."

    "죄송해요. 아침부터 들떠서……."

    시온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생겨났다.

    "귀족은 잠옷 차림으로 돌아다니지 않는 법입니다. 방으로 돌아가 계시면 몸을 꾸밀 하녀들을 보내겠습니다."

    "네!"

    "아침잠이 덜 깨셨으면 방까지 안아서 모셔다 드릴까요?"

    "아뇨."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좀 낯간지러울 것 같았다.

    "오늘은 시간이 조금 있으니, 식사 후에 집 안을 구경시켜 드리겠습니다."

    "네."

    나는 다다다 뛰어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곧 하녀들이 들어와 옷을 입혀 주고 머리를 묶어 주었다.

    치마에 하트 무늬가 있는 갈색 원피스와 그에 맞는 갈색 리본이었다. 양쪽 머리를 높게 묶어 올렸다.

    "자, 다 됐습니다. 이제 아침 식사하러 가시면 되세요."

    오늘도 아침 식사 장소에 칼렌은 없었다. 또 사람을 죽이러 간 것일까?

    나는 이제 아침마다 제이드와 단둘이 식사를 했다. 이러기를 며칠째더라?

    '혹시 공작님은 이 집에 안 사는 건가?'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입양된 날 이후 칼렌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밀크티를 드시겠습니까?"

    "……네."

    "어제처럼 달게 해 드릴까요?"

    시온이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티는 라굴 제국산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아가씨의 차는 매일 이 정도로 맞춰서 타 드리겠습니다."

    "네, 고마워요."

    그가 우아하게 차를 따랐다.

    '달다, 좋아…….'

    아침은 팬케이크와 햄, 그리고 달걀.

    며칠 사이 내 볼은 통통해져 있었고 살결도 윤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다시는 길바닥에서 구걸하던 생활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많이 먹어."

    "네."

    제이드는 동물 관찰하듯이 내가 먹는 모습을 보곤 했다. 친구가 된다는 소기의 목적은 모르겠고, 관찰 일기 대상이 된 기분.

    "공작님은……, 오늘도 아침 식사에 나오지 않으셨네요."

    "아아, 아버지는 늘 바쁘시지. 지방 영지도 있으니 그쪽에 시찰을 가신 모양이야."

    그 말에 나는 등이 굳었다.

    '지방 영지 시찰' 은 칼렌이 작업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다닐 때 자주 대는 핑계였기 때문이다.

    그럼 제이드는? 혹시 제이드가 한가하면…….

    나는 제이드의 눈치를 보았다.

    제이드는 픽 웃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나도 외출을 해야 할 것 같아. 클럽 모임이 있거든. 그 뒤에는 학술원도 들러야 하고 말이야."

    제이드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냠냠 밥을 먹고 있자니 이미 행복했다. 하루의 시작이 너무 완벽해.

    "그렇게 맛있어?"

    제이드가 손을 뻗어 내 입가를 닦아 주었다. 볼이 빨개졌다.

    "식사 예절은 좀 배우는 게 좋겠다."

    "……배울게요."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지, 내 미래에 도움이 되는 거라면 배울 생각이었다.

    '제이드는 여전히 어렵지만 그래도 이젠 아침마다 대화도 해.'

    그게 유일하게 요 며칠간 발전한 일이랄까.

    "아참, 그렇지."

    그리고 제이드는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을 쳤다. 곧 하인 한 명이 들어왔다.

    "가지고 놀고 있어."

    "어……."

    하인의 손에는 풍선이 들려 있었다. 내 눈이 커졌다. 와, 풍선이다!

    "저 주시는 거예요?"

    "응, 방 안에 묶어 놔도 되고……."

    "어, 어디든 가지고 다닐게요!"

    선물을 받는 것은 이번 생에서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이렇게 예쁜 금색 풍선을 말이다. 나도 모르게 눈이 반짝였다.

    "풍선은 특별한 날에나 드는 건데……."

    사실, 제이드가 이 방에 없었다면 나는 자리에서 엉덩이로 콩콩 뛰었을 것이다. 그만큼 신났으니까.

    왕국에서 풍선은 꽤 고가품이었다. 축제날 부잣집 아이들이나 가지고 노는 거였으니까.

    고마울 땐 어떻게 해야 하지?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는데. 어릴 적에 마리아네 고모가 줬던 안 쓴 새 풍선을 찾아서 펌프로 바람을 넣은 것뿐이야."

    "너무 기뻐요. 이런 좋은 걸 받은 건 처음이에요. 혹시 풍선이 터지면 어쩌죠?"

    "그럼 새로 사면 되잖아."

    나는 항상 병실 안에서 친구들이나 부모님을 기다려야만 했다.

    때때로 아빠는 밖에 나가지 못하는 날 위해 풍선을 가져오곤 했다. 그걸 생각하니 눈가가 찡해졌다.

    "울 정도로 좋아?"

    "아, 으. 네."

    나는 과거의 기억을 말하 지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제이드는 나를 신기하다는 듯 보았다.

    "너 되게 신기하다. 왜 이런 작은 일로 그러지?"

    그래도 말투는 다정했다. 나는 작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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