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218)
  • 5 화

    놀라서 손에 들고 있던 닭다리를 떨어뜨렸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아, 난 몰라.'

    내가 뭐로 보였을까?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손에 든 파이를 보았다가, 제이드를 보기를 반복했다.

    "어, 으."

    "네가 앉아 있는 거기는 내 자리인데."

    제이드가 툭 하고 던졌다.

    이제 내 뺨은 폭발할 것 같았다. 남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니.

    "죄송해요!"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의자가 너무 높았다. 하마터면 그대로 떨어질 뻔했다.

    "……!"

    정신 차려 보니 제이드가 나를 안듯이 잡고 있었다.

    '앗!'

    제이드는 내 허리를 잡고 번쩍 들어 다시 의자에 앉혔다.

    그가 나를 너무 쉽게 들어 올려 나는 작은 인형이 된 기분이 들었다.

    "내 자리는 여기, 저 자리는 아버지 자리. 그리고 이제부터 네 자리는 내 맞은편이야."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한테서 비누 향이 난다."

    제이드가 숨을 들이쉬었다. 나는 살짝 긴장했다.

    "스트로베리 블론드였구나."

    "……."

    "그래서 머리에서 딸기 냄새가 나나?"

    그 순간에도 내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

    나는 혹시, 제이드를 위해 차려진 상을 빼앗아 버린 걸까? 음식을 빼앗아 먹는 나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은데

    아까 시온의 말을 듣고 제이드의 친구가 되기로 했는데 그것도 다 글렀다. 나는 음식 앞에서 이성을 잃고 먹보가 되어 버린 것이다.

    눈가에 눈물이 아롱거렸다.

    "왜 그러지?"

    제이드가 물었다.

    "제가 저녁 식사를 다 먹어 버렸어요."

    나는 울먹이며 말했다.

    "도련님의 식사까지 다."

    "같이 먹으라고 차린 건데."

    "하지만……."

    예전의 난, 구걸에 성공한 날이면 말라비틀어진 빵 한 조각이라도 주변 아이들과 나눠 먹었다.

    그게 우리 거지들이 소매치기하지 않고도 살아남는 법이었다.

    물건을 훔치면 바로 잡혀서 구빈원으로 끌려갔으니까.

    "치, 친구끼리는 작은 음식이라도 나눠 먹는 건데."

    "……."

    "도련님하고 친구가 되고 싶었는데, 이제 저를 그냥 먹보로 아실 거 아녜요."

    제이드는 내게 몸을 숙이더니 나를 관찰했다.

    "너 누구 닮았다."

    "누구……, 요?"

    "내가 키우던 애완동물."

    풉.

    나는 기침을 할 뻔했다.

    "지금은 죽고 없지만 말이야. 음식만 보면 조그만 게 정신을못 차리며 제 몸의 배 이상으로 먹어치웠거든."

    "……."

    "누가 가져갈까 봐 간식은 꼭 입에 물고 다녔지."

    제이드가 내가 손에 아직도 꼭 쥔 파이를 가리켰다.

    "그, 그래요? 좋아하는 애완동물이었나 봐요."

    나는 말을 돌렸다.

    "응. 실험이 잘못돼서 죽었지만 말이야."

    실험? 무슨 실험? 나도 모르게 손이 한 번 떨렸다. 일단 물어보지 말자.

    "칭찬 감사합니다."

    나는 겨우 미소 지었다.

    "칭찬?"

    "네에-, 좋아하는 존재였다고 하셨으니까."

    제이드는 묘한 표정이었다.

    이게 뭐지? 이런 표정.

    내가 제이드에 대해 아는 사실을 떠올려 보았다.

    낯가림이 심하고 자기 세계가 강하고, 아버지라고 해도 참견하는 걸 용서하지 않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제이드는 고개를 한참 기울이고 있더니 내게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제이드라고 불러. 그리고 먹는 걸 구경하느라 기척을 내지 않은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구경을 하셨다고요?"

    "신기해서. 이렇게 많이 먹는 아이는 본 적이 없거든."

    "……."

    "너한테 궁금한 게 있었어. 너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며?"

    그건 내가 칼렌에게 한 말이었다. 튼튼해서 하녀 일을 잘할 것이라 어필하려 한 말.

    "네."

    "왜 한 끼만 먹나 했더니 한 번에 이렇게 많이 먹어서 그러는 거였구나."

    "……."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하루 세 끼를 먹기에는 음식이 부족해서 그런 건데. 그 말이 이 사람에겐 이렇게 들리는구나.

    나는 손에 든 파이를 내려놓았다.

    "더 먹어."

    제이드가 속삭였다.

    "너 먹는 모습만 지켜봐도 재미있어. 포포도 볼이 불룩 해지도록 먹었거든. 아, 포포는 고양이야."

    "그렇구나-. 예쁜 고양이었을 것 같아요."

    "사체가 박제로 있는데 볼래?"

    포포의 사체……? 사레들릴 뻔했다.

    갑자기 목이 탔다. 나는 과일주스를 홀짝였다.

    "금색 줄이 들어간 빨간 꽃."

    내 손이 내려갔다.

    "그 꽃……, 누구한테 받은 거 맞아?"

    "네. 그런데요."

    나는 꽃을 보던 칼렌의 묘한 표정을 떠올렸다.

    뭐가 잘못된 건가?

    "정말 도둑질한 것 아닌데."

    "흐응……."

    제이드가 턱을 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왜 널 양녀로 들인 거지?"

    "저도 몰라요."

    "너 혹시 사람 죽여 본 적 있어?"

    나는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실수로라도?"

    "없어요. 저는 아직 작아서 아무도 저한테 안 죽을 거예요."

    내 말이 설득력이 있었는지 제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누가 사람 죽이는 일에 협조한 적 없어?"

    "없대도요."

    "……그럼 아주 사소한 죄도 지은 적 없어?"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나는 더듬대며 고백했다.

    "……지갑을 훔친 걸로 오해받은 적은 있어요. 지나가던 사람의 지갑을 주워서 가져가라고 내밀었는데, 소매치기로 몰려서 맞은 적은……, 있지만……. 정말 훔친 건 아니었어요!"

    제이드의 표정이 묘해져서 괜히 뺨이 붉어졌다.

    "그리고 이틀에 한 번씩 음식을 실은 마차가 와서 음식을 나눠줬거든요. 그 음식을 아끼면 하루에 한 번씩은 밥을 먹을 수 있었고요."

    제이드는 침묵했다.

    "많이 맞았어?"

    "……뺨을, 몇 대 맞았어요."

    굉장히 세게 맞아서 몇 번이나 바닥에 쓰러졌다. 발길질도 당했지. 그때는 정말 죽을 뻔했다.

    "넌 그럼 아버지가 죽이려고 데려온 장난감이 아니구나."

    제이드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제야 제이드의 질문을 이해했다.

    칼렌은, 죄지은 사람만 데려다 죽인다. 혹시 나 또한 그런 대상이 아닌가, 제이드는 그런 의심을 하고 있던 것이다.

    입맛이 뚝 떨어졌다. 이곳에 온 게 과연 잘한 일일까. 나는 제이드의 눈치를 보았다.

    "그런데 왜 나랑 친구가 되고 싶은데?"

    "……고마워서요."

    나는 나도 모르게 긴장했다.

    "고맙다고?"

    "네. 제가 여기 있을 수 있게 해 주셨잖아요."

    "그건 아버지가 결정한 거야."

    "하지만 공작님께서 저를 입양하기로 하시기 전, 도련님께 의견을 물어보셨을 거 아녜요? 공작님에게 도련님은 소중한 아들이니까. 만일 반대하셨다면 저를 내쫓으셨겠죠."

    "……."

    "공작님은 도련님의 의견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실 테니까……. 그러니까 고마워서요."

    제이드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남매는 친구가 못 될걸."

    "……네."

    "하지만 그럭저럭 가까운 사이가 될 수도 있지. 너 먹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오늘만 그런 건데. 원래 그렇게 많이 안 먹어요……."

    아, 일단 날 싫어하진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그런데 네 뺨을 때린 사람은 나쁜 놈이네?"

    "그렇……, 겠죠?"

    "그 사람 얼굴 기억나?"

    "아뇨."

    그건 너무 오래전 일이었다. 또, 일부러 지우려 노력했던 기억이기도 했다. 그때 일은 생각만 해도 무서웠으니까.

    "기억나면 말해 줘. 내가 찾아내서 혼내 줄게."

    나는 눈을 깜빡였다.

    "혼내 줘요?"

    "응. 너 크로켓 할 줄 알아?"

    "아뇨."

    그게 뭐 하는 건지도 몰랐다.

    "공놀이는?"

    "좋아해요."

    더 어릴 적엔 친구들이랑 볏짚을 엮어 만든 공으로 공차기 놀이도 했으니까. 제이드가 천사의 미소를 지었다.

    "그 사람 머리통으로 공놀이 하게 해 줄게."

    나는 그 순간, 그 사람 얼굴이 기억나더라도 끝까지 숨겨야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기념품도 다 너 줄게."

    기념품이 뭔데요? 물어보면 안 돼. 머릿속에서 위험 신호가 울렸다.

    '이건 나름대로 호의 표현이겠지?'

    나는 겨우 표정 관리를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기억나면 꼭 말할게요. 친절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도련님."

    "제이드라고 불러."

    "네. 저는 '레'예요."

    제이드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포포는 무슨 실험을 하다가 죽었어요?"

    설마 친해지면 나로도 실험을 하는 건 아니겠지?

    "병에 걸려서 간호 환경을 바꿔주는 실험을 했어. 따뜻한 곳에도 두고 침대도 바꿔 주고, 약도 먹이고. 하지만 나을 수 없는 병이라서. 원래 수명이 긴 종류가 아니었고."

    아, 그럼 결국 포포를 간호해준 거구나.

    "포포도 실험에 고마워할 거예요."

    나는 내가 기억하는 원작 내용이 맞는 것에 안심했다.

    맞아. 제이드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이런 사람일 뿐이다. 그게 공작가의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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