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218)
  • 3 화

    * * *

    "보아하니 애가 딱한데, 내가 데려갈까?"

    마리아네는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머리를 꼬면서 말했다.

    "어차피 신전에 고아들은 넘쳐나. 내 곁에 두고 내 시중 담당 신관으로 키우면?"

    "아이는 애완동물이 아닙니다, 고모."

    제이드가 무뚝뚝하게 내뱉었다.

    "누가 그렇대? 아무튼 신전 가면 밥은 먹고살잖아? 교육도 받을 거고."

    칼렌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그의 손이 '붉은 꽃'을 으스러지게 움켜쥐었다.

    "관둬, 마리아네. 신전에 가면 수녀가 되어야 하잖아."

    "그럼 이 집에 둘 거야?"

    마리아네의 물음에 제이드가 코웃음 쳤다.

    "저런 작은 애를 하녀로 썼다간 공작가에서 아이를 납치해 왔다고 생각할 겁니다."

    칼렌은 간신히 꽃에서 시선을 떼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 그럼 어쩌지? 기를까? 저택에 풀어놓고 말이다."

    그러자 제이드는 대놓고 미간을 찌푸렸다.

    "아버지 농담은 재미가 없어요."

    "농담 아닌데."

    "네?"

    "뭐?"

    칼렌의 말에 마리아네와 제이드의 눈이 커졌다.

    "뭐, 괜찮지 않겠느냐? 말이 돼. 거지 말고 다른 거 되고 싶다니. 가엾기도 하지."

    "왜 그렇게 인간처럼 말씀하시는 거죠? 안 어울리는데요."

    평소 칼렌의 성격을 잘 아는 제이드가 딱 잘랐다.

    "귀엽지 않나?"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하녀로 쓰겠다고요?"

    칼렌의 변덕이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오늘 건 더욱 당혹스러웠다.

    "하녀 말고."

    방 안은 침묵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마리아네와 제이드,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그럼 저 애를 무엇으로 이 집에 두시려고요?"

    칼렌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그는 대답 대신 으스러지게 쥐고 있던 꽃을 주머니에 넣었다.

    '겨우 찾아낸 단서라. 이 꽃을 가져왔다니 흥미롭군.'

    * * *

    틱 톡, 틱 톡. 시간은 계속 지나갔다. 다들 어디 가 버렸나? 왜 아무도 안 오지? 혹시 날 잊어버렸나?

    '다리 아파…….'

    아무도 소파에 앉으란 말을 하지 않아 나는 다리를 두드리며 기다렸다. 한참 후, 문이 열렸다.

    "이리 와."

    칼렌이 내게 손짓했다. 나는 쭈뼛대며 다가갔다.

    "먼저, 네가 본 구직 광고는 이미 반년이나 지난 거다. 그사이 하녀는 세 명도 더 뽑았지."

    "……아."

    정말 바보였다. 반년 전 구직광고였다니. 나는 눈물을 꾹 참았다. 뭘 기대하고 있었던 거지? 하지만 칼렌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얼마를 받든 일할 수 있다고 했지?"

    "네."

    "내가 만일 매주 금화 5개를 주면, 뭐든지 할 수 있겠느냐?"

    금화 다섯 개면 얼마지? 으음, 그러니까……. 계산하다가 나는 아득해졌다. 말도 안 되는 큰돈이다. 난 태어나서 한 번도 금화를 본 적 없는걸.

    "네, 그럼요. 살인 빼고."

    내가 말하자 마리아네는 물론, 제이드도 피식 웃었다. 나는 그들이 왜 웃는지 몰랐다.

    "그럼 이제 새로운 제안을 하지."

    무슨 제안? 혹시 나를 죽이기라도 하려고?

    그 순간 내가 떠올린 건, 소설 속의 다크 히어로 르웰턴 공작의 취미가 박제 모으기라는 것이었다.

    "……어떤 제안인데요?"

    "이 집에서 살아. 용돈은 매주 금화 5개 주지."

    "뭘 하면서요?"

    "글쎄."

    칼렌이 내뱉었다.

    "우리 집엔 딸이 있어 본 적이 없어 여자애는 뭘 하며 지내는지 모르겠군. 마리아네도 시골에서 자랐거든."

    "……네?"

    "내 양녀가 되는 건 어떠냐?"

    순간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순진하게 되물었다.

    "양녀는 어떤 종류의 하녀인데요?"

    그 순간 마리아네가 터뜨린 웃음을 나는 평생 잊지 못 할 것이다. 물론, 양녀가 뭔지 모르는 건 아니다. 전생의 기억과 함께 많은 지식이 떠올랐으니까.

    그렇지만 왜? 왜 나를 입양하겠다고 하지?

    '양녀라는 종류의 하녀도 있나?'

    내가 그런 착각을 떠올린 것도 당연하다.

    "하하하, 양녀는 하녀가 아니란다. 하녀들에게 시중을 받는 자리지."

    마리아네의 맑은 웃음소리가 내 귀를 때렸다.

    '이 집의 딸이 되라고?'

    내 표정을 본 마리아네가 칼렌을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칼렌! 오빠도 참. 무작정 돈을 제시하고 딸이 되라는 말을 하면 어떻게 해? 애가 오해하잖아."

    "……시끄러워, 마리아네."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어깨를 움찔했다.

    "실례합니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건, 갈색머리의 멀쑥한 청년이었다.

    "집사."

    칼렌이 그를 보고 말했다. 집사는 상상 이상으로 젊었다.

    "왕실에서 나온 사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기다리라고 해."

    "왕자님께서 직접 오셨습니다."

    "그게 뭐? 지금 나 대화 중이니 나가 봐."

    칼렌은 아주 무심하게, 제대로 시선도 주지 않고 대답했다. 내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왕족을 이렇게 냉대해도 된단 말이야? 공작가는 정말 대단한 가문인가 보다.

    칼렌은 내 눈을 응시했다. 그는 장갑을 낀 손으로 내 머리를 만졌다.

    "네게 일을 시킬 순 없어. 넌 너무 작거든."

    금방 클 건데. 나는 그 말을 삼켰다.

    "그렇지만 내가 널 보내면 다시 길에서 살겠지. 그건 마음에 들지 않거든. 그러니 이 집에서 살아."

    "……."

    "그리고 내 딸이 되도록 해라."

    그의 말은 상냥했지만 명령조였다.

    '분명 이 소설, 주인공이 사이코패스 설정이었지.'

    짧은 시간에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두려움, 염려, 설렘, 놀람.

    하지만, 이거 말도 안 되는 행운 맞지? 양딸 제안은 내 평생에 맞을 일 없는 행운이요, 복권이요, 벼락이었다.

    "왜, 싫어?"

    나긋하게 묻는 칼렌의 목소리는 꿀을 바른 듯 달콤했다. 나는 꿀을 탐하는 아기 곰처럼 그 대답에 착 달라붙고 싶어졌다.

    나는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짧은 고민은 끝났다.

    "아니요."

    "그럼?"

    "……네, 좋아요."

    대답을 하고 나서, 심장이 한번 쿵 뛰었다.

    아아. 그제야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사람의 인생이 시계이고, 운명을 시곗바늘이라 한다면, 지금이 내 인생 위의 모든 바늘들이 완벽히 맞아떨어진 순간이라고.

    다음 순간 나는 내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칼렌이 종을 쳤다.

    "집사."

    아까의 미남자가 다시 문안으로 들어왔다.

    "이 아이. 씻겨서 광 좀 내 둬."

    "그게 다야?"

    마리아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빠, 이 애 이름은 알아?"

    "몰라. 어차피 길바닥에서 살던 때의 이름은 필요 없어. 새로 지어 줄 테니까."

    아, 아닌데! 내 이름은 엄마가 지어 준 건데! 나는 화들짝 놀랐다.

    "저 이름 있어요. 가짜 이름 아녜요."

    "……."

    "전, '레'예요!"

    외치고 나자 뺨이 살짝 붉어졌다.

    방을 나가려던 칼렌이 멈췄다.

    나는 숨을 멈춘 채 그의 넓은 등을 응시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네 엄마가 널 낳은 날이 월요일이었나 보구나."

    나는 놀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레' 는 고대어로 월요일이란 뜻이지."

    칼렌이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걸었다. 이어, 집사는 마리아네를 보며 말했다.

    "마리아네 님, 신전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아아, 벌써 찾으러 왔다고? 싫다, 정말."

    마리아네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내게 다가왔다.

    "난 마리아네 야. 내가 신전에서 일해서 그쪽 사람들이 날 한 시도 놔두지 않지. 새 식구도 들어왔으니, 조만간 꼭 다시 와야겠어. 또 봐."

    "네. 마님."

    "마님이라니. 뭐, 호칭 문제는 나중으로 하고. 잘 있어, 미남 집사 씨."

    마리아네가 눈을 휘며 고혹적으로 웃었다. 마지막으로 제이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년은 나를 인형 같은 얼굴로 쏘아보더니 방을 나갔다.

    "절 따라오시죠."

    집사가 속삭였다.

    믿을 수 없어.

    쿵쿵, 아직 내 심장이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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