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엘리엇도 율리시즈의 말을 거들었다.
“인간이 아니라 이지를 잃은 짐승처럼 보였습니다. 인간의 언어로 말을 하지 못하고 울부짖기만 하는 것이 소름 끼칠 정도였으니까요.”
“…그랬군요.”
율리시즈를, 나를 죽이려고 한 못난 녀석이었지만 세드릭이 끝이 이리 비참할 줄은 몰랐기에 다소 안타까웠다.
엘리엇의 말마따나 지옥에 있을 카밀라가 본다면 피눈물을 흘릴 게 뻔했다. 기껏 제 손에 피를 묻혀 가며 겨우 살려 놓은 아들이 말 못 하는 짐승과도 같은 꼴이 되었으니.
‘인과응보지만.’
그래도 세드릭 역시 뱀에게 이용당한 피해자가 된 건 사실이었기에,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스승님, 어딜 가시려고요?”
한껏 쓰다듬을 즐기던 율리시즈가 불만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게 가지 말란 투정이란 걸 알고 있어서 귀엽게만 보였다.
“세드릭의 곁에 가 보려고.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 세드릭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든. 아마도… 기껏해야 앞으로 몇 시간이 고작이겠지.”
미웠고, 증오했던 녀석이었지만 마지막 가는 길은 지켜 주는 것이 옳은 도리일 듯했다.
폐황자가 된 세드릭, 자아를 잃고 추레해진 몰골인 그의 곁에는 그 누구도 남지 않았을 테니.
율리시즈는 내 말뜻을 알아듣고 조용히 뒤를 따랐다.
“같이 가요, 스승님. 어쨌든 세드릭은 제 이복동생이니까요. 스승님께서 가시는데 제가 가지 않으면 안 되겠죠.”
“안 따라와도 되는데….”
세드릭이 멀쩡하던 시절 누구보다 큰 괴롭힘을 받았던 건 단연코 율리시즈였기에,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러 갈 줄은 몰랐다.
“나 혼자 가도 돼. 괜찮아.”
“저는 더는 지켜 줘야 할 어린아이가 아니에요, 스승님.”
“…….”
“세드릭에게 받은 상처로 겁을 집어먹을 때는 옛날 옛적에 지났어요. 그건 아멜리아도 똑같을걸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세드릭이 자멸한 것으로 그 녀석과 우리 사이의 악연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니 해코지하고 싶은 욕구도 안 생기고요.”
“…그래. 장하다.”
‘나 혼자서만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구나.’
율리시즈는 이미 오래전에 세드릭에 대한 일말의 미움조차 끊어 낸 상태였다.
셀레스틴과 카밀라에서부터 이어져 오던 복수의 끈은 세드릭이 뱀으로 인해 망가지기 전부터 뚝 잘려 있었던 것이다.
“제가 세드릭을 경계했던 건, 그 녀석이 스승님께 비정상적으로 집착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에요.”
“내게?”
“네. 방식은 다르지만, 세드릭 역시 스승님을 원했으니까요.”
나처럼.
율리시즈가 작게 삼킨 말은 내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열이 확 올랐다. 어떻게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담!
“그… 그래. 그럼 아멜리아도 같이 가는 게 나을 것 같다.”
내가 삐걱거리는 나무토막 인형처럼 대답하자 율리시즈가 능글맞게 웃었다.
저 녀석, 나도 사랑한다고 입맞춤한 이후로 상당히 기고만장해 있단 말이지…….
‘그래도 그런 모습도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시점에서 난 망했다.
평생 율리시즈 곁을 떠나지 못하고 이 나라에서 머무를 게 뻔한 미래에 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니 율리시즈가 눈을 샐쭉하게 떴다.
“스승님, 방금 저 속으로 욕하셨죠?”
“아닌데? 아멜리아나 어서 데려와라.”
“네.”
아유, 말은 참 잘 들어요.
우리는 아멜리아까지 대동해서 세드릭이 구금된 방을 찾았다.
율리시즈의 말처럼, 아멜리아 또한 세드릭의 다가온 최후에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아, 죽는 거군요.”
그냥 이 한마디가 전부였다.
한때 자신을 버린 어머니와 동복 오빠의 사랑을 얻지 못해 안달이던 소녀는 굳건히 자라 강한 여자가 되었다.
“세진 님께서 바라신다면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싫으면 같이 안 가도 돼. 보기 좋을 풍경은 아닐 테니까.”
“뭘요. 유리 오빠도 하는데 저라고 못 할 게 뭐가 있겠어요. 그리고, 전 온실 속에서만 곱게 자란 화초 같은 공주가 아니라서 괜찮아요.”
아멜리아는 외국으로 검술 유학을 가 있던 김에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시야가 넓어졌다고 기뻐했다.
황족이라는 신분은 내려놓고, 같은 아카데미생으로서 신분의 구애 없이 동기들과 생활하면서 얻은 나날은 그 아이를 단단하게 만들어 줬다.
“이젠 다 괜찮아졌어요. 대마법사님께서 그 어린 날 저를 거두어 주신 덕에 얻은 현재에 늘 감사하고 있어요.”
“…그땐 나도 네게 미안했는걸.”
율리시즈가 다쳐서 눈이 돌아갔었지. 어떻게 저 어린아이에게 이빨을 드러낼 생각을 했을까.
민망해했지만 정작 아멜리아는 잘한 선택이셨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세드릭이 구금된 방까지 도착했다.
그 방은 사형을 앞둔, 신분이 높은 죄인들이나 갇히는 방이었다. 창고에 가까운 방은 낡은 침대 하나와 요가 전부였다.
“크르르르… 크아아아아!”
그 안에서 짐승처럼 목줄을 차고 온몸이 결박된 채로 고통에 울부짖는 세드릭이 있었다.
제 아비인 선황을 닮아 화사하던 금발은 때가 져 눅눅해지고, 곱던 피부 역시 얼마나 쥐어뜯었는지 거칠거칠해져 길거리를 떠도는 거지와 비슷한 행색이었다.
세드릭이 카밀라의 지지를 등에 업고 다니던 시절만을 봐 왔을 귀족들이 본다면 깜짝 놀랄 광경이었다.
“잠시 모두 나가 있게.”
“하오나 폐하, 위험인물입니다!”
“게다가 반역을 일으킨 주범인 폐황자입니다. 공주 전하와 같이 두기엔 걱정스럽습니다.”
미쳐 버린 세드릭이 갇힌 우리를 지키던 병사들이 반대했으나, 그건 우리가 신경 쓸 사안은 아니었다.
“대마법사 하나에, 황가에 내려오는 용의 피를 각성한 황족이 둘인데 뭘 그리 걱정하나. 쓸데없는 염려 말고 나가지.”
이 인원으로는 세드릭이 우리를 뚫고 덤벼들어도 능히 제압 가능했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기시거든 바로 말해 주셔야 합니다.”
“걱정 말고 나가라니까.”
이런. 아무래도 내 몸이 도자기 인형처럼 부서지고, 율리시즈가 피를 토하던 장면을 보고 병사들이 많이 놀랐던 것 같았다.
다신 그렇게 다치는 일이 없을 테니 상관없었지만.
철창으로 만들어진 우리에 갇혀 몸부림치는 세드릭을 본 나는 조용히 그를 불렀다.
“세드릭.”
“크르르르르….”
“내 말, 알아듣지 못하겠어?”
“크아아, 크아아아아아악!”
세드릭은 마치 고깃덩이를 본 맹수처럼 내게 달려들려고 했다.
그래 봤자 목줄에 매여 우리에 갇힌 신세라 우리에게 뭘 어떻게 위해를 가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지만, 그 기세만큼은 대단했다.
철컹, 철컹.
“우우우!”
우리 안을 벗어나지 못한 채 목줄이 당겨진 세드릭은 구슬프게 울부짖었다.
“우우… 우우우….”
“…우리 말이 하나도 안 들리는 거구나. 정말.”
네발로 기어 다니며 짐승처럼 울음소리를 내는 세드릭의 새파란 두 눈은 텅 비어 있었다.
그의 영혼은 산산이 부서져 더는 고치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카밀라는 지옥에라도 갔을 거라 예상한다지만, 세드릭은… 영혼이 조각조각 산산이 부서졌으니 지옥에도 가지 못하고 이대로 영영 사라질 것이다.
금지된 사악한 것과 계약을 한 대가였다.
“우우… 우우우우….”
“시작되었군요.”
율리시즈가 중얼거렸다. 유리의 말에 시선을 옮기자 세드릭의 발끝이 불을 붙인 양초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저게 뭐야?”
아멜리아가 경악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뱀과의 계약으로 인해 영혼은 반쯤 박살이 나고, 몸은 반쯤 마물화되었으니 그 충돌을 이기지 못하고 나오는 현상이야. 육신을 이루는 세포 하나하나가 전부 붕괴되어 다 녹아 버릴 거야.”
“세드릭이 끔찍한 결말을 맞았으면 했지만 이런 식일 줄은 몰랐네요.”
“나도 그렇단다. 그냥…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봐 주자. 그게 우리가 할 일 같으니.”
아멜리아와 나, 율리시즈 이 셋은 가만히 서서 세드릭의 곁을 지켰다.
“아우우… 우아아아….”
이성도, 자아도 잃어버렸지만 고통과 두려움만은 생생한지 세드릭은 녹아내리는 자기 몸을 보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우우… 우우우!”
세드릭은 우리의 철창을 두들기며 내보내 달라는 것처럼 굴었다.
잘생겼던 얼굴마저 녹아내려 괴물처럼 변하자, 아멜리아는 참을 수 없었는지 고개를 돌렸다. 나와 율리시즈는 묵묵히 죽어 가는 세드릭의 두 눈을 바라봤다.
“다시는 이런 악연으로 만나지 말자, 세드릭. 스승님께서는 네가 다시 태어나기 어려울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네가 만일 다시 사람으로 환생한다면, 그때는 마주칠 일도 없는 이국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살아가.”
네 어머니의 증오에 어울려 괜한 사람 피해 주지 말고.
율리시즈의 나직한 말에 아주 잠시였지만, 세드릭의 텅 빈 눈에 이채가 돌았다.
흐물흐물 녹아내린 형체 사이로 세드릭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우우… 너… 미… 안….”
“…뭐라고?”
“방금, 세드릭이 미안하다고 한 것 같은데….”
“그게 진짜야?”
믿을 수 없는 말에 아멜리아도 놀라 다시 고개를 돌렸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
세드릭은 유언과도 같은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흐물흐물하게 녹아 자취를 감췄다.
“…진작에 미안하다고 말해 줬으면 좋았잖아.”
아멜리아의 눈에서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율리시즈와 나는 말없이 엉엉 우는 아멜리아의 등을 토닥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