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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는 불구경 중-86화 (86/90)
  • 86.

    뱀으로 인해 엉망이 된 황궁을 수습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두 뒤로 물러나 계시죠. 무너진 궁을 복구하는 건 제가 할 테니.”

    본래도 이런 복구 마법쯤이야 껌 씹듯 쉽게 해내던 나였다.

    ‘율리시즈’로부터 선물받은 드래곤 하트로 인해 저주도 풀어 완전히 건강해진 상태이니 두말할 것도 없이 식은 죽 먹기.

    황궁에 테러가 일어났다 해도 완벽하게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백 번은 복구할 수 있었다.

    넘치는 힘과 건강해진 육신을 되돌려준 ‘율리시즈’에게 감사했다.

    ‘고마워. 율리시즈.’

    이 힘은 사람들을 지키고 돕는 데 사용할게.

    어디선가 평온한 안식을 취하고 있을 너희를 위해서라도.

    마력을 손가락 끝에 집중시켜 허공에 거대한 시곗바늘을 그렸다.

    파랗게 빛나는 마력으로 그려진 시곗바늘이 무너진 황궁 터에 내려앉자, 그 크기가 어마어마해지며 하나의 큰 마법 주문진을 그려 냈다.

    “[돌아가라. 망가지기 전의 시간으로.]”

    파아앗.

    내가 그린 시곗바늘 위로 뱀에 의해 무너진 황궁의 잔해가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마치 장난감을 조립하듯 허공에서 부서진 건물의 조각들이 차곡차곡 이어 붙여졌다.

    실금도, 부스러기 하나 없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복구되어 가는 황궁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세상에….”

    “우리가 지금 엄청난 구경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런 광경은 화가를 불러서 그림으로 남기기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여러분… 그러지 마세요…. 부끄러우니까요….’

    내 뒤에서 사람들이 경탄에 찬 목소리를 내는 게 다 들렸다. 급작스럽게 닥친 난장판 때문에 내 모습을 그림으로 담을 여건이 안 된다는 게 어찌나 천만다행이던지.

    붉어진 뺨을 긁적거리고 있는 동안 내가 힘을 불어 넣은 마법 술식은 차근차근 지나간 시간을 되돌려 멀쩡한 상태의 황궁을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유리와 나의 추억이 가득한 아름다운 후원 역시 파헤쳐진 자국 없이 원상 복귀 되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자, 여러분. 황궁 복구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니, 다시 본인의 일터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대마법사님!”

    내 지시가 떨어지자 황궁의 시종, 시녀들은 부리나케 자신의 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뱀과 싸우는 통에 미뤄진 일이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오늘은 황제 폐하와 대마법사님께서 함께 강대하고 사악한 것을 물리친 날이니 다들 축하 연회를 열고자 벼르고 있을 겁니다.”

    “로라.”

    “무탈히 황궁으로 돌아오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대마법사님.”

    내 옆으로 어느새 로라가 다가와 속삭였다.

    로라는 율리시즈가 명령한 대로 급히 대피하다가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응급 처치를 해 주고 있었다.

    “로라, 됐어. 내가 치료할게. 이게 더 빨라.”

    “알겠습니다.”

    로라는 순순히 내 말에 따랐다.

    마법을 동시에 몇 개씩 다중으로 쓰는 거야 내겐 하등 문제 될 것이 없었기에, 아직 남은 건물을 더 복구하는 동안 치료 마법도 병행했다.

    “[피야 멎어라. 새살아 차올라라.]”

    마력을 실은 주문 하나로 고통에 신음하던 사람들은 금방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해졌다.

    “감사합니다, 대마법사님!”

    “감사합니다!”

    “고맙다는 인사는 됐어요. 그것보다, 어서 일터로 돌아가세요. 율리시즈가 돌아오면 환영하며 맞이해 줘야 하니까.”

    “물론이죠, 알겠습니다!”

    밝아진 눈으로 연신 내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긴 그들 역시 앞선 시종들처럼 후다닥 다시 일상을 되찾아 떠났다.

    ‘다행이다….’

    모든 것이 다 끝났다.

    그렇게 생각하니 긴장의 끈이 맥없이 풀리는 게 느껴져 털썩 흙바닥 위로 주저앉았다.

    마법을 사용한다면야 공중에 뜨든, 아니면 의자를 만들어 내 앉을 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피곤해서였다.

    ‘힘이 넘치는 것도, 건강해진 것도 좋은데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한걸….’

    뱀과의 사투 내내 한숨도 마음 놓고 잔 적이 없어 절로 하품이 나왔다.

    “흐아암.”

    “많이 피로하신 듯한데 대마법사님께서도 어서 들어가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줄곧 내 옆에서 가만히 서 있던 로라가 물었다.

    물론 내 마음이야 로라의 말대로 하고 싶었다.

    마법으로는 정신적인 피로까지는 지울 수 없기에, 나는 당장 머리맡에 푹신한 베개 하나만 놓여지면 3초 만에 잠들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 부러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졸린 눈꺼풀을 부릅뜨려 노력했다.

    “안 돼.”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아.”

    졸려 죽겠어.

    퀭한 내 몰골에 로라는 잠시 혀를 찼다.

    “무리하지 마시고 잠시라도 눈을 붙이시지요.”

    “그사이에 율리시즈가 오면 어떡해.”

    유리가 세드릭을 붙잡아 돌아오면 반드시 내가 제일 먼저 나가 맞이해 주고 싶어서였다.

    “…….”

    “그러니까 아직 자면 안 돼. 율리시즈도 내가 마중 나오길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내가 세드릭을 붙잡으러 나갔어도, 율리시즈라면 나와 똑같이 했을 것이 분명했다.

    유리는 그럴 사람이니까.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목을 길게 빼고 내가 돌아오길 오매불망 기다릴 모습이 선연했다.

    마법으로 공간을 넘어오는 것인데도, 나를 사랑한다던 그 미련한 황제 폐하께서는 반드시 그렇게 했을 테니 나 또한 똑같이 하는 것뿐이었다.

    사랑하는 이의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싶어서.

    졸린 눈을 비비며 말하자, 로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제지간… 아니, 이젠 연인이라고 칭해야 옳겠군요. 두 분이 꼭 닮으셨습니다.”

    “그런가? 하긴, 내가 키워서 그런 것일지도.”

    “그것보다는 황제 폐하께서 대마법사님을 닮기 위해 노력한 덕분이 클 거라고 봅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 소리에 로라는 진지하게 동의했다. 실상 율리시즈의 육아 전반을 맡은 사람은 그녀였음에도.

    평소에도 소소하게 던지던 농담에 로라가 미적지근하게 넘어가자 도리어 겁이 난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왜, 왜 그래. 로라? 반박을 안 하니까 이상해.”

    “죄송해서요.”

    “응?”

    로라가 흙바닥 위에 무릎을 꿇었다.

    “아니, 무릎은 왜….”

    비 오면 시리는 무릎 아프게 왜 이러는 거야.

    아직도 몸에 남은 유교 본능 때문에 로라를 일으키려고 하자, 로라는 더욱 머리를 숙이며 내게 사과를 전했다.

    “죄송합니다, 대마법사님. 당신께서 사악한 괴물에게 붙잡혀 계실 때, 저는 황제 폐하의 안위만을 생각하여 대마법사님을 구하러 가면 안 된다고 간언했습니다.”

    “…그랬어?”

    “대마법사님께서는 선대 황후 폐하와 현 황제 폐하의 은인이신 분. 그 종복인 저로서는 갚지 못할 은혜를 받았으나, 배은망덕하게도 그 은덕에 보답하기는커녕 황제 폐하의 안위만을 먼저 생각해 대마법사님을 찾지 말자고 했습니다.”

    잔뜩 몸을 웅크린 로라에게서 흐느낌이 들렸다.

    셀레스틴이 카밀라 때문에 숨을 거둔 날 이후로 보이지 않던 눈물이 뚝뚝 떨어져 땅을 적셨다.

    고급 공단으로 만들어진 시녀장복이 더러워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서 로라는 내게 죄를 고백했다.

    “위험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대마법사님을 찾아 떠나면 안 될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무어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응.”

    “셀레스틴 님께서 선대 황제 폐하를 알현하러 가시기 전에도 그런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에… 저는 황제 폐하마저 잃을 수는 없다는 마음에 대마법사님의 구조를 포기하려 들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로라가 머리를 땅에 짓찧을 것처럼 굴길래, 화들짝 놀란 나는 얼른 그녀를 곧게 서도록 만들었다.

    “무슨 짓이야, 로라! 나이를 생각해야지!”

    “그렇지만… 저는 대마법사님께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하마터면 대마법사님께서 목숨을 잃으실 뻔했잖습니까.”

    “음, 진짜 죽을 뻔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로라가 죄책감을 가지진 않았으면 좋겠어. 어찌 되었건 간에 율리시즈는 나를 찾아왔고, 또 지금 우리 둘 다 무사하잖아?”

    로라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로라였어도 가지 말라고 했을 테니까.

    그녀는 충복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냈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유리가 한번 결정한 사안은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아이라…….’

    로라가 크게 죄책감 가질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은혜라니. 나도 뱀이 반강제로 걸어 놓은 계약으로 인해 율리시즈를 돌보기 시작했는걸. 내가 돌보는 게 당연했으니 부채감을 가지지 말았으면 해.”

    “하지만….”

    “됐어, 됐어.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자. 우리에겐 이런 입씨름할 시간이 없어. 율리시즈가 돌아오면 승리를 기념할 파티를 열어야지.”

    “…알겠습니다! 대마법사님. 국가기념일 버금가게 화려히 준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떠한 처벌도 없이 조용히 넘기려고 했는데도, 로라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두 눈을 빛내며 당장 예산을 책임지는 궁내부 대신을 찾아가야겠다고 말했다.

    ‘음… 화려하게 진행할 필요는 없는데.’

    유리나 나나 소박한 쪽을 더 좋아하지만, 힘줘서 준비하겠다는 의지에 찬물을 끼얹긴 미안해서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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