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는 불구경 중-84화 (84/90)

84.

내 질문에 율리시즈는 대략 5초간 멍하니 있더니, 이내 입을 틀어막으며 좋아했다.

“너무 기뻐요…. 스승님께서 만들어 주신 반지라니, 이런 건 저만 가질 수 있겠죠?”

엄밀히 따지자면 내가 만든 건 아니고, 마법으로 반지에 박힌 보석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뒤바꾼 것이지만 아무렴 어떠랴 싶었다.

“응.”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게요. 스승님께서 주신,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반지라니. 이거 끼고 결혼도 해요.”

“약혼반지라며….”

“지금부터 이 반지는 약혼 겸 결혼용 반지입니다. 제가 그렇게 정했어요.”

헤헤헤. 다소 바보같이 입꼬리를 히죽 들어 올리며 좋아하는 율리시즈였다.

‘내가 진짜 미쳤나 보다.’

제국의 황제라는 녀석이 채신머리없이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데도 귀엽기만 했다.

솜털 보송한 노란 병아리가 삐약삐약 우는 걸 구경하는 것 같아 쿡쿡 웃음이 샜다.

“네 마음대로 해라.”

“감사합니다!”

“네가 말린다고 해서 들을 녀석도 아닌 걸 아니까 하는 소리다.”

짐짓 엄한 소리를 내도 행복에 젖은 율리시즈는 실실 웃기만 했다.

“그러는 스승님께서도 뿌듯하신 게 제게는 다 보여요.”

“뭐?”

“오랫동안 짝사랑을 하면 보이는 게 있거든요. 가령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기분 좋을 때는 아닌 척 입꼬리를 미묘하게 실룩거리는 버릇이 있다든지.”

“……!”

무심코 입가에 손을 대니, 율리시즈의 말처럼 슬쩍 올라간 입꼬리가 만져졌다.

또 뺨이 화끈거리는데, 율리시즈가 사랑스러운 미소를 입에 건 채 내게 말했다.

“꿈꾸던 순간이 현실로 다가와 행복에 푹 젖은 제게, 스승님 역시 저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 주시니 더 바랄 게 없어요.”

“…바랄 게 왜 없어. 나랑 결혼하고 싶다며.”

“아, 그건 당연한 거라 논외예요.”

뻔뻔하고도 당당하게 나와 그 자신이 결혼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 말하는 율리시즈를 보니 그냥 웃음이 터졌다.

우리가 죽을 뻔했던 일은 신기루인 양 녹아 마음속에서 응어리진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하늘을 부유하던 구름은 태양을 만나 비로소 머무를 곳을 찾았다.

“스승님께서는 약속한 바를 어기지 않는 분이시니까요. 제 머릿속에서는 이미 스승님과 국혼식을 올리고 어디로 신혼여행을 가야 좋을지까지 생각이 뻗어 있는걸요?”

“김칫국 너무 들이마신다….”

“김칫국이 뭔가요?”

“여기엔 없는 거야. 맛있어.”

“좋은 의미가 아닌 것 같은데….”

의심스럽다며 눈을 흘기는 율리시즈를 피해서 나는 바닥에 엎드려 고통에 몸부림치는 뱀에게로 향했다.

뱀은 이제 완전히 힘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되어 미약한 발버둥만을 칠 뿐이었다.

나와 율리시즈가 저에게 별다른 공격도 없이 바로 죽이지 않자, 뱀은 핏발 선 눈으로 우릴 원망스럽게 째려봤다.

“재수 없는 새끼들…. 윽, 이대로 영원히 행복할 줄만 안다면 큰 오산이야. 영원한 사랑 따위는 없으니까. 내가 봤던 시간선 속에서 율리시즈, 저 새끼는 너 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 적도 있다고.”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야. 내가 봤…”

“너 때문에 비참하게 죽어 간 ‘율리시즈’의 기억이라면 다 봤어.”

“…뭐라고?”

“어디서 뻥을 쳐. 율리시즈는 항상 한결같이 나만 바라봤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찾아 그리움에 미쳐 가던 율리시즈의 모습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영원한 사랑? 없을 수도 있겠지.”

“그럼….”

“그런데 그게 나와 율리시즈의 이야기는 아니야.”

우리의 결말은 이미 완벽한 해피 엔딩으로 달려가고 있으니까.

내가 율리시즈를, 율리시즈가 나를 사랑하고 아껴 주는 한 우리의 관계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이어지리라 맹세할 수 있었다.

율리시즈의 사랑은 살아는 있지만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던 나를 살렸고, 나 또한 율리시즈를 괴로운 운명 속에서 구해 냈으니까.

“너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우리는 계속 행복할 거야.”

영원히.

사람이니까, 비록 어느 때는 별것도 아닌 이유로 싸우고 투닥거릴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율리시즈를 사랑하는 마음이, 율리시즈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퇴색될 일은 없을 것이다.

오래된 기다림 속에 겨우 맛보게 된 행복을 우리는 절대 놓치지 않을 테다.

“웃기지 마…. 나는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졌는데 너희 둘은 행복해지겠다고?”

내 말을 듣고 분노한 뱀이 나를 물어뜯을 것처럼 크게 입을 벌리며 돌진했다.

“[실드.]”

“윽!”

하지만 그런 시도는 물거품에 그쳤다.

뱀에게 흡수되었던 힘도, ‘율리시즈’의 드래곤 하트 반쪽을 삼킨 내게 모든 힘을 빼앗긴 뱀 따위는 상대도 되지 못했다.

뱀은 내가 불러낸 방패막에 튕겨 나가 데굴데굴 굴렀다.

아파 죽겠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몸을 어떻게 일으켰는지는 미지수였다. 오기와 원망이 불러일으킨 마지막 발악인 것 같았다.

“으으…. 으으으으…. 아파…. 아프다고….”

보호 마법 하나 걸려 있지 않아 어린아이인 상태로 흙바닥을 구른 뱀은 아프다며 칭얼댔다. 이게 그의 영혼에 새겨진 본모습인 듯했다.

미성숙하고, 아직은 어리기만 한 존재라고.

억지로 갈취했던 힘이 사라지자, 정신력도 어려진 신체를 따라가는지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쏟아 내며 서러움을 토해 냈다.

“아파. 아프다고. 고통스러워. 너무 힘들다고! 차라리 죽여 달란 말이야!”

진짜 보통의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며 죽기를 바라는 뱀의 모습은 안타까울 법했으나, 그가 나와 율리시즈에게 저지른 죄의 무게가 너무도 컸기에 그런 감상적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죽음으로 도피하는 건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어.”

“나쁜 새끼….”

“아무렴 너만 할까.”

씨근덕거리는 뱀은 내게 더는 위협적이지 못했다. 그저 어리석고 불쌍한 놈으로만 보였다.

나는 바닥에 엎드려 고통으로 신음하는 뱀에게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그가 돌려받을 업보에 대해 읊었다.

“잘 들어. 너는 지금부터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구에 떨어지게 될 거야. 앞서 사라진 힘과 마찬가지로, 기억마저 남김없이 지워서 네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될 거야.”

서슬 퍼런 내 말에 뱀의 안색이 곧바로 창백해졌다.

“너, 설마….”

“그 설마가 맞아.”

나는 네게 내가 겪은 모든 고통을 선사할 거라고 했잖아.

나를 바라보는 뱀의 눈이 두려움으로 일그러졌다.

“너는 나보다 더 끔찍한 불행 속에 점철된 삶을 무한히 겪으면서, 그 시간 동안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헌신해 줄 누군가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죽지도 못할 거야.”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불행이란 불행은 다 겪어도 죽지 못해 숨만 겨우 붙어 있는 인생을 무수히 반복할 것이다.

내가 그러도록 마법을 걸었으니까.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치면서 희열을 느끼는 너 같은 놈을 사랑해 줄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아서.

그래, 그래서 나는 그런 조건을 걸었다.

뱀, 네가 진정으로 너를 사랑하고, 또 네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선 네가 진심으로 우리에게 저지른 죄를 뉘우칠 수 있어야 했으므로.

그럴 확률은 눈곱만큼도 없다는 것을 알아서 그랬다.

“너…. 너…!”

“뭐,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뱀도 내가 어째서 그런 조건을 걸었는지 아는지, 기어이 핏발 선 눈동자의 실핏줄이 터져 두 눈에서 검붉은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를 저주할 거야.”

“해 봐.”

“나는 진창으로 처박고서, 너희 둘은 행복해지겠다고? 이건 불공평해. 왜 너희들만 행복해지는 결말을 맞지? 내 거야, 내 거라고! 그 행복은 내가 가진 거였어! 내 힘으로 얻어 낸 거란 말이야. 너처럼 영혼이 탄생하던 순간부터 축복받은 인생이 뭘 알아!”

고통이 심할 텐데도 분노와 질투로 눈이 뒤집힌 뱀은 목이 터져라 나와 율리시즈의 불행을 기구하고, 자신이 약자가 되었음을 한탄했다.

“그 축복, 네가 다 빼앗아 갔잖아.”

억울할 게 뭐가 있을까.

본디 마땅히 내가 누렸어야 할 모든 것들을 제가 도둑질해 놓고서는, 도로 주인인 내게 돌아가니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꼴이 우습기만 했다.

“나는 정당방위를 취했을 뿐이야! 우리를 만든 신이 나를 저버려 살기 위해 저지른 짓이 뭐가 나빠!”

끝까지 반성하지 않는 뱀에겐 감정 소모조차 아까웠다.

‘차라리 잘됐다.’

네가 거짓으로라도 반성하는 척했다면 내 마음이 불편했을 터다.

그래서 기뻤다.

네가 용서하지 않아도 되는 악이라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그 신에게 대들었어야지.”

“……뭐?”

“넌 그러지 않았어. 비겁하게 너와 함께 갓 태어난 나의 힘과 육신을 빼앗았지. 나는 네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조곤조곤한 설명에 자기합리화로 얼룩져 있던 뱀의 표정이 엉망으로 변해 갔다.

“아니야….”

“너는 비겁한 찌질이일 뿐이야. 새로운 신이 되어 이 세상을 다스리겠다고? 꿈도 크지….”

설령 나와 율리시즈가 뱀을 쓰러뜨리지 못했다 한들, 뱀은 결국 자멸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남을 탓하기만 하며 상처만 준 놈이 행복해질 수는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닥쳐… 닥치라고….”

내 말에 닥치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뱀은 상당히 정신적 타격이 큰 듯했다.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기억은 저편으로, 육신과 영혼은 다른 세상으로.]”

나는 마법 주문을 외우고, 포털을 열었다.

나와 율리시즈가 사랑하는 세계에서 몹쓸 뱀을 내쫓기 위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