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는 불구경 중-81화 (81/90)
  • 81.

    나는 뱀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내 삶을 휘저어 놓은 뱀을 원망하고픈 마음은 예전부터 사무쳤지만, ‘율리시즈’를 만난 이후에는 더 그러했다.

    ‘이 녀석 때문에 수많은 율리시즈가 목숨을 잃었어.’

    끝까지 뱀에게 저항하다 스러져 간 ‘율리시즈’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뱀을 징벌할 의무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대화할 필요가 있으니, 성대는 복구해 주지.”

    은빛의 스태프를 가볍게 휘두르자 뱀의 목에서 새 살이 차올랐다.

    “캑, 캑캑…!”

    “아, 당연하지만 복구만 해 놓는 거라 고통은 경감되지 않을 거야.”

    내 발에 짓눌려 캑캑거리던 뱀이 비아냥대는 어조로 말했다.

    “왜, 나를 고문이라도 하게?”

    너 같은 무른 겁쟁이가 뭘 할 수 있겠냐는 투였다.

    하지만 나는 더는 뱀의 도발에 어울려 주고 싶지 않았다.

    뱀의 가슴팍을 짓밟은 발끝에 지그시 힘을 더 가해 주며 말했다.

    “악! 아파!”

    “필요하다면 하려고, 고문.”

    “뭐, 뭐?”

    웃음기 한 점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하자, 뱀이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당황하는 티를 냈다.

    남의 힘을 빼앗아서 군림하는 버릇을 못 고쳤는지, 거짓된 자존심으로 만든 가면을 집요하게 벗으려 하지 않았지만.

    “왜, 내가 못 할 사람으로 보여?”

    “거짓말…! 거짓말하지 마! 날 겁주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거, 난 다 알고 있…”

    “네가 나에 대해서 뭘 그렇게 잘 안다고?”

    서늘한 분노를 담아 일갈하자, 뱀이 욱하는 투로 반박했다.

    “영혼의 쌍둥이인 나보다 널 잘 아는 사람은 없어!”

    “그게 언제 적 일인데?”

    “…….”

    내 말에 뱀이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내 힘과 육신을 전부 앗아 가서, 날 다른 세계에 버리고 방치한 건 너잖아. 벌써 잊었어?”

    우드득. 힘주어 밟은 발에 무게 증량 마법까지 걸자, 놈의 갈비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크아아아악! 아파, 아프다고!”

    꽥꽥 질러 대는 뱀의 비명은 시끄럽기만 했다.

    “그런 네가 나에 대해서 뭘 그렇게 잘 안다고 지껄여?”

    “아악, 아아악!”

    “너는 날 잘 몰라.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삶을 다시 붙잡을 수 있었는지.”

    세상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소중한 사람을 어이없는 질투로 잃어버리고, 떠맡기듯 율리시즈를 돌보게 되었을 때.

    나는 얌전히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면 찾아올 죽음을 기다리려 했지만, 인생은 정말 내 뜻대로 되는 법이 없었다.

    단순히 보호자의 의무만을 다하려던 율리시즈를, 더없이 소중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그 애를 지키기 위해 손에 피를 묻히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다시는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러니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라면… 나 하나 정도는 희생해도 그만이었으니까.

    어차피 끝내고 싶었던 인생이니, 다행이라 여겼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내 죽음도 헛되지만은 않을 테니까.

    “그런데, 너는 이미 수만 번은 더 그 아이를 잔인하고 비참하게 도륙했지.”

    그 사실을 ‘율리시즈’를 통해 뒤늦게야 알게 되었을 때, 내 심정을 저 뱀 따위가 짐작할 수 없었다. 절대로.

    내 표정이 어찌나 살벌했는지, 본래도 창백했던 뱀의 안색에서 핏기가 점점 더 빠졌다.

    “그, 그건…!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어! 너와 저 녀석은 다 가지고 있었지만, 난 아니었다고! 아무것도 없는 폐기물 신세로 낙인찍혀 사라질 뻔했단 말이야!”

    “그래서 어쩌라고? 나와 율리시즈의 인생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농락한 네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을 것 같아?”

    “…….”

    내게 뱀이 무슨 말을 지껄이더라도, 그건 찌질한 가해자의 변명에 불과했다.

    “아까 너를 두고 내 어리석은 형제 운운했지만… 그건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지. 너는 내 형제 따위가 아니야. 그저 원수지간일 뿐이지.”

    우리는 단 한 순간도 형제지간인 적이 없었다.

    뱀이 내가 마땅히 가져야 했을 것들을 빼앗아 갔을 때부터, 놈과 나는 둘 중 하나를 죽여야만 살 수 있는 운명이 된 것이다.

    “으으…. 나, 나는… 단지 살고 싶었을 뿐이야…!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친 게 뭐가 나빠? 모든 생물들이 다 이렇게 산다고! 이기적인 건 생물의 본성이야!”

    “그래. 넌 계속 그렇게 자기합리화나 하고 있어. 나는 내 삶을,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삶을 멋대로 망쳐 놓은 너를 철저히 파멸시킬 테니.”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방법으로 말이지.

    마지막에 속삭이듯 작게 중얼거리자, 뱀의 눈이 부릅떠졌다.

    “뭐, 뭘 하려는 거야.”

    “뭐긴, 네가 나에게, 그리고 율리시즈에게 했던 짓거리를 고스란히 돌려주려는 것뿐인데.”

    손을 뻗어 뱀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우악스럽게 잡은 머리채는 쓸데없이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뭘 하려는 거냐고 물었잖아!”

    내게 머리채가 붙들리고, 갈비뼈가 부러졌음에도 뱀은 반성의 기미라곤 하나도 없이 세로로 찢어진 동공을 번뜩였다.

    그 뻔뻔하기 그지없는 모습이 일말의 동정조차 씻어 내 마음은 편했다.

    “그 영악한 머리로도 알아낼 방법이 없어서 묻는 거야?”

    “하, 하지 마…! 하지 마!”

    내 손아귀에 붙잡힌 뱀이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쳤다. 그래 봤자 놈의 두피만 뜯어질 것 같은 고통을 느낄 테지만, 뱀은 내 말에 완전히 겁에 질려 벗어나려는 데만 초점을 뒀다.

    “놔! 놔! 놓으라고!”

    “놓으라고 해서 놓겠어? 네 놈이 스승님과 나를 산지옥으로 몰아넣었는데, 그 말을 스승님이 듣겠냐고.”

    뱀의 저항을 보다 못한 율리시즈가 한껏 그를 비웃었다. 나는 유리를 말리지 않았다. 내가 뱀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으니.

    “너는 우리가 고통 속에서 기억도 하지 못할 회귀를 반복하고 있을 때, 즐거워하며 그 꼴을 구경했잖아?”

    “놓으라고 했잖아!”

    “현실을 피하지 말고 내 말 똑똑히 들어. 넌 우리에게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줬고, 이젠 그 대가를 치러야 할 시간이야.”

    스태프를 들어 뱀의 이마에 가져갔다. 내가 뭘 하려는지 대충 눈치챘는지, 뱀이 힘껏 도리질 치며 내게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속박하라.]”

    “……!”

    주문 한 번에 뱀은 마비가 온 것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어라. 도와드리려 했는데 역시 그럴 필요는 없었군요?”

    뒤를 돌아보니, 율리시즈가 뱀의 목을 꺾어서라도 고정하려 했는지 근육이 위협적인 팔뚝을 불끈거리고 있었다.

    “…넌 위험하니까 나서지 마. 내가 다 해결할 수 있으니까.”

    다 큰 사내자식이 아직도 물가에 내놓은 듯한 작고 연약한 아이처럼 보인다면, 그건 내게 콩깍지가 지독하게 씐 탓일까.

    “스승님, 저 용혈 각성한 황족인데…….”

    “알아.”

    “몸 상태도 최상이라 저 뱀 새끼가 아가리 들이밀어도 찢어 놓을 수 있는데….”

    “그래도 안 돼. 너는 손끝 하나 대지 마.”

    이미 너는 나를 위해 너의 삶을 한 번도 아니고 무수히 바쳤잖아.

    ‘이 이상으로 네게 폐를 끼칠 수는 없어.’

    시작은 뱀과 나였으니, 끝을 맺는 건 나여야만 했다.

    그동안 너무나 고생했던 율리시즈가 아니라.

    나는 뱀의 이마에 고정해 둔 스태프에 천천히 내 마력을 흘려 넣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 본 적 없었던, 강력한 저주 마법을 걸기 위해서였다.

    일반적인 저주로는 뱀에게 부족했다. 육체에 가해지는 고통 따위의 시시한 저주로는 나와 율리시즈가 겪은 아픔을 놈이 헤아릴 리가 없었다.

    그러니 뼈저리게 우리에게 저지른 짓을 후회할 만한 지독한 저주가 필요했다.

    유효 기간도 오래가고, 뱀이 절대 풀 수 없는 방식의 저주를.

    “[너를 저주하오니.]”

    “읍! 읍읍!”

    “[아무도 너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며, 누구에게서도 동정 한 자락 받지 못해 매일을 외롭게 살아갈 것이며, 네 사랑은 보답받지 못할 외사랑이 될 것이니.]”

    “으으읍!”

    속박 마법으로 인해 입이 막힌 뱀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절규했다.

    그런다고 봐줄 내가 아니었다.

    스태프에 모인 마력이 파랗게 빛나며 뱀의 몸 전체로 거대한 마법진을 펼쳐 갔다.

    촘촘한 그물망처럼 짜인 마법진은 빠르게 뱀의 몸 전체를 잠식했다. 대량의 마력이 내 체내에서 빠져나갔다.

    하지만 탈력감보다는 고양감이 앞섰다.

    “[살아 있는 내내 부귀영화는 물론이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축복도 받지 못한 채 태어나, 평생을 예견된 비참한 운명 속에서 허우적대리라.]”

    “으으으으읍! 으읍!”

    “[사랑받지 못하니 안락함은 일생 동안 꿈꿀 수 없으리라. 작은 신뢰조차 얻을 수 없으니 숱한 배신이 너의 삶을 망치고 찢어발길 것이다. 보답받지 못하는 삶 속을 몇 번이고, 영원히 배회하며 애정에 굶주리다 죽어 가리라.]”

    예언과도 같은 저주는 풀 수 없는 족쇄가 되어 뱀이 환생할 때마다 그의 인생을 나락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이 저주는 네가 쌓은 죄가 사라질 때까지 풀 수 없으리라. 반복되는 윤회의 굴레 속에서 지옥보다 끔찍한 끝을 마주하며 평생을 후회하리라.]”

    기나긴 문장으로 이루어진 마법 주문은 예상보다 더 많은 마력을 잡아먹었다.

    하지만 부족하지는 않았다.

    ‘율리시즈….’

    오랜 세월 동안 파편을 붙여서 만든 드래곤 하트 반쪽이, 마력을 폭포처럼 쏟아 내며 나를 도왔기 때문이었다.

    이런 것까지 예측해서 ‘율리시즈’는 제 심장을 우리에게 내준 것일까?

    ‘…고마워.’

    만난 적도 없는 나를 사랑해 줘서, 그리고 포기하지 않아 줘서.

    그물망처럼 퍼져 있던 마법 주문진이 연어가 알을 낳으러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도로 이마로 모여 하나의 문양이 되었다.

    뱀이 내 가슴팍에 새긴 것과 닮았으나 다른 형태의 시계 모양의 문양이었다.

    시곗바늘이 존재하지 않는 그 문양은 살이 타들어 가는 소리를 내며 뱀의 이마 위에 낙인으로 남았다.

    “으으으… 으으으아아아아!”

    뼈와 살을 넘어 영혼에까지 새겨지는 낙인의 고통에 뱀이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질렀으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네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비참한 운명 속에서 살아 봐.”

    몇 번이고, 환생을 거듭하며 괴로운 기억을 망각하지도 못하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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