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는 불구경 중-80화 (80/90)

80.

“미안해. 아멜. 우리가 좀 일이 있어서 늦었어.”

“…어디 다친 데는 없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 무사해.”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대마법사님께서 오빠를 치료해 준 거야?”

아멜리아의 질문에, 율리시즈는 뜻 모를 미소만 지었다.

“나중에 설명해 줄게. 지금은… 저 괴물을 처리해야 하는 게 급선무니까.”

율리시즈는 아멜리아를 안전한 곳에 피신시킨 후, 그녀에게 검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다.

“급하게 와서 싸울 무기가 없거든.”

“칠칠맞게. 소중한 검인데 어디다 두고 온 거야?”

“너도 봤을 거 아냐. 저 육중한 뱀 모가지에다 꽂아 놓은 거.”

“봤지.”

“그러니까 잔말 말고 얼른 검이나 빌려줘. 스승님과 함께 마무리를 지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율리시즈의 황금빛 눈동자는 여느 때보다 진지해서, 아멜리아는 그를 더는 놀릴 수가 없었다.

“자. 여기.”

아멜리아의 애검을 넘겨받은 율리시즈는 싱긋 웃었다.

“고맙다. 잘 쓸게. 이따가 검은 제대로 돌려줄 테니까, 기다려 줘.”

“당연한 소리 하지 말고 어서 가. 대마법사님께서 기다리시잖아!”

“네네. 알겠습니다. 공주 전하.”

율리시즈는 마치 날아오르듯 힘차게 도약하여 뱀 쪽으로 다시 뛰어갔다.

“…조심해, 오빠.”

아멜리아는 몸을 사리지 않는 율리시즈를 향해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옆으로는 시녀장 로라가 다가와 손을 꼭 쥐었다.

“폐하께서도, 대마법사님께서도 무사하실 겁니다.”

“그러리라 믿어요.”

두 사람을 비롯해,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사람들은 숨죽이고 황궁에 침입한 괴물과 싸우는 대마법사와 황제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

“크르륵, 크르르르륵…!”

‘말도 안 돼! 어떻게 그 치명상을 단숨에 회복하고 올 수 있었던 거지?!’

뱀은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왜, 우리가 너무 멀쩡히 살아 있어서 이상해?”

“우리가 죽길 바랐겠지만, 아쉽게도 명줄이 아직 길게 남은 것 같더라고.”

율리시즈와 세진이 서늘한 어조로 뱀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율리시즈’에게서 선물받은 드래곤 하트 덕에 부상당한 몸을 완전히 회복하고, 이전보다 강해진 힘까지 얻어 완벽한 컨디션을 자랑했다.

반면에, 뱀은 이미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데다가 율리시즈의 공격으로 인해 회복조차 미미하여 불리한 상황이었다.

거기다 뱀에게 있어 최악인 점은 따로 있었다.

“크르르르륵…!”

‘어떻게 네가 저주로 인해 봉인당한 마법을, 다시 쓸 수 있는 거지? 어떻게!’

와르르 깨져 버린 도자기 인형처럼 부서져 최후를 맞이했어야 할 세진이, 아무 문제 없이 마법을 자유자재로 쓰고 있었다.

“[불태워라.]”

“크아아아악…!”

“[찢고, 부수고, 녹여 버려라.]”

“끼아악! 끼아아아악!”

세진은 자비 없이 공격 마법을 뱀에게 난사했다.

이전보다 강력해진 마법의 힘이 뱀의 육신을 가르며 고통을 선사했다.

‘어째서! 저주 때문에 마나가 물이 빠지듯 밖으로 흘러 나갔을 터인데!’

이런 적은 없었다. 뱀은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전개에 당황하고 분노하며 절망했다.

“억울한가 보네.”

세진은 날카로운 눈으로 뱀을 응시했다.

“왜, 네가 당하는 처지에 놓이니까 비로소 겁이 나?”

“크르륵…!”

‘이, 이놈이! 내가 이 세계로 데려오지 않았으면 별것도 아닌 하찮은 죽음이나 맞았을 벌레 같은 놈이…!’

“신기하지. 넌 지금 목구멍이 뚫려 말을 하지 못하는데도,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할지 너무 잘 알 것만 같아.”

서로가 원수가 되어도, 그 시작은 영혼의 쌍둥이여서 그런가.

씁쓸하게 중얼거린 세진은 다시 공격 마법을 뱀에게 퍼부었다.

“[낙뢰여 내리쳐라. 얼음으로 만든 칼이여 적의 뼈를 갈라라.]”

“크, 크르르륵…!”

‘피, 피해야만 해!’

뱀이 저도 모르게 꼬리를 말고 다시 후퇴로를 찾아 도망치려는 순간, 그 앞은 율리시즈가 막았다.

“어딜 가. 우리 스승님께 더 처맞아야지.”

‘이게!’

“물론 나한테도 처맞아야 하고. 안 그래?”

입꼬리를 길게 끌어당긴 율리시즈가 아멜리아에게서 빌린 검을 빼 들고 황금빛 검기를 입혔다.

“스승님께서 친히 마법으로 너를 상대하시니, 나는 내 주특기인 검으로 그분을 보조하지.”

“크아악…!”

‘감히! 감히 나를 이런 사냥감 취급을!’

발광하는 뱀 앞에서 두 사람은 지극히 냉정하기만 했다.

율리시즈는 검기로 뱀의 살을 가르고, 세진은 뱀이 도망치지 못하게 아예 돔 형태의 막을 씌워 싸움터와 외부를 차단한 다음 공격 마법을 아낌없이 퍼부었다.

번개와 천둥, 새파란 살기가 어린 얼음 송곳과 불꽃의 비가 뱀의 위로 내리꽂혔다.

“끼아악. 끼아아아악…!”

뱀은 몸을 뒤틀며 공격을 피하고자 했으나, 육중하고 무거운 몸은 부상 때문인지 점점 빠르게 피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안 돼…. 안 돼…!’

어느 하나 자잘한 공격이 없이 죄다 묵직하여 맞을 때마다 피를 한 바가지는 쏟아 내야 했다. 뱀은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에 질려 세진이 쳐 놓은 막을 두들기며 벗어나고자 했으나, 강철보다 강한 막은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수한 공격을 받으며 뱀은 얼마 남지도 않은 힘으로 버둥거려 봤지만, 완전히 회복하고서 죽일 기세로 달려드는 세진과 율리시즈를 당해 낼 수는 없었다.

‘안 돼. 마력이 바닥났다!’

수만 번의 회귀를 거듭하면서도 끝이 보이지 않던 넉넉한 마력조차 동났다.

거대한 뱀의 육신으로는 육탄전밖에 할 수 없으니, 뱀은 황급히 인간의 몸으로 형태를 바꿔 달아나려고 애썼다.

그걸 두고 볼 세진이 아니었다.

“그게 네 한계인가?”

“끄르륵….”

인간의 몸으로 형태를 바꿔도, 율리시즈가 꽂아 놓은 검은 목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뱀은 말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답답함과, 그가 한참 아래로 얕보던 상대에게 다쳤다는 것에 분함을 느끼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백발의 서늘한 금안을 지닌 마법사가, 알을 깨고 완전히 제 것을 되찾았다. 그는 한때 제 모든 것을 빼앗고 나락으로 그를 처박았던 쌍둥이를 노려보았다.

“이제 그만 우리 악연을 끊자.”

‘싫어! 나, 난 살아남을 거야!’

“싫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다. 너는 우리가 고통스러워할 때, 봐준 적이 있던가?”

‘너, 널 내가 다시 이 세상에 데려와 줬잖아! 육신도 돌려주고. 너희 둘이 만날 수 있던 건 따지면 내 덕이라고…!’

공포와 절망에 짓눌려 아무 말이나 쏟아 내는 뱀을, 율리시즈가 한심하게 쳐다봤다.

“저딴 놈 때문에 ‘율리시즈’가 허무하게 수만 번이나 죽음을 겪어야 했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너는 알 필요 없어. 그 녀석의 숭고한 희생과 외로웠던 나날은 우리만 알면 충분하니까.”

“[쏟아져라. 찬란한 빛의 창들이여.]”

‘안 돼…!”

“수만 년의 세월 동안 우리의 삶을, 이 세계를 농락한 죗값을 치를 때다.”

어리석은 나의 형제여.

세진의 주문과 함께 하늘에서 찢을 듯한 폭음이 울리더니, 황금빛의 비가 지상을 향해 쏟아졌다.

아니, 그건 비가 아니라 빛으로 만들어진 창이 떼거지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하나하나가 맞으면 치명상을 입을, 위력적인 빛 마법을 뭉친 창들이 뱀에게로 쏟아졌다.

그 선두에는 율리시즈도 함께 있었다.

“스승님께서 나서는데 제자가 따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빛의 창들은 율리시즈에겐 전혀 피해를 주지 않고 그를 따스하게 감싸며 되레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끄르르르륵…! 끼아악!”

‘싫어, 싫어! 이렇게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마지막 발악을 하며 두 손으로 세진이 펼친 막을 긁는 뱀은, 곧 떨어지는 빛의 비를 맞아야만 했다.

“끝이다.”

콰과과과광-

거대한 흙먼지 폭풍이 일어났다. 세진과 율리시즈의 공격을 황궁에 있는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았다.

이윽고 흙먼지가 가라앉자, 돔이 있던 자리는 완전히 패여 큰 구덩이로 변했다.

“화, 황제 폐하께서는 무사하신가?”

“대마법사께서는?”

“엇, 저기 두 분은 무사하시다!”

“와아아!”

누군가의 함성 이후로 안도와 기쁨의 외침이 황궁에 그득해졌다.

“끄르르르륵… 끄륵….”

구덩이 속에서는 반죽한 핏덩어리 같아진 뱀이 그토록 무시하던 인간의 형상으로 덜덜 떨며 몸을 둥글게 웅크린 상태였다.

심한 상처를 입어 더는 움직일 수도, 공격할 수도 없는 상태로 전락했기에 세진과 율리시즈는 공격을 멈췄다.

“끄… 끄으으….”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어….’

다 터진 입가로도 뱀은 버둥거렸다. 눈앞에 닥친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추하게 꿈틀거리며 세진과 율리시즈에게 욕을 퍼부었다.

‘개 같은 연놈들! 너희들이 내 인생을 망쳤다! 내 원대한 꿈을! 신이 되어 나를 만든 이 세계의 신에게 복수하겠다는 소망을…! 너희가 짓밟았어!’

“스승님, 저놈이 우리를 원망하는 것 같은데요?”

“내버려 둬라. 한심하기가 짝이 없으니.”

‘너, 너!’

뱀이 성질을 부리며 세진을 걷어차려 했으나, 느리고 굼떠진 탓에 그 동작은 율리시즈에게 쉽게 제지당했다.

“어어. 어디서 더러운 발을 우리 고귀한 스승님께 올려?”

“유리. 네 손만 더러워진다. 너야말로 불쾌한 것에게서 손을 치워라.”

두 사람은 똑같은 말을 하며 뱀에게 다가와 그의 목을 짓눌렀다.

밟은 쪽은 세진이었다.

‘놔…! 놔아…!’

“그럴 수는 없지.”

세진이 차갑게 뇌까렸다.

“네가 우리의 삶을 망친 게 얼마인데, 고작 죽음으로 끝내 줄 듯싶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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