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는 불구경 중-77화 (77/90)

77.

“…….”

‘율리시즈’의 비참한 행적을 읽고 있으려니 목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꺽꺽거리는 울음소리밖에 낼 수 없었다. 뱀이 보여 줬던 원작을 통해 그가 어떤 시작과 끝을 맞이했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눈앞에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뾰족한 가시가 심장을 마구 할퀴고 지나간대도 이보단 덜 고통스러우리라.

‘미안해.’

너를 더 일찍 찾지 못해서 미안해.

마음에 고통이 차오르니 설아의 일이 떠올랐다. 내가 지키지 못한 설아의 말간 얼굴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으으, 아아아아악…….”

숨이 막힌다. 폐부를 뜯어내고 싶어지는 충동이 일었다.

‘미안해…….’

드래곤 하트가 만들어 낸 공간이라서일까. 내 눈물이 바닥에 고여 거대한 호수를 이뤘다.

그 호수에서 수많은 ‘율리시즈’의 삶이 내 눈에 비쳤다.

동화 속 성군처럼 살다가 나를 찾지 못해 미쳐 버린 율리시즈도 있었다. 일찍이 황궁을 나와 떠돌이 나그네 인생을 살며 나를 찾다가 죽어 버린 율리시즈도 있었다.

인정을 베풀어 카밀라와 율리시즈를 살려 두었다가 뒤통수를 맞고 죽는 율리시즈도 있었고, 가짜 나를 연기하는 뱀에게 공격을 가하려다 그에게 살해당하는 율리시즈도 있었다.

수없이 많은 죽음을 번복했던 ‘율리시즈’는 죽을 때마다 나를 찾길 바라는 소망을 담은 드래곤 하트를 남겼다.

‘언젠가는 분명 찾을 수 있을 거야.’

그게 언제가 될 줄도 모르면서 바보같이 그랬다.

셀 수 없이 많은 ‘율리시즈’의 삶의 행적을 지켜본 나는 엎드려 울음을 터트렸다.

허무하게 사라진 그의 생이 가여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어디에 있는 줄 알고 계속 찾았던 거야….’

그냥 포기하지. 찾지 말지.

너에겐 더 좋은 사람을 찾을 기회가 분명 있었을 텐데.

수많은 삶의 궤적 속에서 ‘율리시즈’에게 호감을 보인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율리시즈’는 그 모든 이들의 접촉을 거부했다.

그 자신조차 왜 그러는지 알지 못하면서, 다른 이들과 맺어지는 것에는 극렬한 거부감을 표출했다.

때로는 그런 일 때문에 곤란해진 적도 있었지만, ‘율리시즈’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진짜 바보 같은 놈. 이 고집불통.”

내 눈물로 이루어진 호수에 비친 ‘율리시즈’의 얼굴을 쓰다듬으려 했으나, 물속의 그의 모습이 흐트러지기만 할 뿐이었다.

“지켜 주지 못해서 미안해.”

‘나를 찾아 헤맸을 너를 더 일찍 만나지 못했음에 미안해.’

그리고… 나를 기어이 만나 포기하지 않고 붙잡아 주어서 고마워.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으로 겨우 머리를 들자, 어느새 어린 율리시즈의 모습을 한 드래곤 하트가 곁에 있었다.

[ 어땠어? ]

“끔찍했지.”

[ 봤던 기억을 지우고 싶은 만큼? ]

“아니. 그건 아니야. 이건 내가 봐야만 했던, 보고 싶었던 기억이었어.”

쓸쓸하게 잊힌 너희를 내가 기억하지 않으면 누가 기억할까.

내 대답에 드래곤 하트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 어째서? 괴로웠을 텐데. 잊어버리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아? ]

“때로는 마음이 아파도 간직해야 할 것이 있기 마련이거든.”

이 기억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이건 ‘율리시즈’들의 괴로운 삶의 행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들이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나를 그리워하고 사랑하여 좇았던 기록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간직할 거야.’

아파도 소중한 기억이었다. 절대로 놓지 않을 것이다.

단단한 의지를 가지고 마주한 보랏빛 눈이 가늘게 휘어졌다.

[ 그 대답을 기다렸어. ]

“어?”

[ 우리의 주인 된 자들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사람아. 우리를 흡수하여 강해지고, 살아남아 그들을 기억해 주오. ]

어린아이에서 성인의 모습이 된 드래곤 하트가 나를 꼭 껴안았다.

‘…따뜻해.’

이 온기를 나는 알고 있다.

‘율리시즈’가 건네줬던 반쪽의 드래곤 하트. 작은 새의 심장 같았던 그 보석에서 느껴졌던 따끈한 온기였다.

“물론이야.”

[ 약속을 지켜 줄 거라 믿겠어. ]

화아아.

드래곤 하트의 몸이 빛으로 화해 녹아내렸다. 따뜻하고 빛나는 기운이 된 그것은 내게 스며들었다.

‘부서졌던 몸이 완전히 회복되고 있어….’

‘율리시즈’가 임시방편으로 멈춘 시간의 틈에서 껍데기만 복구해 둔 것을, 드래곤 하트가 완벽하게 원상 복구 해 놨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이전보다 더한 힘이 몸 곳곳에서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뱀이 나와 억지 계약을 맺어 새카만 시계 문신이 있던 가슴팍 위로, 새로운 문장이 새겨졌다.

“이건…?”

황금빛 드래곤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형상이었다.

드래곤 하트가 내게 흡수되며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

그 문장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들을 잊지 말아 줘.’

“당연히. 너희들을 평생 잊지 않을 거야.”

오랫동안 기억할게. 너희들이 얼마나 나를 사랑했었는지를.

그 사랑을 평생토록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갈게.

그러자 나를 감싸고 있던 공간이 무너져 내리고, 다시금 현재로 돌아왔다.

멈춘 시간의 틈, 그곳에서 내가 사랑하는 율리시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승님!”

무엇을 보았는지, 율리시즈의 눈가도 새빨개져 있는 것이 펑펑 운 꼴이었다.

“돌아왔어.”

나는 나를 기다려 준 사랑스러운 이에게 다가가 그를 꼭 껴안아 주었다.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었어요. 스승님….”

울먹거리며 내게 칭얼거리는 율리시즈의 황금빛 머리카락에 폭 기대며 나도 속삭였다.

“응. 나도. 나도 네가 많이 보고 싶었어.”

우리는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지도 몰라.

가슴팍이 뜨끈해졌다. 벅차오름 때문인지, 아니면 애틋함으로 인해 찌르르하게 아파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내가 살아 있는 율리시즈와 대화하고 끌어안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시험을 잘 마치셨군요.”

우리를 향해 ‘율리시즈’가 빙그레 웃었다.

“’율리시즈’!”

“제 소임을 다했으니, 이제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겠습니다.”

‘율리시즈’의 몸이 천천히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율리시즈’의 표정은 개운하기만 해 보였다.

“드디어 잠들 수 있겠군요….”

오래도록 묵은 때를 벗긴 듯 시원하고, 그리고 평안해 보이는 얼굴로 그는 천천히 부서지는 자기 몸을 붙잡고 행복하게 웃었다.

내가 그에게 무어라 더 말하려던 순간, 율리시즈가 재빨리 튀어갔다.

그리고 무너져 가는 ‘율리시즈’를 붙잡고 말했다.

“…고맙다.”

“……!”

“스승님과 나를 위해 애써 줘서.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텨 줘서…. 그리고 드래곤 하트를 우리를 위해 넘겨줘서 정말 고맙다.”

“하하….”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으마. ‘너희’를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율리시즈의 말에 ‘율리시즈’가 눈물을 흘리며 미소 지었다.

“…부탁하지.”

“응.”

“’우리’를 잊지 말아 줘. 그리고… 힘겹게 찾아 맺어진 사랑을 잃지 마. 변함없이 아껴 주고 사랑해 줘. ‘우리’가 그러지 못했던 만큼, 네가 사랑해 줘….”

“그렇게 할게.”

“고마워. 마지막의 ‘나’.”

웃으며 울던 기묘한 표정을 남긴 채, ‘율리시즈’는 한 줌 재도 남기지 않고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져 버렸다.

“아아….”

그가 남겨 준 소중한 삶의 무게가 더없이 무겁게 여겨졌다.

‘잘 살아갈게.’

너희들을 잊지 않고, 생이 허락하는 한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살아갈 거야.

눈물 한 방울이 땅으로 툭, 떨어졌다.

기기기기기긱.

그리고 그와 동시에, 멈춰 있던 시간 또한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주인님…! 어? 거기서 무엇 하십니까?”

“황제 폐하!!! …어? 언제 거기로 가셨습니까?”

“그,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이 사람들아! 두 분의 상처가 모두 회복되었습니다!”

윈터와 페른, 루나가 우다다 소리치며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세상에…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두 분은 분명 다 죽어 가고 계셨는데….”

“엄마, 불길한 소리 하지 마세요.”

“하지만 사실이었는걸!”

루나가 부산스럽게 소리치며 우리 둘의 몸 상태를 신속하게 진찰했다.

“이건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요…. 황제 폐하와 세진 님 모두 다치신 곳 하나 없이 멀쩡하십니다. 특히나 세진 님에게 기존에 걸려 있던 끔찍한 저주가 아예 사라졌어요. 원래 있던 자리에 남은 건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에 가깝지?”

“예… 축복에 가까운… 아니, 그런데 그건 또 어찌 아셨습니까? 이미 사전에 이럴 줄 알고 다 대비한 것입니까?”

“아니야.”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한 것이 아니야.”

율리시즈와 나는 눈짓을 교환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이제는 사라진… 아주 용감하고 대단했던 ‘율리시즈’를 기억하며.

“우리 두 사람을 위해 희생해 준 누군가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어.”

“그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랍니까…?”

“있어. 그런 게. 지금은 이야기할 시간이 없고….”

스릉. 율리시즈가 검집에서 검을 빼냈다.

“루나. 묻고 싶은 게 많은 건 알겠는데, 우리가 지금 급하게 할 일이 있어.”

나 또한 은빛의 거대한 스태프를 꺼내며 거들었다.

“응. 뱀을 잡으러 가야 하거든.”

우리 둘의 선언에 루나가 화들짝 놀랐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적어도 몸을 정양하신 이후에나…. 어라?”

“[열어라.]”

루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공간 마법을 사용해 뱀을 쫓을 게이트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세진 님께서 다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어. 율리시즈도, 나도 이전보다 강해졌으니 걱정은 접어 둬도 돼.”

율리시즈가 내 곁에 다가와 손을 맞잡았다.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따스했다.

“다녀올게.”

뱀을 잡으러.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