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는 불구경 중-73화 (73/90)

73.

이 시간대의 또 다른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치고는 상당히 냉정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어쩔 줄을 모르는 사이, 다 죽어 가는 율리시즈는 어이없다는 듯이 ‘율리시즈’에게 말했다.

“어디서 명령이야.”

“스승님을 살리고 싶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널 부른 건 나겠지. 이런 극단적인 시도를 하지 않고서야 뭔가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거든.”

“물론 그렇긴 하지. 이미 다 알고 있었다니. 최후의 ‘나’는 영리하군.”

알 수 없는 흐름의 대화가 지나갔다. 나는 굳어 있다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설마… 유리 너, 이렇게 될 줄 알고서 죽으려는 연기를 한 거였어?”

“뭔가 방법이 있을 거라는 건 조사를 통해 알았어요. 하지만 저런 존재가 튀어나올 줄은 몰랐고요.”

태연한 제자의 말에 나는 혈압이 치솟는 걸 느꼈다.

“나는 네가 진짜 죽는 줄만 알고…!”

얼마나 괴로웠는데.

율리시즈가 죽을까 봐 했던 말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부끄러워 죽을 것 같았다.

내가 씩씩거리는 걸 느낀 ‘율리시즈’가 내게 속삭였다.

“저자는 실제로 당신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뭐라고?”

“너무 화내지는 마십시오. 그건 연기가 아니었습니다. ‘율리시즈’의 조각이 합쳐진 존재인 저는 알 수 있습니다.”

“…….”

“그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정말 심장을 꺼내 바쳐 줄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제가 두 사람을 찾을 수 있었지만 말입니다.”

나는 잠시, 무수한 시간대의 율리시즈들도 이런 미친 선택을 하려던 적이 있었냐고 물으려다 관뒀다.

‘들어 봤자 나만 속 터지지.’

“일단… 알겠어. 날 좀 내려 줘.”

“알겠습니다.”

율리시즈의 목소리를 한, 율리시즈와 동일하지만 다른 존재에게 부탁하자 그는 나를 내려놓았다.

다시 달린 두 다리는 무사히 땅에 닿았다. 더는 부서지지 않았다.

‘그래도 마력 봉인은 여전하군….’

그것만큼은 아쉬웠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율리시즈의 조각이 뭉친 존재라고 했으면서… 당신은 신인가?”

신기해하는 내게 남자가 설명했다.

“아닙니다. 저는 찌꺼기를 퍼즐처럼 기워 만든 것 같은 존재. 율리시즈였던 자들이 남긴 힘으로 낸, 시간이 멈춘 틈새로 잠깐 행할 수 있는 잔재주입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이건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내가 다친 것도 그럼 시간이 다시 흐르면 원상태로 돌아가는 건가?”

율리시즈가 끼어들자, 남자는 여전히 무심한 눈빛을 하면서도 꼬박꼬박 답을 줬다.

“물론이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스승님을 살릴 수 있지? 나는 드래곤 하트를 이식하는 방법 외에는 스승님을 살릴 방법을 찾지 못했다.”

율리시즈의 말에 내가 경악했다.

“율리시즈 미레하 윈프리드!”

“하지만 사실인걸요, 스승님. 정말 이것 외에는 방도가 없었습니다.”

나는 화가 나서 율리시즈에게로 달려가 그의 등을 팍팍 때렸다.

“다시는 그딴 소리 지껄이지 마! 알았어, 몰랐어?!”

“아야. 아야. 스승님. 때리지 마세요. 아픕니다.”

“뭘 아파! 안 아프다는 거 다 알고 있어. 너 지금도 웃고 있잖아!”

“이런, 들켰네요.”

태연히 시인하는 율리시즈의 말에 나는 더 화가 나서 그를 퍽퍽 때렸다. 그러다 울음이 왈칵 밀려와 그를 끌어안았다.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네 스승 죽는 꼴 보고 싶은 게 아니라면.”

“…잘못했습니다.”

“말만 하지 말고, 맹세해. 내 앞에서 다시는 죽지 않겠노라고.”

내가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약속을 요구하자 율리시즈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마지못해 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우선은 알겠습니다.”

“우선은 빼.”

“…예.”

율리시즈에게서 겨우 약속을 받아 낸 후, 나는 남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그럼 우리가 함께 살아날 방법을 아는 건가?”

“…물론입니다.”

묘하게 대답이 늦었다. 나는 그 간극에 불안해졌다.

“…그 방법이 무엇이지?”

남자는 대답 대신에, 로브 속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건….”

“드래곤 하트?”

율리시즈와 나는 남자가 꺼낸 물건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치 남자와 같이, 조각조각 억지로 맞춘 것처럼 괴상한 모양새의 보석이었으나… 그것은 틀림없는 드래곤 하트였다.

붉은색의 보석에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걸 어디서 난 거지?”

내 말에 남자는 또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비록 한쪽 입꼬리는 흉터 때문에 일그러져 올라가지 못할지언정, 그건 정말 행복에서 우러나온 미소였다.

“수많은 시간대의 율리시즈가, 뱀에게 죽임당하기 직전 남긴 유산입니다.”

“…….”

“그들은 평생을, 자신의 진정한 짝을 찾아 헤맸습니다. 진짜의 육신을 뒤집어쓴 가짜를 못 알아볼 리 없었죠. 사라져 버린 모든 시간대의 ‘나’는, 당신을 찾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고, 끝내 실패했으나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남자가 설명하는 다른 시간대의 율리시즈들은… 전부 지금의 율리시즈와 하는 짓이 똑같아서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가 터졌다.

“이 바보들이….”

“그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짝이 이 세계에 돌아올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신기하게도 죽임당할 때마다 조각을 남겼죠. 그것이 남겨져 뭉친 것이 제가 되었고, 지금 당신들을 도울 수 있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우둘투둘한 모양의 드래곤 하트를 내밀었다.

“받으십시오. 이걸 당신에게 이식하면 뱀이 건 주박을 풀고, 다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되지?”

“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차피 시간이 멈춘 틈새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괴상한 존재이니, 소임을 다한 지금 사라지는 것이 옳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지는 것을 입에 담는 남자가, 나는 가여웠다.

‘너도 결국은 율리시즈잖아.’

이대로 사라져도 괜찮다는 말이 나는 참을 수 없이 괴로웠다.

그건 율리시즈도 마찬가지였다.

“나보고는 아까 멍청한 짓을 하지 말라면서, 본인이 제일 멍청한 짓을 하는군.”

“그거야, 너는 네 짝을 위해서 남아야 할 필수 불가결한 존재이니까. 네가 사라진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오랜 세월을 들여 뱀을 추적한 의미가 사라진다.”

“어째서?”

“‘우리’의 염원은 단순히 짝이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데에서 멈춘 게 아니니까. ‘우리’는 영혼의 짝과 ‘내’가, 맺어져 살아갈 수 있는 평범한 삶을 원했다.”

“…….”

담담하게 내뱉지만 아주 많은 감정이 담긴 말에 율리시즈도 할 말을 잃었다.

흉터투성이의, 조각조각 기워 놓은 ‘율리시즈’는 정말 행복해하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이 순간까지 지탱해 왔을 드래곤 하트를 손쉽게 내주면서도, 전혀 후회하는 기색 없이 후련한 낯빛이었다.

나는 그를 가만히 살펴보다가, 어쩐지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왜… 나를 오랜만에 본다고 이야길 한 거지?”

“그거야 저는 무수한 시간대의 율리시즈의 조각이니까요.”

“아니야. 뱀의 말에 따르면, 다른 율리시즈들은 나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내가, 진짜 ‘클로드 하센티온’의 영혼이 이 세계에 다시 돌아온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터.

머릿속에 뱀이 클로드의… 아니, 내 육신을 뒤집어쓰고 있을 때 보여 줬던 ‘원작’이 떠올랐다.

영혼의 짝의 사랑을 얻지 못해 기어이 그의 운명마저 파탄 내 버리고, 비참한 꼴을 목도했다는 뱀.

그리고… 어머니를 억울하게 잃고서 폭군이 되어 죽임당한 ‘원작’의 율리시즈.

“너는 누구지?”

대답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의 입으로 직접 그가 누구인지를 듣고 싶었다.

“…….”

그는 유려하게 말하던 것을 멈추고, 가만히 우리 둘을 응시했다.

“듣고 싶으십니까?”

“…응. 말해 줘. 부탁할게.”

흉터투성이의 ‘율리시즈’는, 내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당신의 짐작이 맞습니다.”

‘율리시즈’가 자신의 맨 가슴팍을 드러냈다.

“으악! 스승님! 저런 흉한 것을 보면 안 됩니다!”

율리시즈가 급하게 내 두 눈을 가렸다. 나는 어이가 없어 그의 손을 치웠다.

“무슨 소리야. 저 사람도 결국 넌데.”

“아닙니다! 스승님께서 아시고, 사랑하는 건 오로지 저뿐이에요! 저, 저건 외간 남자입니다!”

“미쳤어?”

나는 애를 분명 나름 바르게 키웠는데…. 애가 좀 이상하게 큰 것 같았다. 윈터가 율리시즈를 보고 혀를 쯧쯧 찰 때 뭐 때문인지 알아챘어야 했는데.

율리시즈는 내 핀잔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율리시즈’를 향한 경계심을 거두지 않았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스승님이 애틋한 시선을 보내는 게 싫습니다.”

“저것도 너라니까?”

“아니라니까요!”

‘더 말하면 끝이 없겠군.’

나는 율리시즈를 무시한 채, 다시 ‘율리시즈’를 쳐다보았다.

그의 맨 가슴팍에는 여러 자루의 검으로 찔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건…….”

“제가 죽을 때 입은 상처입니다.”

“…….”

목이 메었다.

“‘율리시즈’의 염원이 뭉쳐서 생긴 조각 덩어리라고는 하나, 그것을 하나로 묶어 줄 주체는 필요했습니다.”

“…….”

“저는 이 시간대… 그러니까 최후의 ‘율리시즈’의 바로 전, 폭군으로 몰려 처형당한 ‘율리시즈’입니다.”

가장 비참하게 살해당한 율리시즈의 영혼이 주체가 되어, 다른 율리시즈의 염원을 끌어안고 나를 찾아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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