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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는 불구경 중-72화 (72/90)
  • 72.

    ‘이건 꿈일 거야.’

    지독한 악몽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는 없었다.

    “스승님…….”

    율리시즈가 피를 흘리면서 내게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비틀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내딛는 걸음마다 내 몸이 부서져 내려 조각들이 떨어졌다.

    “주인님!”

    뒤에서 윈터가 무어라 비명을 질렀지만 귀에 잘 들리지 않았다.

    세상이 온통 회색빛으로 변한 것 같았다. 그 가운데서, 오로지 율리시즈만이 내 눈에 가득 담겼다.

    “아, 안 돼….”

    으지직. 오른발이 부서졌다. 내 몸이 얇은 도자기 인형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오른발이 부서졌음에도 왼발로 질질 몸을 끌고 가자 왼발마저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쿠당탕탕.

    율리시즈에게 닿지 못한 채로 내 몸이 엎어졌다. 몸이 더 크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고개를 들어 손으로 기어가려 했으나, 손가락마저 부서져 내렸다.

    “저는 괜찮아요, 스승님…. 그러다 몸이 다 부서집니다. 그만하세요.”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어!”

    네가 이렇게나 다쳤는데.

    윈터와 루나가 뭐라고 소리치면서 내 옆에 달라붙었으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부서진 뺨으로 두 눈물이 피처럼 흘러내렸다.

    “미안해…. 미안해. 너만큼은 지켜 주려고 했는데.”

    ‘도리어 내가 도움받으려다 너까지 위험하게 만들어 버렸어.’

    억지로라도 마력 봉인을 풀었어야 했다. 내 몸이 부서져 버리는 한이 있어도 그랬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너를 구할 수 있었을 테지.’

    이런 비참한 꼴을 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나 때문에 기어이 네가 또 죽을 위기에 놓였구나.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우는데, 몸이 번쩍 들렸다. 윈터의 마법이었다. 기어가는 나를 두고 보지 못한 건지, 윈터가 울면서 나를 율리시즈의 곁으로 보내 주었다.

    윈터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넬 정신도 없었다. 나는 다 부서지는 몸으로 율리시즈의 뺨에 마지막으로 남은 손가락 하나를 겨우 닿게 했다.

    “유, 유리.”

    “스승님…. 스승님 상태가 저보다 더 엉망이에요….”

    율리시즈의 곁으로 급하게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 치료를 하기 위해 애썼으나, 통하지 않았다. 오른팔을 잃은 상처의 상태는 더 심각해졌고, 율리시즈의 얼굴은 저체온증에 걸린 것처럼 새파래졌다.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잖아….”

    울음에 섞인 발음이 뭉개졌다. 어쩌면 입마저 부서져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저주의 특성 탓에 신체의 아픔은 없었으나 나는 지금 이 순간 그 어느 때보다 고통스러웠다.

    “네가… 어쩌다 이렇게….”

    “스승님 탓이, 아니에요. 절대 자책해서는 안 됩니다….”

    깜빡깜빡. 전기가 나가려는 전구처럼 율리시즈의 머리카락과 눈동자에서 황금빛이 빠지려고 했다.

    ‘안 돼.’

    그나마 용혈을 각성해서 이 정도로 버티는 거였다. 이대로 각성마저 풀린다면, 율리시즈는 꼼짝없이 죽는다.

    나는 미친 듯이 버둥거리며 내게 걸린 마력 봉인을 풀기 위해 애썼다.

    “으으으으으…!”

    하지만 뱀이 건 봉인은 잘 풀리지 않았다. 실패한 반동으로 인해 내 몸이 더 빠르게 부서져 내릴 뿐이었다.

    엉망으로 무너져 내리는 내 몸을 보며 율리시즈가 표정을 굳혔다.

    “그러지 마세요, 스승님….”

    “어떻게 그래!”

    이대로면 네가 죽는다고.

    내가 죽더라도 너만큼은 살려야 한다고.

    그런 말들을 꾸역꾸역 삼키며 나는 발버둥 쳤다.

    하지만 봉인은 끝내 풀리지 않았다.

    “스승님, 저도 마찬가지예요.”

    “…….”

    “제가 죽더라도, 스승님께서는 이 세상에 살아 계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바람이니까요.”

    “싫어.”

    “스승님도 이렇게 말했을 거잖아요….”

    “알아.”

    하지만 사랑하는 너를 어떻게 잃을 수 있겠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또 잃고 어떻게 다시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겠어?

    “너라도 싫다고 대답했을 거잖아.”

    “그건 맞아요.”

    “웃지 마. 애써 나 때문에 보기 좋은 미소를 지으려고 하지 마….”

    “스승님을 보면 늘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데, 어떻게 해요?”

    이 상황에서도 율리시즈는 내게 장난스러운 말을 던졌다. 말투만 들으면 다 죽어 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대화를 나누던 평화로운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죽지 마.”

    제발.

    “내가 다 잘못했어. 그러니까… 제발 죽지 마.”

    처음부터 다 털어놨어야 했다.

    내가 어째서 율리시즈를 맡게 되었는지, 그 대가로 무엇을 약속받았는지를 다 말해 줬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그랬더라면… 율리시즈를 이렇게 허망하게 잃을 처지에 놓이지는 않았겠지.

    ‘모두 내가 어리석었기 때문이야.’

    설아를 잃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애를 사고로 잃었을 때, 나는 절망할 것이 아니라 남설우에게 주먹이라도 날렸어야 마땅했다.

    그리고 설아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다시 일어나 살아가야 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음을 택할 것이 아니라.

    ‘함부로 생을 포기하려던 욕심 때문에 모든 것을 그르치게 되었구나.’

    이건 벌일까?

    삶이 이토록 소중해질 줄, 사랑하는 사람을 또 잃게 될 줄 몰랐던 내게 내려지는 천벌일까.

    무력함에 빠지려는 나를 율리시즈가 붙잡았다.

    다 부서지고 무너져 내린 뺨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는 손길에 힘이 하나도 없어 나는 또 눈물을 터트릴 뻔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뭐가.”

    “스승님이 생각하시는 것 전부, 다요. 잘못은 뱀이 저질렀어요. 스승님은 그 뱀이 만든 불행 속에 갇혀 있었을 뿐이에요. 스승님께서는 잘못하신 것이 없습니다.”

    율리시즈의 꺼져 가는 눈동자에서 별안간 황금빛이 폭죽처럼 확 터졌다.

    “스승님, 그거 아세요?”

    “뭐…가…?”

    “황족에게 내려오는 드래곤 하트를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면, 그 사람은 정해진 수명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거요.”

    “뭐?”

    그 말에 담긴 뜻을 파악하기도 전에, 율리시즈가 다시 심장을 향해 손을 뻗었다.

    “뭐… 뭐 하려는 거야.”

    율리시즈의 손에서 손톱이 날카롭게 자랐다.

    “스승님을 살리려는 짓이요.”

    “하지 마!”

    이 미친놈이. 율리시즈가 죽기 전 자기 심장을 꺼내 내게 건네주려고 했다.

    드래곤 하트. 용의 심장.

    아름답게 세공한 붉은 보석처럼 빛나는 광물로, 숨이 끊어지기 전의 드래곤에게서만 채취할 수 있는 전설의 보석.

    율리시즈는 인간이나 용혈을 각성했으니, 체내에 드래곤 하트가 완성되었는지 그것을 내게 주려고 한 것이었다.

    이런 정보를 금방 알아냈을 리가 없었다.

    ‘언제부터 알았던 거야?’

    내 몸이 시한폭탄과도 같은 상태였다는 걸.

    율리시즈는, 미리 내가 저주에 걸렸음을 짐작하고 나를 치료할 방도에 대해 알아본 것이 틀림없었다.

    그게 대체 어떻게 가능했을지는 모르겠으나, 나조차 알지 못했던 드래곤 하트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 데는 오랜 조사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 마. 절대 하지 마…. 하면 너 다시는 안 볼 거야. 청혼이고 뭐고 다 거절할 거야.”

    율리시즈를 말리고 싶었지만, 하나 남은 손가락마저 부서져 버렸다.

    “죄송해요.”

    “안 돼!”

    율리시즈가 기어이 자기 심장을 뜯어내 내게 주려던 때였다.

    “그만둬라. 그건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회색빛이 된 세상에서, 이상하게도 그 목소리만은 생생하게 귓가에 꽂혔다.

    ‘어?’

    그제서야 주위의 상황을 인식하게 된 나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세상이… 멈췄어.”

    페른도, 데이지도, 엘리엇도, 루나도, 윈터도 전부 얼음이 된 것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회색빛이 된 세상은 시간이 멈춰 흐르지 않는 상태였다.

    얼떨떨한 상황에 놀란 나에게, 목소리의 주인공이 다가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니, 처음 뵙겠다고 해야겠군요.”

    “누, 누구….”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그러나 이 세상에 두 개는 존재하지 않아야 할 목소리였다.

    왜냐하면 그건 율리시즈의 목소리였으니까.

    낡고 짙은 로브를 걸친 사내가 얼굴을 드러냈다.

    빛바랬으나 본래는 찬란했을 황금색 머리카락. 그리고 제비꽃 같은 보랏빛 눈동자.

    그러나 무슨 연유에서인지 마치 얼기설기 꿰맨 것처럼 온 얼굴이 흉터투성이로 뒤덮인 남자, 아니 또 다른 율리시즈가 내게 꾸벅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다.

    “반갑습니다. 최후의 시간대에서 살아남은 ‘나’의 반쪽, ‘나’의 연인.”

    “대체….”

    “저는 율리시즈. 아니… 무수한 회귀해 사라진 시간대에서 ‘율리시즈’였던 존재들이 뭉쳐 생겨난 존재입니다.”

    마치 프랑켄슈타인 같은 남자가 우리를 향해 어설프게 웃었다.

    “당신들을 만나길 고대했습니다. 무수한 실패 속에서 살아남을 단 하나의 가능성을.”

    “설마…?”

    “네. 짐작하신 대로 저는 뱀이 죽여 버렸다고 생각한 무수한 ‘율리시즈’들의 염원이 꿰어져서 낳은 자입니다.”

    내가 모르는, 어느 시간대에서는 존재했을 율리시즈.

    죽임당한 그 수만 명의 율리시즈를 합친 자가 저라고, 남자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 어떻게….”

    “신이 버리려고 했던 사악한 영혼조차 끈질기게 살아남아 감히 신이 되려고 했잖습니까. 정성 들여 빚은 축복받은 영혼이 쉽게 사멸할 수 있을 리가요.”

    남자가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가 무어라 주문을 외우자, 부서져 가던 내 몸이 천천히 회복되었다.

    “어? 마법을…?”

    “저는 마법사가 아닙니다. 이건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 당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시간대의 ‘내’가 따라 줘야 합니다.”

    그는 나를 소중하게 안고 있는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율리시즈를 향해 무심하게 말했다.

    “스승님을 살리고, 행복해지고 싶다면 나를 따라라. 자기 심장을 꺼내 주려는 멍청한 시도는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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