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는 불구경 중-71화 (71/90)
  • 71.

    살기등등하게 일어난 뱀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들이밀며 율리시즈와 내게 덤벼들었다.

    “감히 어딜.”

    “크아악!”

    하지만 용혈을 완전히 각성한 율리시즈에게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뱀이 아가리를 벌리며 우리 둘을 찢어 먹으려 했지만 율리시즈가 뱀의 몸통을 분질러 버렸다. 검붉은 구체를 쐈을 때처럼 불길한 공격을 날리자 율리시즈가 그것을 전부 삼켜 다시 토해 내 뱀에게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으… 으으….”

    초월자들을 삼키고, 이 세상의 새로운 신이 되겠다며 호언장담하던 놈은 어디 갔는지. 몇 번의 치열한 공격 끝에 남은 건 회복력도 바닥나 여기저기 구멍이 난 채로 검은 피를 흘리는 초라한 모습뿐이었다.

    율리시즈가 황금빛으로 타오르는 눈과 머리 색을 하고 뱀에게 말했다.

    “이 이상의 전투는 무의미할 것 같은데.”

    “…….”

    “얌전히 항복해라. 그리고 스승님에게 건 저주를 풀어.”

    ‘율리시즈가 뱀을 단번에 죽이지 않았던 건 나 때문이었나….’

    나는 율리시즈의 옆에서 손가락 까딱할 틈도 없었기에, 율리시즈가 뱀을 가지고 노는 동안 그를 관찰했다.

    각성한 율리시즈는…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알려진 용이 부활한 것 같았다. 아무리 용의 피를 각성했다고 해도, 본바탕은 인간인지라 저토록 강해지기는 무리였을 텐테. 율리시즈는 인간을 벗어난 비상식적인,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 줬다.

    ‘이것도 뱀 녀석이 말한 회귀의 결과물인가?’

    율리시즈에게는 회귀한 기억이 없는 듯하지만, 마치 수만 년간의 세월을 농축시킨 것 같은 강력한 힘이 내재되어 있었다.

    ‘뱀은 자기가 신이 되겠다고 으스댔지만….’

    오히려 지금 이 전투를 보면서 느낀 건, 율리시즈야말로 신이 되기 적합한 그릇을 지닌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멍하니 율리시즈를 지켜보고 있던 건 나뿐이 아니었기에, 내 옆으로 슬금슬금 페른과 데이지, 윈터와 루나, 엘리엇이 모여들었다.

    “황제 폐하 장난 아니신데요?”

    “저걸 손안에 굴리고 노네. 인간 맞아요? 검사를 좀 해 보고 싶은데.”

    “이러면 주인님에게 청혼할 만도 한데요…. 반대할 명분이 없네.”

    “인간의 허물만 벗으면 용이 나타나는 거 아니에요? 패밀리어 인생 중 저렇게 강한 인간은 처음 봐요. 오늘만큼은 제 주인님이 던진 말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건강하게 무사히 자라 주시기만을 바랐는데, 그 이상으로 넘치도록 훌륭히 성장하신 듯하여 이 늙은이는 기쁘군요.”

    “저기, 다들 왜 내 옆에 와서 떠드는 거야.”

    조그맣게 항의하자 세 마리의 패밀리어와 인간 둘이 대꾸했다.

    “지금은 세진 님 곁이 제일 안전한 것 같아서요?”

    “…내가 말을 말아야지.”

    하지만 그 말엔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뱀에게 잡혀 있으면서 온몸에 시리도록 와닿았던 절망과 공포가, 율리시즈 옆에서는 하나도 느껴지질 않았다.

    ‘편안하기만 해.’

    승기가 우리 쪽으로 기울었을 뿐, 무너져 가는 내 몸도, 얼마 남지 않은 수명도, 달라진 것은 없었으나 내 마음은 빈틈없이 꽉 차올랐다.

    “…어쩌면 율리시즈가 나를 만난 게 행운이 아니라, 내가 유리를 만난 게 행운이었을지도.”

    “주인님, 뭐라고 하셨어요?”

    “아무것도 아니야. 윈터. 유리가 얼른 이기고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소리였어.”

    사실 율리시즈의 얼굴을 다시 마주했을 때, 이미 그 순간만으로도 나는 이제 죽어도 괜찮겠구나, 싶었으니까.

    어이없게도 율리시즈가 상황도, 장소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내게 다시 청혼했던 순간.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일 뻔했으니까.’

    율리시즈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내 마음을 잠식해 버렸다.

    그것을 죽기 전에 깨달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스승님! 금방 끝내고 갈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래.”

    뱀 앞에서는 무서운 호랑이처럼 굴다가도 내게 고개를 돌리면 순한 강아지가 따로 없는 율리시즈를 보면서, 웃음이 터졌다.

    ‘행복한 결말을 꿈꾸어도 되는 걸까?’

    더는 죽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 이곳에 올 때 죽게 해 달라고 바란 이는 나였음에도, 이기적이기지만 살고 싶어졌다.

    율리시즈의 곁에 조금만 더 있을 수 있다면, 한 마리 벌레가 되더라도 좋을 것 같았다.

    그때, 율리시즈에게 비참하게 패배한 뱀이 실성한 듯 키득거리며 웃었다.

    “킥… 킥킥…. 킥킥킥킥….”

    “아니, 저 뱀 새끼가 뭐가 좋다고 쪼개?”

    윈터가 뱀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나도 같은 마음인지라 고개를 끄덕였다.

    율리시즈도 뱀에게 검을 겨눈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그렇게 우스운 거지? 네 밑천은 바닥이 났을 텐데.”

    “킥킥…. 내게 이겼다고 해서 모든 걸 다 가진 이처럼 안심하고 있으니 이보다 우스운 게 또 어디 있겠느냐.”

    뱀은 검은 피를 뚝뚝 흘리는 상처를 지닌 채 사악하게 미소 지었다.

    “네 스승의 목숨줄이 내게 붙들려 있는데, 내가 저주를 풀라고 해서 순순히 따라 줄 줄 알았더냐?”

    하하하하하. 섬뜩하고도 기괴한 짐승의 웃음소리가 우리가 있는 장소를 메웠다.

    ‘…아.’

    그와 동시에, 내 시야가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내 몸이….’

    으지직. 으지지지직.

    얇고 바삭한 과자가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쳤다.

    “…세진 님?”

    루나가 창백해진 얼굴로 급하게 내게 달라붙었다.

    투둑. 투두둑.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무심코 뺨을 짚었다. 내 피부색과 똑같은 색의 부스러기가 손끝에 묻어났다.

    “유리.”

    “스승님!”

    “…미안해.”

    내 몸이 우수수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직감할 수 있었다.

    ‘죽겠구나.’

    심장에 새겨진 주술이 뜨겁게 불타오르는 게 느껴졌다. 댕, 댕, 댕 하는 괘종시계 소리가 귀를 시끄럽게 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했지.’

    그게 지금이 될 줄 몰랐을 뿐.

    뱀과 싸우며 우리 쪽이 승기를 잡았으니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안 돼!”

    율리시즈의 낯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유리가 검도 내팽개치고 나를 향해 달려왔다.

    “아하하하하! 멍청한 녀석! 너는 늘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등을 보이는구나!”

    주술을 작동시킨 뱀은 미친 듯이 웃더니, 내게 심상치 않은 공격을 날렸다.

    “또 사랑하는 이를 눈앞에서 잃는 고통을 맛봐라. 이번에 짝이 죽는다면 다시는 만날 기회가 없을 테니, 네놈에겐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고통을 주기 충분하겠지.”

    여태껏 보지 못했던 압축된 검붉은 에너지의 칼날이 내게 비처럼 쏟아지려 했다.

    “안 돼!”

    율리시즈가 비명을 질렀다. 유리는 망설임 없이 나를 보호하려고 달려왔다.

    “오면 안 돼…….”

    그저 오지 말란 소리를 했을 뿐인데, 내 목도 으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금이 가 버렸다.

    ‘저건 피할 수 없겠구나.’

    곧 죽어 버릴 생명이 원한을 넣어 저주하듯 내린 공격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길하고도 오래 묵은 영혼이 내지른 마지막 일격이었으니, 죽을 것이 뻔했다.

    정말 죽는구나, 하는 순간이었는데.

    “스승님, 피하세요!”

    “무슨……!”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달려온 것인지, 율리시즈가 나를 밀쳐 내고 공격을 대신 받았다.

    ‘안 돼!’

    너는 죽지 말아야 하는데.

    아니, 조금이라도 다쳐서는 안 되는데.

    율리시즈를 향해 뻗은 손이 천천히 부스러졌다. 마법을 쓸 수 없는 나는 그저 무력하게 율리시즈에게 도망치라고 소리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이런!”

    “황제 폐하!”

    페른과 엘리엇이 뒤늦게 사태의 위험성을 파악하고 율리시즈를 보호하려 했으나, 때는 늦었다.

    퍼어억.

    “윽…!”

    율리시즈가 뒤늦게라도 공격을 피해 보려 했으나, 나를 감싸느라 미처 막지 못해 오른팔이 통째로 날아갔다.

    탐욕스러운 뱀의 공격은 율리시즈의 오른팔을 어깨 부분까지 잘라 내고는, 떨어진 팔에 달라붙어 그것을 삼켜 버렸다.

    “으하하하! 하하하하하하! 꼴 좋구나! 그래, 사랑에 미친 네놈이라면 그럴 줄 알았다! 하하하! 나의 승리다!”

    “안 돼…….”

    “멍청한 것. 제 짝을 포기했다면 저는 살았을 텐데! 참으로 어리석구나. 하하하하!”

    뱀이 미친 듯이 웃었다. 율리시즈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자 거기서 나온 힘을 훔쳐 먹기라도 한 듯, 뱀의 상처가 회복되었다.

    “용의 피를 각성해 봤자 인간은 인간! 네 짝이 마법을 쓰지 못하는 지금, 네놈의 상처를 치료해 줄 수 있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감히 누가 내 저주를 건드릴 수 있겠느냐? 하하하!”

    “닥쳐.”

    율리시즈는 남은 왼쪽 팔로 검을 던졌다. 미친 듯이 웃던 뱀의 목에 검이 정확히 꽂혔다.

    꽂힌 상처 아래로 황금빛 힘이 흘러 뱀의 상처 부분을 녹아내리게 했다.

    “……!”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고통이었으나,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뱀은 몸뚱어리를 꿈틀거렸다.

    “스승님의, 저주를, 당장 풀어. 그러면 검을 빼 주지.”

    피를 잔뜩 흘리는 율리시즈는 그 와중에도 내 저주를 풀려고 뱀을 협박했다.

    “끄르르르륵…!”

    말을 하지 못하는 뱀은 그것만큼은 절대 싫은지 황급히 도망쳤다. 공간이 열리며 후퇴로가 만들어졌다. 뱀은 꼬리를 만 채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어어!”

    “도망간다!”

    병사들이 뱀을 뒤쫓으려 했으나, 뱀이 공간을 찢은 구멍 속으로 뛰어든 후 곧바로 그 틈은 닫혀 버렸기에 손쓸 수가 없었다.

    “폐하! 폐하!”

    엘리엇이 율리시즈에게 달려갔다. 발을 디딜 때마다 손자의 피가 땅에 묻어났다. 과다 출혈이었다.

    “…괜찮습니다. 나는 괜찮아요.”

    “이게 어떻게 괜찮은 겁니까!”

    “치유를 시도해 보겠습니다.”

    페른도 심각해진 표정으로 치유 마법을 율리시즈에게 퍼부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이, 이게 왜 안 듣지?”

    “젠장, 저주입니다! 그 망할 뱀 새끼가 일정 이상의 마력을 쏟아붓지 않는 한은 절대로 치유 마법을 걸 수 없게 해 놨어요.”

    “그게 얼마 정도인가?!”

    “…대마법사 세진 님의 마력 정도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이건… 그냥 죽으라고 건 저주입니다. 두 분 다 죽여 버리려고 한 거라고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