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뱀은 내가 살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재밌는지 낄낄거렸다. 벽을 발톱으로 긁는 듯한 소리가 귀에 몹시 거슬렸다.
“……끔찍한 악취미군.”
“이미 알고 있는 걸 구태여 말할 필요가 뭐가 있으려나. 나는 태어날 때부터 성격이 글러 먹었는걸.”
뱀은 내가 구속구를 깨고,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힘은 되찾았음을 알고 있었다. 저 한 대 치고 싶은 여유로운 미소만 봐도 답이 나왔다.
어쩌면 처음부터.
‘젠장, 저 녀석이 돌아오기 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위장해 놓고 급습하려고 했는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더니. 내가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동안, 뱀은 이미 내 행동 패턴을 다 꿰고 일부러 자리를 비운 듯했다.
덜떨어진 숙주인 세드릭과의 연결을 대체할 인간들을 잡아먹어 신체를 채울 겸, 나를 가지고 논 것이다.
‘붙잡혀 있던 루나는 유리를 자극할 수단으로 방치해 놓은 척했겠지.’
한번 물어 온 사냥감을 뱀이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것도 나와 율리시즈와 친한 사이인 루나라면, 지금의 상황에 위기감을 더해 주어 율리시즈의 속을 타게 만들기 충분할 터였다.
뱀이 다시 이 세상에 머무를 수 있는 최상의 육체가 알아서 급히 제 손에 굴러떨어지게끔.
“너는…… 너는 처음 만났을 때 죽여 버려야 했어.”
무너져 가는 육신이 비틀거렸다. 더는 퍼부을 공격도 없었다. 저 뱀의 수작 때문인지, 저놈과 가까이 있으면 마력이 배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뱀은 계속 입꼬리를 죽 올린 상태로 내게 더 센 효력의 마력 구속구를 채웠다. 그나마 좁쌀만큼이라도 남아 있던 마력이 감지되지 않자,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어떻게? 어떻게 죽이려고? 그때의 넌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장 같은 상태였잖아. 죽으려고 한 사람을 살려 줬는데, 생명의 은인을 죽이면 쓰나.”
“쥐어 패서 죽이기라도 하면 지금처럼 기분이 더럽지는 않았을 거야.”
“네 여동생이 죽었을 때처럼?”
“…….”
남설아의 일은 내게 아킬레스건이자 큰 트라우마였다. 이를 악물고 놈을 걷어차려고 하자 그는 그 발길질마저 가뿐히 막았다.
“넣어 둬, 넣어 둬. 조금만 기다리면 백마 탄 제자님이 오실 텐데, 그 장면 지켜볼 체력은 남겨 둬야지.”
귀여운 강아지에게 하는 것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는 짓이 가소롭고 역겨웠다.
“저리 치워.”
“싫어. 내가 재밌거든.”
“또라이 새끼.”
“흥흥흥.”
뱀은 홀로 신났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를 제 옆구리에 끼웠다. 우리가 다투는 동안에도 동굴은 쿵쿵 소리를 내며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놔, 놔 이 자식아! 내가 죽으면 죽었지, 너 같은 놈한테 목숨 빚지긴 싫어!”
“그러니까 살려서 가는 거지.”
“야!”
“기다려 봐, 남세진. 아니, 클로드 하센티온.”
장신의 남성이 된 뱀이 버둥거리는 나를 이끌고 무사히 동굴 밖으로 나섰다.
따사로운 햇빛이 비쳤다. 검붉은 토양의 세티아 화산 지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으윽…….’
그리고 세티아 화산을 중심으로 주변에서 흘러들어 오는 어마어마한 피 냄새에 속이 울렁거렸다.
아름다워야 할 풍경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마을 굴뚝에는 연기가 나지 않았고, 대신 길거리에 뱀에게 살해당한 사람들의 시신이 즐비했다.
영혼과 육신의 생기를 모두 빨아 먹힌 시신은 잘 건조된 미라처럼 홀쭉했다. 그 시신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마을 입구부터 세티아 화산으로 가는 길까지 쭉, 마치 도미노처럼 놓여 있었다.
“……뭘 해 놓은 거야. 이 미친 새끼야.”
“너를 구하러 올 백마 탄 왕자님이 즈려밟고 올 레드 카펫을 깔아 봤어.”
싱글벙글 웃음 만발을 띤 창백한 피부의 얼굴에서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무섭도록 천진난만한 즐거움이 가득했다.
사람들의 피와 시신으로 만든 레드 카펫을 보고 아연해진 나는 마법도 쓰지 못하는 힘 없는 주먹으로나마 뱀을 때렸다.
“제발 죽어, 좀! 넌 이 세상의 해악이 맞아! 몇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서야 만족하려는 거야?!”
이런 건……. 이런 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위험한 것이었다.
‘신에 필적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그리고 자기가 이 세상의 신이 되어 버릴 거라고?
저런 잔혹한 괴물의 마음을 가진 녀석이 율리시즈가 사는 세상을 주물럭거리게 둘 수는 없었다.
부서지고 있는 데다가,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 그걸로 얼마나 두들겨 봐야 소용이 있겠냐마는. 나는 분이라도 풀고자 열심히 뱀을 때렸다.
“죽어! 죽으라고!”
“아야, 아야, 아야! 아프잖아!”
“하나도 안 아픈 거 다 알아. 배가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힘을 섭취한 새끼가 말이 많아…….”
비참하지만 상황이 이쯤 흘러가자 깨닫는 것이 있었다.
‘저 새끼. 처음부터 ‘진짜’ 클로드 하센티온의 힘은 다 주지 않았어!’
넘겨준 힘이 너무 커서 몰랐는데, 이 녀석이 부리는 마법 등을 보면 최소 절반 정도는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게 보였다.
뱀은 철저했다. 내가 ‘약속’대로 얌전히 죽지 않을 때를 대비해 꼼꼼히 덫을 깔고 움직이고 있었다.
자기 자신은 그 어떤 손해도 보지 않도록.
내가 옆구리에 밀가루 포대처럼 끼어 씩씩거리자 뱀은 나를 비웃었다.
“다 알 만큼 똑똑한데, 이렇게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게 너란 사람이네.”
“그건 너 때문이잖아……!”
“과연? 정말 그럴까? 네가 조금이라도 더 이 상황을 좋게 해결할 방법이 없었을까?”
“뭐?”
“잘 생각해 봐. 남설아를 잃은 건 뭐 때문이었지? 천방지축이던 남설우 때문에? 아니야.”
“…….”
“당장 네게 닥친 현실에 무너져서 실의에 빠져 있던 너. 너 때문에 남설아는 죽은 거야. 너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려다가, 그래서 죽은 거라고.”
누가 머리를 망치로 후려치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개소리하지 마……!”
이 상황을 일으킨 건 저 녀석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 했다. 소용도 없을 걸 알면서도 뱀의 딱딱한 비늘이 덮인 팔을 손톱이 빠질 때까지 긁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를, 율리시즈를 비참하게 만든 게 누구였는데? 그 애를 살려 달라고 하더니, 그것조차 기만이었으면서. 새로 갈아탈 육체가 필요해서 만든 보험이었으면서! 어떻게 너 따위가 감히 내게 그딴 헛소리를 지껄일 수 있지? 너…… 너는 진즉 없어져야 했을 놈이야.”
반드시 죽여 버릴 테다.
“네가 절대 율리시즈의 몸에 손가락 하나라도 댈 수 없도록 내가 막을 거야.”
내가 손톱이 빠져 피 흐르는 두 손으로 녀석의 멱살을 잡고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뱀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네 마음에는 더 좋겠지. 아, 저쪽 세상에서는 그런 걸 두고 정신승리라고 하더라.”
“닥쳐!”
험한 말로 대꾸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라면 유리가, 율리시즈가 죽어 버릴 수도 있…….
“아, 저기 온다. 네가 애지중지 아끼는 율리시즈가.”
분노로 들끓어 있던 시야 앞에 일순 그 애만 보였다.
안도와 함께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스승님!”
바람결에 날리는 황금빛 머리카락. 그 밑에 보물처럼 숨겨진 자색 눈동자. 머리카락과 마찬가지로 빛나는 황금 갑주를 입고 나타난 율리시즈였다.
“유리……!”
‘아, 안 돼.’
여긴 위험한데.
율리시즈의 뒤로는 꽤 많은 수의 병력이 따르고 있었다. 깃발과 걸친 갑주의 색을 보아 황실의 기사단, 그것도 황제를 가장 가까이서 호위하는 친위기사단을 몰고 왔음이 보였다.
친위기사단 옆에는 푸른 망토를 걸친 마탑의 마법사 군단이 스태프를 들고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그들 앞에는 선봉장으로 페른이 있었다. 어깨 위에는 데이지도 한껏 볼을 부풀리고 서 있었다.
“구하러 왔습니다, 스승님!”
“저도 여기 왔습니다, 클로드 님! 마탑에 사정사정해서 전투에 쓸 만한 놈들 싹 다 끌고 왔어요!”
물론, 내 사랑하는 패밀리어 윈터와 그의 어머니인 루나도 함께였다. 그들 뒤엔 엘리엇 피델리움 변경백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주인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나를 탈출시키실 때 어떤 방도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셨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총공격밖에 답이 없는 듯하구나. 폐황자 세드릭의 기척이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아. 죽어 버린 것 같군.”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저 괴물을 어찌 상대해야 할지가 문제겠군요. 대마법사님께서 다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 게 큰 걸림돌이 되겠습니다.”
세티아 화산은 곧 몰려든 군대로 인해 포위되었다.
율리시즈는 맨 앞에 서서 음성 증폭용 아티팩트로 뱀에게 선언했다.
“나는 윈프리드 제국의 29대 황제인 율리시즈 미레하 윈프리드다. 네놈이 보낸 협박 편지를 읽어 봤다. 발칙하게도 내 스승님을 납치하여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더군.”
“응. 그랬지.”
뱀은 순순히 자신이 짓임을 인정했다. 태연한 놈의 목을 꺾어 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약이 올랐다.
율리시즈는 오로지 옆구리에 말린 배춧단처럼 늘어진 나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말했다.
“스승님을 놔줘라, 이 괴한아. 네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서 그만둔다면 적어도 목숨만은 살려 주마.”
나는 율리시즈가 진정으로 화났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안다. 그 아이가 정말 화가 났을 때는 겉으로 분노의 불티가 전혀 튀지 않고 오히려 냉담하니 무서울 정도였다.
‘진짜 화났군.’
저 회유는 굉장히 너그러운 처사였으나, 뱀은 아랑곳하지 않고 종알거렸다.
“싫어. 내가 원하는 건 너와 네 스승 둘 다의 죽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