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는 불구경 중-67화 (67/90)

67.

곤란했다.

“도와…줘……. 제발.”

두 눈에서 검은 피를 흘리는 세드릭이 기어 와서 내게 애걸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듯했다. 두 팔로 겨우 자기 몸을 질질 끌고 온 것을 보면.

“……세드릭?”

혹시나 뱀의 농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뭇거리며 묻자, 세드릭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나야……. 세드릭.”

‘실명된 건가.’

검은 피눈물로 혼탁해진 세드릭의 두 눈은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초점이 맞춰지지 않은 두 눈은 아마 주술의 대가일 테다.

‘카밀라가 살아 있었다면 이 꼴을 보고 까무러쳤겠군.’

죄 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지키려 한 아들이었는데. 이토록 흉한 몰골이 되다니. 사람 일이란 참 알 수 없는 법이었다.

어머니의 업보까지 물려받기라도 한 것일까. 지금 세드릭의 모습은 카밀라가 죽인 그 어떤 사람들의 최후보다 비참해 보였다.

‘어떻게 할까.’

죽이는 게 낫지 않으려나.

세드릭의 영혼과 육체의 주도권이 뱀에게 완전히 넘어간 게 아니라면. 아직 카밀라가 행했던 악을 부르는 주술이 미완성이라면.

‘이 자리에서 그를 죽여 주술을 파훼하는 게 유리를 살리는 방법이다.’

확신할 수는 없으나, 내 머릿속은 이미 살상력이 충분한 공격 마법을 뒤지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고통 없이 단숨에 목숨을 끊을 수 있는 것으로…….

그러나 내가 대답이 없자, 세드릭이 불안에 떨며 물었다.

“대, 대마법사……? 거기 있어? 있는 거지?”

“…….”

“대답해 줘……. 부탁이야. 여, 여기 있는 거 알아. 기척을 느꼈어.”

“…….”

“제발 나 좀 도와줘, 아니, 도와주세요…….”

두 눈이 멀었어도 살고 싶은 욕망이 간절한 덕분인지. 세드릭은 용케 나를 찾아와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가만히 있는 나를 찾아 발등을 붙잡고 애걸하는 모습이 미약한 안쓰러움마저 일게 했다.

‘……날 죽이겠다고 기세등등하게 달려들던 그 세드릭이 맞나.’

분에 넘치는 힘을 등에 업고 좋아할 땐 언제고, 비참해진 몰골로 목숨을 구걸하다니.

카밀라의 비호를 받으며 남부러울 것 없던 2황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세드릭은 악독한 것에게 영혼과 육신의 생기마저 다 빨려 마른 나뭇가지 같은 모습만 겨우 남았다.

율리시즈를, 아멜리아를, 그리고 나를 죽이려 한 인간일지라도 모든 걸 빼앗긴 말로를 보니 아주 조금은 동정심이 일었다.

“도와… 도와주세요. 뭐든지 할게요……. 너무 아파. 계속 벌레에 갉아 먹히는 듯한 통증이 일어서 괴로워…….”

세드릭이 고통을 호소하며 구원을 요청했다. 다 죽어 가는 와중에도 내 발등을 붙잡는 손의 악력만은 거셌다.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게 보여서, 나도 모르게 물었다.

“……어떻게 해 주길 바라는데.”

“……!”

내 더러운 신발을 생명수처럼 움켜쥔 손이 움찔했다. 나는 황폐해진 세드릭의 몸과 영혼을 마법으로 들여다봤다. 상태는 심각했다.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게 기적일 정도야.’

조각조각 유리 파편처럼 깨진 영혼. 무너져 가는 몸의 장기들.

‘이미 절반이 넘게 먹혔군. ‘세드릭’이라고 할 만한 자아는 고작 10분의 1 정도만 남았나…….’

나를 알아보고 도움을 구하려 한 게 아마도 세드릭의 마지막 발악.

생이 꺼져 가기 전의 단말마나 다름없는 구걸.

아무리 못된 짓만 골라 했다지만, 이런 이에게 죗값을 묻기도 애매했다.

비참해질 대로 비참해진 몰골이니 더는 원한을 따질 것도 없었다.

“내가 어떻게 해 주길 바라냐고 물었어. 세드릭 윈프리드.”

“아… 아…….”

내가 흔쾌히 승낙할 줄은 몰랐는지, 세드릭이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두 눈에서 먹물처럼 검은 눈물이 흘러내려 상처투성이가 된 손을 적셨다.

나는 그것을 느릿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시간이 없어. 내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빨리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아…….”

“네가 어떻게 지금 이 순간, 자아를 잠시나마 되찾아 나와 대화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지. 세드릭, 이건 기회다.”

“…….”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네가 바라는 것을 들어줄 테니, 말해 봐라.”

율리시즈를 질투했던 아이. 가지고 싶었던 건 빼앗는 방법밖에 몰라 제 배다른 형제자매를 죽이려 했던 영악한 아이.

그러나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형편없이 자멸해 앳된 나이에 죽어 가는 인간일 뿐이었다.

“나… 나는…….”

다 갈라진 목소리로 세드릭이 내게 대답했다.

“나를… 죽여 주길 원해. 나를 먹어 치우는 괴물이 아니라, 적어도 당신이 나를… 죽여 줘.”

“…….”

“이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 줘. 부탁이야…….”

독기가 빠진 자리엔 그저 보통의 연약한 인간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재차 세드릭에게 물었다.

“그게 네가 원하는 바인가?”

“……그래.”

쿨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세드릭이 검은 핏물을 토했다. 그도 아는 듯했다. 스스로의 생명이 다 꺼져 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천국에는 못 가겠지……. 그렇지만 지옥에 떨어지지도 못하고 악마의 배 속에서 소화되기는 싫어.”

“…….”

“그러니까 내 목숨을 당신이 거둬 줘…. 이런 말 할 처지는 못 된다는 거 알지만… 그래도 부탁해.”

“그래. 알았어.”

오른손을 들자 은색의 스태프가 나타났다. 스태프를 쥐고, 마력을 모았다.

“[소멸하라.]”

고통은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내 마법 주문을 듣고 세드릭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고마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세드릭은 이 세상에서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세드릭이 있던 자리엔 그가 뱉어 낸 검은 핏물만이 흥건했다.

나는 멍하니 세드릭이 사라진 자리를 응시하다가 조용히 스태프를 거뒀다.

세드릭을 보내 준 후, 마음속엔 허탈함만 남았다.

‘지겨웠던 악연이 이렇게 쉽게 끝나다니.’

죽일 듯이 괴롭힐 땐 언제고, 허망하게 끝을 맞이한 것을 보니 입이 썼다.

그리고 더 무력감을 느끼는 건, 세드릭을 소멸시켰음에도 여전히 뱀의 존재가 뚜렷하게 감지된다는 점이었다.

‘……세드릭이 사라졌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군.’

그나마 있던 희망이 사라졌다.

주술의 대가로 바쳐진 세드릭의 영혼과 육신이 뱀에게 거의 다 넘어간 상황이어서 그런지, 뱀은 아직 이 세상에 존재했다.

‘루나에게 잘난 척 말해 놨는데……. 이래서는 큰일인데.’

내 일이 아닌 것처럼 우습기만 했다.

유리가, 율리시즈가 나를 애타게 찾고 있을 텐데.

그 아이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킥킥. 그 멍청한 녀석 하나만 네 손으로 거두면 다 해결될 줄 알았어? 짜잔~ 하고?>

숙주였던 인간이 사라졌다는 걸 눈치챘는지, 뱀이 다시 지하 동굴로 기어들어 왔다. 전보다 더 거대해지고 선명해진 모습이었다.

“……근방의 인간들을 잡아먹었군.”

최소한 수백 명은 희생되었을 것이다.

‘우욱.’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뱀의 형상은 더는 불투명하지 않았다. 피가 묻은 백색의 송곳니가 날카롭게 번뜩였다.

<응. 맛없었지.>

뱀이 노래하듯 지껄였다.

“그걸 제물 받은 셈 치고 부족했던 실체화를 완성해 냈고.”

<맞아.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편하다.>

죄책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렸다. 나는 조금 울고 싶었다. 동시에 저 녀석을 애타게 죽이고 싶었다.

“[죽어라.]”

내 주문에 무수한 공격 마법이 시전되었다. 거대한 불덩이가, 뾰족한 얼음 송곳이,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한 심연이 나타나 뱀에게로 쏟아졌다.

마력을 다 쏟아 내도 괜찮았다. 이 괴물을 지금 여기서 죽일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더는 비참한 죽음을 홀로 맞이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해.’

“[죽어라.]”

나는 공격을 쏟고 또 쏟았다. 동굴이 무너지든 말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저주로 인해 부서져 가는 몸. 저놈과 동귀어진 할 수 있다면 괜찮았다.

“죽어 버려!”

쏘고, 또 쏘고, 셀 수 없이 많은 공격 마법을 사용했다. 무언가 터지는 소리는 났으나, 내 공격으로 인해 희뿌연 연기가 가득해 확인할 수는 없었다.

“헉…. 허억…….”

스태프를 쥔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이명이 들리고, 입가엔 피가 고였다.

이 세계에 온 이후 처음으로 마력 고갈이 느껴졌다. 몸은 더욱 빠르게 무너져 가고 있었다.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으나 숨을 쉬기가 벅찼다.

공격의 파도가 지나간 자리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해치웠나?’

우르릉. 쉴 새 없이 쏟아진 공격에 동굴이 무너졌다. 내 위로도 거대한 돌기둥이 떨어지려고 했다. 방어하기엔 체내의 모든 마력을 쥐어 짜내 공격에 쏟은 상황이라 여의치가 않았다.

“……아.”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다 부서져 가는 몸이니 저걸 맞으면 이번에야말로 산산조각이 나 죽을 수도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율리시즈의 행복을 빌었다.

‘있잖아, 유리. 나 여기서 죽는 건가 봐.’

나 때문에 너무 슬퍼하지 말고, 꼭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면 좋겠다.

그럼 멀리서라도 네가 평온하게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고 나도 덩달아 행복해질 테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귓가에 속삭여진 놈의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어딜 벌써 죽으려고 그래?>

“……!”

누군가 내 허리를 낚아챘다. 무너져 가는 동굴 속에서 빠져나온 그는 낄낄거리며 내 생존을 비웃었다.

<아하하! 아하하하! 안 되지. 안 돼! 네 짝이 죽는 모습은 지켜보고 죽어야지. 이렇게 쉽게 죽어서는 아니 되지! 내가 준비한 무대 위에서 함부로 내려가려고 하다니! 괘씸하기 짝이 없어! 하하!>

“…….”

나를 구한 건… 아니, 나를 더한 고통의 구덩이에 내몰기 위해 살린 건 뱀이었다.

꼭 탈피를 마친 뱀처럼 그는 인간의 형상을 취했다. 세드릭이나 내 모습은 아니었다. 완전한 실체화를 이룬 이후 만들어 낸 모습 같았다.

검은 머리칼에 섬뜩한 초록색 눈. 그건 뱀의 영혼체와 같은 색이었다.

<아직은 죽지 마, 가엾은 내 쌍둥이. 너를 구하러 오는 왕자님의 모습은 보고서 죽어야 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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