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는 불구경 중-63화 (63/90)

63.

‘스승님이 나의 삶의 이유야. 그분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면, 나 또한 살 이유가 없다.’

극단적인 고백이었으나, 율리시즈의 앞에서 그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저지할 수는 없었다.

옆에서 가까이 율리시즈를 지켜본 사람들로서,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고 큰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니 이 시간 이후로 스승님의 구출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자는 가만두지 않겠다. 이건 황제로서의 명령이다.’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듭니다.’

로라와 엘리엇, 페른과 데이지는 모두 고개를 숙여 그 말을 따랐다.

‘우리 주인님을 제발 구해 주세요, 율리시즈 님. 부탁드립니다.’

윈터는 엉엉 울며 율리시즈에게 세진을 구해 달라 청했다. 작은 페럿이 무너진 모습에 율리시즈는 그를 가만히 끌어안고, 스승이 했던 것처럼 윈터를 쓰다듬으며 진정시키려 했다.

‘괜찮을 거야, 윈터. 나는 강해. 스승님을 무사히 구해 오도록 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

* * *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로라는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편지를 쥐고 황성의 복도를 달렸다. 숨이 벅찰 정도로 헉헉거리며 마구 뛰었다.

펼쳐 본 편지에는 무시무시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황제 폐하께 서둘러 알려야만 해!’

수석 시녀장의 치맛자락이 달리는 걸음걸이에 휘날렸다.

지나가던 궁인들이 궁 내부의 지침도 어겨 가며 미친 듯이 달리는 수석 시녀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 누가 저리 체통 없이 황성 복도에서 달리는 거야? 그것도 황제 폐하께서 머무르는 중앙궁에서?”

“어? 저거 수석 시녀이신 로라 님 아니셔?”

“뭐? 그분이 저렇게 급하게 달리신다고? 무슨 사고라도 일어났나? 왜 저러시지……?”

궁인들의 수군거림에 신경 쓸 겨를조차 없던 로라는 이제는 늙은 몸을 이끌고 황제의 집무실로 뛰어갔다.

“헉…… 헉헉! 황제 폐하! 수석 시녀 로라입니다! 알현을 요청드립니다!”

수석 시녀가 사전에 알현 요청도 없이 율리시즈를 만나러 오자, 집무실을 지키던 호위들이 로라를 만류했다.

“수석 시녀장, 당신이 아무리 황제 폐하의 측근이자 유모라고는 하나, 이건 굉장한 무례……”

“급합니다! 황제 폐하! 제발, 제발 문을 열어 주십시오. 대마법사님의 일입니다!”

다 꺼져 가는 목소리로 로라가 소리치자, 집무실에서 율리시즈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석 시녀를 들여보내라, 지금 당장.”

“예, 예!”

호위병들이 문을 열어 주자마자, 로라는 집무실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무슨 일이지, 로라?”

집무실 안에는 퀭한 낯빛의 율리시즈가 앉아 있었다. 한숨도 자지 못하고 날밤을 샌 모습이었다. 예전에 세진이 율리시즈가 예상치 못한 사고에 충격을 받고 앓자 잠에 들지 못한 것처럼, 율리시즈도 스승을 걱정하는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크, 큰일입니다, 황제 폐하! 클로드 님을 납치한 자로부터 서신이 왔습니다.”

“……뭐라고?”

로라의 급박한 말에 율리시즈의 눈이 번뜩였다.

“누가 전했는지 알 수가 없어, 안전상의 이유로 제가 부득이하게 먼저 뜯어 읽어 봤습니다만……. 이건 황제 폐하께 빨리 전해 드려야 하는 사항인 듯하여 달려왔습니다.”

“어서 줘. 어서!”

율리시즈는 로라가 내민 편지를 쥐어뜯듯 낚아채어 서서 읽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안녕, 친애하는 윈프리드 제국의 황제 폐하.

아마 그 작은 갈색 털 짐승이 쪼르르 달려가 알렸겠지만, 네 스승님은 내가 데리고 있어. 아, 숨은 붙어 있지만 멀쩡하지는 않아. 내가 좀 손을 봐 줬거든.

내가 누구인지 몹시 궁금할 텐데, 그건 네가 직접 내려오면 알 수 있을 거야. 멍청한 폐황자 세드릭이 주도한 일은 아니니까 쓸데없는 수배령은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그 녀석도 나에게 이용당한 거니까. 알았지?

황제인 네가 스승인 대마법사를 구하러 오지 않는다면, 대마법사는 내 손에 죽을 거야.

네가 오지 않는다면 네 스승인 대마법사는 비탄에 빠지겠지. 그걸 보는 꼴도 재밌긴 할 거야. 아, 그래도 너는 오겠지? 그런 놈이니까. 설마 네 목숨이 아까워서 사랑한다는 사람을 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지를 고를 거라고 보지는 않겠어. 그건 너무 추하잖아.

네 스승을 데리고 있는 장소는 태곳적에 신이 머물다 갔다는 활화산 세티아야. 이곳의 동굴에 네 스승인 대마법사를 인질로 잡아 두고 있으니, 구하러 내려오도록.

너무 늦으면 네 스승의 시체를 보게 될지도 몰라. 장소까지 알려 주었으니, 서둘러 오면 좋겠어. 만날 날을 기대하고 있지. ]

“……이런 미친 작자가 다 있나.”

율리시즈는 편지를 다 읽자마자 그걸 구겨 버렸다. 스승님인 세진을 납치한 자가 지나치게 오만방자한 데다가 세진을 죽이겠노라 명백한 협박까지 남겨 두었기 때문이었다.

로라는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어…… 어떻게 하죠, 황제 폐하?”

그녀는 소식을 전하긴 했으나, 율리시즈 또한 걱정했다.

“대마법사님을 납치했다는 건 윈터가 이미 전한 내용이니, 이 자의 말은 모두 사실일 것입니다.”

“…….”

분노로 말을 잇지 못하는 율리시즈에게 로라는 덜덜 떨며 계속 이야기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고 뽑을 만한 분을 납치했다니요. 그것도 목숨을 겁박하는 상황이라면, 필시 그자는 누군지는 몰라도 몹시 강한 자일 것입니다. 그런 자를 황제 폐하께서 상대하러 가시다니요. 너무 위험합니다.”

“그걸 모르지는 않아.”

율리시즈가 피곤한 어조로 대꾸했다. 로라는 무릎을 꿇고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황제에게 간청했다.

“대마법사님은 미끼일 겁니다……. 진짜 목표는 황제 폐하이실 거예요. 이 늙은이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로라.”

“가면 안 됩니다. 가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 같아서 두렵습니다. 제발, 제발……. 가지 마십시오. 황제 폐하께서 더는 이 문제에 대해 말리지 말라고 하셨으나 저는 두렵습니다. 셀레스틴 황후 폐하처럼 황제 폐하께서 저보다 먼저 떠나시는 것이 두렵습니다…….”

주름진 로라의 얼굴에 눈물방울이 잔뜩 고여 흘러내렸다. 로라에게도 세진은 소중한 은인이었으나, 그녀에겐 셀레스틴의 아들인 율리시즈가 더 중요했다.

“이기적이라 비판해도 상관없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아마도 피델리움 변경백께서도 같은 입장으로 말하실 겁니다. 그리고 대마법사님께서도요! 황제 폐하의 안위가 가장 중요하신 분이니 오지 않으시길 바랄 겁니다.”

세진의 패밀리어인 윈터가 들었다면 로라에게 극도로 화를 냈을 소리였다.

‘윈터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군.’

율리시즈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윈터가 이 자리에 있어서, 그래서 로라의 말을 다 들었다면 그 성난 페럿은 분명 로라와 그간 쌓은 정도 무시하고 덤벼들었을 것이다.

주인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패밀리어니까. 율리시즈는 그렇다면 자신이 아끼는 인간과 패밀리어가 죽도록 싸우는 모습을 봐야 했을 것이다.

‘내 대답은 정해져 있어.’

율리시즈는 편지를 본 후에도, 보기 전에도 이미 같은 마음이었다.

존경하는 스승이자, 사랑하는 상대인 세진을 구하러 가기 위해 움직인다.

그 뜻은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굽힐 생각이 없었다.

“미안하지만, 로라. 나는 스승님을 구하러 갈 거야. 이미 나를 도와 동행할 기사들의 명단을 꾸렸고, 준비는 모두 마쳤어. 윈터도 나를 따라 스승님을 구하러 가기로 약속했어. 로라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나는 결정을 돌릴 생각이 없어.”

“황제 폐하, 아니 율리시즈 님. 제발……. 너무 위험합니다. 이건 함정일 거예요. 가면 안 됩니다.”

로라는 구슬프게 짐승처럼 울었다. 그녀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셀레스틴이 모든 책임을 질 테니 걱정할 것 없다며 빈센트를 독대하러 갈 때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이분을 보내서는 안 된다.’

편지에서 굉장히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순수한 악의로만 차 있는 서신은, 장난이라고 볼 수 없었다. 진심으로 대마법사를 해칠 수 있는 자가 보낸 편지에 로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그런 자를 율리시즈와 만나게 둘 수는 없었다.

“대마법사님을 생각해서라도 가면 안 됩니다. 폐하, 이 늙은이의 간청을 제발 들어주십시오.”

“안 된다고 했어, 로라.”

“폐하!”

“내 앞에서 더 그 말도 안 되는 부탁을 들어 달라고 할 거라면, 호위병들에게 일러 네 방으로 데려가라고 말하겠어.”

“안 됩니다, 폐하! 가시면 안 됩니다!”

“로라에겐 당분간 근신령을 내리겠어. 나는 반드시 스승님을 구하러 갈 거야. 스승님은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구하지 못할 거라는 걸, 이 편지를 보낸 작자는 알고 있어.”

단호한 율리시즈의 말에 로라는 눈물만 흘렸다. 말릴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싶지 않은 건 율리시즈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로라가 율리시즈를 아껴 나가지 말라 아뢰는 것처럼, 율리시즈 또한 세진이 너무나도 소중하여 그를 구하러 가야만 했다.

율리시즈가 밖의 호위병을 불렀다.

“거기 누구 없느냐? 수석 시녀의 상태가 좋지 않다. 그녀를 데리고 황궁에 배정된 방으로 가서 근신시키도록.”

“알겠습니다!”

“가시죠, 수석 시녀님.”

“…….”

로라는 영혼이 나간 사람처럼 호위병들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

“스승님…….”

율리시즈는 불안해하며 세진이 무사하기를 빌었다. 구겨진 편지가 종이 뭉치가 되어 집무실 바닥을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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