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는 불구경 중-61화 (61/90)

61.

저 미친놈에게 따지고 싶은 게 많았지만, 내 입은 겨우 한마디 말밖에 뱉지 못했다.

“……왜 그랬어?”

“뭐를?”

“율리시즈, 그 애한테 왜 그랬냐고.”

많은 것들을 물어보고 싶었다. 저 뱀 새끼의 멱살을 붙잡고 힘들었던 나날들에 대한 한을 토해 가며 내게 왜 그랬느냐 묻고 싶었다.

설아의 죽음도, 내 전생을 불행하게 만든 것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주 먼 옛날의 과거도…… 다 저 녀석이 망쳤다고 말했으니까.

하지만 정작 입 밖으로 나온 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에게 어째서 그런 잔혹한 짓을 저질렀냐는 추궁이었다.

‘아…… 사람이 너무 분하면 눈물이 터져 나오는 구나.’

볼을 따라 뜨거운 눈물이 뚝뚝 피처럼 떨어졌다.

“왜…… 왜 그랬어. 그 아이가 뭘 잘못했는데.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였잖아. 지옥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기엔 너무 안된 아이였잖아…….”

마법을 쓸 수 없는 지금의 내가 미웠다. 저 녀석을 죽여야 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포박되어 차가운 돌바닥에 누워 있는 게 고작이라니.

“차라리 모든 해악은 내가 짊어지게 하지 그랬어. 나를 없애고 그 아이는 본래 운명대로 행복하게 놔두지. 어떻게 이렇게 잔인하게…….”

저 뱀 새끼가 말하는 내 영혼의 짝은 율리시즈가 분명했다.

한때 ‘클로드 하센티온’의 가죽을 빼앗았던 것이 책으로 보여 줬던 이야기를 똑똑히 기억한다. 율리시즈 미레하 윈프리드의 일생이 그 안에서 얼마나 참혹하게 스러졌는지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가족을 잃고, 찬란한 가능성으로 빛나야 했을 미래를 잃고, 끝내는 자기 자신조차 잃고 복수심에 미쳐 악으로 규정당했던 것까지.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픈데……. 그런 끔찍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몇만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율리시즈의 인생은 몇 번이나 망가졌을까. 수백 번? 수천 번? 셀 수도 없이 아득했을 고통의 숫자에 나는 미칠 것만 같았다.

이 세상에서 쫓겨난 짝의 영혼을 찾아다니면서, 율리시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기억하지도 못할 회귀를 반복하면서, 끝없이 그리워하는 사람을 찾는다는 건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수도꼭지가 터진 것처럼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뱀 새끼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상하네. 왜 우는 거야? 내게 더 오랜 시간 고통받았던 건 너인데, 어째서 짝의 이야기를 듣고 그쪽을 더 안타까워하는 거지?”

세로로 찢어진 동공은 일말의 연민도 담지 않았다. 저 녀석에게 가득한 감정은 오로지 호기심. 그것뿐이었다.

“……너는 평생 알지 못할 이유야.”

알려 주기 싫었다. 어차피 이해하지도 못할 테니까. 남의 힘만 잡아먹고 비대한 자아를 지닌 축생에게 가르쳐 줄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뱀 새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만 으쓱였다.

“역시 너희는 이상해. 이해할 수 없다니까.”

“이해해 달라고 한 적 없어.”

몇만 년이나 남의 육신을 빼앗았어도 인간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달리 사악한 영혼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었구나. 어쩌다 저런 게 세상에 튀어나왔을까.

내가 한심하고 역겹게 저를 쳐다보는 걸 알았는지, 뱀 새끼가 고개를 뚜둑 꺾었다.

“그 표정, 기분 나빠.”

“나쁘라고 짓는 거다, 이 개X끼야.”

“무슨 배짱으로? 나는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 마법도 쓰지 못하는 무능력자 신세가 된 주제에. 내게 살려 달라 빌어도 부족할 텐데 겁이 없네.”

낄낄거리며 비웃던 목소리가 돌처럼 딱딱해졌다. 소름이 끼쳤다. 저것은 위험했다.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공포에 치아마저 딱딱 소리를 내며 떨렸다.

하지만 저따위 녀석에게 밀리고 싶지는 않았다.

“거, 짓말……이야.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죽였겠지.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

“네가…… 원하는 게 있으니 세드릭을 홀린 뒤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거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수고로운 짓을 할 수는 없어.”

뱀 새끼는 다른 세상에서 새로이 살고자 했으나, 실패하여 원래 세상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런데 이미 육신은 내게 억지로 떠넘겨서 돌아갈 육신이 없었겠지.’

카밀라가 시녀들을 죽여 만든 조악한 주술진에 응한 것만 봐도 답이 나왔다. 그런 저급하고 불길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자신이 버렸던 세계로 돌아올 수 없었을 게 뻔하다.

나갈 때는 마음이 홀가분했겠지만, 다시 오려니 마음대로 되지 않아 언짢았겠지. 끝없이 긴 세월을 자기 뜻대로 거칠 것 없이 맘대로 휘젓고 다녔을 놈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내 말에 뱀 새끼가 미동도 없이 물었다.

“그래서? 어디까지 추측했어?”

이 새끼는 즐거워하고 있었다. 이것조차 하나의 여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신격에 가까워졌다고 했으니, 내 발악쯤이야 귀여운 반항 정도라 여기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기에 나는 대답을 질질 끌며 시간을 벌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아마 이 끔찍한 녀석은 또 율리시즈를 망칠 것이다.

“……육신이 필요한 거지?”

“정답~.”

뱀 새끼가 박수를 쳐 줬다. 나는 녀석의 발에 짓밟힌 상태로 울컥 솟는 화를 억눌렀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내 육신은 아닐 거야. 다 쓰고 버리려던 걸 다시 원래 주인인 내게 떠넘겼으니까.”

“응응. 계속해 봐. 재밌다.”

“초월자는 네가 전부 잡아먹었다 했지. 그렇다면 적절한 그릇으로 삼을 육신은 하나밖에 남지 않아…….”

율리시즈.

내 영혼의 짝. 뱀 새끼가 말하는 창조주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운명의 나머지 반쪽.

“율리시즈의…… 몸을 갈취하려고 온 거지?”

가장 확실한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도 나는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발 아니라고 해 줘.’

그만큼 고통스럽게 만들었으면 이제 됐잖아. 더는 놔줘도 되잖아.

‘제발…….’

아니라는 대답을 받아 낼 수만 있다면, 나는 뱀 새끼에게 빌어도 좋았다. 그깟 굴욕 따위는 율리시즈의 행복과 안전 앞에서 아주 싸게 먹히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러나 뱀 새끼는 연신 박수를 쳐 가며 가증스럽게도 밝게 웃었다.

“맞아, 맞아! 이 세계에서 내가 쓸 수 있을 만한 육신은 율리시즈의 것이 유일해서.”

“아…….”

“정말 잘 맞히네. 역시 너도 창조주가 직접 빚은 영혼이라서 그런 걸까? 나 때문에 거의 다 깨지고 부서졌어도 총기는 여전하구나. 좀 더 엉망으로 망가지기를 바랐는데……. 그런 것치고는 멀쩡하게 살아 있기까지.”

“……내가 죽기를 바랐어?”

“응. 넌 처음부터 죽음을 원했잖아. 당연히 얼마 못 가고 ‘약속’을 어길 줄 알았어. 누구나 내가 제일 소중하고 중요한 법이니까. 그 애를 죽이든, 아니면 네가 스스로 너를 죽이든 둘 중 하나는 결말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쉬익쉬익. 검은 뱀이 똬리를 틀며 아쉬워했다.

“이상하게도 꿋꿋이 ‘약속’을 지키더란 말이지. 그것 때문에 내가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올 틈이 나지 않았어.”

“…….”

“이럴 줄 알았다면 너를 좀 더 부추기고 갈 걸 그랬어. 조건이 너무 후했지. 설마 죽고 싶다는 욕망을 버리고 영혼의 짝과 살아가고 싶다는 희망을 품을 줄이야……. 마치 그 녀석이 운명인 걸 알아보기라도 한 것처럼, 불쾌하게.”

콱. 뱀 새끼가 나를 짓누른 발에 힘을 주었다.

“아악!”

뼈가 부러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마법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나는 이렇게 약해빠졌구나, 하는 비참한 마음이 더 컸다.

뱀 새끼는 무섭도록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아주 거슬린단 말이야. 영혼의 짝이 둘 다 한마음 한뜻이라니.”

“크흑, 커헉…….”

“저 머저리 같은 황자가 너를 죽이고 싶어 했을 때, 바로 들어줄까 고민도 했지만……. 역시 그건 너무 싱거워. 너 때문에 다시 이 세계로 들어오기 쉽지 않았으니까. 너를 미끼 삼아 이번에는 율리시즈를 부르는 게 좋겠다 싶었지.”

그러지 마.

나는 뱀 새끼에게 짓밟히고 걷어차이면서도 녀석의 발등을 붙잡고 애원했다.

“……율리시즈를 놔줘. 나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잖아. 그 애의 인생마저 망치지 말아 줘. 부탁이야. 제발, 제발…….”

‘왜 여기로 내가 왔을까.’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내가 미워졌다. 율리시즈에게 곧 죽을 거라는 사실을 도저히 알릴 수가 없어 윈터와 함께 내 재량껏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게 후회스러웠다.

율리시즈는 내게 숨기는 것 없이 투명한 아이였는데. 나는 내 예정된 죽음을 들으면 힘들어할 그 아이가 걱정된다는 이유로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미안해, 미안해…….’

솔직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전생과 마찬가지로 나는 비겁했다. 정말 지키고 싶고,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더 진솔했어야 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그 아이를 더는 비참하게 만들지 말아 줘. 제발, 내가 이렇게 빌게. 나 하나만 죽이는 것으로 끝내 줘. 다 스러져 가는 육신이어도 영혼은 아직 멀쩡하잖아. 내 영혼을 삼키고, 율리시즈는 건들지 마. 제발.”

원수보다 더한 뱀 새끼에게 나는 빌고, 또 빌었다. 율리시즈를 놓아 달라 간청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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