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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는 불구경 중-60화 (60/90)
  • 60.

    으드득. 드득. 뱀 새끼가 신경질적으로 자기 손톱을 분질렀다 뽑았다 하길 반복했다. 재생력이라도 있는지, 손톱은 다시금 자랐다.

    뱀 새끼는 그 손톱 조각을 내 얼굴 가까이에 흘려 가며 킥킥 웃었다.

    “웃기지 않아? 나도 다른 녀석들처럼 열심히 정성 들여 만들어 놓고서는, 내가 문제점이 있으니까 곧바로 폐기해야 다른 영혼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거라고 단정하더라고.”

    ‘지금 그러고 있구만.’

    더럽게 꼬인 새끼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녀석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날 묶은 밧줄은 마력 구속구 같았고, 이전에 세드릭이 내게 걸었던 수갑 형태보다 더 단단한 구속력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젠장…… 안 풀리네.’

    마법을 쓸 수가 없다니. 이러면 외부에 구조 요청을 하기도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지금 내 곁에는 윈터도 없었기 때문에 누가 나를 찾아 줄 수 있을지도 의문인 상황이었다.

    뱀 새끼는 나를 보며 씩 웃었다.

    “답답하지? 그거, 내가 쟤한테 시켰어.”

    “폐황자 세드릭…….”

    “어머니를 죽인 녀석들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냐고 하니까, 얼른 고개를 끄덕이더군. 대신 영혼과 육신의 통제권을 내게 달라고 해서 먹어 치웠어.”

    꿀꺽. 과장되게 삼키는 소리를 낸 뱀 새끼는 실실 웃기만 했다.

    “그렇게 처먹다가는 배 터진다.”

    “안 터졌어. 초월자를 잡아먹고는 소화시키느라 배가 좀 아팠지만, 힘을 다 내 것으로 만들고 나니 만족스러웠어. 나는 나를 폐기하겠다던 창조주가 날 함부로 소멸시킬 수 없을 만큼 강해졌지.”

    “그래서?”

    어둠 속에서 뱀의 세로로 쭉 찢어진 초록색 동공이 번뜩였다.

    “그래서 그다음에 나는 내가 너무 사랑하고 너무 미워했던 내 쌍둥이 영혼의 육신을 먹어 치웠어.”

    “…….”

    “너도 들으면서 알아챘겠지만, 내가 먹어 치운 건 ‘클로드 하센티온’이란 운명을 받을 영혼의 육신이었지.”

    뱀 새끼가 나를 가리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뾰족한 손톱이 달린 손가락을 내리면서.

    “견딜 수 없이 화가 났거든. 왜 같이 태어난 영혼인데, 나는 안 되고 쟤는 되는 거지? 나도 그 영혼의 짝과 같이 태어났어. 내게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었어. 그런데 창조주는 그걸 불허했지. 이대로면 내가 밑바닥에 처박히는 동안 영혼의 짝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게 될 테지. 그걸 보니까 질투가 나서 도저히 가만히는 못 있겠더라고.”

    ‘지랄한다…….’

    남설우가 생각나서 구역질이 났다. 남이 행복한 거 못 견디는 새끼 보고 뱀심 떤다고 하는데 저 새끼를 보니 어원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묶여 있는 상황이니 심기를 건들지 않도록 입이나 다물었다.

    뱀 새끼는 계속 떠들었다.

    “창조주가 특별히 빚은 영혼을 위한 그릇인 육신은 남달랐어. 신이 선물해 준 힘이 넘쳐났고, 어딜 가든 선망을 받을 수 있는 외모를 타고났지. 주어진 운명이 워낙 좋아서 일찍 늙어 죽을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되었어.”

    “…….”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인간들이 정말 많더군. 하지만 다 평범한 그릇들이라 별로였어. 초월자들을 잡아먹고 나니 평범한 인간으로는 성이 안 차더군. 그래서 내 쌍둥이의 영혼의 짝을 찾아갔지.”

    인간으로 태어난 영혼의 짝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군주로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의 금빛 머리칼과 요요하게 빛나는 자색 눈동자를 본 순간, 뱀 새끼는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특별한 영혼이었어. 진짜 영혼의 짝이었어야 할 내 쌍둥이보다도 강인한 영혼이었지. 나는 그가 가지고 싶었어. 그와 영혼의 짝으로 묶여 내가 옆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었지.”

    ‘결혼사기잖아.’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사랑하게 된 영혼의 짝은 나를 거부하더군. 진짜 자신의 영혼의 짝을 돌려 달라면서 내게 화를 냈어. 육신이 짝의 것이라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다시 돌려받을 방법을 강구하며 이곳저곳을 떠돌더군. 나는 운명의 짝을 놓지 못하는 그가 사랑스러우면서도 짜증이 났어.”

    뱀 새끼가 날 향해 다가왔다. 내 명치 부분을 촘촘한 비늘로 덮인 발끝으로 짓밟고서, 내게 키이익 하는 소음을 내며 소리쳤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포기하지 않고 시도하더군. 내가 시간을 아무리 되돌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려고 해도 그자는 결국 자기 짝을 찾겠다며 나를 떠났어! 나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고 윽박지르며 짝을 찾지 못한 고통에 괴로워하더군.”

    “…….”

    “화가 났어. 너무 화가 났어! 그래서 그와 이어지지 못한 세계는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어. 그가 아끼며 보살피던 나라를, 사람들을, 아름다워 좋아했던 풍경들을…….”

    ‘무서운 새끼.’

    그 짝이란 사람은 무슨 죄냐. 몇 번이고 자신이 사랑했던 것들이 파괴되는 슬픔을 겪어야 하는 건 대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일까.

    뱀 새끼는 흑흑 눈물을 짜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 강인해서 그것으로는 무릎 꿇지 않더군. 그쯤 되자 나는 그에 대한 사랑보다 소유욕이 더 짙어졌어. 저 인간을 어떻게 해서라도 내게 사랑해 달라고 애원하게 만들고 싶었지.”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날 만든 창조주가 날 실패작이라 부르며 내쫓은 것처럼, 나 또한 그를 가장 불행한 운명 속에 처박았지. 본래 가지고 있던 찬란한 금빛 인생으로의 운명은 내가 씹어 먹었어. 부스러기조차 남지 않게 냠냠.”

    “…….”

    “제 본래 운명대로 살지 못하고 가장 어긋난 삶을 살게 된 짝의 영혼은 매번 비참하게 죽더군. 나는 그가 처절한 최후를 맞는 걸 보며 행복해졌어. 아! 이제 저이가 나의 슬픔을 깨닫고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 줄 줄 알겠지. 저 이를 이해할 수 있는 건 세상에 오직 나밖에 없으리라는 걸 인정하겠지! 하면서 두근거리며 기다렸지.”

    엄청난 사이코였다. 그리고 인내심도 긴 사이코였다. 이 뱀 새끼는 해로운 놈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나는 잠자코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그런데…… 내게 오지 않더군. 나를 찾아와 이 지옥 같은 운명 속에서 구원해 달라 하지 않았어.”

    뱀 새끼가 돌연 나의 목을 향해 손톱을 들이밀었다.

    “대신 나를 추격하여 자기 짝을 찾고자 하더군. 일말의 가능성조차 포기하지 않았어! 매번, 어떤 삶을 살아도 그자는 나를 쫓아왔어. 쫓아와서 자기 짝을 돌려놓으라고 소리쳤지. 처음에야 몇 번 죽였지만, 나중엔 그것도 재미없어서 하지 않았어. 그런데 이 새끼는 정말 지치지도 않고 나를 쫓아오더군!”

    캬아아악. 뱀 새끼의 분노에 내가 갇힌 동굴이 웅웅 울렸다. 나는 종유석이 떨어져 내 배에 꽂혀 죽는 불행한 결말이 나지 않길 빌었다.

    “오랜 세월 동안 초월자를 잡아먹고, 영혼의 짝을 비롯한 운명을 먹어 치웠으니 내 영혼은 신격에 가까워졌어. 훔쳐 입은 육신으로 쌓은 힘도 강했겠다, 이젠 이 세상이 지겨우니 다른 곳으로 가서 새 인생을 살고 싶었지.”

    “……그게 나를 네 몸에 집어넣은 이유야?”

    “맞아! 내가 네게 거짓 계약을 하긴 했지만, 그것 하나만은 사실이었어. 넌 ‘진짜’야. 본래 클로드 하센티온으로 태어났어야 할 진짜 영혼. 내가 너무나 부러워하고 끝내 배신했던 나의 쌍둥이 영혼. 그게 너였어.”

    “…….”

    내가 진짜 클로드가 맞았다니. 그러면 전생에서의 고통스러움은 뭐였을까. 그거야말로 맞지 않는 운명을 받은 죄로 나는 고통받았던 건가?

    생각에 잠긴 내 위로 뱀 새끼는 노래하듯 계속 옛이야기를 들려줬다.

    “다른 세계로 도망치고 싶은데, 쉽지 않았어. 어떻게든 네 영혼의 짝이 나를 쫓아와서 붙들었거든. 그래서 생각을 바꿨어. 어차피 시간을 계속 돌려서 몇만 년이나 사용한 헌 육체 따위, 이제 다시 원주인에게 돌려주고 나는 아예 새로운 육신으로 갈아타 새 삶을 살기로.”

    “……미쳤군.”

    “잡아먹는 건 쉬우니까. 나는 자신 있었어. 시간을 다시 돌리고, 영혼의 짝은 제일 고통스러운 불구덩이 인생 속에 빠뜨린 뒤 너를 찾았지. 이미 죽어서 더 수월했어. 너와 네 영혼의 짝이 행복하게 사는 건 두고 볼 수 없었는데 고맙게도 죽음을 원하더군.”

    “개자식아.”

    “하하하하. 덕분에 나는 무사히 너를 속여 계약을 맺었지. 그리고 나는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다른 세계로 갔는데……. 문제가 있었어.”

    “입국 심사대에서 걸리기라도 했어?”

    “아니. 비슷하긴 했지만. 내 영혼은 다른 세계에서 만들어진 영혼이라 그 세계에서 주어지는 운명은 발급받을 수가 없었어. 네가 불행했던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지. 다른 세계에서 만들어진 생산품이 여기서 이물질로 낙인찍히는 거야.”

    “…….”

    “내가 원하는 고상한 삶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 나는 화가 났고,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지. 그래서 마침 멍청하고 욕심 많은 여자가 제 아들을 살리려 끔찍한 것을 소환할 때 응하여 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 뱀 새끼는 내 인생과 율리시즈의 인생을 말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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