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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는 불구경 중-57화 (57/90)
  • 57.

    여행을 떠났다고 알려진 대마법사 클로드 하센티온이 실종됐다.

    같이 떠났던 그의 패밀리어 윈터는 살아남았으나 참담한 표정으로 황성에 부랴부랴 입궁했다.

    “윈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율리시즈는 옥좌에 앉아 있다가 꾀죄죄한 모습의 윈터가 등장하자마자 그 페럿에게로 달려갔다.

    “잘못된 건 아니지? 클로드 님은 무사하겠지? 그렇지? 응?”

    아멜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두려웠다. 클로드가 이런 식으로 행방이 묘연해진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누구도 대마법사를 해치지 못할 거라고 믿었던 때와는 달랐다. 율리시즈도, 아멜리아도, 윈터도 클로드의 몸에 이상이 있어 예전만큼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함을 알고 있었으므로.

    안다는 건 때로 모르고 싶은 게 나을 만큼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윈터는 거뭇거뭇 탄 털을 골라내며 겨우 말했다.

    “폐황자 세드릭을 만났습니다. 주인님의 예상대로였어요.”

    “제기랄. 그랬겠지! 스승님은 본인을 미끼 삼아서 그 새끼를 잡으러 내려간 것일 거 아니야.”

    율리시즈가 분노하자, 윈터는 까만 눈으로 그걸 듣더니 놀라며 반문했다.

    “주인님께서…… 아프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까?”

    “뭐? 클로드 님이 아프셔?!”

    “…….”

    아멜리아가 경악해서 소리쳤다. 일대에 소음 차단 마법을 걸어 둔 게 다행이었다. 대마법사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정보가 다른 곳에 새 나가면 안 되니까.

    율리시즈는 대화 내내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아멜리아는 불안함에 윈터를 채근했다.

    윈터는 낭패라는 듯 얼굴을 굳혔다.

    “……아프시다는 건 몰랐나 보군요. 짐작하시던 것 중에 하나였거나.”

    “사실대로 다 털어놔. 스승님께서는 지금 어떤 상태이신 거지?”

    누구 하나 죽여 버릴 태세로 율리시즈가 살벌하게 물었다. 윈터는 당황하지 않고 이런 일이 언젠가 올 줄 알았다며 순순히 답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겁니다.”

    “이렇게 묻는 시간이 더 아까우니까 당장 말해. 윈터.”

    율리시즈는 이제 칼까지 뽑아 들었다. 예장용 검이었으나 검기를 다룰 줄 아는 율리시즈에게는 무기나 다름없었다. 아멜리아가 미쳤냐며 율리시즈의 뒤통수를 때렸다.

    “윈터에게 무슨 짓이야! 클로드 님의 패밀리어인데!”

    율리시즈는 아멜리아가 뒤통수에 구멍이 날 것처럼 때려도 반응하지 않았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말해, 윈터. 스승님이 내게 뭘 감추고 있었지?”

    “……주인님께서는 죽어 가고 계십니다.”

    “……뭐?”

    “주인님께서는 율리시즈, 당신이 스무 살 성인이 되는 날을 기점으로 2년밖에 살지 못하는 계약을 맺었습니다. 계약의 주체는 내 전 주인님이신 ‘클로드 하센티온’. 현재 클로드 님이신 분은 그 ‘클로드’ 님께서 진짜라 하시며 집어넣은 이방인입니다.”

    어렵고 믿기 힘든 이야기가 지나갔다. 아멜리아는 입을 벌리고, 율리시즈는 이를 경청하며 머릿속으로는 분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를 키운 스승님의 진짜 이름은 무엇이지?”

    “주인님의 이름은…… 세진 님이십니다. 남세진.”

    “왜 스승님께서 2년밖에 살지 못하는 계약을 기꺼이 받아들이셨지?”

    이 질문에 대해 윈터는 다소 망설였다. 세진이 가장 숨기고 싶어 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없어. 나는 인내심이 짧고. 어서 말해.”

    율리시즈는 윈터를 위협하며 답을 내놓을 것을 촉구했다.

    윈터는 하는 수 없이 대답했다.

    “세진 님께서는 스스로 죽음을 이미 택한 분이셨습니다. 클로드 님께서는 그분을 죽음 전에 건져 올린 뒤, 죽고 싶다면 율리시즈 님을 무사히 성장시킨 후 2년 뒤에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을 거라고 약속하셨죠.”

    “어째서 그런 약속을…….”

    아멜리아가 말끝을 흐리면서 울먹이자 윈터도 표정이 덩달아 어두워졌다.

    “세진 님께서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셨습니다. 이전의 생에서 어떤 고초를 겪으셨는지는 모르오나, 그분은 약속을 지키기만 하면 죽을 자리를 찾아 떠나 버릴 생각이셨어요.”

    콰앙. 그 말에 화를 참지 못한 율리시즈가 대리석 테이블 하나를 맨손으로 박살 냈다. 아멜리아는 제 오빠의 악력이 저와 비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워했다.

    “그래서? 이번에 여행을 나가신다는 것도 다 핑계였나? 내가 약속대로 다 성장했으니, 죽음을 맞이할 장소를 찾으러 나가신 거였어?”

    크고 둥근 자색 눈동자에서 눈물방울이 똑똑 고여 내렸다. 동공에 황금빛이 어렸다 사라진 것도 같았다.

    율리시즈의 소리 없는 울음에 윈터는 한숨만 쉬었다.

    “아닙니다.”

    “그렇다면?”

    “주인님께서는 당신을 돌보기 시작한 뒤로 천천히, 살고 싶어졌습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율리시즈 님을 철저히 보호하고 지킬 의무가 있었지요. 어린 아기였던 당신을 키우며, 세진 님은 조금씩 당신과 함께 살아가는 것도 괜찮겠다는 희망을 가지셨습니다.”

    “……내가 스승님께 고백했을 때 망설이셨던 게 이거였군?”

    “예. 세진 님 말씀으로는 곧 죽어 버릴 사람이 어떻게 연인이 될 자격이 있겠냐면서 곤란해하시더군요. 율리시즈 님께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죽음을 보상으로 건 계약을 했다고 말씀하시지 않을 생각이셨거든요.”

    율리시즈의 안색이 우중충해졌다.

    “스승님께서는 나를 믿지 못하는 건가?”

    “아니요. 믿으셨기에 저와 함께 태곳적 기록을 볼 수 있는 마을로 외출하려 하셨습니다. 저주를 풀기 위한 실마리를 찾아야 했거든요. 저희 어머니조차 이를 찾으러 나갔다가 실종되시는 바람에 더는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지체할 수가 없었다니?”

    아멜리아의 질문에 윈터는 또박또박 자신이 아는 사실을 밝혔다.

    “계약대로라면 주인님의 육신은 율리시즈 님이 성인이 되신 이후부터 부서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전부터 몸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마력이 새더군요. 가끔은 고통도 느끼셨습니다.”

    “계약에 누가 장난질을 쳐 놓은 거로군?”

    “예…… 하지만 아마 두 분도 아시다시피, 이미 현존하는 초월자는 모습을 감춘 지 오래. 그렇다면 이 저주를 걸 수 있는 자는 ‘클로드’ 님뿐이십니다.”

    “그자는 어디 있지?”

    “모릅니다. 세진 님과 몸을 바꾸고 다른 세계로 사라지셨거든요.”

    “다른 세계로…….”

    ‘이러면 저주를 풀 방도가 없다는 거잖아.’

    율리시즈가 윈터가 했던 것과 같은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윈터는 그에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직 체념하긴 이릅니다. 세진 님께서는 본인의 저주가 ‘클로드’ 님 때문일 거라고 가정하고 있었어요.”

    “그 이유는?”

    “그것까지는 듣지 못해 모르겠지만…… 저번에 그 사술진으로 인한 시신을 보고 경악하며 무언가를 빠르게 정리하셨습니다. 그 기록이 있다면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윈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율리시즈는 세진의 방으로 들어갔다. 잘 정돈된 방이었지만 바리바리 짐을 싸 갖고 나간 탓에 휑한 면이 있었다.

    “스승님이시라면 그런 메모를 일기장에다 두셨을 거야.”

    “……폐하께서 저도 모르는 세진 님 일기장의 존재를 어떻게 압니까?”

    “사랑의 힘으로.”

    아멜리아와 윈터는 동시에 생각했다.

    ‘집착의 힘으로겠지…….’

    ‘무서운 인간. 몇 살 때부터 주인님을 호로록 잡아먹겠다고 결심한 거지?’

    두 사람의 눈총 따위에 굴하지 않고 서랍장 사이를 뒤지던 율리시즈는 마침내 단색의 작은 일기장을 찾아냈다.

    그 속을 팔랑팔랑 넘기다 보니 웬 뜻 모를 글자가 나열되어 있었는데, 윈터는 그것이 세진이 살던 세계의 문자일 것이라 했다.

    “이러면 우리가 메모를 찾아도 못 알아보는 거 아니야?”

    “그럼 해독이라도 해야겠지.”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노란색 종이가 보였다.

    “이건가?”

    그 위에도 역시 모르는 글자들로 뭔가를 쭉 나열한 흔적이 엿보였다. 그리고 맨 하단에는, 이 세계의 언어로 정리한 세 줄 요약이 있었다.

    -클로드는 마법사이자 주술사다. 몸이 풍화될 정도로 오래 살았다는 걸 증명하는 근거는 이것뿐이다.

    -카밀라가 불러낸 사악한 혼은 아마도 클로드일 것이다.

    -클로드의 목적=?

    요약본을 읽은 세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아멜리아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지금 스승님을 납치한 건 클로드 하센티온이 소환된 상태인 폐황자 세드릭이겠군.”

    “대마법사였던 영혼이라면 강력한 힘을 지녔을 테니 스승님이 납치되는 것도 이해가 돼.”

    “그런데…… 세진 님이 기록하신 것처럼 클로드 님의 목적을 모르겠단 말이죠. 저는 ‘약속’에 관한 내용을 들었을 때, 클로드 님께서 답지 않게 나라의 존속을 위해 운명을 뒤집으려는 줄 알았거든요.”

    윈터의 말에 율리시즈가 눈을 빛냈다.

    “그건 무슨 뜻이야?”

    “아…… 이런. 이것까지 말해 주면 제가 주인님께 혼날 거 같은데. 끄응……. 율리시즈 폐하, 당신은 원래 비참한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어머니를 잃고, 원수의 밑에서 핍박받다 미쳐 버려 피의 복수를 거행하고, 끝내 나라 전체를 없애려 하다 세드릭 황자에게 죽임당하죠.”

    “…….”

    “…….”

    들은 것 중에 가장 끔찍한 내용이었다. 율리시즈는 윈터에게 계속 이야기하라고 권했다.

    “클로드 님께선 당신이 파멸하는 것을 막을 수 없어 ‘진짜’인 세진 님을 불러 해결하도록 계약을 체결하셨습니다.”

    “스승님이 진짜 본래 존재했어야 할 대마법사의 영혼이라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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