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는 불구경 중-55화 (55/90)
  • 55.

    황비가 시녀에게 살해당한 후, 황비궁을 정리하기 위해 사람들을 보냈을 때였다.

    ‘……이게 뭐지?’

    율리시즈와 나는 황비궁에서 사특한 악취를 맡았다. 음식물이 썩어 가는 듯한 냄새의 원인은 황비궁 깊숙이 숨겨진 방 안에서 발견되었다.

    그곳에는 학대당해 죽었다고 알려진 시녀들의 시신이 몇 구 놓여 있었다. 전부 생기가 쪽 빨린, 미라 같은 모습으로 아무렇게나 방치된 시신에서 고약한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부적이 있어요. 사술사의 것 같고요.’

    율리시즈의 말에 나는 가엾은 시신 하나에서 부적 하나를 조심스럽게 떼어 관찰했다. 어디서 본 적 있는 불길한 주술식이 새겨진 부적이었다.

    ‘이거…… 폐황자인 세드릭이 나를 혼자서 만나러 왔을 때 손에 둘둘 말고 있던 부적이랑 같은 거야.’

    황비는 첫째인 아멜리아를 임신했을 때부터 미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전부터 술과 담배를 비롯한 기호품을 즐겨 왔듯, 사술 역시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들인 줄 알았던 아멜리아가 딸이라는 걸 알게 되고서는, 사술에 병적으로 집착하기 시작했다. 마법사인 나를 적대했기 때문도 영향이 컸을 터다.

    사술은 자연적인 마나를 끌어 사용하는 것과 다르게 인간의 생기를 빨아들여 행하는 금기다. 그 때문에 모든 대륙에서 불길하다 여기며 천시되었고 사술사들은 암시장에 숨어들어 명맥을 이었다.

    ‘황비 카밀라는 황궁에 들어오기 전의 신분이 천했으니 사술사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는 쉬웠을 거야.’

    사람들을 시켜 무참하게 희생된 시녀들의 시신을 거뒀다.

    “카밀라가 죽기 전, 무언가를 꾸미고 있었어.”

    “예. 사술사를 대량으로 끌어들여 반란이 실패할 시를 대비한 것을 남겨 두려 했던 것 같군요.”

    율리시즈와 나는 비쩍 마른 시체들이 놓인 자리에 검보랏빛 액체로 그려진 진을 발견했다. 거대한 눈을 중심축으로 하여 마법진처럼 그려진 진은 어떤 사악한 혼을 꺼내려던 소환진이었다.

    ‘소환에는 실패한 건가? 아니라면…….’

    나는 광기에 젖은 눈으로 내 결계를 뚫고 달려들던 세드릭을 기억했다.

    ‘두 손에 사술사의 부적을 칭칭 감고 있었지.’

    그 부적이 약해진 내 결계를 뚫고 세드릭이 죽지 않도록 지켜 주었다. 도망칠 때 대가로는 한쪽 손을 잃었지만, 이 정도라면 악마를 소환했다고 봐도 좋을 만큼 놀라운 결과였다.

    “세드릭이…… 도망칠 수 있었던 이유는 황비가 소환한 악질적인 혼 때문이었어.”

    카밀라는 제 욕심 때문에 무리하게 반역을 일으켰지만, 그녀도 스스로에게 승산이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평생을 황실에서 권력 수 싸움을 하며 지냈던 그녀가 율리시즈에게 질 것을 예상하지 못하지는 않았을 터.

    ‘어쩌면 카밀라는 반역을 시작했을 때부터 실패를 예감해 세드릭만은 살아남길 바라며 이런 짓을 했을지도…….’

    세드릭에게 카밀라는 좋은 어머니라고는 할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카밀라는 그녀의 방식으로 아들을 사랑했다.

    황제가 되지 못하는 세드릭을 죽게 놔두지 않고 위험한 힘까지 써 가며 피신시킨 걸 보면, 카밀라는 세드릭을 분명 사랑했다.

    율리시즈는 불길한 시취가 풍기는 주술진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대체 뭘 불러낸 것일까요?”

    “급하게 소환진을 지탱할 사술사들을 꾸렸고…… 사술에 대한 내용은 사술사들끼리만 극비리로 주고받고 있는지라, 원래대로라면 엉망인 이 주술진에서는 하찮은 것이나 튀어나와야 할진대.”

    무언가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을 지닌 존재가 소환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카밀라에게 세드릭을 보호해 줄 것을 약속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일련의 단서들을 쭉 늘어놓다가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내가 이런 걸 어떻게 줄줄 꿰고 있지?’

    클로드의 기억. 그것을 바탕으로 나는 이 세계를 이해한다. 방금 말한 주술에 관한 것도 클로드의 기억에서 꺼내 본 것이었다.

    하지만 마법과 주술은 상극의 것. 마법사는 주술에 손을 대지 말라고 엄하게 교육받는다. 사술은 인간의 영혼과 몸을 갉아먹으니까. 계속 써 봤자 남는 결말은 오직 파멸뿐이었다.

    클로드가 보여 준 원작에서는 이런 설정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그야 그 이야기 속에서는 세드릭이 주술을 쓸 정도로 처지가 궁해질 일이 없었으니까.

    ‘클로드 하센티온은 주술을 능히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몸은 몇만 년이나 산 것처럼 이미 너무나도 오래 유지되어 온 육체였고.

    ‘……클로드가 주술사였어.’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클로드는 마법사이면서 주술사였던 거다. 주술이 작동하는 원리나 필요한 대가 등을 면밀하게 알고 있을 정도로 전문가였고.

    주술은 주술사의 핏줄에게만 전달된다. 하지만 클로드는 이미 세상에 혼자인 몸이었고, 그는 이상하리만치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따른 몸을 가지고 있었다.

    ‘클로드가 시간을 돌린 적이 있었을까?’

    대마법사는 이 세상에 생각으로만 존재하는 마법을 실체화할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시간은 신의 영역이라 아무도 손대지 못했으나, 만일 클로드가 시간 마법을 연구하여 육신과 영혼을 가지고 회귀할 수 있었다면, 몇만 년 된 육신이 만들어진 까닭은 설명 가능했다.

    쏟아지는 깨달음 속에서 나는 몸을 비틀거렸다. 머리가 아팠다. 클로드는 내게 율리시즈를 구해 달라고 했으면서, 정작 그 자신은 주술사였다고? 시간을 셀 수 없이 돌리고?

    ‘뭘 하려고 했던 거야?’

    “스승님? 스승님? 왜 그러십니까? 뭔가 발견한 것이 있으십니까?”

    율리시즈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지? 아득했다. 클로드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울렁거렸다.

    ‘침착하자.’

    나는 내가 추측해 낸 내용을 모두 다 알려 주지는 않고, 일부만 율리시즈에게 알렸다.

    “세드릭이 강대한 힘을 가진 영혼과 함께 숨어 있을 수 있어.”

    “예?”

    “황비의 안배였을 거야. 사람 몇의 목숨을 희생시켜 만든 사술인 만큼 쉽게 잡힐 수는 없겠지. 그래서 세드릭이 아무리 사람들을 풀고 수배령을 내려도 잡히질 않은 거야.”

    율리시즈의 안색이 무섭도록 굳어졌다. 그는 세드릭에 의해 내가 죽을 뻔한 날을 기억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세드릭이 우릴 노리고 있겠군요.”

    “응. 둘 다 죽이려 하겠지. 마지막에 남긴 말도 그랬고.”

    “이러면 여행은 가지 않으시는 게……”

    “아니. 그건 안 돼. 세드릭이 알 수 없는 사특한 힘의 조력을 얻고 있으니 우린 분산되는 게 나아. 흩어져서 빨리 세드릭을 잡아야지. 우리 둘 다 전투력은 막강하니 질 걱정은 없고.”

    태연하게 내 상태는 숨기고 괜찮다고 주장하자, 율리시즈가 아무 말도 못 하더니 내 손을 잡았다.

    “정말 괜찮으신 거죠?”

    “응.”

    “저번처럼 세드릭 때문에…… 그렇게 될 일은 없다고 봐도 되는 거죠?”

    “물론이지.”

    거짓말. 거짓말만 늘어 간다. 윈터가 옆에 없어서 다행이었다. 율리시즈에게 진실을 들키지 않아서.

    나는 죽어 가고 있고, 예상보다 빠르게 몸이 붕괴 중이기 때문에 2년 후가 아니라 2년 안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 * *

    ‘그걸 고려한다면, 세드릭은 나부터 노릴 거야.’

    율리시즈는 강하다. 마법만 놓고 따지면 내가 더 강하지만, 몸이 약해지고 있는 데다 이미 한 방 먹일 뻔한 전적이 있는 세드릭이라면 나부터 죽이러 올 거다.

    “윈터.”

    “네, 주인님.”

    “세드릭이 우릴 덮칠지도 몰라. 나도 이런 가정 따위 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세드릭에 의해 죽거나 인질로 또 사로잡히거든 율리시즈에게 알리지 마.”

    “주인님!”

    “그게 세드릭이, 그리고 카밀라가 불러낸 사악한 혼이 바라는 일인 거 같아. 세드릭은 주술의 숙주로서 수명이 다해 가고 있을 거야. 그런 중에 우리를 향한 복수를, 그 사악한 혼과 뜻이 일치하다면 세드릭이야 더는 바랄 게 없겠지.”

    그때였다.

    “히이이잉!”

    누군가 마차의 말을 화살로 쐈다. 화살에는 독이 발라져 있었는지, 말은 짧게 경련하다 바로 죽어 버렸다.

    겁에 질린 말들은 통제 불가능의 상태에 빠져 마부의 지시도 듣지 않고 날뛰었다. 마차가 요란하게 움직였고, 곧 전복될 위기에 빠졌다.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나는 차분하게 윈터와 함께 이동 마법을 사용했다. 불쌍한 마부도 좌표를 찍어 다른 곳에 이동시켰다.

    마차를 살벌하게 지켜보던, 금발벽안의 폐황자는 쳐다보지 않으면서.

    공간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우리가 찾던 태곳적의 저주에 관한 기록이 있는 마을 표지판이 보였다.

    “마을 입구에 떨어진 것 같은데.”

    “잘됐네요.”

    “세드릭을 본 것 같아. 윈터, 마력을 쓰지 않는 게 좋다고 했지만 세드릭에게 잡히는 것보단 이게 나으니 내 어깨 위로 올라와.”

    “……알겠습니다.”

    나는 공간의 문을 열어 마을 안쪽으로 피신했다. 세드릭이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불안하긴 했다. 놈이 나를 가지고 노는 사냥 따윌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런데 윈터…… 이 마을에 대해 조사할 때도 이렇게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었던가?”

    아무도 없잖아.

    누가 없는지 두리번거리던 나는, 곧 윈터의 찢어지는 비명을 들었다.

    “주인님! 피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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