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는 불구경 중-49화 (49/90)

49.

내 말에 윈터가 기겁했다.

“미쳤습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설마 주인님 목숨이 얼마 안 남았으니 율리시즈 폐하 몫까지 끌어안고 죽겠다고 하면 이 윈터도 주인님을 따라 저승길에 오를 겁니다.”

“루나도 소식이 끊겼고…… 날 치료할 방법이 없어 보이는걸. 그리고 아직 율리시즈가 성인이 안 된 시점이니 불안하단 말야.”

“율리시즈 폐하께서는 이제 충분히 강하십니다. 그분을 꺾기에 세드릭은 너무 약해요. 오히려 주인님을 노리고 율리시즈 폐하께 고통을 줄 생각일 겁니다.”

“……내 몸에 이상이 생겨서, 죽어 가고 있다는 걸 알아 버렸으니까?”

“그거죠.”

윈터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페럿 집사께는 내가 죽을 뻔한 게 엄청난 트라우마로 남은 듯했다.

“그러니 주인님께서는 휴식을 최대 목표로 삼으시면서, 절대 무리하지 마셔야 합니다. 주인님의 마력이 계속 새고 있다는 게 느껴지니, 마법도 자제하는 게 좋고요.”

“또 어디 처박혀 있으면 걱정할 거면서.”

“네. 그것도 그렇네요. 후우…… 가장 완벽한 호위는 율리시즈 폐하께서 하실 수 있을 테니 이참에 두 분이 옛날처럼 꼭 붙어 다니시죠.”

“옛날에?”

“아기 포대기를 쌈짓돈처럼 소중히 끌어안고 다니는 게 딱 알을 품은 어미 새였습니다. 폐하께서 어릴 땐 주인님이 방패가 되어 지켜 주셨으니, 이젠 반대로 효도 좀 부탁한다고 해 보세요.”

“스승에게 무슨 효도야…….”

“뭐든! 하십시오! 저는 주인님의 안전이 제일 중요한 패밀리어입니다. 그리고 장담컨대, 율리시즈 폐하라면 이런 부탁을 무척 반기실 겁니다.”

“걔는 내가 뭘 해도 좋아해서 탈이잖아. 애가 너무 착해서 호구가 될까 무섭단 말이지.”

후우우. 잡혀 사는 율리시즈를 생각하니 불쌍했다. 윈터는 썩은 동태 눈깔로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율리시즈 폐하는 착하기만 한 순수 청년이 아닙니다만…….”

“아니야. 우리 애는 여전히 착해. 날 구해 줄 때 웃는 모습이 어찌나 선하던지.”

내 말에 윈터는 자기 이마를 퍽퍽 쳤다.

“끄으응.”

“왜?”

“답답해서 그럽니다. 후우우.”

“내가 뭘 답답하게 했는데?”

“그건 됐고…… 폐하 옆에 계속 있는 게 역시 좋을 것 같습니다. 두 분이 함께 계시는 편이 현재로서는 더 안심됩니다. 페른 님도 협조해 주시기로 하셨으니 주인님만 동의하시면 됩니다.”

“……알았어.”

* * *

그렇게 해서 페른과 나, 율리시즈는 한 팀처럼 뭉쳐 다니는 바람에 어딜 가도 눈에 띄었다.

율리시즈는 서류 뭉치와 함께했고, 페른은 다크서클을 달고 피해 현장 복구에 주력했다. 데이지는 몰라보게 홀쭉해졌다. 고생이 말이 아닌 듯했다.

나는…… 할 일 없는 백수처럼 두 사람 뒤를 따라다녀야 했다.

어쩌다 페른의 일감을 흘깃 쳐다보기라도 하면 그 즉시 페른이 미친 듯이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이거, 제 일이에요. 제가 클로드 님께 넘긴다? 제 모가지, 썩둑. 아시겠어요?”

“율리시즈는 안 그래. 그 애가 얼마나 착한데 어릴 때부터 봐 온 너를 죽인다고 그래?”

“아이고오. 저 팔불출 콩깍지는 장장 19년을 끼어 있네. 아이고오.”

“조용히 하지, 페른 아르힘? 모두 일하느라 힘들잖나.”

“넵. 조용히 하겠습니다.”

이래서 나는 하릴없이 제자의 뒤를 따라다녀야 했다. 어릴 때 율리시즈의 기분이 이랬을까. 키도, 덩치도 다 나보다 커져서 율리시즈가 이동할 때마다 보폭을 맞추기 힘들어졌다.

‘거기다 마법사라 체력이 약해 가지고…….’

거기에 몸도 부서지고 있으니 최악이었다.

몇 걸음 안 되어서 헉헉거리는 게 창피했다. 율리시즈는 신들린 듯이 일 처리를 하다가도 그런 나를 보고 꼭 말했다.

“업어 드릴까요? 스승님?”

“……여기서 업히면 내 꼴사나운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나잖아.”

“그게 좋은 겁니다만.”

“이상한 소리를 하는구나. 새로운 황제가 체면을 살려야지, 스승을 업고 히죽거리면 면이 서겠어?”

“죄송합니다.”

그런데 율리시즈의 입가는 전혀 죄송해 보이지 않았다. 요즘 저 예쁜 입술이 실룩거리는 걸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왜 저러지.’

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잘생긴 얼굴이 입가를 실룩거릴 땐 웃겨져서.

* * *

대관식을 위한 준비가 다 끝났을 때, 율리시즈는 나와 윈터, 로라, 엘리엇, 페른과 데이지를 전부 한자리에 모아 저녁 만찬을 즐겼다.

건배 축사는 엘리엇이 했다. 그는 마음의 번뇌를 내려놓은 듯 몹시 편안한 얼굴이었다.

“새로운 황제, 율리시즈 미레하 윈프리드 폐하의 등극을 축하드리며!”

“축하드립니다!”

황금빛 샴페인이 목구멍을 따라 내려갔다. 모두 승리의 기쁨에 취하고, 알코올에 또 취했다.

율리시즈도 마시려는 것을 내가 저지했다.

“안 돼. 율리시즈 너는 아직 미성년자잖아.”

“외조부님이 계시니 저도 조금은 마셔도 괜찮습니다.”

“안 된다면 안 돼!”

“스승님, 취하셨습니까?”

“안 취했어!”

“취하셨구먼. 주인님 정말 술도 못하시고 가지가지 하신다, 그렇죠?”

윈터가 툴툴거리며 또 잔소리를 해 댔다. 나는 귀를 막고 안 들린다고 종알거렸다.

“미성년자 음주는 금지야! 스무 번째 생일 지나고 나서 마셔!”

“법적으로 그때가 성인이긴 하지요.”

로라가 내 말을 거들어 줬다. 고맙기도 해라.

“그러니까 모범을 보여야 할 황제로서, 성인이 되는 날 마셔라!”

“주인님, 발음 다 꼬였어요. 앞으로 주인님이야말로 술 금지입니다.”

“오오! 클로드 님의 취한 광경! 이건 기록해야 해!”

“하아. 우리 주인님 한 대 때리고 싶다.”

소박하게 시작한 파티는 완전히 난장판으로 끝냈다. 아쉽게도 마시지 못한 율리시즈 빼고 다 만취해서 헛소리를 하다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스승님. 많이 취하셨어요.”

“알아.”

“술, 평소에 잘 안 드시면서 오늘은 왜 이렇게 많이 드셨어요?”

“율리시즈가 못 먹으니까 내가 다 마셨지. 나는 율리시즈의 보호자니까! 미성년자 음주는 절대 아니야!”

“으음…… 꼭 성인식날 먹도록 하겠습니다. 좀 궁금했는데, 아쉽네요.”

율리시즈는 나를 데리고 내 침실 위에 눕혔다. 내가 어린 시절 율리시즈에게 해 주던 것과 똑같이, 이불을 목까지 꼭 덮어 주고 잠들 때까지 지켜보다 가겠다고 했다.

“이제 바쁘신 황제 폐하시니 여기에 있으면 안 되지 않나…….”

“스승님과 관련된 일은 제게 늘 1순위예요.”

“너를 1순위로 두고 움직여야지. 순서가 잘못되었다.”

“헤헤. 그래도 전 이게 좋습니다.”

머리카락을 장난삼아 헝클어뜨려 놓으니 아예 율리시즈는 고양이처럼 내 손에 머리를 부볐다. 금실 같은 머리카락이 단정하게 빗겨져 있어 만지기 좋았다.

‘내 새끼가 아주 잘 컸구나.’

율리시즈의 외모는 요정과도 같았고, 몸은 단련한 군인 이상이었다. 키도 크고, 잘생기고, 돈도 많은 데다가 똑똑하기까지, 거기다 제일 중요한 인성 또한 갖췄으니 완벽한 신랑감이었다.

술에 취해 기분이 좋았던 나는 꼬부랑거리는 발음으로 율리시즈에게 말했다.

“율리시즈.”

“네, 스승님. 말씀하세요.”

“너는 언제 결혼할 거야?”

“커흡.”

켁켁켁. 율리시즈가 사레가 들렸는지 무서운 기세로 기침을 내뱉었다. 이게 너무 실례되는 질문이었나? 아직 성인도 안 됐는데 내가 너무 꼰대 같았나? 머쓱해져서 술이 좀 깨려는데 율리시즈가 단호하게 답했다.

“저는 성인이 되면 바로 결혼할 겁니다.”

“오?”

“마음에 둔 분이 있으니까요. 오랫동안 짝사랑해 왔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내 새끼가 짝사랑이라니. 거기다 오랫동안 누군가를 이미 결혼할 각오로 좋아하고 있었다니!!!

이 중요한 소식을 모르고 있던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술기운이 팍 깨서 나는 허겁지겁 율리시즈에게 폭풍 같은 질문을 퍼부었다.

“누구냐? 나이는? 어디 사는 사람이지? 이종족은 아니고? 가문은 어디고? 어떻게 생긴 사람이냐? 좋아한 건 언제부터였냐? 그런 것보다, 너를 보고도 넘어가지 않았다는 게 말이 돼?”

숨넘어갈 듯이 질문 공세를 들이붓는 나를 보고 율리시즈가 살짝 질린 표정을 지었다.

“저어…… 스승님. 진정하세요.”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네가 그렇게 오랫동안 가슴앓이를 했다는 걸 방금 알았는데! 어떤 집의 어느 처자일지는 몰라도 내가 꼼꼼히 따져 볼 거다. 너같이 착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데다 성실하기까지 한 훌륭한 남편감을 아무에게나 그냥 줄 수는 없다!”

“……스승님이 하신 그 말씀, 스승님이 저를 생각하실 때 떠오르는 단어들인 거죠?”

“당연한 걸 물어보는구나.”

아직도 이 황자님은 내게 작은 별과 같았다. 좀 커지긴 했지만, 본질이 변하지는 않는 법이니까.

내 말에 율리시즈가 화악 얼굴을 붉혔다.

“제가 사랑스러우세요?”

“그래.”

“귀엽고요?”

“넌 어릴 때부터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귀여운 아기였어. 지금도 내 눈엔 아기야.”

“아, 안 돼. 아기로 보이면 안 돼요. 성인 남성, 성인 남성! 어른으로 봐 주세요!”

“……? 알았다. 아가라고 부르는 게 싫었다면 사과하마.”

율리시즈가 손부채질을 하다 내게 물었다.

“그런데, 갑자기 결혼 이야기는 왜 꺼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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