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잘 키운 제자 하나가 열 명의 자식보다 낫다는 격언이 클로드 님 때문에 퍼지고 있다는 거 아세요?”
페른이 부지런히 청소를 하다 내게 와서 물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애벌레처럼 꿈틀거렸다. 백수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 누어서 뒹굴거리기니까.
“……그런다고? 나 때문에?”
“네. 그래서 마탑의 마법사들이 은근 제자 육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나 봐요. 특히 클로드 님께 실력으로 져서 분한 마법사들이.”
클로드 기억 속에 그런 인간들은 자취도 안 남았다. 미안하지만 신경이 하나도 안 쓰였다.
“내가 뭘 한 게 있나. 솔직히 율리시즈가 알아서 컸지.”
“어우, 팔불출.”
“이게 왜 팔불출이야?”
“그렇게 아닌 척, 전혀 자랑스럽지 않은 척 무심하게 툭 던지는 말들이 제일 닭살스럽다고요. 뭘 알아서 크긴 커요. 젖먹이 시절 때 먹이고 재우고 똥기저귀 갈아 주면서 키웠다고 윈터가 말해 줬는데.”
“아기니까 돌봐 줘야 하는 건 당연하지. 그러니까 그건 제외.”
“제가 보기엔 두 사람은 부모 자식으로 태어나는 게 제일 잘 어울리지 않았나 싶어요. 참.”
페른은 여전히 나를 관찰하는 걸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정신 좀 차려 보라고 시킨 청소는 페른의 취미가 되었다. 데이지야 주인 따라 사는 패밀리어니 같이 있고.
다만 요즘 페른은 내가 율리시즈 자랑을 너무 많이 한다며 지겨워했다. 별로 많이 말하지도 않았는데 엄살이었다. 데이지에게 이 이야길 하자 데이지는 절레절레 고개만 젓더니 도망쳤다. 왜 도망쳤지? 아직도 모르겠다.
“난 비혼주의자야.”
“만약을 가정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재미없는 클로드 님. 이 사람은 율리시즈 한정으로 농담이 안 통해.”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무서웠다. 벌써 율리시즈가 열세 살이잖아. 칠 년만 지나면 ‘약속’의 유효 기간이 끝난다. 나는 그때를 위해 조금씩 조금씩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재미없으면 가라. 백수는 혼자 있는 게 좋다.”
“싫어요. 또 찾아올 겁니다.”
페른이 혀를 내밀고 데이지를 주머니에 넣은 채로 사라졌다.
혼자가 된 나는 느긋하게 잠이나 자려는데, 윈터가 나타나 일어나라고 성화를 부렸다.
“나이가 몇이라고 벌써부터 이러고 계십니까! 일어나세요!”
“왜애.”
“대마법사라는 분이 위엄 없게 매일 침대에서 놀고 있다니. 주인님의 패밀리어로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응. 내가 인정할게. 그럼 됐지?”
“진짜 그러실 거예요? 저 삐집니다?”
투닥투닥대던 우리는 결국 로라가 타 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걸로 합의를 봤다.
나는 해파리처럼 흐물흐물 늘어져서는 오후의 햇살을 만끽했다.
“아, 따뜻하다. 노곤하니 졸리다.”
“언제까지 그렇게 사실 겁니까?”
“뭐가?”
“다 알아요. 이 세상에 저와 주인님만이 ‘약속’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잖아요.”
“…….”
찻잔을 내려놓았다. 바깥에서 지저귀던 새들의 울음소리가 멈췄다. 오로지 나와 윈터의 숨소리만이 적막 속에서 울렸다.
“소음 차단 마법을 사용하셨군요. 우리 둘 외엔 아무에게도 들리게 하고 싶지 않아서요.”
“그래.”
“……몸 상태는 어떠십니까?”
“좋지는 않아. 유리가 스무 살 성인이 되어서야 몸이 서서히 허물어져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자꾸 몸에 금이 가서.”
“……그게 주인님의 몸에 어떤 작용을 하는 겁니까?”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티스푼으로 빙글빙글 남은 차를 휘젓다 중얼거렸다.
“마력이 아주 조금씩이지만 빠져나가고 있어.”
“그것 때문에 자꾸 잠에 빠지는 겁니까? 몸에서 날아가는 마력을 붙잡아 도로 메꾸려고?”
“아니야. 아주 조금씩만 나간다니까? 티끌 모아 태산이라지만 정말 조금만 나가. 건강 때문이 아니라 이건 내가 게을러서…….”
윈터가 테이블을 쿵, 하고 내리쳤다.
“패밀리어에게조차 거짓말로 몸 상태를 숨기지는 마세요!”
“…….”
“제가 주인님 마력의 냄새를 못 알아볼 리 있겠습니까. 어느 순간부터 그 마력 냄새가 진해졌어요. 구멍이 난 잔에서 물이 새는 것처럼요.”
“그것 때문에 알았어?”
“……인정하시는군요.”
“그래.”
간단히 긍정하는 내 대답에 윈터가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나쁜 주인님 같으니라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닙니까!”
“어, 어, 윈터. 울어? 우는 거야?”
“예! 웁니다! 저는 뭐, 울면 안 됩니까? 삐딱하기만 한 성격 나쁜 페럿인 줄 알았습니까?”
“……많이 화났어?”
“화났습니다! 주인님을 엎어다 메치고 싶을 만큼요! 제가 덩치 큰 곰이기만 했어도 그랬습니다.”
“고마워. 곰이 아니라 페럿이라서. 네가 곰이었다면 메칠 때 많이 아플 것 같거든.”
“은근슬쩍 넘어가려 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씩씩거리던 윈터는 눈물을 닦고, 화병이 나는지 차를 원샷으로 마셨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다가, 윈터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언제부터 마력이 새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셨어요?”
“나도 정확히는 몰라. 클로드가 이런 계약을 허술하게 할 리는 없을 것 같은데. 그런데 클로드는 자기 정도로 강한 자가 아니라면 내게 저주를 걸 수 있는 자는 없을 거랬어.”
“그렇다면 이런 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은 대단히 한정적인 범위 내에 있을 텐데……. 주인님처럼 강한 초월자는 드무니까요.”
“있긴 있어? 다른 초월자가?”
“몇백 년 전에는 있었습니다. 지금은…… 글쎄요. 행방불명인 데다 살아 있는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랬는지 모른다는 뜻이로군.
‘아직까지는 그래도 버틸 만한데 말이지.’
하지만 해가 갈수록 몸에 실금이 늘어갔다. 나는 금이 간 신체를 숨기기 위해 어떤 계절에도 긴 옷을 걸치게 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마력이 새는 이상 현상은 내 감각 체계에도 혼란을 일으키고 있어서, 더위나 추위를 잘 안 타게 됐다.
“이게 클로드가 몸을 내게 주고 떠나 버린 것과 관련이 있을까?”
나는 클로드와 영혼이 뒤바뀌었을 때 이게 진짜 내 몸이라고 했던 그의 설명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몸을 바꿀 핑계로 하는 말인 줄 알았지.
‘하지만 이 저주가 몸을 바꾼 이유와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
애초에 클로드는 대마법사가 될 정도로 강한 힘을 지녔으면서 왜 율리시즈를 구원하는 데는 실패한 걸까? 그리고 내가 해결할 수 있으리란 미래는 어떻게 본 거지? 마법사는 마법사지, 예언가가 아니잖아.
여태까지 나는 다가올 죽음만 생각했기에 그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관심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율리시즈가 소중해지고, 그 아이가 계속 곁에 남아 달라는 말을 하니 몸에 나타나는 이상 증세가 신경 쓰였다.
‘적어도 그 애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는 내가 괜찮아야 할 텐데.’
이러다 곁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더 짧아지면 어쩌지?
“저로서는 모르겠습니다. 클로드 님은 강하셨지만 너무 변덕스러운 분이셨어요. 그저 무언가 안배한 이유가 있겠거니 싶었지만, 이렇게…… 지금의 주인님이 허망하게 사라지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윈터가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이 작은 페럿도 나를 아꼈다. 말하지 못했던 것이 미안할 정도로 고마웠다.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윈터.”
“알면 살아날 생각을 해 주십시오. 무력하게 누워 계시기만 하면 마음이 더 괴로워집니다.”
“하지만 단서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모르겠는데.”
클로드의 기억에서도 나 같은 경우에 대한 지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몸을 유지하거나 고칠 방법은 내가 강구해야 했다.
“저희 어머니께 부탁드릴까요?”
“루나에게?”
“어머니는 희소한 질병들에 대해 두루 알고 계시니, 주인님의 증상을 말하면 연구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실 겁니다. 주인님의 ‘마법사 우울증’을 단번에 잡아낸 것처럼, 무언가 방도를 찾아내지 않을까요?”
가능성이 있다면 걸어 보는 게 나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바뀌는 것이 없으니 나는 루나를 불러 내 상태를 확인하게 했다.
“세상에…… 마법사의 신체가 이런 식으로 붕괴하는 건 처음 봐요.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어때? 뭐가 원인인지 보여?”
“그게…… 좀 이상해요. 여기엔 다른 사람이 저주를 건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요.”
“저주가 아니란 말이에요, 엄마?”
윈터의 말에 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흠. 클로드 님? 아니, 세진 님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당신의 몸은 마치 오랜 세월 동안 바람이나 물에 노출되어 서서히 깎여지는 암석 같아요.”
클로드의 신체는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초월자의 반열에 올랐어도 신체가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상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당신의 육체는 아득히 셀 수 없는 시간을 견뎌 내다 못해 닳아 버리고 있어요. 문제는 이게 말도 안 된다는 소리인 거죠.”
“……클로드가 몇 년이나 살았지?”
“주인님의 영혼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150년 정도를 사신 걸로 기억해요. 인간 마법사가 초월자가 되면 평균 수명보다 더 오래 살거든요.”
그렇다 하더라도 고작 150년 산 인간의 신체가 몇만 년분의 풍화를 겪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리가 뭘 놓치고 있는 거지?’
단서를 모으긴 했는데, 결정적인 해답이 뜯겨 나간 일부만 모은 것 같았다. 클로드가 나를 진짜라 부르며 몸을 바꾼 일과 클로드의 신체가 예정보다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일을 이어 주는 공통된 원인이 있을 텐데. 그걸 알 수가 없었다.
‘변덕스럽고 자기중심적이던 클로드가 어째서 유리를 구하라고 나를 보냈을까?’
클로드는 괴짜였다. 무언가 그에게 이득이 있으니 한 행동일 터. 그 이득이 무엇인지 알아내야만 살아남을 방법도 찾아낼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