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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는 불구경 중-41화 (41/90)
  • 41.

    표독스러운 카밀라의 말투에도 아멜리아는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았다.

    “그건 제가 드릴 말씀이에요. 황비 마마. 2황자 세드릭은 어디 있죠?”

    아멜리아가 세드릭을 찾으려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카밀라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기가 어디라고 네가 행패를 부리느냐! 황위 계승권도 가지지 못한 반쪽짜리 계집애가…….”

    막말을 내뱉는 친어머니 앞에서도 아멜리아는 시종일관 차분했다. 금색 눈동자가 미동 없이 번뜩였다.

    “지난밤에 2황자가 벌인 짓으로 인해 저뿐만이 아니라 황태자 전하까지 휘말려 죽을 뻔했습니다. 2황자가 아무 말도 안 하지는 않았을 텐데, 어디 있습니까?”

    “그 애를 찾아서 뭐 하려고!”

    “뭐긴요. 2황자가 저지른 일에 대해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

    어린 여자아이에게 알 수 없는 기백이 풍겼다. 색이 다른 두 눈동자를 마주하는 순간, 카밀라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오싹함을 느꼈다.

    ‘내가 저깟 계집애에게 겁을 먹었다고?’

    무어라 소리라도 지르려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버렸던 딸의 존재감이 너무 거대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치 맹수 앞에 떨궈진 초식동물처럼, 카밀라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는 게 고작이었다.

    “어디 있습니까?”

    “…….”

    “답하시지 않는다면 제가 알아서 찾아보겠습니다. 황위 계승권이야 용의 피를 불완전하게나마 각성한 저이니 문제 될 건 없습니다.”

    ‘뭐?’

    아멜리아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카밀라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럴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여기 있었군요. 2황자. 찾았습니다.”

    사람이 아닌 것의 속도로 황비궁에 감춰진 비밀의 방을 정확히 짚어 낸 아멜리아는 그 방을 부쉈다. 순수하게 강한 용의 힘에 사술사의 탁한 결계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찌그러졌다.

    그 안에는 카밀라가 감춰 놓은 세드릭이 있었다. 세드릭은 벽을 무너뜨리고 나타난 아멜리아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아멜리아가 그를 짐승 끌듯이 목덜미를 잡아채 갔기 때문이었다.

    “으, 으아아악! 이거 놔!”

    방 밖으로 세드릭을 끌어낸 아멜리아는 그를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카밀라가 아들에게 달려가고자 했으나 몸이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볼썽사납게 나뒹구는 세드릭 옆으로 아멜리아가 다가왔다.

    “사과하세요.”

    “뭐, 뭘!”

    “나를 우습게 알고 이용했던 것, 죽이려 했던 것, 죄 없는 율리시즈 오빠까지 함정에 빠뜨렸던 일까지 전부 다요.”

    “절대 싫어!”

    사과는 패배자들이나 하는 구차한 변명이라고 세드릭은 배웠다. 자존심 강한 세드릭은 목이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율리시즈와 아멜리아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었다.

    “폭력은 나쁜 것이라 배웠습니다.”

    “뭐?”

    아멜리아는 뜬금없이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렇지만 내 주변을 상처 입히면서까지 못되게 구는 사람을 상대할 때는 때론 폭력도 사용할 수 있다고 그랬습니다.”

    ‘어느 미친놈이 그런 말을 해!’

    속으로 항의하던 세드릭은 아멜리아의 다음 말에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대마법사이신 클로드 님이 제게 해 주신 말이에요. 그래서, 배운 대로 실천하기로 했습니다.”

    “무슨…… 으아악!”

    으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세드릭의 찢어질 듯한 비명도 같이 울려 퍼졌다.

    “내, 내 팔이! 아악! 미친 계집애가!”

    세드릭은 아멜리아의 발에 짓밟혀 벌레처럼 바닥에 고정된 상태였다. 벗어나려고 했지만 아멜리아의 발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게 뭐야!’

    “사과할 생각이 없다면 생길 때까지 나와 율리시즈 오빠가 겪었던 고통을 체감하게 해 주겠습니다.”

    왼쪽 눈동자가 섬뜩한 금빛이었다. 세드릭이 울며불며 반항하다 다리 한쪽이 더 나갔다.

    “아아아아아악!”

    “사과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2황자는 내 손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넌 미쳤어!”

    “멍청한 계집애로 살다 죽는 것보다는 미친 계집애가 되어 날뛰는 게 더 낫겠죠.”

    이 충격적인 광경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으면서도 카밀라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아멜리아의 압도적인 무력에 휩쓸릴까 무서워서였다.

    “어머니! 살려 주세요!”

    “…….”

    “못 움직일 겁니다. 황비 마마는. 이젠 내가 더 강하니까요.”

    무표정하게 대꾸하는 아멜리아가 아직 부러지지 않은 세드릭의 멀쩡한 팔에 손을 뻗었다.

    “……하지 마!”

    “제가 왜요?”

    아멜리아가 손을 우두둑 소리 나게 꺾으며 반문했다. 금색 기운이 깃든 황녀는 세드릭이 우습게 알던 어린애가 아니었다.

    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더 느끼긴 싫었다.

    ‘이 미친 계집애는 진짜 내가 사과하기 전까지는 계속 날 부러뜨릴 생각인 거야!’

    사람 몸에 있는 뼈가 총 몇 개였더라? 잘 생각나진 않았지만 적지는 않은 숫자였다. 그게 다 부러진다면, 아니 부러지기 전에 고통으로 죽을 수도 있었다.

    세드릭은 굴욕감을 삼켜 가며 겨우 말했다. 입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자…… 잘못했어.”

    “뭐라고요? 작아서 잘 안 들려요.”

    무서운 손이 다시 팔을 향해 다가왔다. 극심한 공포에 노출된 세드릭은 고막이 찢어져라 외쳤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내, 내가 다 잘못했어.”

    “율리시즈 황태자 전하께도 똑같이 사과하고 오는 것까지 하세요.”

    “시, 싫…… 그것보다 이런 꼴로 만들어 놓고서 나보고 어쩌란 거야?”

    “내가 직접 율리시즈 오빠 앞에 데려다주겠어요. 그거면 할 수 있겠죠?”

    서늘하고 싸늘한 어조에는 강압적인 명령이 서려 있었다. 세드릭은 울면서 알겠다고 답했다.

    “하, 하면 되잖아. 할게.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

    “그러죠.”

    아멜리아는 세드릭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를 데리고 바람처럼 날쌔게 황태자궁으로 돌아왔다. 너무 빠른 속도로 짐짝처럼 들려 온 세드릭은 멀미가 나 구토를 했다.

    “유리 오빠. 데려왔어요.”

    “우웨엑…….”

    세드릭은 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의 얼굴은 눈물과 토한 자국으로 엉망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못 봐 줄 꼴이어서, 율리시즈는 무심하게 세드릭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사과해.”

    “하면 되잖아!”

    ‘멧돼지보다 사나운 계집애가!’

    버둥거리던 세드릭은 야외 테이블에 우아하게 앉은 율리시즈를 향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다 죽어 가던 지난밤과는 달리, 어떤 색의 표정도 짓지 않은 율리시즈는 위엄 있고 무서웠다.

    언뜻, 자색 눈동자에서 미미하게 황금빛이 스쳐 지나간 듯도 했으나 눈을 깜빡인 사이 금빛은 사라졌다.

    ‘잘못 봤나?’

    그렇다기엔 율리시즈에게서 풍기는 기운도 변한 아멜리아와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세드릭은 보이지 않는 밧줄로 숨통이 조여 오는 것 같아 황급히 미안하다 소리쳤다.

    “……자, 잘못했어. 사과할게.”

    “뭐를?”

    “너희를…… 죽이려고 했던 것.”

    “왜?”

    “대마법사님 곁에서 행복한 너희가 부러워서…… 샘이 나서 그랬어. 너희가 가진 그분의 애정이 탐이 나서 그랬어…….”

    가장 숨기고 싶었던 부분까지 끄집어내자 세드릭은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죽고 싶을 만치 창피했다.

    세드릭에게는 불행 중 다행으로, 그 시각 세진은 깊은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고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그 고백을 들을 수 없었다.

    “이제 됐어?! 됐냐고!”

    자존심이 무너진 세드릭이 발악했다. 율리시즈는 세드릭을 가만히 바라보다 이렇게 말했다.

    “세드릭.”

    “……왜.”

    “나를 건드리지 마. 너 때문에 스승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재앙이 될 뻔했어.”

    폭주한 대마법사가 어떤 존재로 변이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례가 없으니까. 정의와 선을 표방하는 대마법사이니 사람들은 감히 그가 타락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만일 최악의 상황이 닥쳐서, 그가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당이 되었다면……. 율리시즈는 차라리 스승과 같이 죽기를 선택할 것이다.

    세진에게 율리시즈가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인 만큼, 율리시즈에게도 세진은 세상이었고, 하늘이었고,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집이었으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는 세드릭은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그리고 인상을 썼다. 세드릭의 속을 긁어 놓으려고 일부러 하는 자랑 비슷한 것인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다 됐으면 나는 가도 돼?”

    부러진 팔과 다리의 통증이 심각했다. 몸에 불이 붙은 것처럼 화끈거리며 아파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콧대가 꺾인 세드릭을 쓰레기 보듯 바라본 율리시즈는 아멜리아에게 치우라 손짓했다.

    “스승님이 깨어나시면 내가 적당히 각색해서 전할게.”

    “응. 오빠.”

    “뭘…… 으악!”

    아멜리아에게 뒷덜미가 잡힌 세드릭은 또 짐짝처럼 실려 가 황비궁으로 돌려보내졌다.

    아멜리아가 떠난 후에야 카밀라는 성질을 내며 궁중 마법사와 궁의를 닥치는 대로 불렀다. 세드릭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부러진 팔다리가 나았지만, 이미 손상된 자존심은 쉽사리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그 자식들!”

    세드릭은 씩씩거리며 방 안의 물건을 죄다 부수고 깨뜨렸다. 풀리지 못한 분은 미처 지워지지 않은 소유욕과 합쳐졌다.

    “대마법사 클로드 하센티온 님도…… 언젠가 꼭 내 것으로 만들고 말 거야. 그분 옆에는 내가 어울리니까…….”

    세드릭은 오늘의 모욕을 되씹었다. 언젠가 다시 갚아 줄 날을 기다리며, 그는 강력한 힘을 원하게 되었다.

    그 욕망이 훗날 어떤 식으로 돌아오는지도 모르는 채로.

    * * *

    유리에게 대강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생각했다.

    ‘이 집안 정말 개판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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