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는 불구경 중-38화 (38/90)

38.

“그래. 알았다. 바로 날아가마.”

윈터의 어머니, 루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며칠 후 이동 마법을 통해 윈프리드 제국 황성에 도착했다.

루나는 분홍색 스카프를 목에 맨 빛바랜 갈색 털의 페럿이었다. 시력이 나쁜 것인지 안경도 썼다. 윈터보단 몸집이 더 조그마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매일 아이들만 살피며 지냈다. 유리 옆에서는 떨어지지 않았다. 유리 곁에서 너무 멀어지면 이상 증세를 보이며 괴로워했기에, 로라도 페른도 나를 가만히 놔두었다.

대신 옆에서 걱정 섞인 잔소리를 좀 하긴 했다.

“클로드 님, 식사하세요.”

“배가 안 고픈데. 안 먹어도 될 거 같아. 먼저 먹어. 난 나중에 먹을게.”

“윈터가 저번에 말했잖아요. 그러다 큰일 난다고요.”

“응. 죽는다고 그랬지.”

“그랬던가……?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서 그래.”

내가 그렇게 말하면 착잡한 표정이 된 로라는 과일이라도 먹으라며 내밀었다. 때로는 수프를 줬다.

“마음 편하실 때 드세요. 치우는 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고마워.”

그래도 그걸 먹는 일은 없었다. 손을 대지 않아 고스란히 남은 과일과 죽은 로라가 시간 맞춰 치웠다.

나는 멍한 눈빛으로 잠시 깼다가 다시 잠드는 유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페른은 내가 유령처럼 초췌해졌다며 엉엉 울기까지 했다.

“아이고, 아이고오! 이러다 진짜 윈터 말처럼 클로드 님이 돌아가실까 봐 무섭습니다! 제발 잠 좀 주무세요!”

“잠이 안 와. 그리고 너 시끄러워.”

무신경하게 대꾸하니 데이지조차 나를 걱정했다.

“저희 주인님이 매우 시끄러운 편이지만 클로드 님…… 이번 말은 들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안색이 너무 안 좋으세요.”

“응. 거울 보니까 산송장이 따로 없더라. 걱정해 줘서 고마워. 잠은 자 보려고 노력할게.”

말뿐이었다. 잠은 오지 않았다. 나는 계속 뜬눈으로 아침을 맞이했고, 유리가 멀쩡하다는 것에 안도하며 밤을 지새웠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음을 안 루나는 오자마자 윈터의 등짝부터 때렸다.

“악! 엄마! 왜 저를 때리시고 그러세요?!”

“이 녀석아. 주인 되신 마법사께서 이 지경까지 이르기 전에 어서 불렀어야지!”

루나는 자신을 패밀리어들 사이에서 유명한 의사라고 소개했다. 주로 아픈 마법사나 패밀리어의 진료를 보러 다니는 출장 의사. 흔치는 않은 존재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클로드 님. 제 자식이 긴급하게 살려 달라고 애원하길래 와 봤는데……. 음, 예상 이상이네요.”

루나는 날 보자마자 흠칫하며 꼬리를 내렸다.

“내가 많이 아파 보여? 하지만 난 멀쩡한 것 같은데.”

“대부분의 마법사 환자들이 그렇게 말한답니다. 그들은 자기 신체조차 마법으로 ‘정상인 척’ 조절할 수 있거든요. 그 자체가 위험하다는 방증이고요.”

윈터가 루나에게 걱정스레 물었다.

“……우리 주인님 많이 아파요?”

“그래.”

“치료는 가능해요? 엄마, 나 저러다 진짜 주인님 돌아가실까 봐 무서워요.”

“가능해. 지나치게 강한 마법사들이 오래 살면 한 번씩은 겪는 병이다. 난 ‘마법사 우울증’이라고 부르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잃을 뻔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웬만하면 영혼의 그릇에 타격을 받지 않는 강한 마법사들이 한계를 넘어선 충격을 받으면 나타나는 증상이야. 이걸 클로드 님께서 앓을 줄은 몰랐는데……. 마탑에 알려지면 엄청난 화젯거리가 되겠어.”

루나는 의료 일지에 깃펜으로 후다닥 무언가를 적었다. 윈터가 루나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엄마, 제발 마탑의 마법사들에게 우리 주인님 소식 알리진 말아 주세요. 주인님 저런 걸 알면 옳거니 하고 올 마법사가 한둘이 아니잖아요.”

“그런 마법사들 여기 궁 결계 깨러 왔다가 다 죽거나 불구 되어서 떠나지 않았니?”

“아직 다 안 죽었어요. 그러니까 입단속 좀 해 주세요.”

“나, 환자 정보 막 팔아 대는 의사 아니다. 엄마를 뭘로 보고 이러니?”

루나는 윈터를 핀잔주며 내 상태를 꼼꼼히 살폈다.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마력의 측정까지 마쳤다.

“어때?”

“흠…… 이렇게 되신 원인이 어느 쪽 꼬마지?”

“황태자 전하이신 율리시즈 님이요.”

루나는 율리시즈 또한 진찰해 보더니,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반인반룡의 피를 강하게 물려받았군요. 이 꼬마 황태자 전하께서는 내일쯤이면 괜찮아지실 것 같습니다. 혈액 속에 섞인 용의 피가 점점 안정을 되찾고 있어요.”

“정말이에요, 엄마?”

“그래. 그러니 클로드 님께서는 안심하시고 내일을 기다려 보시지요. 당신의 병은 마음의 병. 이리 망가질 정도로 소중한 상대가 다시 멀쩡하게 돌아온 것을 보면 나아지실 겁니다. 그때 긴장의 끈이 풀리면서 좀 오랫동안 주무실 거예요. 몸의 피로가 누적된 탓이니 주변은 잘 챙겨 주고요.”

“……내일이면 유리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거지?”

“네네. 그러니 이 루나를 믿어 보시지요. 이래 봬도 왕진 다닌 지 백 년이 훌쩍 넘은 페럿이랍니다.”

과연, 루나의 말처럼 다음 날이 되자 율리시즈는 개운하게 기지개를 펴고 일어났다.

“어? 날짜가 왜 이래요? 왜 삼 주나 지났지?”

“황태자 전하,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제일 먼저 로라가 오열하며 멀쩡해진 유리를 껴안았다. 유리는 어리둥절한 채로 왜 자고 일어났더니 시간이 빨리 지났는지 의아해했다.

그러고는 날 보자마자 헉, 하고 놀라서 뒤로 주춤 물러났다.

“스…… 스승님 맞으시죠? 왜 이렇게 얼굴이 상하셨어요?”

“황태자 전하께서 먹고 볼일 보는 시간만 제외하고 계속 잠만 주무시니까 저렇게 되었습니다. 세드릭 사건 이후로 줄곧 먹지도 자지도 않더니 사람이 피폐해졌어요.”

윈터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유리에게 내 상태를 설명했다. 그쯤 되니 난 나를 병자 취급하는 이들에게 짜증까지 냈다.

“나 멀쩡해. 아프진 않아.”

“그게 ‘마법사 우울증’에 걸린 이들이 하는 말버릇이죠. 대마법사님, 지금 아주 편찮으십니다.”

“괜찮대도?”

루나에게 신경질을 냈으나 중년의 페럿은 웃기만 했다.

“황태자 전하라고 하셨죠? 율리시즈 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아, 네. 윈터의 어머니라고 들었어요. 편하게 불러 주세요.”

“감사합니다. 격식을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황족이시군요. 음…… 그럼 유리 님. 유리 님은 지금부터 그냥 평소대로 행동하시면 됩니다.”

뜻밖의 처방에 율리시즈는 놀랐다.

“해결 방법이 그게 다예요?”

“이 병은 위험에 처했던 상대가 완전히 일상을 되찾았다는 걸 확인해야만 마법사들이 안심하고 풀리는 병이라서. 유리 님은 하시던 대로 잘 먹고, 수련도 하고, 공부하시면 됩니다.”

“그거라면야 뭐……. 알겠어요.”

유리는 루나의 처방을 훌륭히 따랐다. 동면하는 것처럼 내리 자던 사람 같지 않게, 멀쩡히 움직이며 다시 수업을 받고 검술 수련을 했다.

“깨어나셔서 천만다행입니다. 윈터와 로라를 통해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어찌나 놀랐는지.”

엘리엇은 멀쩡해진 외손자와 검을 맞대며 행복해했다. 유리는 멋쩍어했다. 나는 여전히 금붕어 똥처럼 그 모든 행적을 몇 걸음 떨어져서 지켜봤다. 윈터는 이게 진짜 효과가 있는지 의심스러워했다.

“엄마…… 정말 이렇게만 내버려 둬도 주인님이 괜찮아진다고요?”

“당연하지. 의사로서의 엄마를 믿어 봐.”

유리는 내가 졸졸 저를 쫓아다녀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얼굴이 너무 초췌해지셔서 그건 좀 무섭긴 한데, 스승님이시니까 괜찮아요. 제가 스승님이어도 비슷했을 것 같고요.”

유리는 하루 일과를 알차게 보냈다. 모든 수업을 끝내고 잠시 쉬었더니 날이 어두워졌다. 윈터와 로라가 차린 밥을 먹고 난 뒤에 유리는 나를 소파에 앉히고 조용히 바라봤다.

“왜 그래?”

“진짜 식사를 안 하셔서 놀랐어요. 엄청 피곤해 보이시는데 한숨도 안 주무신 것도요.”

“널 지켜야 하니까. 다른 걸 하고 있으면 겁이 나서 그랬어.”

이때까지와는 다른 답이 나도 모르게 튀어 나갔다. 윈터는 눈을 크게 떴고, 루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나아지고 계시는군.”

“주인님이 속마음을 고백하셨어요! 계속 녹음용 아티팩트처럼 괜찮다는 말만 하셨는데.”

“내가 뭐랬니? 두고 보라고 했잖아.”

“허어…….”

다들 내 답변에 기뻐하며 축배를 들었다. 나는 몽롱한 정신으로 저들이 왜 저러는지 이해를 못 했다.

웅크린 채 경계하는 내게, 유리가 뺨에 뽀뽀를 해 줬다.

“저 이제 멀쩡하니까 그만 걱정하시고, 내일은 우리 세드릭에게 따지러 가요.”

“굿나잇 키스야?”

“네. 오늘은 스승님이 아니라 제가 해 봤어요.”

“이거 내가 해 줘야 하는 건데……. 어.”

뚝. 필름이 끊기듯 의식이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 * *

끔뻑. 끔뻑.

일어나니 계절이 바뀌었다. 창밖으로 핀 꽃과 식물의 종류가 달랐다.

“……나 얼마나 잠들어 있던 거야?”

맑은 정신으로 깨어나니 상쾌했다. 배도 고팠다. 위장이 요란하게 밥 달라고 보챘다.

“짐작하셨겠지만, 한 계절이 지나도록 곤한 잠에 빠져 계셨어요.”

로라가 환자가 먹기 좋은 죽을 만들어 가져다줬다. 나는 그걸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다음엔 윈터가 만든 수프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것마저도 한입에 꿀꺽 삼키듯 해치웠다.

“카밀라가 별짓 안 했어?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유리를 해치려고 발악했을 것 같은데.”

유리는 어딨지?

불안함에 유리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자 다홍색 스카프를 맨 루나가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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