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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는 불구경 중-35화 (35/90)
  • 35.

    “멍청하긴. 꼴 좋다! 아하하하!”

    “……세드릭?”

    아멜리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바깥의 세드릭은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아주 우스운 연극이라도 구경한 것처럼 깔깔거리며 웃는 게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충격에 빠진 아멜리아는 간신히 폭소하는 세드릭에게 물었다.

    “세…… 세드릭. 왜, 왜 웃는 거야? 지금 유리 오빠의 상태가 많이 심각해. 그렇게 웃고 있을 때가 아닌,”

    “어쩜 이렇게 멍청할 수가. 아직도 모르겠어?”

    “뭐…… 뭘?”

    작은 뱀이 혀를 내밀며 깔깔거렸다.

    “바보 같은 계집애. 다 내가 계획한 거야. 널 이용해서, 대마법사님의 사랑을 받는 아이 둘 모두를 치우려고 내가 준비한 거라고.”

    “뭐라고……?”

    “깜짝 놀랐지? 내가 이 폐궁 안에 함정을 설치해 뒀거든. 어머니에게 너와 1황자를 해치기 위해 필요하다고 하니까 바로 준비해 주시더라.”

    “…….”

    아멜리아의 눈가에서 주륵, 눈물이 소리 없이 흘렀다.

    “그러게. 왜 쓸데없는 희망을 품었어? 넌 이미 어머니께 버림받았잖아. 지금은 대마법사님 밑에서 풍족한 사랑을 받고 자라고 있으면서. 가진 것의 소중함도 모른 채 어머니의 사랑까지 탐내니까 벌을 받은 거야. 이 멍청한 계집애야.”

    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바로 이런 순간일 것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아멜리아는 차분히 땋아진, 로라가 정성스레 묶어 준 양 갈래머리를 쥐어뜯었다.

    ‘나…… 나 때문에…….’

    아멜리아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옆에서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율리시즈가 무어라 말했으나 들리지 않았다.

    세드릭은 자신이 만들어 낸 풍경에 만족해하며 실컷 웃어 댔다.

    “너처럼 멍청한 계집애가 대마법사님 같은 분 아래에서 행복해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어. 나는 안 되는데, 너는 왜 되는 건데? 이건 불공평해. 그러니까 너희 둘 다 치우고 내가 그분의 제자가 될 거야.”

    “…….”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아멜리아를 향해 세드릭은 문밖에서 꾀꼬리처럼 흥얼거렸다.

    “1황자와 없느니만 못한 황녀 둘 다 사라지면, 그때는 그분도 어쩔 수 없이 나를 선택하실 거야. 바라보실 거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래야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

    “많이 충격받았나 봐? 재미없게 벌써부터 아무 말도 안 들리는 걸 보면. 저주의 말이라도 퍼부을 줄 알았는데 영 맹한 건지 입을 열 생각도 않네.”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세드릭은 주머니에서 작은 아티팩트 하나를 꺼냈다. 누를 수 있는 버튼이 달려 있었다. 바로 마력 폭탄의 스위치였다.

    “있잖아. 멍청한 누나야. 아까 돌기둥도 내가 쓰러뜨린 거야. 마력 폭탄이라고 아는지 모르겠는데, 어머니가 비싼 값을 주고 사 오신 거라고 하셨어.”

    “…….”

    “앞으로 한 번만 더 누르면, 너랑 1황자가 갇힌 이 폐궁은 완전히 무너질 거야. 와르르르르! 쾅쾅! 하고. 그러면 너랑 1황자는 꼼짝없이 죽고 말겠지. 아하하하!”

    세드릭은 카밀라처럼 춤을 췄다. 달빛 아래에서 세드릭의 금발은 차갑게 빛났다.

    “왜…… 이러는 거야. 세드릭, 우린 남매잖아. 너는 내 동생이잖아.”

    아멜리아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겨우겨우 내뱉은 말에도 세드릭은 쌀쌀맞게 대꾸했다.

    “동생? 너같이 저급한 것의 동생이 될 생각은 처음부터 추호도 없었어. 말도 어눌하고 느릿느릿한 데다가 잘 속기까지 하잖아?”

    “너…….”

    “지금 네 꼴을 봐! 너 때문에 다 망쳤잖아? 다 죽어 가는 네 오빠는 너 때문에 이리된 거야. 재밌지?”

    “아니야!”

    아멜리아가 비명을 내질렀다. 세드릭의 말에 넋을 잃은 사이, 돌기둥 아래 깔린 율리시즈는 어느덧 말이 사라졌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기절한 것이다.

    세드릭이 음산한 어조로 울부짖는 아멜리아에게 말했다.

    “아니긴. 곧 너도 1황자랑 같은 꼴로 만들어 줄게. 무너진 진흙투성이 성처럼 찌그러질 테니 기대해도 좋아.”

    “하지 마!!!”

    친누이의 애원에도 세드릭은 즐겁게 웃으며 스위치를 누르고자 했다.

    “안녕, 다신 볼 일 없을 내 멍청한 누나.”

    그때 잔뜩 분노를 억눌러 무거워진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볼 일 없는 건 네 쪽이겠지. 2황자.”

    “헉?!”

    세드릭이 스위치를 빼앗기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시린 백발의 마법사는 스위치를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소멸하라.]”

    으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연스레 마력으로 연결된 마력 폭탄 또한 작은 알갱이 덩어리로 변해 부스러졌다. 남은 잔해조차 완전히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보긴 했구나.”

    잔인하기 짝이 없는 제 어미와 아주 똑 닮은 줄도 몰라보고. 내가, 내가.

    “대, 대마법사님…….”

    “어린아이라도 이렇게 무서운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면 진즉에 없애 두는 것인데…….”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자연에 스며들어 있는 마나가 세진의 분노에 반응해 폭주의 조짐을 보이는 것이었다.

    쿠구구궁.

    그로 인해 소멸 마법의 여파가 사라지지 않아 아이 둘이 갇혀 있던 폐궁은 서서히 녹아내렸다. 마치 뜨거워진 초콜릿처럼.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리듯 벽과 기둥이 사라지고 그 자리엔 폐허만 남았다.

    “크…… 클로드 님.”

    아멜리아와 쓰러진 율리시즈에게는 그 어떠한 위해도 가해지지 않았다. 율리시즈를 무자비하게 덮쳤던 돌기둥은 흔적도 없이 가루가 되어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달빛 아래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금발의 어린아이가 보였다. 아이의 주변에는 피가 흥건했다. 미약한 숨소리만이 율리시즈가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

    쓰러진 율리시즈 곁으로 걸어간 세진이 아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아물어라.], [부서진 것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라.], [흘린 피와 땀은 닦아져라.]”

    푸른 마법이 율리시즈를 포근하게 감쌌다. 언제 죽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던 아이의 상태는 몇 초 만에 회복됐다.

    돌기둥으로 인해 부서진 뼈가 다시 맞춰지고, 상처가 아물었다. 피투성이가 되었던 몸도 깔끔해져, 율리시즈는 그저 조용히 잠을 자는 것처럼 보였다.

    “아, 안 돼…….”

    분노한 세진의 마력 때문에 기가 눌려 꼼짝도 하지 못하는 와중에도 세드릭은 계략의 실패에 안타까워했다.

    ‘거의, 거의 다 되었는데!’

    세드릭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어머니가 가르쳐 준 방법대로 했는데, 끝에 가서 대마법사 때문에 모든 것을 망쳤다. 그런데도 그가 가지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뭐가 안 되는데?”

    그때까지 침묵하던 세진이 세드릭에게 질문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공기에 짓눌려 있던 세드릭은 세진에게 대답하려 했으나 엄청난 살기에 이내 겁에 질렸다.

    “말해 봐. 이 상황에서 뭐가 안 되는데, 2황자?”

    “헉…….”

    어디선가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폐궁은 이미 무너졌고, 작동하는 시계 따위는 없을 터인데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가 무섭도록 귀에 잘 들렸다.

    “왜 말을 못 할까? 아까는 잘만 떠들었잖아.”

    “헉…… 흐어억…….”

    눈앞에 사람이 아니라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어떤 의지가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억양도 싣지 않은 건조한 목소리로 세진이 세드릭을 향해 말했다.

    “너는 정말 네 어머니를 닮았구나. 셀레스틴이 죽었을 때와 한 치의 변함도 없이 똑같아.”

    냉혹한 겨울바람처럼 자비 없는 음성에 세드릭이 빌었다.

    “사…… 살려 주세요. 제발.”

    “셀레스틴도, 아까 아멜리아도 그렇게 외쳤지. 살려 달라고.”

    너는 그때 뭐라고 답했지?

    “낄낄거리며 비웃었잖아. 그 애가 어서 죽기를 바라며 유희처럼 여겼잖아.”

    간절히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을 죽이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대체 무슨 생각이 들었어?

    네가 뭐라고?

    “나는…… 이런 사람들이 제일 싫어. 끔찍해서……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중얼대던 세진이 한 손을 치켜들었다. 성난 푸른 마력이 그의 손에 응집되었다.

    ‘죽는다. 정말 죽을 거야!’

    세드릭은 형언할 수 없는 공포에 짓눌려 입만 벙긋거렸다. 대마법사가 폭주하려 했다. 주위의 공기가 불안정하게 떨리면서 부글부글 폭발할 준비를 했다.

    “으…… 아…….”

    아멜리아도 두려움에 몸을 웅크리고 벌벌 떨었다. 호박색 눈을 새파랗게 빛내는 세진이 너무 무서워서 감히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죽는구나.’

    두 아이가 그렇게 생각했을 때, 조그마한 목소리가 세진을 톡, 하고 건드렸다.

    “그러지 마세요……. 스승님……. 저는 괜찮아요…….”

    쓰러졌던 율리시즈의 목소리였다. 초점이 사라졌던 세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유리?”

    “스승님이 구해 주셨잖아요. 저는 이제 괜찮아요……. 집으로 돌아가요, 우리. 저는 스승님께서 저 때문에 누군가를 죽이길 바라지 않아요. 스승님께 끔찍한 기억을 드리고 싶진 않아요…….”

    “…….”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던 마나의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명치를 짓누르던 압박감도 사라졌다.

    율리시즈가 제 스승에게 간청했다.

    “돌아가요, 스승님.”

    “죽이고 싶지 않아?”

    “가서 오늘도 평소처럼 동화책 읽어 주세요. 스승님 목소리는 맑아서 듣기 좋아요.”

    “죽이고 싶지 않아?”

    “졸려요, 스승님.”

    “……알았어.”

    연신 죽이고 싶지 않냐는 무서운 질문을 하던 세진은, 아이의 졸린 목소리에 완전히 차분해졌다. 들끓었던 마력을 갈무리하고, 아멜리아에게 손짓해 궁으로 돌아가는 문을 열었다.

    “대마법사님! 가, 가지 마세요!”

    문에 들어가기 전,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세드릭이 달려와 세진을 붙잡았다.

    “저도 대마법사님 곁에 있고 싶어서 그랬어요! 샘이 나서 그만……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으니 한 번만 돌아봐 주세요. 용서를 빌 기회를 주세요.”

    “…….”

    세진은 말없이 세드릭이 붙잡은 소매 끝을 잘라 냈다.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세드릭은 뒤로 나동그라졌다.

    “아아악!”

    공허함만이 남은 폐허에 세드릭의 분한 외침이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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