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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는 불구경 중-26화 (26/90)
  • 26.

    세드릭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유리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즉시 세드릭의 행동을 저지하고 유리를 내 등 뒤로 숨겼다.

    세드릭은 억울했는지 새빨개진 눈가로 내게 소리쳤다.

    “왜 대마법사님께서는 저 애의 편만 드세요?”

    “저 애가 아니야. 율리시즈고, 네 이복형이야.”

    “싫어요! 듣기 싫어요! 쟤는 내 형 아니에요!”

    씩씩거리던 세드릭은 눈물이 고인 눈으로 울먹거렸다.

    “어머니 말씀이 맞았어요. 여기 올 거면 강해져서 왔어야 해요! 이런 시답지 않은 말싸움이나 벌이고……. 내 누나라고 거짓말을 하는 저 멍청한 계집애도 싫어요. 집에 갈래요!”

    칼처럼 날이 선 말이 우수수 쏟아졌다. 우습게도, 그 말을 하는 세드릭은 저가 상처받은 것처럼 훌쩍였다.

    아주 조금은, 대마법사를 증오하는 카밀라를 이해할 수도 있겠다며 세드릭은 황태자궁을 뛰쳐나오려 했다.

    “윽?!”

    “‘허락’ 없이는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어려운 곳이라…… 아까 2황자 전하를 봤을 때 구태여 들어오라고 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괜히 뭘 잘못 만지기라도 하면 암살자인 줄 알고 폭발하게 만드는 장치를 마법으로 붙여 놨기 때문이었다.

    “그, 그럼 나를 해치려고……!”

    “아니지! 스승님께서는 너를 해칠 마음이 전혀 없으셨어! 너야말로 그 주머니에 이상한 걸 들고 왔잖아!”

    율리시즈도 세드릭의 말에 잔뜩 화가 났다. 세드릭은 몹시 당황했다.

    “내, 내가 뭘! 난 떳떳해!”

    ‘거짓말이 서투네.’

    세드릭의 진짜 속마음은 이랬다.

    ‘헉. 여기서 디저트 나이프를 들켜 버리면……!’

    들키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으로 날뛰는 심장을 부여잡는 게 고작이었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이미 파악해 놓았기에 무덤덤했다.

    세드릭은 아직 완전한 악인은 아니었다. 디저트 나이프를 들고 왔어도 유리나 내게 휘두르지 않은 걸 보면 그랬다.

    ‘하지만 들고 온 것만으로도 위협이 되는 건 사실이야.’

    내가 세드릭을 그대로 놔뒀다면, 황태자궁의 보호 마법진은 저 아이를 방해물로 인식하여 제거했을지도 몰랐다. 그랬다면 나는 꼼짝없이 황제와 황비의 손에 내 목줄을 넘겨줘야 했을 터다.

    “착한 아이는 흉기를 들고 다니지 않아. 세드릭, 정말 넌 여기에 뭐 하러 온 거야?”

    “나… 나는…….”

    유리의 추궁에 세드릭은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이미 나가도록 ‘허락’은 해 놓았기에 이대로 멀리 도망쳐도 별일은 없을 거다.

    ‘나는 그냥 애들끼리 친해질 수 있다면 애플파이 같이 나눠 먹고 좋은 결말을 꿈꾸고 싶었을 뿐인데…….’

    셀레스틴이 허망한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완전히 원래대로의 흐름을 비트는 행위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원작.’

    빌어먹을 클로드!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황비궁을 감시하던 눈이 황자가 없어진 것을 눈치채고 부산해진 걸 포착했다. 오해를 한 카밀라가 날 죽이러 오기 전에 세드릭을 돌려보내는 게 좋을 듯했다.

    “유리, 그만해.”

    “하지만 스승님!”

    “2황자 전하를 들인 건 나야. 책임은 나에게 있어. 오늘의 티타임을 망쳐서 미안하다. 2황자 전하는 무사히 황비궁으로 돌려보낼 거야.”

    내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밖으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세드릭이 불안한 표정으로 내 심기를 살폈다.

    “가세요, 2황자 전하. 당신의 어머니인 황비가 찾고 있을 겁니다.”

    “…대마법사님을 또 만날 수는 없나요? 저 애들은 싫어도 대마법사님은 또 뵙고 싶은데…….”

    화내다가 울다가. 이제는 홍조를 띠고 나를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세드릭이 잘 이해가 가진 않았지만, 딱 잘라 말했다.

    “아니요. 오늘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만날 일이 없을 겁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어요.”

    “네?”

    “그럼 이만.”

    손가락을 튕기자 문으로 세드릭이 빨려 들어갔다. 위험한 마법은 아니고 세드릭의 방으로 무사히 돌려보낼 테니 걱정은 없었다.

    폭풍이 지나가자 로라와 윈터, 유리와 아멜까지 모두 나를 째려봤다.

    “스승님, 나빴어요.”

    “오늘의 티타임을 망쳤잖아요. 그리고 내 동생……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는데.”

    “이번 건은 대마법사님께서 경솔하셨습니다. 그냥 황비궁으로 돌려보내면 될 것을요.”

    “하지만 시종 옷을 입고 황태자궁 어디에라도 침입할 것 같은데 보호 마법진에 걸려 죽게 놔둘 수는 없잖아.”

    “그렇다고 무리하게 초대할 생각은 말았어야죠. 역시 아직도 말랑한 부분이 남아 있다니 이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윈터가 투덜거리며 바삭하게 구운 애플파이를 내왔다. 둥근 보름달처럼 큰 이 윈터표 특제 애플파이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에휴. 됐어요. 주인님이 언제 엉뚱하지 않은 적이 있었나요. 좋아하는 애플파이나 먹으면서 속상한 마음을 풀죠.”

    “나 두 조각만……”

    “하지만 오늘 분란을 일으킨 건 주인님이 맞으시니, 한 조각만 드시죠.”

    “맞아요! 스승님은 벌을 받아야 해요!”

    “그, 그 애플파이는 제가 먹을래요!”

    아이들도 내 편을 들어 주지 않았다. 애플파이 앞에서는 스승이고 제자고 보호자고 없었다!

    “얘들아, 잘못했으니까 봐주라…….”

    “흐음, 다음번에 스승님이 그 애에 대해서 더 알려 주시고 우릴 존중하는 상태로 데려오면 인정해 줄게요!”

    “그래그래. 유리. 네 뜻대로 할게.”

    “좋아요!”

    밝고 상냥한 아이로 자란 율리시즈의 성격은 원작과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이었다. 수줍어하지만 제 뜻을 확고하게 나타내는 아멜리아도 그랬다.

    ‘이 아이들이 지금 불행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앞으로 내가 유리의 곁에 남아 있을 시간은 십삼 년 정도다. 죽음으로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 나는 홀가분하게 잘 성장한 유리와 아멜을 두고 죽을 자리를 찾아 떠날 것이다.

    ‘그때까지 탈 없이 둘 다 잘 자랐으면.’

    안쓰러운 마음에 덜컥 데려온 아멜리아도 율리시즈와 같이 키우다 보니 정이 들었다. 제 어머니인 카밀라의 붉은 머리칼과 녹색 눈을 빼다 박은 아이였지만 심성이 너무 착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승님, 오늘 선생님의 시험에서 또 만점을 받았어요!”

    “저, 저는 오빠만큼은 아니어도 성실하다는 칭찬을 받았어요.”

    “응. 둘 다 아주 잘하고 있어. 멋지다.”

    “그렇죠?”

    아이들과의 평화로운 대화 시간. 나는 이 시간이 무척 행복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단 감상마저 들었다.

    ‘네가 뭔데 행복해지려고 해?’

    “아.”

    잊을 만하면 또 떠오르는 과거의 잔상.

    “왜 그러세요, 스승님?”

    파이를 두 볼 가득 우물거리던 유리가 자색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아이의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를 닦아 주며 나는 애써 웃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뭔가를 잊어버렸다가 다시 기억해 내서 그래.”

    ……원래 세계에서의 내 가족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난 클로드가 말한 것처럼 바른 결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걸까?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 * *

    세드릭이 잠시 사라져 황비궁은 난리가 났지만 다시 황자가 방에 돌아와 있는 걸 확인하고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세드릭! 어딜 갔다 온 거니!”

    카밀라는 행여 아들이 어디 다치기라도 했을까 봐 세드릭의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별일 아니에요. 그냥 혼자 궁 밖으로 나갔다가 재미없어서 다시 온 거예요.”

    “이 디저트 나이프는 뭐니? 설마, 이 어미의 말을 듣고 대마법사에게 복수하려고 나간 거였니?”

    “그런 거 아니에요!”

    세진을 본 세드릭은 자신에게 관심을 별로 내비치지 않는 그가 원망스러우면서도 욕심이 났다. 그래서 사랑해 마지않던 어머니를 향해 처음으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카밀라는 그런 아들의 복잡한 속내는 보지 못하고 활짝 웃었다.

    “다 안단다. 내 황자님. 너는 너무 착해서 어미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약조를 지키려 한 거겠지. 아직 어린데도 얼마나 기특한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흉기를 소지하고 어린아이 혼자 황태자궁에 뛰어든 것임에도 카밀라는 기뻐했다. 그녀의 아들이 유약해서 멍청하게 형제의 정이나 들먹였다가는 금세 죽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잘했다, 잘했습니다. 세드릭. 계속 1황자 일파에게 적개심을 드러내세요. 언젠가는 그 백여우 같은 대마법사의 목을 쳐 이 어미에게 바치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2황자야말로 이 제국의 황위를 이어받아 완벽히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 주는 겁니다.”

    “어머니…….”

    “내 아드님은 나를 사랑하니까, 해 줄 수 있겠죠?”

    카밀라는 황제와 그녀를 닮은 성정의 세드릭을 좋아했다. 호전적인 면모를 보아하니 황후가 되지 못한 그녀의 한을 풀어 줄 수 있을 것만 같아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대마법사님은 무척 강해 보였어요.”

    “강해도 약점은 있을 겁니다. 이 어미가 전 대륙의 마법사들에게 황태자궁의 결계를 뚫을 수 있는 인재를 달라고 요청하고 있어요. 그것만 뚫으면 내 황자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은 모조리 치워 버릴 수 있습니다.”

    카밀라가 녹색 눈이 불길하게 빛났다. 그녀는 황태자 일파의 몰살을 꿈꾸고 있었다. 지난날 셀레스틴을 무참히 죽이도록 농간을 부린 것처럼, 이번에도 승리자는 그녀가 될 것이라 상상하면서.

    ‘황제 폐하께 기댈 수만은 없어. 황실의 피를 이어받은 내 아들이야말로 날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줄 카드가 되겠지.’

    “그러니 황자는 더 용맹해지세요. 황태자도, 대마법사도 끝내 치워 버릴 수 있을 만큼 드세고 강인해지세요. 이 어미는 약한 자식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네.”

    세드릭은 문득, 제 친누이라 주장하던 붉은 머리칼의 소녀를 떠올렸다. 어머니와는 아주 다른, 선하고 유한 인상의 동그란 사과 같던 소녀를.

    ‘난 어머니에게 버림받지 않을 거야.’

    “그럴게요.”

    “고마워요. 내 황자. 조금 있으면 이번에 투입할 새로운 마법사가 올 거랍니다.”

    카밀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하늘에서 웬 마법사 하나가 쿵, 하고 황비궁 바닥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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