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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는 불구경 중-8화 (8/90)
  • 8.

    카밀라 황비의 방문 이후 며칠이 흘렀다. 귀한 손님이 황후궁에 머무른다는 소문이 퍼져 그곳을 기웃거리는 시종들이 늘어났다.

    “유리, 배부르면 트림할까?”

    “끄윽.”

    “옳지. 잘한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방 안에서, 백발의 미청년이 금발의 작고 여린 아기를 안고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클로드 님, 제가 할 테니 이리 주셔요. 이건 시녀가 해야 할 일입니다.”

    로라가 쩔쩔매며 세진에게서 아기를 받고자 했다. 하지만 어린 황자는 그것이 맘에 들지 않는지 빼애액 울어 댔다.

    “우으아아!”

    “이래서요, 로라.”

    세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아기를 품에 안고 작게 노래까지 불러 주었다. 영락없는 유모 신세였다. 대마법사에게 이런 시답잖은 일을 시킨다는 걸 알면 고위 귀족들은 놀라 자빠질 테지만 황후궁의 사람들만은 태연했다.

    “우으아, 아아.”

    “우리 유리는 귀엽기도 하지.”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침을 닦아 주며 세진이 작게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이 한 폭의 성화와도 같아서 바깥의 시종들은 기웃거리는 것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소문으로는 괴팍하고 속을 알 수 없는 분이시라 범접하기도 어렵다던데.’

    만나기도 어렵다는 대마법사 클로드는 소문과 달리 아이를 몹시 귀애하는 데다, 꽤나 온유한 성격이었다. 데리고 다니는 패밀리어와 1황자 외에는 상당히 무관심한 듯했으나 시녀인 로라로서는 오히려 그 점이 편했다.

    “대마법사님께서 오신 덕에 한숨 놓았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소리였다. 궁내부에서 배정되던 예산을 홀라당 빼앗아 가던 황비 때문에 황후궁은 늘 궁핍했다. 이곳이 사실상 유배지와 다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황후궁의 시녀나 시종이 귀중품을 훔쳐 달아나는 일도 빈번했다.

    그러나 황제가 황후를 괄시했기에 이 모든 행위는 중히 다뤄지지 않았고, 황후궁은 날로 초라해져만 갔다. 로라와 남은 시녀 소수가 청소를 깨끗이 하더라도 망가진 부분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 모든 골칫거리가 세진이 오면서 마법으로 해결되었다.

    “당연한 일을 한걸요.”

    ‘아기와 산모가 머무르는 환경인데, 당연히 청결하고 안락해야지.’

    세진은 윈터와 함께 황후궁을 새로이 단장했다. 비용은 필요 없었다. 윈터와 함께 달과 용이 새겨진 클로드의 은빛 스태프로 바라는 것만 외치면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약속 때문에 하는 일이니 감사받을 것도 아니지.’

    그런 생각으로 한 말이었지만, 세진이 겸양을 떤다고 여긴 황후궁의 시녀들은 감복했다.

    ‘대마법사님께서는 자애로운 분이시로구나.’

    여기서 동경 섞인 감사를 연거푸 건네면 세진은 곤란하다는 듯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래서 로라는 더는 세진을 귀찮게 하지 않고 와병 중인 황후에게로 향했다.

    “황후 폐하, 오늘은 몸 상태가 좀 어떠신지요?”

    “괜찮다. 로라. 대마법사님께서 오신 뒤로 어쩐지 몸이 예전보다 가볍게 느껴져.”

    여전히 침대 위에서 누워 생활하는 시간이 많고, 마른기침을 토해 내는 셀레스틴이었으나 짙은 병색이 조금 가신 것이 눈에 보였다.

    “황비 때문에 마음을 졸인 게 황후 폐하의 병세에 영향을 미쳤나 봅니다.”

    로라가 제 주인의 모습에 안타까워했다. 셀레스틴은 고개를 저었다.

    “클로드 님께서 율리시즈를 위해 오신 덕에 얻은 편안한 시간이다. 지금은 그것으로 족하구나.”

    그 말에 대마법사는 그저 애매한 웃음만 흘리기만 했다.

    로라는 대마법사가 정말 겸손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 * *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나는 율리시즈를 둥기둥기 얼러 주며 생각했다.

    ‘그거, 기분 탓이 아닐걸요.’

    황후궁에서 체류하기로 결정한 후, 윈터는 내게 선언했다.

    “쥐새끼들을 잡아 족쳐야겠습니다.”

    “사냥하려고?”

    “캬아악! 그 무슨 실례되는 말씀입니까! 황후궁을 넘나드는 황비의 사람들을 잡아내겠다는 말입니다!”

    차마 주인인 내게 화를 낼 수 없었던 윈터는 허공을 북북 긁는 동작을 몇 번 반복했다. 내 어깨 위에 통통한 볼살을 올린 1황자께서는 그 장면을 입을 헤 벌리고 쳐다봤다.

    윈터가 흐트러진 나비넥타이를 반듯하게 고쳐맸다.

    “이 황후궁은 엉망입니다. 시녀장인 로라는 믿을 만한 사람만 남겨 두었다고 착각하고 있어요. 아주 바보같이 순진하게도 말이죠.”

    “……시녀들 중에 황비의 첩자가 있다는 거야?”

    “네. 확실하게요.”

    셀레스틴에게 남은 시녀라고는 로라를 포함해서 다섯 명뿐이었다. 황후가 거느릴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으로만 구성한 시녀들은 모두 황후의 친정인 피델리움 백작령 출신이었다.

    그들은 어려운 시절 피델리움 백작가로부터 받은 은혜가 있기 때문에 충성스러웠다. 해서 로라는 이들만 남겨 두면 황후가 안전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셀레스틴은 점점 쇠약해져 피를 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윈터가 콧잔등을 찡그렸다.

    “독 냄새를 맡았습니다. 황후궁 전체에 퍼져 있는 것이 아주 고약했어요.”

    “……어떤 독인데?”

    “위스퍼라는 독초입니다. 소량을 꾸준히 먹이면 어느새 죽음이 찾아와 같이 가자 속삭인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게 되었죠. 중독되면 고칠 길이 없습니다. 해독제로 연명한다 하더라도 이미 위스퍼로 망가진 몸은 결국 죽음을 맞이합니다.”

    나는 윈터의 말에 살그머니 마법으로 율리시즈의 작은 두 귀를 막았다. 귀여운 귀마개가 나타나 아기의 귀에 씌워졌다.

    옹알이만 할 줄 아는 아기였지만, 그래도 들으면 슬플 것 같아서.

    “잔인하네.”

    누군가를 죽이는 데에 망설임 하나 없는 여자.

    ‘너 같은 게 왜 태어났을까.’

    씁쓸하고도 차가운 기억이 밀려와 나를 침잠시키려 했다.

    윈터가 콧방귀를 뀌었다.

    “흥, 어떻게 보면 그 황비라는 여자가 이 지옥 같은 황궁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거라고 봐도 무방하겠죠. 황제의 총애를 받는 지금이 황후를 제거할 절호의 기회니까요.”

    “곧 태어날 자기 아들을 위해서?”

    “네. 황후뿐만이 아니라 1황자도 제거하려 하겠죠.”

    윈터의 시선이 밝은 표정으로 상기된 아기에게 향했다. 나도 아기를 바라봤다.

    “꺄우아!”

    뭐가 그렇게 좋은지, 아기는 나와 눈만 마주치면 방긋 웃었다. 제비꽃 같은 눈동자가 둥그스름하게 접히는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아이의 두 뺨과 이마에 입을 맞춰 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그러시겠죠. ‘약속’하셨으니까요.”

    “그런 게 아니더라도 이렇게 귀여운 아이를 어떻게 죽게 내버려 둘 수 있겠어.”

    나는 율리시즈를 볼 때마다 애정이 한껏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유순하고 사랑스러운 아기였다. 밤에 잘 때 울먹거리며 보채는 적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천사와도 같은 아기를 살리고 싶었다.

    “만일 그 약속이 없었더라도 누구나 이 아이를 봤다면…… 지켜 주겠다고 마음먹을 수밖에 없었을 거야.”

    정성스러운 토닥거림에 아이는 눈꺼풀을 깜빡거리더니 이내 잠들었다.

    ‘이렇게나 사랑스러운데.’

    따뜻한 시선으로 1황자를 보듬는 나를 윈터는 신기하게 바라봤다.

    “‘진짜’ 주인님은 참으로 말랑하신 분이시군요. 약한 것들에 정을 주시고 떼지를 못하는 것을 보면.”

    “그러면 안 될 것도 없잖아.”

    “네. 당신께서는 대마법사니까요. 인간의 한계를 넘어 초월자가 되신 위대한 분.”

    윈터가 손을 지휘봉 흔들듯 휘젓자 허공에서 털실로 만들어진 작은 쥐 몇 마리가 만들어졌다. 윈터는 그 쥐들에게 명령했다.

    “가라. 쥐새끼가 심어 놓은 위스퍼를 찾아 내 주인께 바쳐.”

    “찍찍.”

    진짜 살아 있는 쥐처럼 대답한 털실 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초월자가 되면 수명이 급격히 늘어나 오랜 세월을 살게 됩니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채로요. 그래서 클로드 님은 누구와의 인연도 쉽사리 만들려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윈터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아무에게도 애정을 갖지 말라는 거야?”

    그렇다면 참으로 주제넘은 충심에서 우러나온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윈터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제 주인께서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올린 말일 뿐입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초월자들은 얼마 못 가 부서져 버리니까요.”

    “…….”

    “저는 주인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하물며 이런 황궁 내에서라면 더욱이요.”

    이곳은 인간의 부패한 욕망이 너무나 심하게 느껴진다며 윈터가 불쾌해했다. 나는 예민한 윈터의 후각에 애도를 표했다.

    “그래서 독을 찾아 없애려는 거야? 윈터? 결국 나 때문에?”

    “흥, 그렇다고는 말한 적 없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윈터의 꼬리는 동요를 감추지 못한 채 파닥거렸다. 나는 작게 웃었다. 윈터는 무시했다.

    “찍찍.”

    “아, 털실 쥐들이 독을 물어 오는군요.”

    풀어놓았던 털실 쥐들이 입에 작은 티백 같은 것을 물고 돌아왔다. 전부 위스퍼였다. 윈터는 혀를 차며 그 독 뭉치를 불태워 없애 버렸다.

    “한 마리가 모자라네.”

    “한 마리가 부족하네요.”

    털실 쥐 중 한 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길게 늘어진 털실이 어디선가 기어와 윈터의 손아귀에 잡혔다.

    “이 털실을 따라가면 첩자를 잡을 수 있겠군요.”

    털실 쥐가 독을 물어 가려다 첩자에게 걸린 모양이었다. 이 마법은 추적의 기능도 겸해서, 들킨 순간 풀어진 털실이 되어 찾으려는 대상에게 묶이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좋은 마법이네. 나도 나중에 써먹어야겠다.”

    “’전’ 주인님께서 제게 가르치신 마법이니 ‘새’ 주인님께서는 바로 사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건 편리하네.”

    나는 그대로 윈터와 함께 분홍빛 털실을 감으며 그 끝에 있을 쥐새끼를 찾았다.

    “……이런. 아니기를 바랐는데.”

    털실을 다 감고 나서 밝혀진 범인의 정체는 가장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대, 대마법사님.”

    도망치던 시녀는 며칠 봤다고 낯이 익었다. 평범한 소녀였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윈터의 말처럼 황후를 모시는 충성스러운 피델리움령 출신의 시녀 중 한 명이었다.

    무고한 셀레스틴과 율리시즈를 죽이려는 황비의 음모에 가담한 사람이기도 했다.

    “아, 아니에요. 전 아니에요!”

    뭐가 아니란 걸까?

    나는 아직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는데.

    “너를 죽이고 싶진 않아.”

    화려한 은빛 스태프를 꺼내 들었다. 시녀는 벌벌 떨며 내게 자비를 구했다.

    “살려 주세요!”

    “죽이진 않아. 하지만 남의 목숨을 앗으려고 한 시도의 대가는 치러야겠지.”

    [거두어라.]

    시녀의 두 눈에서 빛이 꺼졌다. 이제 그녀가 볼 수 있는 세상은 온통 암흑뿐이었다.

    “아아악! 내, 내 눈!”

    “가서 황비에게 전해. 허튼수작을 부리지 말라고.”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나도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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