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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는 불구경 중-7화 (7/90)
  • 7.

    율리시즈가 칭얼거릴 조짐을 본 카밀라는 시종일관 웃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1황자 전하가 이 자리를 불편하게 여기는 것 같군요. 시녀에게 들려 내보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

    나는 침묵했다. 저 말을 해석하자면 ‘우리의 이야기가 저 애의 목숨과 직결되는 중요한 사안이니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내보내 주는 게 저 애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겠느냐’는 뜻이 되기 때문이었다.

    “우으으아!”

    입을 다문 나 대신에 율리시즈가 대신 짜증을 냈다. 아마 카밀라에게서 풍기는 사향 냄새를 비롯한 각종 향수 냄새가 너무 진하기 때문인 듯했다.

    “싫습니다만.”

    “……네?”

    “싫다고 말했습니다. 1황자 전하를 내보낼 생각은 없으니 저 시녀는 물리세요.”

    카밀라가 데려온 시녀가 두 손을 쭉 내밀고 아기를 데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주인님. 뭘 믿고 1황자 전하를 저 치들 손에 맡기라는 걸까요? 황후 폐하 품이 아니라 성벽 너머로 던져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인데 말이에요.”

    “다 들려. 윈터.”

    “다 들리라고 하는 말이지요. 주인님을 바보 천치로 보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주인님을 물로 봤으니 상대방을 지렁이 취급이라도 해야 이 종복의 속이 시원하게 풀리겠습니다.”

    페럿 집사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깐족거리며 신랄하게 황비를 비난했다. 카밀라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대마법사님께서 데리고 있는 털 짐승이 아주 오만불손하군요. 예의라고는 배워 먹지 못한 것이라 짐승인가 봅니다.”

    “그러시는 황비 전하께서는 배움의 기간이 짧아 학식이 부족하신 모양입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주인님을 모시는 패밀리어인 저를 두고 ‘털 짐승’ 따위의 천박한 언사를 꺼내지는 않아서요.”

    “하……. 고작 더러운 짐승 따위가!”

    “그러는 황비 전하께서는 크게 다른 점이 있다고 보십니까?”

    으득. 황비의 곱게 칠한 붉은 입술이 뭉그러졌다. 아픈 곳을 찌르는 모욕에 카밀라는 나를 바라보며 가여운 목소리로 호소했다.

    “위대하신 대마법사님이시여, 패밀리어에 대해 재고해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물론 제가 드린 말씀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포기하지를 않네.’

    카밀라의 선명한 녹색 눈이 윈터를 잡아먹을 듯이 번뜩였다. 물론 율리시즈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욕심 많고 살기 넘치는 여자가 거북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나는 대마법사 클로드 하센티온. 내가 내린 결정을 번복하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나는 틀린 판단을 내린 적이 없는 마법사니까요.”

    클로드 하센티온이 대마법사로 불리는 건 단순히 가진 마력이 인간의 수준을 초월하고, 펼칠 수 있는 마법이 강력하고 다양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 번도 정의나 선을 어기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다고 칭송받는 그의 판단 능력이야말로 진정 여신의 축복이라 불리기에 손색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황비는 내게 황후와의 약속을 무르고 자신의 편을 들어 달라고 했지.’

    카밀라는 황후와 1황자에게 흠집을 내고 싶었던 것이리라. 거기에 더해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린 ‘대마법사’에게도 불똥을 튀기려 한 것이다. 그녀가 한 제안에 조금이라도 내가 관심을 내비쳤다면, 이를 이용해 대마법사 역시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고 했겠지.

    그렇게 대마법사 클로드와의 기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첫 번째. 동시에 1황자라는 선택을 뒤집으면서까지 선택한 자신이 낳을 황자가 진정한 후계자이지 않겠냐고 주장하려는 것이 두 번째 계획이었을 거다.

    ‘그놈의 정통성이 뭐라고.’

    카밀라가 가진 열등감과 욕망이 그대로 보여 헛웃음만 나왔다.

    하지만 이쪽은 클로드와 약속한 것이 있으니 절대 황후와 1황자를 배신할 생각이 없었다.

    “대마법사님께서도 인간이 아니십니까? 어찌 절대 틀리지 않을 거라 단언하십니까?”

    카밀라는 이를 악물고 내 마음을 돌리려 애썼다.

    그러나 내 알 바는 아니었다.

    “나는 인간이 맞습니다. 인간을 초월하는 힘을 가졌으나 여전히 인간이란 존재로 남아 있으니 인간이 맞지요.”

    “그러니…….”

    “하나 사람을 죽이려 하는 자의 부탁은 들어줄 수 없습니다. 마법사는 자신의 힘을 올바른 곳에 써야 할 의무가 있는 법이니까요. 여신께서 축복한 힘을 부여받은 자를 입으로써 더럽히는 건 황비 전하 쪽 같습니다.”

    내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하자 분노를 참지 못한 카밀라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차마 화가 난 표정을 대마법사에게 향할 수는 없는지 죄 없는 율리시즈를 보며 속을 태우는 것 같았다.

    “우으으…… 우아아아!”

    망신당하여 자존심이 깎인 카밀라의 표정에 율리시즈가 겁에 질려 울음을 터트렸다. 내 품에서 편안히 토닥임을 받던 아기는 버둥거리며 뱀 같은 여자의 시선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쉬이…… 괜찮아.”

    “으아아앙…….”

    “저 사람은 널 해치지 못해. 내가 있는 한 절대로.”

    “…….”

    마치 친형제와 같은 다정한 모습에 카밀라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분노하고 있었다.

    ‘이런 모욕과 무시를 당하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

    카밀라의 성격상 거친 욕설이라도 해 주고 싶었을 텐데 말도 나오지 않을 정도인가 보다.

    살기는 아니었다. 내 뜻을 따라 움직이는 마나의 거대한 의지가 두꺼운 벽처럼 자리 잡아 카밀라를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더 쓸데없는 말을 한다면 이 자리에서 목이 잘릴 것만 같은 거대한 압박감이 황비를 짓누르고 있을 터였다.

    “그렇죠, 황비님? 더는 이런 일로 저를 아침부터 찾아와 귀찮게 구는 일은 없을 거라고 믿겠습니다.”

    외견상 겨우 스무 살밖에 안 된 내게서 뿜어지는 위압감에 카밀라의 안색이 금세 창백해졌다.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금세 표독하게 입술을 깨물고 버티기는 했지만.

    제 ‘새’ 주인의 입담에 흡족해진 윈터가 쐐기를 박았다.

    “황비 전하? 왜 대답하시지 아니하십니까. 어디 아프기라도 하시면 저 시녀에게 부축을 명하시지요.”

    신난 페럿 집사는 방금 카밀라가 율리시즈를 데리고 나가라 가리켰던 시녀를 앞발로 지목했다. 카밀라는 저 망할 털 짐승을 언젠가는 반드시 죽여 가죽을 벗겨 겨울용 슬리퍼로 삼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쉬시는 도중에 실례하였습니다.”

    “아, 1황자 전하께도 사과하셔야지요. 황궁 법도상 황비 전하보다 황자 전하께서 더 높은 신분이신데, 이분께도 사과하고 가셔야지 않겠습니까?”

    고루한 황실 법도까지 내게 지적받으니 카밀라는 내 낯짝을 구두로 짓이기고 싶은 충동이 이는 듯했다. 아마 할 수만 있다면 나와 윈터를 갈기갈기 찢어 개의 먹이로 던지고 싶을 테다.

    “……예.”

    하지만 둘 중 우위는 명확하게도 대마법사인 내 쪽이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카밀라는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기에, 납작 엎드리는 수모를 감당해야 했다.

    “……율리시즈 황자 전하, 이 황비 카밀라가 실례를 범했사옵니다. 감히 황자 전하를 낮잡아 본 죄 마음 깊이 반성하겠습니다.”

    “아우으으으!”

    영혼 없는 사과라는 걸 아기라도 아는지, 율리시즈는 고개를 홱 돌려 내게 나가자 칭얼댔다.

    “이만 나가 주시지요, 황비 전하. 1황자 전하께서 불편해하니 앞으로는 황후궁 근처에서 뵐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예.”

    나는 아기를 어르며 카밀라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내 허락에 그녀를 억누르고 있던 마나가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동시에 창백하던 카밀라의 안색도 점차 제자리를 찾아 갔다.

    “뭣들 하느냐, 당장 내 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지 않고!”

    “예, 예!”

    자존심이 있는 대로 상한 카밀라가 데리고 온 시녀들과 시종들을 다그치며 황후궁을 나섰다. 뒤처지는 자는 손수 채찍으로 다스릴 것이라 협박하면서.

    “어휴. 제가 이래서 여기 남아 있기 싫다고 한 겁니다.”

    윈터는 혀를 쯧쯧 차며 황비 일행이 떠난 자리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표독스러운 여자가 쓴 향수 냄새가 지독하다며 탈취제까지 뿌렸다.

    “나도 싫어. 저런 사람은.”

    “저런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곳이 황궁인데……. 역시 약속 때문입니까?”

    “그렇지, 뭐.”

    “클로드 님이셨다면 진즉 다 쓸어 버렸을 텐데 아쉽네요. 왜 본인이 처리하지 않으셨는지 의문입니다.”

    그 말에 내가 ‘진짜’라면서 몸에 억지로 빙의시킨 클로드를 떠올렸다. 그리고 약속만 지켜 주면 편히 죽을 수 있을 거란 말도.

    “……그러게. 왜 그랬을까.”

    “귀찮으셔서 그랬겠죠, 뭐. 그분은 쓸데없는 세상의 대소사에 엮이길 싫어하셨으니 말입니다.”

    그랬나 보다, 하고 있으려니 율리시즈가 다시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우으, 우으으으, 흐우으…….”

    “어어, 무서운 아줌마 내보냈는데 아가가 왜 이럴까?”

    “우으으아앙!”

    기어이 아기는 서럽게 울음을 터트렸다. 안아 주고 달래 봐도 엉엉 우는 것이 분명 무언가 신호를 보내는 게 틀림없었다.

    “황자 전하께서 볼일을 보셨거나, 배고프시거나 졸리신 모양이신데요.”

    윈터의 말에 나는 아기의 기저귀를 살폈다.

    “기저귀는 새것 같고…… 애를 깨운 지 얼마 안 된 시간이니까 배가 고픈가 봐. 황후 폐하께 어서 데려다주어야겠어.”

    허둥지둥하는 내게 윈터가 말했다.

    “제가 어제 로라에게 듣기로 1황자 전하께서는 분유를 드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로라에게…….”

    “어차피 보호자가 되기로 하신 거, 이참에 분유도 타서 먹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내가?”

    “네. 주인님이요.”

    윈터의 얼굴에 장난기가 만연했다.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으나, 클로드와의 약속을 생각해 본다면 아이와 유대감을 쌓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터였다.

    “……알았어. 해 볼게.”

    그렇게 해서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율리시즈의 보모 노릇도 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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