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는 불구경 중-6화 (6/90)

6.

대마법사가 황후의 초대에 응해 황성에 온 것도 모자라, 1황자의 보호자가 되기로 맹세했다는 소식은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황비궁에서 카밀라는 비명을 질렀다. 그녀 옆에서 시중을 들던 시녀가 도자기 찻잔이 제게로 날아올까 봐 두려움에 떨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흘러가고 있었는데!’

씩씩거리면서 둥글게 부푼 배를 붙잡은 카밀라는 원통함에 한 번 더 소리를 내질렀다.

카밀라는 황후 셀레스틴을 죽이려 천천히 중독시키고 있었다. 황제의 눈 밖에 나 고립되어 버린 불행한 황후궁에 사람을 심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었다. 황후의 유일한 사람이라 할 수 있는 로라가 독살 위협을 느껴 다른 시녀와 시종들을 모두 내쫓아 버려도 카밀라의 독은 어디선가 계속 황후를 좀먹어 갔다.

황제는 이를 알고도 방관했다. 카밀라는 그 방관을 기뻐하며 황후가 죽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내 아들에게 황태자의 관을 씌워야 한단 말이다!’

황비라는 위치를 얻었어도 카밀라는 만족하지 못했다. 황비라 해도 결국 첩의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신분이 미천한 데다 사생아로 태어나 갖은 고생을 겪었었다. 그 때문에 카밀라는 제 아들만큼은 정당한 적자로서 혈통 문제를 겪지 않았으면 싶었다.

간사한 분노가 욕설과 폭력을 불러오라 아우성을 쳤지만 카밀라는 그것을 간신히 참아 냈다.

“채비해라. 대마법사를 만나러 가야겠다.”

“예, 예?”

“멍청하게 뭘 멍하니 있는 것이냐? 당장 대마법사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죄, 죄송합니다! 명 받들겠습니다.”

기어이 찻잔이 머리로 날아오는 것을 맞을 뻔한 시녀는 황급히 황비의 외출을 도왔다. 이미 입고 있던 화려한 실내복을 벗기고, 그 위에 척 보기에도 값비싸 보이는 드레스를 입혔다.

“……대마법사는 여태까지처럼 오지 구석에 처박힌 공방에나 있을 것이지. 왜 지금 와서 이런 소란을 피우는 거야?”

카밀라가 대놓고 욕설을 지껄였다. 황비의 시녀들과 시종들은 너무 익숙한 일상인지라 지적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수그렸다.

‘대체 무엇을 대가로 약속했길래 황후의 제안을 대마법사가 받아들였을까?’

카밀라는 초조하게 입술을 물어뜯으며 그것을 궁금해했다.

대마법사는 그 어떤 귀인이 만남을 요청해도 쉬이 들어 주지 않는 인물이었다. 서신 하나조차도 오고 가기 힘든 인물인 만큼, 아는 것이 거의 없어 속을 알기도 어려웠다.

‘대마법사를 황성에서 쫓아내지 않으면 나와 내 아이의 미래는 없어.’

“아.”

그러자 배에서 진동이 전해졌다. 어미의 불안감 때문인지 아이가 발을 구른 것이다.

“미안해요, 황자. 이 어미가 못난 모습을 보였군요.”

카밀라가 부푼 배를 더없이 사랑스럽다는 시선으로 쓰다듬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인자해서 도저히 두 손에 피를 묻혀 가며 제 안위를 꿈꾸는 여자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무서운 여자.’

시녀들은 카밀라 앞에서 숨조차 맘 놓고 쉴 수 없었다. 임신한 아이의 성별이 사내아이가 아니라면 뒷감당을 어찌하려는지. 황비가 저지르는 횡포의 정도는 이미 도를 넘어섰다.

권력으로 치장한 듯한 황비가 붉게 칠한 입술을 열었다.

“황후궁으로 가자. 오랜만에 황후 폐하도 만나고 아주 좋겠구나.”

* * *

황후궁의 궁핍한 살림살이에 기겁하며 투덜대던 윈터가 갑자기 귀를 쫑긋거렸다.

“누군가 와요, 주인님.”

“누가?”

“황비가 와요. 몸에 걸친 보석이 어찌나 많은지 여기까지 보석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네요. 곁에 데리고 오는 시녀와 시종들도 많고요.”

윈터는 찻잎을 정리하다 말고 의자에서 쪼르르 내려왔다. 그러고는 내가 입은 의복을 훑어봤다. 나는 마법을 이용해 편안한 후드티와 운동복을 걸친 상태였다.

“왜 그래?”

“선약도 잡지 않고 오는 무례한 손님을 위해 차려입을 필요는 없겠죠. 이대로 가죠!”

“……황비가 만나러 오는 게 나야?”

“그럼 달리 누가 있겠습니까? 황비의 무거운 엉덩이는 현 황제가 온다고 해도 쉽게 들리는 게 아닌 것을요.”

윈터가 신랄하게 황비를 비꼬았다. 순간 저 말하는 귀여운 페럿에게 혁명에 관한 빨간 맛 책을 몇 개 쥐여 준다면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그래도 감히 어떤 연통도 없이 주인님이 계신 곳으로 쳐들어오고자 하다니, 정말 상식 밖의 여자예요!”

“윈터, 많이 화났어?”

“예. 화났습니다! 주인에게 패밀리어가 분노를 표출하는 행위는 있어서는 안 되긴 합니다. 저도 그렇게 배웠고요! 하지만 이대로 20년간을 이 황성에 묶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열불이 나서요!”

캬악거리는 소리를 내며 윈터는 와인 한 잔을 쭉 들이켰다.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저렇게 분노한 페럿을 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웃기고 불쌍하여 그를 품에 안고 쓰다듬었다.

“조금만 참아 줘. 20년은 금방 갈 거랬어.”

“캬악! 누가 그럽니까?!”

“클로드가.”

“……말을 말죠. 그나저나 절 애완동물처럼 취급하지 마십시오. 저는 주인님의 집사입니다.”

“알았어.”

호다닥 품에서 내려온 윈터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뭘 해야 불청객의 심기를 최대한 어지럽힐 수 있을까나……?”

윈터의 부드러운 갈색 털이 빳빳이 선 걸 보면서 나는 무심코 말을 내뱉었다.

“아기.”

“예?”

“율리시즈를 데리고 맞이하는 건 어떨까.”

“오!”

윈터의 까만 콩 같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재미난 장난거리를 찾은 것처럼 기뻐하는 윈터는 꼬리도 흔들었다.

“그것참 좋은 생각이군요. 황후 폐하께 가서 허락을 맡아야겠습니다. 역시 주인님은 제 주인님이시군요! 약속 대상의 보호와 함께 상대를 엿 먹일 수 있는 대안을 이리도 빨리 생각해 내시다니요.”

“……욕하는 거야, 칭찬하는 거야?”

“칭찬입니다. 그럼 이따 뵙죠!”

뾰롱, 하는 귀여운 소리와 함께 윈터가 사라졌다. 그리고 몇 분 뒤, 갈색 털의 페럿 집사 씨는 꺄르륵 웃는 아기 황자 전하를 바구니에 담아서 데려왔다.

“꺄우으아!”

“아이고 무거워라. 자, 어서 황자 전하를 안아 주십시오. 저 같은 페럿이 들기엔 너무 무거워서 팔이 빠질 것 같군요.”

“어……, 어어.”

황후인 셀레스틴도 황비 카밀라에게 해묵은 원한이 깊었던 것일까. 이렇게 단시간에 아들을 내어 주다니.

‘그만큼 대마법사의 힘을 믿고 있다는 소리겠지만…….’

진정 황궁 속 신경전에 발을 담갔다는 감상이 일어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고래 등에 터진 새우 꼴이 나는 건 질색이었으므로.

도망칠 새도 없이 카밀라의 도착을 시녀가 알렸다.

“황비 전하께서 대마법사 클로드 하센티온 님을 만나 뵙고자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전해.”

나는 피곤으로 무뚝뚝해진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는 아기를 고쳐 안았다.

자, 악당이 온다.

“꺄아아아!”

“응. 아가. 너라도 즐거운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리고는 가장 푹신한 소파에 기대앉아 카밀라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인님! 설마 그러진 않겠지만, 윈프리드 제국의 황비가 주인님을 모욕하려고 한다면 테이블을 엎어 버리겠습니다!”

“그러지 마. 아기한테 튀면 어떡해.”

“앗. 그건 위험하겠군요. 알겠습니다.”

‘윈터가 황비와의 일에 너무 적극적인데.’

저 까칠한 페럿 집사는 황성에 체류하게 된 만악의 근원을 황비로 보고 원망하는 것 같았다. 나도 비슷한 마음이어서, 그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 * *

“여신의 축복 아래 태어난 가장 위대한 기적 중 하나에게 인사드립니다. 카밀라라고 합니다.”

휘황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무장한 카밀라는 그 어떤 귀족 영애보다 다소곳하게 세진에게 인사했다.

우아한 말씨, 사랑스러운 외양만 본다면 카밀라는 천사가 따로 없었다.

“예, 안녕하십니까.”

“……이런, 1황자 전하와 같이 계셨군요?”

그녀의 녹색 눈동자는 내 품에 안긴 율리시즈를 보자마자 화르륵 타올랐다. 한순간 표독스러운 티가 났으나 금세 덮은 여자는 더욱 아름답게 웃었다.

“잘 됐군요. 마침 1황자 전하를 대마법사님께서 보호하신다는 말이 사실인지 궁금하여 방문한 것도 있답니다.”

‘기억에 의하면 클로드가 한번 내린 결정을 엎는 일은 없었는데.’

그런데도 카밀라는 마치 내가 우스운 농담이라도 한 것 아니냐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윈터의 표정이 상한 치즈라도 먹은 듯 썩어들어갔다.

“황비 전하께서는 제 주인님의 결정을 심히 못마땅하게 여기시는 것 같군요?”

“어머, 그럴 리가요. 저는 단지 새로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온 것뿐이랍니다.”

윈터의 비꼼에도 카밀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했다. 난 반대로 체할 것만 같았다. 이따금 율리시즈를 바라보는 여자의 눈동자가 먹이를 눈앞에 둔 뱀과 똑같아서.

“새로운 가능성이란 무엇입니까? 그게 제가 쉬고 있는 이 궁에 연락도 없이 오는 무례를 끼칠 만큼 중한 것인가요?”

불쾌한 얼굴로 묻자 카밀라가 조금 움찔했다. 그래도 황비는 기죽지 않았다.

“1황자 전하 대신 제가 낳을 2황자 전하를 선택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예?”

황당한 요구였으나 카밀라는 당당했다.

“황후 폐하의 편을 들어 주시겠다는 것은 이미 정치판에 뛰어들겠다는 신호가 아닙니까? 제 손을 잡으십시오. 제 태내에는 이 윈프리드 제국의 다음 황제가 될 황자 전하가 숨 쉬고 있습니다.”

카밀라가 보석 반지가 여럿 끼워진 손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대마법사님께서 제 손을 잡는다면 절대 후회하지 않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야망이 있는 여자는 자신만만해했지만, 나로서는 황당하기만 했다.

‘당신이랑 당신 아들 때문에 핍박받은 애가 나라를 멸망시키려고 할 건데요……?’

“우으으?”

이걸 아는지 모르는지 품에 안긴 율리시즈마저 미간을 찡그리며 칭얼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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