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는 불구경 중-5화 (5/90)

5.

“그런 것이 사명이라면 넌 이미 죽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패밀리어, 마법사의 종복이자 사역마. 본래 말 못 하던 짐승들이었으나 최초의 마법사 가렛의 축복 덕에 지능을 얻게 된 종족들.

‘한번 계약의 인을 맺으면 주인인 마법사의 명이 다할 때까지 충성하는 미련한 존재들.’

“난 네 원래 주인도 아니잖아.”

그래서 윈터가 불편했다. 내 옆에 있을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숨이 끊기지 않았고, 계약의 인이 사라지지 않았으니 ‘주인님’도 제 주인님이십니다. 아니지, 지금이 진짜 주인님이시니 이 말은 틀렸군요.”

대화 주제가 진지해서일까, 윈터의 말투가 정중해졌다. 클로드의 기억을 전수받아서인지 그것이 놀랍지는 않았다.

“너는 네 주인인 클로드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거나 걱정되지는 않아?”

“그다지요. 그분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분이신지라, 이미 자유롭게 다른 세계를 노닐고 계실 겁니다.”

‘……매정한데?’

주인에게 일평생 충성을 다 바친다는 패밀리어답지 않게 윈터는 새침하고 까칠한 구석이 있었다. 윈터가 자기 전용 다기에 따뜻한 홍차를 끓이면서 말했다.

“그분보다는 현실에 집중해야지요. 앞으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갈색 털 사이로 까만 콩 같은 한 쌍의 눈이 빛났다. 반짝이는 눈이 피할 수 없는 약속에 관해 묻고 있었다.

“현재 주인님의 사명은 1황자님을 무사히 지키시는 것이잖습니까.”

“……그렇지.”

율리시즈를 품에 안았을 때, 계약의 영향인지 이 아이를 지켜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밀려왔다.

나를 죽음으로 이끌어 줄 단 하나의 존재.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소중한 사람.

복잡하고도 무거운 마음에 짓눌릴 것만 같았다. 동시에 무사히 아이를 만나 참을 수 없이 기쁘기도 했다.

기묘한 감상이었다.

“당분간은 황후궁의 손님으로서 황성에 머무르고자 해.”

“어째서요?”

“황비가 황후를 죽이려 들 테니까.”

마법의 힘일까. 눈을 감기만 해도 또라이 클로드가 억지로 읽게 한 책의 내용이 훤히 떠올랐다.

[카밀라 황비는 초조했다. 그녀가 황제의 총애를 등에 업고, 황후가 믿을 만한 줄을 전부 잘라 냈다고는 하나 적장자를 낳은 건 황후였다. 카밀라는 그것이 거슬려 미칠 것 같았다.

‘황후가 제 아들을 믿고 날뛰는 일이 없도록 막아야 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그녀는 고민했다. 쇠약해지도록 은밀히 독을 먹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카밀라는 불안의 근원을 뿌리 뽑고 싶었다.

그래, 황후와 황자를 돕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리라.]

책 속에서 클로드의 존재는 없었다. 두 사람을 독살의 위협에서 지켜 줄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황후는 허망하게 죽었다.

“약속을 위해서는 황후의 죽음을 막을 필요가 있어.”

물론, 어린 아기를 둔 어머니가 무참히 살해되지 않도록 막는 것 역시 인간적인 측면에서 해야 할 도리긴 했다.

1황자가 폭군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행복한 유년 시절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었다. 그의 파괴적인 성향은 어머니를 잃은 복수심으로부터 비롯되었으니, 황후를 살리고 올바르게 자라게 만든다면 갱생의 여지가 있었다.

“그럼, 그다음에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뭘?”

“율리시즈 1황자 말입니다. 그를 무사히 지켜야 약속이 이행되는 것이라면, 계속 황성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윈터가 부루퉁한 낯으로 이쪽을 흘겨봤다. 어지간히 집에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황성이 싫어?”

“황성이 싫은 게 아니라, 주인님을 이용하려는 인간들이 보기 싫은 겁니다.”

“클로드는 또라이던데, 이런 또라이를 이용하려는 간 큰 놈들이 있었어?”

“탐욕스러운 인간들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니까요. 주인님은 그런 것들을 천것이라 부르며 쫓아내셨지요. 하지만 강력하고 길들이기 어렵다는 대마법사라 하여 더 탐을 내는 인간들이 있었습니다.”

윈터의 꼬리 털이 부르르 떨렸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 자그마한 페럿 집사께서는 인간을 혐오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적당히 조치만 취하고 떠나는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많은 뜻이 함축된 단어들 속에서 나를 향한 걱정과 염려가 느껴졌다. 윈터는 알고 있는 거다. 인간은 힘과 권력을 숭상하기 마련이고, 그 욕망을 좇는 이들은 괴물보다 악랄해질 수 있다는 것을.

클로드 역시 그런 이들을 질색하고 성가셔했기에 평생 피해 다녔다. 지난 백여 년 동안 대마법사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방랑한 까닭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물가에 놓인 어린애를 어떻게 그냥 두고 갈 수 있겠어?’

보통 하천도 아니고 삼도천이나 다름없는 중상모략이 판치는 황성 안이다. 어디에나 눈과 귀가 있을 테고 오늘 이 순간에도 저 갓난쟁이 황자를 죽이고자 하는 이들이 존재할 테지.

“옆에 있어 주자. 시간은 금세 흘러갈 거야.”

곁에서 지켜보며 돌봐 주는 것이 오히려 품이 덜 들지 않을까.

“몇 년이나 1황자의 옆에 계실 생각이십니까?”

“1황자가 스무 살이 되는 해까지만.”

“20년은 뉘 집 개 이름이 아닙니다만…….”

“네 주인이 날 여기로 떠밀 때 약속한 게 그거였어. 싫으면 그 녀석에게 가서 따져.”

“……알겠습니다.”

내 피곤함을 읽었는지, 윈터는 더는 말대꾸하지 않고 제 주인이 편히 쉴 수 있게 시중을 들고는 사라졌다.

홀로 남은 방 안에서 나는 째깍째깍 시계의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계약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구나.’

가슴팍 위로 손을 올리자, 맥박과 함께 계약의 인으로부터 새어 나오는 시계 소리가 느껴졌다.

그 아이, 율리시즈를 만난 순간부터 계약은 발동되었다. 클로드가 내게 말한 약속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테다.

언젠가 그 아이가 다 커서 내가 숨을 거둘 바로 그날에.

‘그러니 그때까지 조용했으면 좋겠는데…….’

툭툭.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언가가 나를 건드렸다.

“……윈터? 왜 말로 안 하고…….”

“꺄아아.”

“어.”

가는 실 같은 황금색 터럭이 머리에 조금 난, 자주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아기가 내 침대 위로 기어오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누가 봐도 1황자 율리시즈였다.

‘여기까지 어떻게 온 거야?’

아기의 행색은 더러웠다. 배내옷이 바닥의 먼지로 더럽혀져 검댕을 뒤집어쓴 것처럼 변해 세탁할 시녀가 고생깨나 할 것 같았다.

“꺄우아아!”

아기는 나를 보더니 내게 손을 뻗으며 안아 달라 보챘다. 해맑은 손짓이었고, 황자라는 귀한 몸에는 어울리지 않는 동작이었다.

그런데도 귀여운 아기인 것은 틀림없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황자를 품에 안았다. 아이가 더러워진 손가락을 쭙쭙 빨려 하길래 얼른 제지했다.

“신분만 보면 가장 귀한 것만 누려도 모자랄 황자님이 재투성이처럼 굴러다니다니.”

“아우으!”

“네 어머니께서 보면 속상해하실 거야. 가자. 데려다줄게.”

“아우으으아아!”

으아아앙.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엄마에게 데려다준다는데도 거부하며 서럽게 엉엉 울어 대니 곧 윈터와 로라가 연이어 나타났다.

“황자님이 왜 이곳에?”

“으아아앙!”

“죄송합니다, 대마법사님. 제 불찰입니다. 요람에 잘 누워서 주무시는 걸 확인했었는데 어쩌다 여기까지 오셨는지…….”

로라는 거의 죽을 듯이 안색이 파랗게 질려서는 내게 용서를 빌었다.

“귀한 손님께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황자님은 제가 얼른 데려가겠습니다.”

“으아아아앙!”

로라가 손을 내밀어도 율리시즈는 꿈쩍도 안 했다. 시녀 쪽으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콧물을 쏟아 가며 펑펑 울었다. 주먹밥을 닮은 두 손으로 내 예복을 꼭 쥐고는 놓지 않으려 발악하는 것 같기도 했다.

로라는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으나, 감히 황자의 여린 몸을 잡아당길 수도 없어 난처해했다.

“……됐으니 돌아가세요. 황자 전하는 제가 요람으로 옮기겠습니다.”

“하오나……”

“으아아앙!”

빼액 우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당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묵묵히 아이의 작은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

“히끅.”

“착하지. 아가.”

‘이 아이, 살고자 날 찾아왔구나.’

아이의 마나 회로에 누군가 손을 대려 한 흔적이 있었다. 입은 옷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누군가 억지로 붙잡으려 한 손톱자국 등이 남은 것도 알 수 있었다.

“누군가 널 해치려 해서 내게 온 거니?”

“히끅. 히끅.”

1황자는 자수정을 닮은 큰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떨어뜨릴 뿐이었다. 당연했다. 아기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카밀라 황비겠네.’

하지만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법이었다. 나는 이것이 황비의 소행임을 직감했다.

대마법사 클로드 하센티온의 보호를 뚫으려면 기적에 가까운 힘이 필요할 터. 황비의 위세가 아무리 대단하다고는 하나 대륙에는 클로드보다 강력한 마법사가 없었다.

‘그러니 급한 마음에 이 어린 아기라도 죽이려 한 셈이겠지.’

아직 내가, ‘대마법사 클로드 하센티온’이 황후의 부탁을 수락하지 않았다고 여겨질 때. 그때만이 아이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 움직였을 터다.

‘황후궁 내에 황비의 끄나풀이 있다는 건 짐작했지만…….’

대응이 빨라도 너무 빨랐다. 내가 바로 율리시즈를 보호하겠다는 부탁을 수락하지 않았다면, 이 아이는 크게 다쳤을지도 몰랐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꺄우우으.”

토닥이고 부드럽게 얼러 주니 아기는 금세 울다 말고 방긋 웃었다. 절로 미소가 나오는 어여쁜 아기였지만, 나는 무표정하게 아기의 마나를 분석했다.

“마법을 썼구나. 네 목숨을 지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널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의 곁으로 온 거야.”

놀라운 일이었다. 각성도 하기 전에 마법을 부린 경우는 들어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 어린 아기가 그걸 해냈다고.’

폭군의 싹이 될 아이는 본래 천재였던 것일까. 나는 클로드의 지식 속에서 아기의 외가인 피델리움 백작 가문이 오래전 마법으로 명성을 날렸던 가문임을 떠올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곧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윈프리드 제국의 시조는 반인반룡이었다지.’

용은 모든 마법사의 스승이자 평생을 뛰어넘어야 할 벽과 같은 존재였다. 그 혈통을 진하게 타고났다면 이 아기는 평생 평범하게는 살 수는 없으리라.

폭군으로서 죽기에 이 아기는 너무나 아까운 인재였다.

어쩌면 내가 이 말도 안 되는 약속을 지키겠다고 온 것은, 이 아까운 아이를 살리기 위한 운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고 싶어 하는 나와는 다르게.

“아가.”

“아우으?”

“내가 너를 반드시 살려 줄게. 어머니를 잃는 비극도, 네가 복수귀가 되어 모든 것을 태워 버리는 일도 없게 내가 지켜 줄게.”

결심했다. 이 아기가 예정된 미래의 고통 따위 모르고 자라게 도와주겠다고. 그리하여 미래에 내가 한 점의 미련도 없이 숨을 거둘 수 있도록.

손짓 한 번에 아기의 옷과 몸에 묻은 더러운 먼지 때가 사라졌다. 마나 회로에 가해진 약간의 흠조차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아물었다.

“너만큼은 내가 행복하게 지켜 줄게.”

“꺄아아!”

아이의 천진한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계약의 인에서 나는 소리가 들렸다. 째깍째깍. 째깍째깍. 기계적인 초침 소리를 들으며 나는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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