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0/72)
  •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당장 가서 황녀와 그녀의 태중 아이를 갈기갈기 찢어 그 시체를 내게 가져와!”

    황녀가 호위 기사와 함께 사라진 방향, 엘데이라성 쪽에서 뿔 나팔 소리가 세 번 들려왔다. 위급 신호. 성이 함락되기 일보 직전이라는 소리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황금성 여기저기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호아킴 장군이 올 때까지만 이곳에 계십시오.”

    베네딕트가 다시 크리스티앙을 공격했지만 하이데거는 이미 황제의 몸에 방어 결계를 친 후였다. 베네딕트는 대공을 보며 눈을 일그러뜨렸다.

    “당신이 모든 걸 걸고 지키려 했던 이가 실은 클라웨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압니까?”

    주춤하던 하이데거가 베네딕트의 공격을 간신히 피했다.

    “그의 아비는 선황이 아니라 호아킴입니다. 일개 귀족과 호위 기사의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였을 뿐이란 말입니다. 당신의 태양은.”

    하이데거가 흔들리는 시선으로 크리스티앙을 바라보았다. 크리스티앙이 결계 안에서 잔인하게 눈을 빛내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에리히. 가서 황녀를 죽이라 명하였다.”

    “그는 일평생 당신을 속이며 군림하였습니다. 황족에 관한 충성심으로 가득한 당신이 이용하기 가장 좋은 패였으므로.”

    에리히의 얼굴이 회색빛을 띠었다. 관자놀이가 욱신거리며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온 탓이었다. 자신이 그토록 충성한 상대는 클라웨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황제였을까, 아니면 크리스티앙 그 자체였을까. 핏물이 울컥거리며 식도를 타고 올라왔다.

    “당장 가서 그녀를 죽여!”

    크리스티앙의 외치는 순간 비틀거리던 대공의 모습이 흐려지며 공기 중에 자취를 감추었다.

    “에리히가 몰랐을 것 같아? 그가 모르고 내게 충성했을 것 같아!!!”

    결계 안에서 악을 쓰는 크리스티앙을 바라보며 베네딕트가 입술을 지그시 씹었다. 자신의 아이를 가진 황녀를 모욕한 크리스티앙을 이 세상에서 없애 버리고 싶다는 욕망은 아직도 그의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이데거가 쳐 놓은 결계를 부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 동안 만일 대공이 황녀를 찾아내어 죽이기라도 한다면…?

    잔인한 상상이 폭력적으로 그의 뇌리를 비집는 순간, 그는 결정을 끝냈다. 사랑하는 이를 영원히 떠나보내는 건, 일생에 단 한 번으로 족했다.

    ***

    검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쉼 없이 부딪혔다. 세르노티의 기사들은 그들이 평생 베어야 할 이들을 오늘 하루, 모조리 베겠다는 다짐으로 전투에 임했다.

    “세드릭! 아일라!!!”

    혜미가 합류하며 그들을 알아보고 소리치자 세드릭이 의수를 낀 팔을 치켜들었다. 아일라는 거대한 남자의 목을 투구째 날려 버리는 것으로 답했다.

    해가 가장 높이 뜨는 시각, 그들은 엘데이라성을 습격하며 전투를 시작했다. 황성의 경비가 느슨해졌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황궁 근위대는 마치 그들이 공격당할 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여기저기서 뛰어나와 방어했던 것이다.

    챙! 챙!

    황궁 근위대와 함께 싸우는 이들 중에는 리비에르의 군대도 상당수였다. 전투태세를 갖춘 리비에르가 앞으로 달려 나오며 크게 외쳤다.

    “반역자를 공격하라!”

    그녀를 막아선 것은 조세핀이었다. 그녀와 칼을 부딪치는 조세핀을 보며 리비에르가 인상을 썼다.

    “뭐 하는 거야, 조.”

    “지휘관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힘을 다해 싸우면 우리도 사람답게 살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저희는 모두 리비에르 님께 충성하였죠. 리비에르 님만은 우리의 편이라고, 권력을 이용할지언정 낮은 곳에 있는 우리를 절대 저버리지 않을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어서 저리 비켜!!!”

    리비에르가 그녀의 칼을 쳐 내며 소리를 질렀지만 조세핀은 그녀의 앞을 다시 막아섰다. 리비에르의 군사들은 자신이 그토록 충성하던 상사에게 대적하는 조세핀을 차마 공격할 수 없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제 동생이 교황청에서 마력 실험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조세핀!!!”

    리비에르의 공격에 뒤로 밀려나 바닥을 짚은 조세핀의 새하얀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알고 계셨음에도 황제의 편에 서기로 결정하신 겁니까?”

    리비에르와 함께했던 수많은 전투가 그녀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전쟁이 끝나면 우리도 부자가 될 수 있다. 조세핀. 개선문을 통과하고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환호하고, 금화에 파묻혀 귀족들이 부럽지 않게 떵떵거리고 사는 거지.”

    “그럼 제 동생도 찾을 수 있겠죠? 제 동생이 좋아했던 초콜릿도 마구 사 줄 수 있고요.”

    “당연한 소리. 줄리아를 만나면 내가 초콜릿으로 만든 과자 집을 선물할게. 그러니 어서 나아서 말라쿤을 함께 족치러 가자.”

    부상당한 조세핀의 곁을 지키며 웃었던 리비에르가 일그러진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지나간 일이다, 조세핀. 너와 남은 네 가족에게는 부귀영화가 기다리고 있어…!! 폐하께서도 네게 작위를 내리기로 약속하셨다!”

    “아니요.”

    조세핀이 칼을 고쳐 쥐고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딴 걸 바라고 줄리아를 죽인 이의 발바닥을 핥을 수는 없습니다. 동생을 그 두려운 곳에 집어넣고 잔인한 실험 도구로 이용한 이를 어떻게 주군으로 모실 수 있단 말입니까?”

    “어리석게 굴지 마! 난 널 베고 싶지 않아…!”

    리비에르가 이를 악물었지만 조세핀은 전력으로 그녀를 공격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조세핀의 검을 막아 내는 것도 한계였다. 리비에르 역시 사력을 다해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 고생을 한 후엔 쉽고 편하게 살 수도 있었는데.”

    “흑…!”

    리비에르의 일격에 조세핀의 팔목이 반대로 꺾였다.

    “바보 같은 것.”

    리비에르는 휘청하는 조세핀의 허점을 놓치지 않았다. 조세핀의 까만 눈동자에 자신을 죽이려는 리비에르의 얼굴이 박혔을 때였다.

    “흑…!”

    등에 칼을 맞고 쓰러지는 리비에르의 뒤에서 토비아스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특유의 소심한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또렷한 목소리가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가족을 위하는 마음은… 바보 같지 않습니다.”

    조세핀은 입술을 꽉 깨물며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지휘관이 쓰러진 리비에르의 군사가 두 갈래로 나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원군이다!”

    “하르트만이야!”

    군대를 끌고 온 하르트만 부인까지 합류하자 기세는 더욱 이쪽으로 기울었다.

    “남쪽의 미켈란성도 곧 함락입니다!”

    황금성의 건물이 하나둘씩 함락될 때마다 뿔 나팔 소리와 함께 환한 횃불이 꽂혔다. 황제의 폭정을 무너뜨리려 일어난 황녀에게 뜻을 모으기로 했으나, 위험을 두려워해 끝까지 망설이던 귀족들의 마음 역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베네딕트!!!”

    베네딕트는 그에게 달려드는 기사의 몸을 마치 투명 장막처럼 통과하며 나타났다. 혜미는 피 묻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멀쩡한 그의 모습을 보자 반가움과 안도감이 뒤섞여 한숨이 탁, 터져 나갔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설명은 나중에.”

    베네딕트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가장 염려했던 하이데거는 없었다. 어딘가에서 혼란에 빠져있기라도 한 걸까, 생각하며 그가 혜미에게 물었다.

    “이제 어쩌실 계획입니까.”

    “북쪽에 있는 교황청으로 군대를 모두 몰 거예요. 그곳에서 백병전을 벌이는 게 인명 피해를 가장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그녀의 바람은 황금성 안에서 모든 전투를 끝내는 것이었다. 피의 욕망이 시작된 곳에서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갇혀 있는 마법사들은?”

    “발터가 모두 대피시켰어요. 지금 엘데이라성 안에 모여 있고요.”

    홑몸도 아닌 상황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사람들을 구할 생각을 했을 에데르트를 보며 베네딕트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강해지셨군요, 폐하.”

    “감상은 거기까지 하고, 마지막으로 저 좀 도와주세요, 베네딕트.”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베네딕트는 이번에야말로 온전히 그녀의 말에 따라줄 생각이었다.

    “교황청을 무너뜨려 주세요.”

    “…….”

    “당신이 그토록 원하던 거였잖아.”

    베네딕트는 직시하며 내뱉는 그녀를 보며 조금 웃었다. 바짓가랑이를 잡고 엉엉 울던 아이가 언제 이렇게 자라서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게 된 걸까.

    “함께 가시겠습니까?”

    그녀가 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난 발터와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어요.”

    “…무슨?”

    “황위를 찾아야죠. 제가 직접.”

    “크리스티앙에게서?”

    “네.”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얼굴에서 그가 염려했던 주저함은 없었다. 오히려 담담한 결의가 느껴질 뿐이었다.

    “그가 어디 있는지는 압니까?”

    “알 것 같아요.”

    발터가 말을 몰고 달려와 손을 내밀자 그녀가 휙, 하고 말에 몸을 띄워 올렸다.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한 발터의 등을 꽉 안은 그녀는 편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마치 한 몸인 듯 자연스러운 그들의 사이를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이 이제껏 함께 공유한 시간 때문이리라.

    황녀의 이름을 버리고 도망친 소녀는 꺼지지 않는 불꽃같이 뜨거운 소년을 만나, 마치 예정된 수순처럼 사랑에 빠졌다.

    기억을 수백 번 지워도 아마 그들은 다시 만나 서로 사랑할 게 분명해 보였다. 베네딕트는 그녀의 죽음을 실감하고 서슴없이 제 목을 잘라 버렸던 발터를 떠올렸다. 그런 그에게 그녀의 결혼, 혹은 아이가 문제가 되기나 할까.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않은가.

    그래서 자살한 그를 살리고 영혼이 달아난 그녀의 곁에 두었지 않나. 황녀를 제 목숨보다 사랑할 단 하나의 남자가 그녀를 반드시 일으켜 세울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건조한 바람 같은 웃음이 그의 얼굴에 머물다 떠났다. 베네딕트는 푸른 눈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에 우뚝 선 교황청을 바라보았다.

    마치 유령을 방불케 하는 건물은 그와도 닮아있었다. 증오와 괴로움, 절망과 묵인이라는 해묵은 먼지를 뒤집어쓴 괴물 같은 곳.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할 때였다.

    ***

    황녀의 군대가 북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차갑게 살얼음이 낀 운하 주위로 연신 거센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 뒤를 쫓아라!”

    호아킴의 명령으로 그들은 마지막 전력을 다해 황녀의 군대를 쫓았다. 황금성 곳곳이 불에 타오르고 있었지만 이곳에서 반역자들만 전부 몰아낸다면 아직 가망은 있었다. 그들을 모조리 죽이고 성이야 다시 재건하면 되는 것이다.

    “이 땅의 태양이신 황제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워라!!!”

    교황청으로 모든 병력이 한데 집중되었다. 넓디넓은 황금성의 대지 곳곳에서 불화살이 떨어졌다.

    “내게도… 자식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아비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내가 이 땅에 홀로 떨어진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란 뜻입니다.”

    하이데거의 결계에서 걸어 나온 크리스티앙이 호아킴에게 한 말이었다. 아들이 어미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내 눈감았던 자신의 마음은 그에게 닿기 부족했던 것이다.

    호아킴 역시 할 말은 없었다. 총명하던 어린 소년을 이토록 잔인하게 만든 사람은 어쩌면 부모인 그였을지도 몰랐다. 그는 이를 뿌득 갈며 마침내 신호를 보냈다.

    “클라겐타비스를 풀어라!”

    뿔 나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지는 순간, 가둬 두었던 커다란 새들이 회색빛 하늘을 뒤덮었다. 맞서 싸우던 이들의 눈이 모두 크게 뜨였다.

    호아킴이 북부에서 함께 데려온 강력한 무기는 마물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비밀리에 북부로 보내진 마법사들의 희생으로 치러 낸 결과는 참혹했다. 하이데거의 마력으로 봉해 두었던 궤짝의 결계가 풀리는 순간, 수백 마리의 시커먼 공포새들이 사람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으아아!!”

    공포새들은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지 못한다는 편이 맞았다. 군사들이 속수무책으로 새의 발톱에 찢기고 물어 뜯겼다.

    “아일라!”

    아일라의 위로 스치고 지나가는 클라겐타비스 한 마리가 음산한 울음을 울었다. 아일라는 헐떡이며 세드릭을 바라본 후, 이내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는 결국 다 죽는다고 해도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대마법사님…!”

    때마침 로즈의 손을 잡고 나타난 타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베네딕트를 바라보았다. 로즈는 어찌된 영문인지 갇혀 있던 마법사들 수십 명까지 달고 온 채였다.

    “다들 돕고 싶다고 해서요.”

    힘을 드러내면 어딘가로 끌려간다는 걸 경험한 이들의 눈은 아직도 공포에 질려 있었지만, 곧 황녀의 군대를 도와 전투에 힘을 더하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요?”

    베네딕트가 조용히 눈을 빛냈다. 마력을 집중시켜 모든 이들을 쓸어 버리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그렇게 된다면 아군 역시 피해를 입게 된다. 게다가 힘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지금, 그의 한계가 어디까지일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길게 숨을 내쉰 후, 타우를 바라보았다.

    “지금부터 나는 네 도움이 필요하다.”

    베네딕트의 말에 타우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할 수 있겠니?”

    “몰라요.”

    “크기만 다를 뿐, 다 같은 짐승이다.”

    타우가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징그러운 새들에게 공격당한 사람들의 온몸이 새까맣게 변하며 죽는 것은 보기만 해도 끔찍했다.

    “대마법사님은 뭘 하실 건데요?”

    “널 믿어 주마.”

    베네딕트가 그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짧은 망설임을 끝낸 타우는 마침내 양손을 벌리고 눈을 감았다. 아이의 검은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리며 자그마한 몸에서 빛이 환하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베네딕트를 포함한 마법사들은 그들과 같은 일족인 어린아이의 주위를 둘러싸고 집중하는 타우를 지켜 냈다.

    “돌아가.”

    타우가 작게 중얼거렸다.

    “집으로, 돌아가.”

    인간을 공격하던 수백 마리의 공포새들 중 하나가 끼익, 하며 갑자기 날아올랐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공포새들이 하늘에서 원을 그리며 빙빙 돌다가 일제히 방향을 바꾸었다.

    검을 들고 싸우던 이들은 마물들이 차가운 운하를 향해 차례로 추락했다가 다시 떠올라 북쪽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바라보며 숨을 멈추었다. 이것이 바로, 황실이 그토록 독점하고 싶어 했던 마법사의 힘이었다.

    놀랄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로즈가 작은 손을 입가에 대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떨어지세요…! 교황청 건물에서 최대한 멀리…!”

    베네딕트의 눈이 새파랗게 변하자 이끼가 낀 오래된 석조 건물에서 돌덩이가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무… 무너지고 있다!!!”

    “교황청이 무너지고 있어!!!”

    처음엔 하나, 그다음엔 다섯 개. 마침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한 교황청을 보며, 호아킴은 자리를 뜨지 못한 채 이를 꽉 물었다.

    “하르트만 부인!”

    “가주!”

    그리고 그를 향해 달려온 클라라 하르트만의 칼이 호아킴의 목을 단박에 잘라 냈다. 무너지는 커다란 돌덩이에 깔리기 직전까지, 검은 상복을 입은 그녀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걸려 있었다.

    ***

    황궁 근위병으로 가득 차 있던 플라틴성은 텅 비어 있었다. 혜미는 발터와 함께 성의 맨 꼭대기에 올랐다. 테라스에서 무너지는 교황청을 바라보고 있던 크리스티앙이 천천히 뒤를 돌았다.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지? 한참을 기다렸는데.”

    크리스티앙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붙었다가 사르르 녹았다. 눈이었다. 혜미가 그를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게도 빨리 죽고 싶었어?”

    “그렇다기보다….”

    크리스티앙이 그녀를 보며 흐리게 웃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빛났다.

    “결혼식은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크리스티앙의 붉은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혜미는 발터를 뒤에 두고 천천히 그를 향해 다가섰다. 동쪽에서 가장 빨리 뜨는 해를 볼 수 있는 성. 때문에 가장 빨리 어두워지는, 마치 그를 꼭 닮은 플라틴성 꼭대기에서 크리스티앙이 그녀를 향해 어서 오라는 듯 양팔을 벌렸다.

    “넌 너무 욕심이 많아, 크리스티앙.”

    혜미의 눈동자가 희미한 빛을 냈다. 그녀가 들고 있는 단검의 손잡이에서 보석이 붉게 발열했다.

    “넌 자객을 보내 나를 몇 번이나 죽이려 했고, 싫다는 날 억지로 가두고 네 맘대로 가졌어.”

    그것뿐일까.

    “죄 없는 이들을 잡아 가두고 네 욕심을 위해 잔인하게 희생시켰어.”

    크리스티앙이 혜미를 보며 쿡쿡 웃었다. 혜미는 그에게 다가가 칼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잘못했다고 빌어. 그럼 한 번에 죽여 줄 테니.”

    크리스티앙이 코앞까지 온 그녀를 바라보았다. 칼끝이 그의 가슴에 닿자 크리스티앙의 입술이 조금 떨렸다. 그의 눈동자가 물기에 어려 낯선 빛을 냈다.

    “…내 마음을 네게 준 것이 잘못인가?”

    혜미는 마른침을 삼켰다. 크리스티앙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지고 싶은 이를 가진 것이 잘못인가?”

    “방법이 엉망진창이었다는 거, 네가 제일 잘 알 거라고 생각해.”

    “그러지 않았다면 네가 나의 것이 되었을까?”

    크리스티앙이 그녀를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그가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았던 황금성 곳곳이 불타는 모습이 그의 눈동자에 각인되는 순간은 꿈같아 현실성이 없었다.

    “넌 내게 너무 유해해.”

    “우린 서로에게 그러하지.”

    그의 말을 들으며 혜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크리스티앙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마치 불길에 던져진 얼음 조각처럼. 함께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부딪치고 엇갈리고 서로를 녹이고 꺼트린다.

    “내가 널 사랑하는 건 불가능하잖아.”

    크리스티앙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스러웠던가. 얼마나 많은 이가 죽었던가. 마치 스스로에게 말하듯 되뇌는 그녀를 보며 크리스티앙이 나직하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고백을 해 주는 건가?”

    “난 널 사랑하지 않아, 크리스티앙.”

    크리스티앙이 그녀의 젖은 눈을 뚫어져라 보며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양손을 꽉 쥐었다.

    “충분해.”

    혜미의 시선이 굳었다. 쇠붙이가 옷감을 통과해 살갗을 뚫는 거친 느낌이 생생했다. 스스로에게까지 지독하게 잔인한 황제는 두려움에 덜덜 떨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을 찌른 칼이 조금 더 가까이 심장에 다가갈수록, 그의 몸이 조금 더 그녀에게 가까이 밀착되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해 숨을 몰아쉬며 크리스티앙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뚝, 뚝.

    붉은 피가 크리스티앙의 가슴에서 흘러넘쳤다.

    “이러려고 온 거잖아.”

    혜미의 연보랏빛 동공에 입술을 비트는 크리스티앙의 얼굴이 새겨졌다. 차가운 손가락이 그녀의 얼굴을 꽉 감쌌다. 그리고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포악한 빛을 내뿜었다.

    “나와 함께 가려고.”

    크리스티앙은 확신했다. 사람의 눈동자를 보면 알 수 있는 게 있었다. 이 세상에서 사랑을 인정할 수 없다면 또 다른 세상으로 가면 된다. 그녀를 죽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단 한 사람, 자신뿐이었다. 황제가 테라스 아래에 숨겨 두었던 마수의 화살을 손으로 집어 공중에 치켜든 순간이었다.

    “폐하!!!”

    발터가 숨을 몰아쉬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창을 뽑았다. 공중을 날아간 묵직한 창은 시커멓게 변하는 크리스티앙의 팔뚝을 정확히 꿰뚫어 잘라냈다.

    “흐윽!!!”

    크리스티앙의 다리에서 힘이 풀려나가자 그가 테라스에 기댄 채 숨을 몰아쉬었다. 혜미가 단검을 잡아 뽑자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의 황금빛 머리칼에도, 창백한 흰 피부도 붉은 핏물로 젖어 들었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하얀 얼굴에 피 칠갑을 한 채로 크리스티앙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절대… 끝이라고… 하아…. 생각하지….”

    기다란 눈물이 핏물에 젖은 얼굴에 흘러내렸다. 혜미가 그의 입술 바로 앞에서 작게 속삭였다.

    “잘 자라. 크리스티앙.”

    크리스티앙의 몸이 테라스 아래로 추락했다.

    털썩. 커다란 소리가 나는 것이 크리스티앙의 마지막이었다. 흐려지는 그의 시야에 나풀나풀 눈이 내려오고 있었다.

    아래에서 누워 바라보니 눈에 보이는 것은 너른 하늘뿐이었다. 그를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던 찬란한 제국도, 화려한 황금성의 건물들도 도통 보이지가 않았다.

    “내 삶은 화려한 역사서의 한 페이지일 거라… 생각했는데….”

    창백해진 입술에서 희미한 중얼거림이 흘렀다.

    “결국은 진부한 로맨스일 뿐이었구나.”

    삶이란 이토록 우스웠다. 그리고 크리스티앙은, 그 사실이 별로 싫지가 않았다. 포근한 눈이 피에 물든 그의 몸을 소리 없이 덮었다. 지금 자면 영원히 깨지 않는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잠들고 싶지가 않다. 감기지 않은 눈동자에서 한 줄기 눈물이 길게 흘러내렸다.

    ***

    눈송이는 점점 더 굵어지고 있었다. 교황청은 완전히 무너졌고 황금성 곳곳에서 황녀의 승전을 뜻하는 횃불이 나부꼈다. 황제의 죽음에 황궁 근위대는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무기를 버린 후, 무릎을 꿇었다.

    “발터.”

    혜미가 발터를 바라보았다. 피 묻은 검이 대리석 바닥에 떨어졌다. 발터가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를 끌어안자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토록 너덜너덜해지고 나서야 손에 넣은 승리는 달콤하지도 안락하지도 않았다.

    “괜찮습니까?”

    발터가 뜨거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혜미가 울음을 참으며 배를 움켜쥐었다. 배 속에서 무언가가 반응한 탓이었다. 동시에 공간을 뚫고 점점 선명해지는 베네딕트의 모습이 보였다.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며 흐릿하게 웃는 쓸쓸한 얼굴을 보는 순간, 그녀는 지금 자신이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본 발터 역시 베네딕트를 발견했다. 눈물 젖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에게로 시선이 이동했다. 마른침을 삼킨 그가 그녀에게서 천천히 떨어졌다.

    “죽은… 폐하의 앞에서 목을 그었을 때….”

    묵직하게 잠긴 목소리가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이미 저란 존재는 없어졌는지도 모릅니다. 당시 제 진심이 뭐였는지도 확실치가 않습니다. 다만….”

    “발터.”

    “폐하의 성이 황금으로 뒤덮여 있든, 폐허이든 상관없이 폐하를 태양으로 여길 단 한 사람이 여기 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발터의 짙은 시선에는 거짓이 없었다.

    “그러니 제게 혹여 상처를 줄까 봐 두려워 마십시오.”

    혜미의 입술이 소리 없이 떨렸다.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의도를 짐작한 까닭이었다.

    “날 사랑하지 않아?”

    “사랑합니다. 목숨보다 더.”

    “근데 어떻게 날 놓을 수 있어?”

    발터가 핏발이 붉어진 눈으로 그녀를 보며 웃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기다란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저릿한 가슴을 꽉 붙잡은 채 마침내 결심을 끝냈다. 아무도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건, 그녀의 욕심에 불과했다. 그거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마음일지도 몰랐다.

    혜미가 고개를 돌려 베네딕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마음의 소리를 정확히 들은 각인의 상대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을 때였다.

    “흑…!”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무언가가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혜미는 발터에게 밀쳐져 바닥을 굴렀다. 온몸이 쭈글쭈글해져 인간의 몰골이라고 할 수 없는 하이데거가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폐하…!”

    베네딕트가 뒤늦게 그를 마력으로 저지하려 했지만 허사였다. 대공의 강력한 힘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그의 온몸을 강타했다. 교황청을 무너뜨리려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 올린 베네딕트는 이제 거의 힘이 남아 있지 않은 채였다.

    “폐하. 피하시길.”

    베네딕트가 숨을 겨우 이으며 빠르게 중얼거렸다.

    “그는 폭주하고 있습니다. 저대로라면 그냥 자폭할 것입니다. 어서 도망가십시오.”

    혜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배를 움켜쥐었다. 갑작스러운 복통이 느껴진 까닭이었다. 숨이 턱 막히며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바닥에서 기고 있는 혜미의 몸을 발터가 달려들며 감쌌다. 발터와 그녀 사이에 있던 난간이 부서지며 돌덩이가 여기저기 튀었다.

    “하아…. 아아….”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보는 발터의 눈이 어두워져 흔들렸다. 하지만 그녀의 상태를 살필 겨를도 없었다.

    “죽어라, 이 개 같은 년!!!”

    베네딕트에게 불길을 내뿜은 후, 하이데거가 눈이 뒤집힌 채 그녀에게 다시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발터는 망설이지 않았다. 이성보다 몸이 더 먼저 움직였다. 바닥에서 무언가를 집어 든 그가 달려가 몸이 불길에 사로잡힌 하이데거를 제 몸뚱이 하나로 막아섰다.

    “흣…!”

    흐트러진 은발 새로 베네딕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마력의 부작용으로 자신의 몸까지 태워 버리는 하이데거를 온몸으로 막아 낸 발터의 전신에 구멍이 뚫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배를 움켜쥔 혜미의 눈동자가 확장되며 얼어붙었다.

    “아… 안 돼…. 안 돼!!! 발터!!!”

    발터는 하이데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대공이 마력을 시전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발터의 옆구리에서 꿈틀거리는 시커먼 연기를 보고서야 그는 자신이 한낮 인간일 뿐인 발터를 떨쳐 낼 수가 없는 이유를 뒤늦게 깨달았다. 발터는 마수의 기운이 깃든 화살을 제 몸에 꽂아 스스로를 거대한 무기로 만든 것이다.

    “으아아아!!!”

    마수로 변하는 발터의 몸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혜미가 그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마치 투명한 장막에 가로막힌 듯 온몸이 튕겨져 나왔다. 베네딕트가 마지막 힘을 끌어올려 결계를 친 까닭이었다. 모두가 다 죽는 결말만은 막아야 했다.

    “보내 줘…!! 그에게 가게 해 줘!! 아아!!!”

    그녀는 숨을 몰아쉬는 베네딕트를 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며 포효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혜미는 결계 안에서 하이데거와 함께 자폭하고 있는 발터를 바라보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그의 몸뚱이가 검게 타들어 가는 가운데, 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짙어진 암갈색 눈동자만이 선명했다. 발터는… 웃고 있었다.

    “이든. 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냐?”

    “음… 글쎄. 갑자기?”

    그녀의 머릿속에서 안개가 순식간에 걷히며 물밀 듯 기억이 밀려들었다. 덥석 빵을 베어 문 발터가 그녀를 향해 눈썹을 삐딱하게 들어 올렸다.

    “다 줘도 아깝지 않은 거. 그 사람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거. 그 사람이 웃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거. 난 그거라고 생각한다. 너 같은 바보가 이해를 하려나 모르겠다.”

    “그런 표정 좀 짓지 마.”

    “왜, 너무 잘생겨서 가슴 떨려?”

    “뭐라는 거야.”

    “흐윽…. 흐으윽….”

    그녀의 눈에서 폭발적으로 눈물이 터져 나왔다. 강둑이 터진 것처럼 한꺼번에 넘쳐흐르는 세르노티의 기억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 기억의 모든 곳에 발터가 있었다.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그녀를 곁눈으로 보며 소리 없이 웃던 발터. 다치면 제일 먼저 달려와 버럭 화를 내던 발터. 귀를 새빨갛게 물들이며 사랑을 속삭이던 발터.

    “사랑해, 이든.”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절규하던, 그녀의 하나뿐인 연인. 그녀의 영혼은 그에게 너무 미안해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베네딕트와 합일하는 자신을 보며 갈가리 찢어지는 그의 심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잃어버렸던 기억이 수백, 수천 장의 사진처럼 그녀의 뇌리에 꽂혀 드는 순간 혜미는 이든이 되었고, 마침내 에데르트가 되었다. 변한 건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었다.

    “발터….”

    에데르트가 악을 쓰며 그에게로 달려갔다. 투명한 벽에 다시 부딪혔다. 발터가 나무 장작 같은 손을 뻗어 바닥에 떨어진 그녀의 단검을 집어 들었다. 몸부림치는 하이데거의 등을 뚫어 낸 칼이 그의 심장까지 닿았다. 그의 눈동자가 마지막으로 에데르트를 향해 깜빡였다.

    “안 돼!!!”

    에데르트는 베네딕트의 결계를 뚫고 안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몸에서도 청명하리만큼 새파란 빛이 발하고 있었다. 단전에서 시작된 푸른빛이 그녀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숨이 끊어진 하이데거의 몸이 완전히 녹아 사라지자 발터가 뒷걸음질을 쳤다. 다가오지 말라는 듯 그녀에게서 자꾸만 멀어지는 그를 보며 에데르트가 고개를 저었다.

    “가지 마….”

    그것이 생에서의 멀어짐 같아, 에데르트는 그와의 거리를 단박에 좁혔다.

    “아아…. 으흐윽…!”

    에데르트가 발터에게로 달려가 그를 끌어안았다. 딱딱하게 굳은 그의 몸을 붙들고 절규했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 새까맣게 타 버린 그의 가슴에 떨어졌다.

    “안 돼, 발터. 가지 마. 안 돼…. 나 안 돼…. 난 안 돼!!”

    “…흐…. 아….”

    “나도 데려가, 발터. 그럴 거면 나도 데려가!!!”

    발터의 손이 공중에 힘겹게 들렸다.

    “발터. 네가 나를 살렸잖아. 네가 나를 이곳까지 오게 했잖아!!”

    “후회… 안… 합니….”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그는 분명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발터는 자신을 보며 눈물을 터뜨리는 그녀를 향해 마지막 말을 전하려 안간힘을 썼다.

    “다치지…. 마….”

    “흐윽…. 발터…!”

    “반드시… 사십… 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넌 오래오래 살아라. 이든.”

    “왜? 왜 그래야 되는데?”

    “내가 네 본래의 삶을 빼앗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죄책감이 드니까.”

    “난 황제로 따분하게 사는 것보다 네 곁에서 사는 게 더 좋은데….”

    “이리 와.”

    에데르트가 입술을 아프게 깨물며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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