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1/72)

혜미는 잠시 망설이다 목을 한 번 가다듬었다. 뿌연 시야에 마치 조각상처럼 움직이지 않은 채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크리스티앙이 모습이 들어왔다.

그녀가 정신이 혼미한 채 앓고 있었던 며칠 전 밤. 그때도 그는 그녀를 이토록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같은 이불 속에서.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마주 누운 채로.

“…누군가 내게 적개심을 가지고 날 죽이려 한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난 너무 두려웠거든. 세르노티에서 가장 높은 탑 위에 있었는데, 그 위에서 뛰어내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공포감이 강했어. 안 그러면 뒤에서 날 공격하는 사람에게 칼을 맞아 죽을 테니까.”

“널 죽이라고 명령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고 분명히 말했어.”

크리스티앙이 낮게 입을 떼자 혜미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난 그걸 따지자고 이 말을 꺼낸 게 아니야.”

“그럼 뭐야.”

“네가 그랬지. 황궁은 칼을 들고 싸우지 않아도 이미 전쟁터라고.”

“…….”

뒷말을 쉽게 내뱉지 못하는 그녀의 곁으로 오두막 나무 천장에 맺혀 있던 물방울이 수면 위로 툭, 떨어지며 침묵을 갈랐다. 혜미는 자상이 뚜렷한 그의 팔목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는 아마도 평생을 누군가에게 칼 맞을 걱정을 하며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냥 맘이 안 좋았어.”

크리스티앙이 조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가 아름다운 얼굴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네가 지금 나를 동정해?”

기가 차다는 말투였다. 혜미는 숨을 한 번 들이마신 후, 진심을 뱉었다.

“…내가 이런 곳에서 쭉 살았더라면 정신이 나간 쪽은 네가 아니라 나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하하.”

크리스티앙이 날카롭게 웃었다. 그는 다 타 버린 담배가 꽂힌 상아색 담뱃대를 테이블 위에 올린 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굳이 남에게까지 확인받고 싶지는 않은데.”

“하지만 넌 확실히 도가 지나쳐. 크리스티앙.”

혜미는 부드러운 가운을 몸에서 떨어뜨리는 그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주춤주춤, 몸이 저절로 뒤로 움직였다. 커다란 바위를 쪼개어 붙인 벽이 그녀의 등에 닿았다. 둥근 탕의 반대편에서 나체가 된 크리스티앙이 시커멓게 보이는 물속에 다리를 차례로 집어넣고 있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

“뭐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황제의 몸에서 뚜렷한 흥분이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있었다. 그리고 혜미는 크리스티앙이 그것을 숨길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이한테 발정하는 걸 이해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

혜미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속삭였다. 베네딕트는 그녀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크리스티앙은 아마 죽어도 본인이 클라웨의 핏줄이 아니라는 사실을 제 입 밖으로 내지 않을 거라고. 그렇다면 그녀 역시, 그 사실을 최후의 보루로 삼고 자신을 지켜야 했다.

긴장 탓인지 아까부터 계속 온몸이 화끈거리며 뜨거웠다. 찰랑이는 물이 닿는 피부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마치 못 견디게 부드러운 깃털이 간질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하하….”

크리스티앙이 웃긴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더니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 줄까?”

크리스티앙이 탕 안의 계단에 앉아 등을 기댄 채 자신이 흙탕물이라고 지칭했던 물을 손으로 가볍게 저었다. 수면 위로 이리저리 파문이 일어 그녀가 앉아 있는 곳까지 출렁였다.

“이제부터 역사 공부를 시작하지. 따분하지만은 않을 테니까 잘 들어 봐. 이곳의 주인인 폴린은 클라웨 6세의 누이였어. 따지자면 너와 나의 증조 선대쯤 되겠군.”

느리게 숨을 쉬는 그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공간 내에서 공명음을 울렸다. 혜미는 저도 모르게 무릎에 힘을 주고 다리를 모았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가족끼리 사이가 더럽게 나쁘기로 유명한 클라웨에서 드물게 그들은 우애가 좋았는데….”

크리스티앙의 하얀 손이 황금빛 블론드를 쓸어 넘겼다. 반듯한 이마를 타고 물방울이 주르륵, 날카로운 턱선 끄트머리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남매간에 정이 어찌나 깊었는지 폴린은 평생 독신으로 황제의 곁에서 그를 보좌하며 살았어. 황제의 전속 시녀로 말이야.”

혜미는 입 안이 바짝 마르는 느낌에 손을 뻗어 다시 음료수로 목을 축였다. 물속에 잠겨 있는데 기분이 점점 이상했다. 유리컵을 꽉 쥔 손끝에 힘이 빠지는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이곳에서 온천이 발견된 이후, 황제는 폴린과 함께 이곳을 자주 찾았는데. 그때마다 안에서는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가 들렸다고 해. 둘은 한 번 들어가면 문을 걸어 잠그고는 달빛이 사라져 새벽이슬을 머금을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고.”

“…….”

“그들은 과연 이곳에서 뭘 했을까.”

“…나가야겠어.”

크리스티앙이 물에 목까지 잠기게 만든 후, 그녀를 향해 느리게 내뱉었다.

“난 알 것 같은데. 사람들의 눈이 적은 이곳에서, 그들이 대체 다 벗고 무슨 짓을 했는지.”

혜미는 자꾸만 열에 들뜨는 눈에 억지로 초점을 모으며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썼다. 달뜬 숨소리를 숨기려 해도 그럴 수가 없다.

“구역질 나?”

“…하아….”

“그게 클라웨의 음란한 피야.”

또렷하게 속삭이는 그의 표정에 희미한 경멸이 뒤섞였다. 크리스티앙이 머리끝까지 완전히 수면 아래로 침잠하는 순간, 혜미는 간신히 탕 밖으로 몸을 끌어 올렸다. 공간은 어둑했지만 시야를 분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의 벗은 몸이 그대로 보일 테지만 상관없었다. 크리스티앙의 시종이 깔아 놓은 푹신한 양탄자 카펫에 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 아아….”

수건을 낚아채 끌어안듯 움켜쥐자 몸이 자동으로 떨렸다. 면직물이 피부를 스치는 것조차 자극이었다. 그제야 뭔가 확실히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혜미는 숨을 몰아쉬며 물속에서 머리를 치켜든 그를 노려보았다. 젖은 머리칼을 완전히 뒤로 넘겨 조각 같은 얼굴을 드러낸 크리스티앙이 그녀를 보며 후후 만족스럽게 웃었다.

“반응이 늦어서 의아했는데.”

“…나한테 대체 뭘 먹인 거야?”

혜미는 내용물이 반이나 사라진 유리병을 보며 간신히 내뱉었다.

“말은 똑바로 해. 내가 억지로 먹인 게 아니라 네가 직접 들이켠 거야.”

“그러니까 저게 뭐냐고…!”

찰랑.

다시 수면이 흔들리더니 크리스티앙이 몸을 일으켰다. 나체의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완전히 젖은 크리스티앙이 그녀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선 그녀의 다리에 간이침대가 닿았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

“뭐라고 생각해?”

혜미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를 보며 몸을 감싼 수건을 꽉 쥐었다.

“내 불면이 걱정되는 것 아니었어? 그렇다면 허황된 동정의 말 따위를 지껄이는 대신 직접 몸으로 날 도와주는 건 어때?”

크리스티앙이 우뚝 서서 발기한 제 물건을 천천히 손으로 쓸었다. 아름다운 조각상 같은 그의 백색 신체에 툭 불거진 성기는 붉은 고동빛을 띠고 있었고, 마치 그 부분만 그의 육체가 아닌 것처럼 그로테스크해 몹시도 이질적이었다.

“내가 잠들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야. 정신을 잃을 정도로 격렬한 섹스지.”

“…너, 너 설마….”

“최고의 혈통을 가진 말끼리 수태시킬 때 이용되는 발정제를 마신 기분이 어때?”

꽉 다물린 혜미의 잇새로 격양된 욕설이 흘러나왔다.

“이 미친 새끼가…!”

“욕을 하긴 일러. 난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거든.”

크리스티앙이 그녀를 보며 젖은 얼굴로 웃었다. 유리 온실 같은 곳에서 그를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약에 완전히 취해 있던 크리스티앙의 얼굴. 그와 똑같은 얼굴이 그녀의 코앞에 있는데, 거부감이 들기는커녕 다리 사이가 뜨거워졌다.

“왜, 내 양물을 박아달라고 벌써부터 사정하고 싶어지는 건가?”

크리스티앙과는 손끝 하나도 마주 대지 않았는데 이미 그녀의 몸은 완전히 달아올라 있었다.

“웃기지 마.”

간신히 내뱉은 후, 혜미는 수건을 꽉 쥐고 닫힌 문을 향해 달려 나갔다. 꽉 막힌 공간의 더운 공기, 수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수증기조차 자극이었다. 황족의 체통을 지키는 것보다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더욱 시급했다.

덜컥.

열 오른 혜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덜컹덜컹. 거북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문은 쉽사리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빗장이 잠긴 게 틀림없었다.

“내일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이곳엔 아무도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어. 내가 그렇게 명령했거든.”

혜미는 일그러진 얼굴을 천천히 돌려 그를 보았다. 공간은 넓지 않았고 크리스티앙이 그녀의 코앞에 서는 데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의 선조들이 뭘 했을지 되짚어 보자고.”

“오지 마.”

“왜?”

크리스티앙이 짤막하게 물으며 그녀의 앞에 섰다. 금을 녹인 것같이 풀어진 시선이 그녀를 진득하게 잡아챘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그러니까, 왜.”

크리스티앙이 벽에 팔꿈치를 짚자 그녀는 이제 문과 그사이에 갇힌 꼴이 되었다. 열기에 젖은 그녀의 나체에서는 아직도 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닿기만 해도 널 그대로 바닥에 패대기쳐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

젖은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크리스티앙이 머리카락에 맺힌 물방울이 그녀의 가슴에 툭, 하고 흘러내리자 혜미가 입술을 꽉 깨문 채 몸을 흠칫 떨었다. 작은 물방울의 궤적을 타고 피부의 솜털이 단박에 곤두서며 젖꼭지가 빳빳하게 선 까닭이었다.

바람이 닿는다 생각했는데, 그것은 크리스티앙이 작게 웃음을 내뱉는 소리였다. 그가 머리를 이리저리 털어 내자 물방울이 가느다란 빗방울처럼 흩날리며 그녀의 얼굴을 적셨다. 마치 어루만져지기라도 하듯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 하지 말라고….”

시선을 피하던 혜미는 결국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 목소리가 애원하는 것처럼 가느다랗게 흘러나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크리스티앙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덮쳤다.

황금빛 눈매가 길게 가늘어지며 색정적인 유혹의 사인을 뚝뚝 흘려 댔다. 맙소사. 혜미는 그와 몸이 닿기만 해도 자신이 반응할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난 아무것도 안 했다니까?”

“꺼져.”

크리스티앙은 그녀의 바람대로 해 주는 대신 그녀에게로 고개를 숙였다. 그가 붉은 혀를 내밀어 자신이 흩뿌린 물방울을 느리게 핥았다. 뜨끈한 것이 뺨에 닿는 순간 혜미의 다물린 입술 새로 억눌린 신음이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흐으….”

예상은 사실이었다. 닿은 것은 그의 혀뿐인데 꿈틀거리는 그 작은 움직임에 하부에서 뜨끈한 기운이 삽시간에 단단히 뭉쳤다. 뺨을 핥는 크리스티앙의 숨결이 얼굴을 간지럽혀 견딜 수가 없었다.

“하, 하지 마…. 아아…!”

혜미는 손을 들어 그를 밀어내려 어깨를 짚으려 했지만 손에 걸린 것은 그의 머리카락이었다. 고개 숙인 크리스티앙이 그녀의 미끄러운 몸을 죽 타고 내려가 부푼 가슴의 정점에서 흔들리던 유두를 입 안에 쑥 집어넣은 탓이었다.

“하아…. 흐읏…!”

혜미의 몸이 격하게 떨렸다. 크리스티앙은 말 그대로 그녀의 젖가슴을 꽉 물어 흡착하듯 빨았다. 입술과 공기가 마찰하며 뻑, 뻑, 하는 소음이 퍼졌다. 마치 나오지도 않는 젖을 빠는 욕심 많은 어린아이처럼 연신 제 타액을 삼켜 가며 그녀의 젖꼭지를 탐하는 애무에 혜미가 숨을 헐떡였다.

“아흑…. 으응…!”

그를 밀어내려 했던 손이 마치 강아지의 그것처럼 부드러운 그의 머리카락 새를 정처 없이 비집었다. 등에 닿은 문이 덜컹거리는 것이 바람 탓인지 그녀의 몸이 절로 떨리기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그만…. 그마…. 아으응…!”

혜미는 교성을 내지르며 크리스티앙의 머리칼을 잔뜩 움켜쥐었다. 크리스티앙의 손이 그녀의 다리 사이에 미끄러지듯 들어온 탓이었다.

“반응 좋은데…?”

크리스티앙이 눈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 욕망에 잔뜩 취한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며 그가 붉은 제 입술을 혀로 핥았다.

“아, 아아, 크, 크리.…. 아흑….”

짤막한 교성이 엉망으로 끊어졌다. 크리스티앙의 손가락이 그녀의 질구를 가볍게 쓸어 넘쳐나듯 흥건한 애액을 손끝에 펴 바른 뒤 익숙하게 음핵으로 이동한 탓이었다.

여성의 굴곡 있는 성기를 착실히 애무하는 그의 손놀림은 부드럽다고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감각적이었다.

긴 손이 부푼 음핵을 이리저리 놀리듯 헤집다가 다시 아래로 미끄러져 피가 몰린 질의 입구를 배회했다. 질 속에서 근육이 단단히 뭉치며 찡한 아픔이 느껴질 정도였다. 혜미는 아랫도리를 엉망으로 움찔거리며 그를 향해 작게 애원하듯 속삭였다.

“이러지 마…. 아흑…!”

기다란 중지가 잔뜩 부푼 질구 안을 쑤욱 비집었다. 질벽이 기다렸다는 듯 그의 손을 꽈악 조였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이었다.

“손가락 잘리겠어.”

혜미는 입술을 바보같이 벌린 채 숨을 멈추고 크리스티앙을 노려보았다. 그가 그녀의 얼굴로 다시 다가와 뾰족한 콧날을 스치듯 그녀에게 부딪혔다.

“숨 쉬세요, 누님.”

“하아….”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붉은 얼굴로 길게 숨을 내쉬던 그녀는 이내 다시 호흡을 흡, 하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티앙이 손가락을 뒤로 물렸다 다시 처박은 탓이었다.

그의 손가락에 달라붙는 속살이 연신 애액을 뿜어 대며 수축했다. 길쭉한 음부 안으로 섬세한 손가락이 마디 끝까지 완벽하게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찔걱, 찔걱. 갈고리 모양으로 구부러진 손가락이 내벽을 비집을 때마다 혜미의 엉덩이가 움찔거리며 그를 저절로 조였다.

“하하, 숨 쉬라니까…?”

크리스티앙이 젖은 호흡을 그녀에게 흩뿌렸다.

“흐읏….”

부드러운 금발 새에 파묻혀 있던 혜미의 손은 어느덧 그의 목덜미를 꽉 붙들고 있었다. 더 이상 그가 다가오기를 저지하려 움켜쥔 것이었지만 완전히 흥분한 그녀의 질은 반가운 침입자를 꽉 붙들고 놔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놔주기는커녕 오히려 삼켜 버릴 듯 빨아들이는 중이었다.

“하아. 하아…. 흐응….”

온몸을 빨갛게 물들인 상태로 헐떡이는 그녀를 보며 크리스티앙이 풀어진 얼굴로 혀를 내민 채 취한 듯 웃었다. 장난치듯 콧날을 부딪치는 행동은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가벼웠지만 아랫도리에서 이뤄지는 음란한 손놀림은 그렇지 못했다.

그녀의 반응을 살피는 눈빛 역시 사납기는 마찬가지였다. 찔꺽거리는 소음이 점점 커지자 크리스티앙이 그녀의 내부로 손가락을 하나 더 늘렸다.

손바닥보다 더욱 기다란 중지와 약지가 빠듯한 속살을 꾹꾹 누르며 삽입과 후퇴를 반복했다. 어느덧 혜미의 허벅지는 크리스티앙의 움직임이 수월하도록 엉거주춤 벌어진 채였다.

그의 손놀림을 따라 그녀의 내부가 오므라들었다 펴지기를 반복했다. 쾌감이 뭉치며 질벽이 연신 애액을 생산해 냈다. 부드럽게 속살을 파내듯 움직이던 손가락에 힘이 붙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아…! 흑…!”

손가락과 손바닥이 연결된 부분이 그녀의 질구에 격하게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크리스티앙의 중지와 약지가 그녀의 안을 거침없이 꿰뚫으며 강하게 비집었다. 흘러나오던 애액이 격렬한 마찰에 허벅지까지 튀었다.

자극에 잔뜩 민감해진 여성기는 기다려 왔던 강한 삽입에 날뛰듯 반응했다. 피가 몰려 부풀어 오른 속살이 손가락에 샅샅이 달라붙었지만 크리스티앙은 일말의 미련도 없다는 듯 완전히 손가락을 빼내었다가 다시 강하게 처박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흣, 으응, 아, 아아…!”

“…동생에게 박히니 울 정도로 좋지?”

크리스티앙이 그녀의 입술에 제 입술을 붙인 채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혜미는 자신의 눈에 뜨끈한 눈물이 맺혀 있다는 것을 그제야 자각했다. 쾌락에 시야가 흐려진 게 이미 한참 전이라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다.

“응, 하, 하지, 마, 응, 하, 흐으윽….”

그녀는 교감 신경이 완전히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것 같다고 느꼈다. 손으로도 이런 감각이 가능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퍽, 퍽, 초침이 움직이는 속도로 그녀를 꿰뚫던 손가락에 두 배, 세 배의 가속이 붙었다.

추삽질이 빨라질수록 혜미의 허리가 제멋대로 꿈틀거렸다. 쾌락을 이미 경험한 몸은 바싹바싹 마른 땅에 물줄기를 선사하는 상대를 거부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뜨겁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크리스티앙이 손가락을 완전히 삽입할 때마다 그의 손바닥과 그녀의 비부가 마찰하며 손뼉을 치는 것 같은 젖은 소음이 울려 퍼졌다. 부푼 클리토리스를 함께 때려 대는 것은 의도한 게 분명했다.

크리스티앙은 거침없었다. 혜미와 똑같이 뜨거운 크리스티앙의 호흡이 그녀의 입 안을 들락거렸지만 정작 그는 그녀에게 입을 맞추지 않고 있었다.

“키스하면 싸고 싶을 것 같은데.”

크리스티앙이 마치 그녀의 마음을 읽은 듯 나른하게 중얼거렸다. 혜미가 닿을락 말락 할 거리에 있는 붉은 입술을 핥으려다 말고 아프게 꽉 깨문 것은 본능과 이성이 충돌한 결과였다.

“흐응…!”

“씨발….”

그 순간 크리스티앙이 자유로운 손으로 그녀의 턱을 거칠게 내린 후, 그녀의 입 안을 무자비하게 비집었다. 뜨끈한 혀의 돌기가 비벼지고 누구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교성이 뒤엉켰다.

크리스티앙이 거칠게 그녀의 혀를 빨며 잔뜩 젖은 손을 그녀의 안에서 빼냈다. 갑자기 비어 버린 아랫도리에 그녀가 허전함을 느낄 새는 없었다.

“아, 아앙…!”

혜미의 탄력 있는 허벅지를 압박하며 아까부터 존재감을 드러내던 그의 성기가 진득하게 풀어진 내벽에 단박에 쑤셔 박힌 탓이었다.

크리스티앙의 검붉은 페니스는 격한 삽입만으로 그녀를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더 큰 쾌락을 원했던 몸뚱이가 열렬히 그를 붙들었고, 그의 몸은 그녀의 반응에 격렬한 왕복운동으로 화답했다.

크리스티앙이 그녀의 한쪽 허벅지를 감아쥐고 거칠게 올려 박을 때마다 혜미의 내부에서 성감이 폭발했다. 물어뜯는 것 같은 키스는 어느새 서로를 원하는 것처럼 혀를 돌리며 타액을 빠는 뜨거운 입맞춤으로 바뀌어 있었다.

크리스티앙은 철저하게 제 맘대로였다. 제가 만족할 때까지 실컷 입술을 취한 후, 매몰차게 떨어지며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다. 혜미는 그런 제멋대로의 키스를 더욱 원하고 있는 제 상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 아, 흑, 응, 으응…!”

“가족끼리 섹스를 하는 건 이런 기분이군.”

“흐윽…. 으응…!”

“남매끼리, 틈만 나면 접붙었다던 선대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아. 아마 너도 그렇겠지?”

혜미는 쾌락에 달뜬 얼굴로 정신을 차리려 애를 썼지만 불가능했다. 크리스티앙이 내뱉는 헛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다만 마구잡이로 범해지는 아랫도리가 미치도록 기분이 좋았다.

이대로 아무 생각도 없이 절정에 다다르기만 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흐렸던 그녀의 눈에 초점이 반쯤 돌아왔다.

…내가 지금 크리스티앙과 뭘 하고 있는 거야?

짝!

일그러진 황금빛 눈에 광기가 어렸다. 다시 한번 짝, 하는 소리와 함께 스스로 제 뺨을 후려친 그녀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얼마나 세게 후려쳤는지 작은 얼굴에 시뻘건 손자국이 생생했다.

“이게 어디서 앙탈을 부리고 있어.”

혜미가 다시 한번 제 얼굴을 강하게 때리려는 순간, 크리스티앙이 그녀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아채고 몸을 휙 돌렸다. 벽에 완전히 붙은 자세가 된 혜미의 얼굴에 통나무 벽이 짓눌렸다.

“흐윽…!”

자해할 수 없게 만들어 놓은 후, 크리스티앙이 다시 그녀의 뒤에서 안을 단박에 쑤셨다. 폭력적인 삽입이었다.

그는 한 손으로는 그녀의 짤막한 머리칼을, 다른 한 손으로는 아랫배 밑쪽 여린 음모를 뽑아버릴 듯 움켜쥔 채 거칠게 추삽질을 이어 나갔다. 비명이 절로 튀어나올 만큼 아찔한 고통과 짜릿한 쾌감이 뒤엉키자 혜미의 머릿속이 곤죽처럼 녹아 줄줄 흘러내렸다.

“네가 그런다고 날 거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찌걱. 찌걱. 하얀 애액과 선액이 마찰하며 끈적한 크림처럼 엉겨 붙었다. 엉망진창이 된 그녀의 비부를 강력하게 때릴 때마다 그녀의 엉덩이가 마찰에 붉게 물들었다.

“네 몸은 앞으로 연거푸 절정에 오르기 전까진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해.”

“흐으….”

“아마 지금 네게는 아픔마저도 쾌감이겠지. 미약을 마시고 그 물에 몸을 완전히 담그기까지 했으니 네 몸이 이 지경인 것도 당연해.”

같은 약을 들이켠 것은 크리스티앙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이미 반복된 경험으로 몸에 내성이 쌓인 후였다. 이 정도 양 가지고는 이성을 잃을 만큼 흥분하는 게 불가능한데 자신이 오래 참긴 한 모양이었다. 사정감이 치밀어오르며 고환까지 저릿하다. 삽입 전부터 그는 이미 이 상태였다.

“내 혀를 빨아.”

“하아…. 아아….”

“키스가 마음에 들면 널 괴롭지 않게 해 줄게.”

쿡, 하고 크리스티앙이 그녀의 내벽 한 지점을 성기 끝으로 지그시 짓눌렀다. 탄탄한 허리가 느리게 원을 그리며 움직이자 감각점이 달아오르며 음부가 저절로 옴죽거렸다.

혜미는 이를 꽉 깨물었다. 그러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더 강하게 치받아 달라는 수치스러운 애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해독제가 필요 없나? 좋아, 그럼 나와 탈진할 때까지 실컷 몸을 섞으면 되겠군. 내일 아침, 누군가가 문을 열 때까지 내게 박히는 걸 원한다면 그렇게 해 주지.”

그녀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온몸을 떨며 반응하면서도 그의 유혹을 안간힘을 쓰며 참아 냈지만 해독제가 있다는 말이 결정적이었다.

“흐으…. 윽….”

마침내 미끼를 문 혜미가 울음 같은 신음을 내뱉으며 크리스티앙의 혀를 핥았다. 뚝, 떨어지는 타액을 핥으며 빨자 그녀의 입술이 그에게 완전히 먹혔다. 동시에 크리스티앙이 허리를 뒤로 확 물린 후, 가장 좋은 부분만을 강하게 때려 대기 시작했다.

혜미의 열 오른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크리스티앙의 혀를 애타게 빨며 비비자 그가 그녀를 뒤에서 껴안으며 마음껏 허리를 치댔다. 힘을 준 손가락 사이사이에서 뽀얀 젖가슴이 비좁은 공간을 이기지 못해 부드러운 반죽처럼 튀어나왔다.

“약, 흐으, 약을… 하읏… 제, 제발…!”

간신히 떨어진 입술 새로 덜덜 떨리는 목소리가 애원하듯 흘러나왔다. 보랏빛 눈동자는 눈물에 어룽져 엉망이었다. 크리스티앙이 그녀의 뺨에 이를 지그시 박았다.

“그 소릴 믿다니.”

그가 쉰 목소리로 젖은 웃음을 토해 냈다.

“누님은 멍청해서 귀여운 데가 있네. 아주 죽여 버리고 싶게.”

달아오른 혜미의 얼굴이 분노에 일그러졌다.

“이 개같은 새끼…. 하윽…!”

그를 믿었던 스스로를 자책할 틈도 없었다. 음모를 뽑아 버릴 듯 움켜쥐고 있던 손이 내벽의 쾌락점과 연결된 클리토리스 위를 마구 자극하며 돌려 댔다. 머릿속이 하얗게 녹아든다.

“내가 예언 하나 할까?”

크리스티앙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누님은 오늘 밤, 내 아이를 가지게 될 거야.”

혜미는 그의 헛소리를 비웃어 주지도 못했다. 어차피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몸이라는 걸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핏줄이 붉어진 페니스가 연신 그녀의 내벽을 꿰뚫었다가 빠져나오기를 반복하며 쾌감에 박차를 가했다.

“그 아이는 황제의 고귀한 첫 핏줄이 되겠지. 클라웨의 완벽한 혈통을 가지고 태어나게 될, 우리의 아이.”

크리스티앙은 고환까지 쑤셔 박을 기세로 허리를 튕겨 댔다. 애액과 선액이 지저분하게 섞인 흥분의 부산물이 서로의 것에 묻으며 뒤엉켰다. 그녀는 이제, 절정에 다다르고 싶다는 생각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 아! 응…! 흑…! 하, 아, 크, 크리… 스티아…. 으응…!”

혜미의 발끝이 마치 무용수처럼 바짝 위로 들렸다. 종아리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크리스티앙이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은 채 목덜미를 강하게 깨물었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아픔마저도 강력한 쾌락이었다. 덜덜 떨며 고개를 치켜든 혜미는 젖은 눈을 꽉 감았다. 통나무 새로 희미하게 들이치던 오후의 빛이 사라져 암흑이 되었다.

절정이 키를 넘긴 파도가 되어 그녀를 휩쓸기 직전, 혜미는 상처가 벌어져 피가 터진 크리스티앙의 팔뚝에 매달리며 쾌락에 몸을 내맡겼다. 어디선가 부우, 하는 희미한 나팔 소리가 들려왔지만 혜미는 그녀 본인이 내지르는 교성에 묻혀 확실히 들을 수가 없었다.

***

나팔 소리가 황성 하늘에 일정한 간격으로 세 번 연속 울려 퍼졌다. 길게 경적을 울리는 것 같은 소리였다. 서쪽 연무장에서 대련하고 있던 발터와 세르노티의 기사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명령이 있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대기하라!”

황궁 근위대의 훈련대장 중 하나가 인상을 굳히더니 신호가 들려온 동쪽으로 재빠르게 몸을 돌렸다.

“무슨 일입니까?”

같은 연무장을 이용하고 있는 리비에르 역시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끼고 그를 따라 말에 훌쩍 몸을 날렸다.

“플라틴성에서 사고가 생긴 모양이오. 히럇!”

서걱거리는 모래 먼지 뒤에서 발터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드디어, 베네딕트가 사라진 것이 틀림없었다.

“우리도 가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심각한 얼굴을 하는 토비아스를 향해 발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린 상황이 정리되기 전엔 여기서 떠나지 않는다. 그것보다, 아까 하려다 멈춘 이야기가 뭐지?”

“아, 그게….”

토비아스는 리비에르가 사라진 쪽을 염려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조세핀에게 한 번 시선을 주었다가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돌렸다.

“조세핀에게 아주 어릴 때 황성으로 뽑혀 간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자신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은 그녀에게 미안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전쟁은 수많은 이들의 목숨이 달린 일이다.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은 최대한 없애야 했다. 토비아스가 이곳까지 온 것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였으니까.

세르노티의 기사들은 황실에 맹목적인 충성을 바쳤던 선대 가주, 발트리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들은 단지 이든이 황실의 후계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녀를 지지한 게 아니었다.

고향을 떠나 황금성까지 함께한 이유는 지금껏 그들이 세르노티에서 지내 왔던 시간을 믿기 때문이다. 이든은 완전무결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녀가 때로는 약하고, 눈물이 많으며, 지쳐 쓰러질 수도 있는 보통 사람이라는 사실은 그녀와 함께 자라 온 그들이 제일 잘 알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든이라면 어떤 험난한 상황이 오더라도 충분히 괴로워한 후 종국에는 올바른 선택을 할 게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생을 위해 황금성에 반드시 와야 했다던 조세핀에게도 결국, 좋은 일이겠지.

토비아스는 적어도 그렇게 믿었다.

노을이 깔리는 하늘 위로 검은 새 한 마리가 음산한 교황청을 향해 멀리 날았다.

***

거친 파도에 집어삼켜졌다가 간신히 빠져나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혜미는 크리스티앙이 떨어져 나가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직도 뚜렷한 등의 상처에 통나무 벽이 쓸렸지만 아픔을 느끼고 있을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

“쿨럭…. 쿨럭….”

혜미가 마른기침을 내뱉자 크리스티앙이 눈을 가늘게 뜨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벌써 엄살을 떠는 건가? 만족하려면 한 번 가지고는 성에 차지도 않을 텐데.”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희멀건 정액이 서서히 모습을 보였다. 혜미는 회음부에 흐르는 생생한 감각에 저도 모르게 양팔로 제 몸을 감싸며 흠칫 떨었다. 크리스티앙이 묘한 표정으로 아랫입술을 슬쩍 깨물었다.

“아. 이제 보니 유혹을 하는 거였군.”

“…닥쳐.”

“네 행동이 지금 딱 그런걸. 꼴사나워 구역질이 날 지경이야.”

혜미는 구역질이 난다면서 제 성기를 훑기 시작한 그를 말없이 노려보았다. 크리스티앙이 안에 뿜어 놓은 정액이 푹신한 양탄자를 적시고 있었다.

양 무릎에 힘을 주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크리스티앙은 본격적으로 자위를 시작했다. 그녀의 애액이 잔뜩 묻은 그의 손이 부푼 성기를 쥐어 감싸며 잡아당겼다. 흰 피부와 대조되는 검붉은 성기가 힘차게 꺼떡였다.

크리스티앙은 자위도 저처럼 노골적으로 야했다. 주저함은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고 고환까지 들어 올려 주무르는 손짓은 오히려 제 남성을 과시하는 듯 느껴지기까지 했다. 살갗 위로 손이 스륵거리며 움직이는 소리까지 생생했다.

크리스티앙은 제 성기를 쥐어짤 듯 꽉 움켜쥐었다가 힘을 푸는 움직임을 반복하는 와중에 엄지로는 젖은 요도를 중심으로 귀두를 문질거리며 자신의 성감을 최고조로 자극시키고 있었다.

크리스티앙이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새빨간 혀로 입맛을 다실 때마다 몸이 저절로 움찔거렸다. 그가 흥분하는 주체가 눈앞에 나체로 주저앉아 있는 그녀라는 사실은 명백했다. 마치 눈으로 범해지는 것 같은 오싹한 기분이 들며 피부에 살갗이 돋아 오른다.

“…다리 벌려.”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그가 낮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이듯 명령했다. 자신의 물건을 강하게 훑어 대는 그의 팔뚝에 활시위를 팽팽히 당긴 것처럼 힘이 들어갔다.

“내 정액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면 상을 주지. 만일 조금 흘러나왔다 해도 걱정하진 마. 다시 잔뜩 싸질러 줄 테니까.”

“웃기지 마.”

혜미가 그를 보며 경멸조로 작게 내뱉었다. 자신의 몸을 강제로 흥분시켜 이따위로 무간지옥에 빠트린 크리스티앙의 목을 당장이라도 비틀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와 몸이 닿자마자 다시 흥분할 게 명백한 까닭이었다.

지금도 그녀의 몸 안에서 흥분의 불씨는 꺼지기는커녕 활활 타오르는 중이었다. 몸속 깊은 곳의 비밀스러운 근육이 제멋대로 수축한다.

“버텨 봤자 소용없어. 음부를 손으로 활짝 벌리고 더러운 곳에 제발 내 양물을 쑤셔 박아 달라고 간청해라.”

크리스티앙과 있을 때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풀었던 자신을 후회해 봤자 소용없는 이야기였다. 잠시나마 그를 연민했던 스스로가 끔찍하리만큼 멍청했다.

혜미는 정신을 차리려 입술을 꽉 깨물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에 힘을 주고 안간힘을 쓰며 일어나려 했을 때였다. 크리스티앙이 그녀의 정수리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머리카락이 뽑힐 듯 잡아당겨졌지만 고통마저도 쾌감을 닮아 있어 절망적이었다.

“흑…!”

“경고 하나 하지.”

눈을 찌푸리고 몸을 가늘게 떠는 그녀의 눈앞으로 색이 짙은 물건이 바싹 붙었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온 애액 그리고 제 정액이 뒤섞여 엉망으로 젖어 있는 그의 페니스를 보며 혜미의 몸이 가슴까지 시뻘겋게 물들었다.

크리스티앙이 그녀의 머리채를 잡은 손에 힘을 더욱 꽉 주었으므로, 혜미는 두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티앙이 목이 마른 듯 붉은 입술을 혀로 축이며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앞으로 절대, 내게서 먼저 시선을 돌리지 마.”

“물어뜯어 버리기 전에 저리 꺼…. 흡…!”

불안한 예감이 들어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늦었다. 크리스티앙은 한 손으로는 그녀의 정수리를 꽉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래턱을 잡아 내린 후 빳빳하게 치솟은 성기를 그녀의 입 안으로 거칠게 쑤셔 넣었다. 아직도 축축하게 젖어 있는 그의 체향이 단박에 비강을 타고 밀려들었다.

“흑…!”

단박에 끝까지 들어온 크리스티앙은 숨을 한 번 몰아쉬더니 이내 허리를 뒤로 물리곤 다시 거칠게 들이받았다. 그녀의 턱이 한계까지 벌어진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흐으…! 으음…!”

물리적 압박감에 속도감이 더해 갔다. 의지와는 달리 물어뜯는 것은 불가능했다. 크기 탓에 반밖에 들어가지 않는 그의 성기가 그녀의 목구멍을 찌를 때마다 울컥거리며 구역감이 드는 것과 동시에 아랫도리에서는 뜨거운 것이 줄줄 흘러내렸다.

더럽고 수치스러운 흥분을 몰아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그녀를 완전히 벽에 몰아붙인 크리스티앙의 맨발이 그녀의 허벅지를 누르고 있었으므로 일어설 수조차 없었다.

혜미는 크리스티앙의 팔뚝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상처가 이미 벌어져 피가 터진 곳을 아프게 헤집었다. 크리스티앙은 실소를 내뱉은 후 허릿짓에 더욱 박차를 가할 뿐이었다. 희고 탄탄한 허벅지가 흐릿한 시야에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길 반복했다.

“왜. 아랫도리가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나?”

크리스티앙이 숨을 몰아쉬며 새빨개진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담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이제껏 그녀에게 충분히 너그럽게 대했다. 자신의 인내심에 스스로 놀랄 지경이었으니, 이 정도는 성에 차지도 않았다.

다만 그가 바라던 완벽한 모습으로 무릎 꿇은 채 자신을 받아 내고 있는 장면은 몹시도 만족스러웠다. 눈물이 찬 보라색 눈동자에 가득한 분노를 보자 참을 수 없는 사정감이 크리스티앙의 배 속을 치고 심장까지 올라온다.

“그래. 그렇게 날 유혹하듯 바라봐.”

크리스티앙이 더욱 격하게 치받으며 만족스레 내뱉었다. 그녀가 제게 품고 있는 게 무슨 감정이든 상관없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눈에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녀의 머릿속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에게 완전히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그의 흥분에 불을 질렀다.

“박아 달라고 눈빛으로 애원하면 그리해 주겠다.”

혜미는 그의 말에 반항하듯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그의 성기를 타고 울컥거리는 타액이 끊임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아래가 뜨거워 그 속에 당장 뭘 쑤셔 넣지 않고는 미치게 고통스러울 걸 알아. 그러니 내게 제발 안아 달라고 빌어.”

크리스티앙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입 속에 멋대로 성기가 쑥쑥 들이박히는 폭력적인 상황. 턱이 빠질 듯 아프고 타액이 줄줄 흘러내리는 상황에서도 그녀의 비부는 삽입을 기대하는 듯 멋대로 움찔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할 수는 없었다. 절대로.

“…흣…!”

혜미는 그에게 애원하는 대신 목구멍으로 그를 조였다. 크리스티앙이 사정하기 전에는 이 짓을 멈추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장이 뒤틀리는 것 같은 와중에 그녀의 머리칼을 잡아챈 그의 팔이 부들부들 떠는 것이 생생했다.

“씨팔…. 하아…!”

크리스티앙이 욕설을 내뱉으며 숨을 멈추었다. 혜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자유로운 손으로 그의 허리를 뒤로 강하게 밀친 후, 껍질이 밀려난 그의 귀두 속살을 뜨끈하게 혀로 빙글빙글 돌려 핥았다. 갈라진 요도에서 찝찌름한 선액이 멀겋게 흘러나오자 소리 내어 그를 빨며 민감한 귀두를 자극했다.

쪽. 쪽.

강하게 빨수록 그녀를 노려보는 황금색 눈동자가 어둠을 잔뜩 머금고 가늘어졌다. 소리 없이 벌어지는 그의 붉은 입술, 꿈틀거리는 날카로운 눈썹. 그녀는 크리스티앙이 사정에 가까웠다는 것을 직감했다. 빨리 끝내고 그가 조금이라도 긴장이 빠진 틈을 타 이곳에서 달아나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혜미는 그의 성기 기둥에 입술을 미끄러뜨리며 강하게 흡입했다. 입 안에 채 담지 못한 뿌리는 손으로 흔들며 사정을 재촉하자 크리스티앙의 하얀 팔뚝에 푸른 핏줄이 비쳤다. 그가 마침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쇳소리를 내뱉었다.

“이게… 지금, 어디서 창녀 짓을 하고 있어…?”

크리스티앙이 성기를 거칠게 빼내고 그녀를 번쩍 안아 들었다. 너무도 순식간이라 버둥거릴 틈조차 없었다.

“흑…!”

높게 솟은 천장이 조금 가까워지더니 곧이어 추락하며 혜미의 얼굴에 푹신한 이불이 처박혔다.

좌르륵!

“아흑…!”

곧이어 머리에서부터 쏟아지는 차가운 감각에 혜미는 저도 모르게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몸에 미약을 탄 음료수를 한꺼번에 쏟아 버린 크리스티앙이 빈 통을 거칠게 바닥에 내팽개치고 침대 위에 올라 그녀의 몸을 양 무릎 사이에 끼웠다.

“안아 달라 애원을 하라고 했지 창녀처럼 좆을 빨라고 하진 않았는데.”

내뱉는 목소리가 엉망으로 갈라졌다. 혜미는 벌게진 눈으로 그에게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애원해야 하는 쪽은 너였겠지.”

“뭐?”

크리스티앙이 그녀를 보며 코웃음을 치며 되물었다. 하지만 혜미는 그 역시도 극도로 흥분해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는 사실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

“하아…. 왜? 내가 빨아 주니까 숨을 못 쉴 정도로 흥분해서 당황스러웠니…?”

크리스티앙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표정을 바꾸었다. 그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그가 성기를 쥐며 밭은 숨을 내뱉었다.

“그래. 누이 덕분에 그대로 쌀 뻔했지. 경험이 풍부해선가? 기술이 대단해, 아주…!”

검붉은 성기 끝에서 정액이 예고도 없이 뿜어져 나오자 혜미는 말을 끝내지도 못한 채 눈을 질끈 감았다. 배와 가슴, 유두와 턱 끝을 때리고 얼굴에까지 정액을 맞는 느낌이 지독히도 생생했다. 코를 찌르는 수컷의 체향에 몸서리가 쳐질 지경이었다.

“흡…!”

크리스티앙의 사정은 길었다. 그녀의 눈썹과 속눈썹, 콧등과 뺨, 입술에까지 진한 정액이 엉겨 붙었다. 혜미는 입을 꽉 다문 채 격한 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보석을 걸친 것보다도 지금 모습이 가장 아름답구나.”

속삭이는 크리스티앙의 목소리를 들으며 혜미는 수치심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네게는 내 것이 제일 잘 어울린다.”

그가 정액으로 범벅이 된 그녀의 젖은 뺨을 감싸 쥐어 문질렀다. 크리스티앙이 혜미의 속눈썹에 붙은 정액을 훑으며 만족스레 웃었다.

“눈을 떠 봐. 감상을 제대로 해야겠으니.”

혜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크리스티앙이 그의 하얀 손을 타고 흘러내리는 체액을 그녀의 입술 안으로 잔인하게 쑤셔 넣었다.

“눈 뜨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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