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72)

토비아스가 숨을 몰아쉬었다. 두꺼운 철을 몇 겹이나 꼬아 만들어진 도르래의 이음새는 단단했다. 처음부터 무리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는 성벽 아래, 추의 역할을 하는 무거운 바위를 바라보며 잠시 마른침을 삼켰다.

추와 도르래가 밧줄로 연결된 부분. 저곳만 잘라내면 쇠사슬은 느슨해지고, 성문이 내려가며 제트성과 진영이 연결되는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계획에 넣을 수 없었던 사실이었다.

[이봐,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저 새끼, 죽여!]

성벽 위로 기어오르지 못하는 수백의 말라쿤들이 그를 보며 눈을 희번덕거렸다. 토비아스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성벽에서 아래로 몸을 날렸다.

“이아아아아!!!”

퍽!

달려드는 말라쿤의 머리를 도끼로 깬 후, 피가 묻은 도끼날로 밧줄을 끊어 냈다.

[저 새끼 없애 버려!]

휙! 휙!

말라쿤이 들고 다니는 커다란 양날 검이 그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토비아스는 바닥을 구르면서도 그가 끊어 낸 도르래의 쇠사슬이 풀리고 있는 모습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이제 남은 밧줄은 두 개.

[이 쥐새끼가!]

그의 주위를 우글우글 에워싼 말라쿤들 사이에서 토비아스가 다시금 몸을 날려 밧줄 하나를 다시금 잘라냈다.

“흣!!!”

붕, 날아든 도끼가 그 대신 바닥을 세차게 내리쳐 움푹 팼다. 조금만 늦었어도 박살 나는 것은 그의 얼굴이 되었을 것이다.

두려움에 몸이 떨렸지만 토비아스는 이를 꽉 깨물고 정신을 차렸다. 포기할 수 없다. 토비아스는 말라쿤의 어깨를 발판 삼아 뛰어올라 마지막 남은 밧줄을 끊어 냈다. 그리고 검을 빼낸 후, 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끼이익.

칼을 휘두르며 달려나가는 토비아스의 얼굴에 흐릿한 미소가 번졌다.

나는 해냈어.

드르르르르.

쿵!!

굉음과 함께 도개교가 열렸다.

이걸로 임무 완수다.

성벽에서 뛰어내린 순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접었다. 그가 들고 온 것은 밧줄을 자를 도끼와 가벼운 검 하나뿐.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하기 위함이었다. 방패조차 없는 그의 몸이 말라쿤에게 갈기갈기 찢겨 나갈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챙! 챙!

하지만 나는 이걸로 됐다. 세르노티의 의사 토머스 가일란의 둘째 아들 토비아스 가일란은 세르노티 기사로서 명예롭게 죽는다.

“야이 개 씨발 새끼들아!!!”

그의 비장한 각오에 찬물을 와락 끼얹기라도 하듯 카랑카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캄캄했던 진지에 동시다발적으로 횃불이 켜지더니 곧이어 불붙은 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이거 뭐야?]

성안에 숨어든 쥐새끼에게 달려들던 말라쿤이 당황해 불화살을 피했다. 화살이 날아오는 곳은 성 바깥이 아닌 성 안, 탑이 위치한 쪽이었다. 저도 모르는 새 성안으로 잠입한 적군이 칼을 들고 돌진하고 있었다.

“공격해!!!”

조세핀이 소리를 지르며 칼을 휘둘렀다. 그녀의 뒤를 군사들이 따라붙었다. 토비아스가 성문 꼭대기에서 아래로 뛰어내릴 때, 조세핀은 눈알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어딘가 덜 떨어지게 보이는 녀석이 멍청한 선택을 내릴 거라는 직감은 무섭도록 정확했다.

하지만 그는 죽어서는 안 됐다. 일당백으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는 역할은 비실비실하기 짝이 없는 그에게는 너무도 안 어울린단 말이다.

“다 죽여라! 모조리 죽여라!”

“예!”

챙! 챙!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 여기저기 쓰러지는 말라쿤과 아군들 사이에서 조세핀이 미친 듯 검을 휘둘렀다.

“고마워, 조세핀.”

“넌 여기서 안 죽더라도 나한테 죽을 줄 알아!”

토비아스에게 달려드는 말라쿤의 목을 푹, 찌르며 소리 지르는 조세핀은 너무 흥분해 그가 그녀에게 처음으로 말을 놓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뭐? 날 믿고 달리겠다고? 그런 개소리를 지껄여 놓고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챙!

“이렇게 빨리 와줄 줄은 몰랐는데.”

토비아스가 그녀에게 달려드는 이의 검을 쳐내며 축축한 눈으로 내뱉었다. 그는 그저 시간을 벌 생각이었다. 임무 완수는 확실히 해냈으니 이대로 죽는 것도 세르노티 기사단으로 충분히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씩씩거리는 조세핀을 보니 어이없게도 조금 더 살고 싶다는 기분이 든다.

“난 원래 빨라! 입 다물어!”

소리를 버럭 지른 조세핀이 적과 칼날을 부딪친 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대로 그들이 버티는 데는 수적으로 한계가 명확했다. 길어야 5분을 넘지 않을 것이다.

‘공격조는 대체… 언제 오는 거지?’

우르르.

땅이 가늘게 진동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기세등등하던 말라쿤의 표정이 삽시간에 바뀌었다.

[스, 습격인가…?]

열린 성문 사이로 빠르게 가까워지는 군단의 모습이 보였다. 그 앞을 선두로 달리며 군대를 이끌고 오는 이는 그들이 너무나 잘 아는 이였다.

“리비에르 님이 오신다!!! 확실하게 길을 터놓자!!!”

조세핀이 소리를 지르자 간신히 버티던 군사들에게서 커다란 목소리가 터져 나갔다. 강력한 아군의 지원만큼 그들의 사기를 돋울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우아아아!!!”

둥. 둥. 북소리와 함께 제트성의 위험을 알리는 징 소리가 밤하늘을 요란하게 찢었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

“하아…. 하아…!”

아일라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벌써 몇 명의 목을 잘랐는지 알 수가 없었다. 쑤욱, 쑤셨다가 잡아 빼고, 그녀를 뒤에서 공격하는 이를 방패로 막아 낸 후 칼로 배를 쑤셨다. 진득한 피가 꿀렁거리며 검날을 타고 흘러 그녀의 손목까지 적신다.

대체 리비에르는 이 꼴을 하고 이제껏 어떻게 싸운 거지…?

몸을 훤히 드러낸 가죽 갑옷은 방어구의 기능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겪으니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몸서리가 쳐지게 실감이 났다. 아일라는 이를 뿌득 갈았다.

[네년이 리비에르구나.]

[팔다리를 잘라 리가스 님에게 가져다주겠다. 어차피 계집에게 필요한 건 구멍뿐이니.]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말라쿤은 그녀를 향해 눈을 희번덕거리고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휙!

그녀에게 뛰어드는 말라쿤 두 명의 모가지가 발터의 칼에 숭덩, 한꺼번에 잘려 떨어졌다.

화르륵.

조세핀이 점령해 놓은 탑에서 군사들은 계속 불화살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성문을 통과하자 말은 쓸모가 없었다. 이제부터는 적과 근접해서 무기로만 붙는 백병전이었다.

말라쿤과 붙어 전투하고 있는 군사들을 뒤로하고 발터와 아일라는 제트성의 중심부로 단박에 헤쳐 들어갔다. 깊은 새벽에 이루어진 급습이었다. 말라쿤의 왕은 아직 성안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아일라. 빈센트와 함께 1, 2층을 확인해라. 난 꼭대기에서부터 내려오며 확인할 테니.”

“네.”

아일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발터가 빠르게 이동했다. 그녀 역시 빈센트와 방향을 나누어 움직였다.

“리가스!!!”

아일라가 크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말라쿤의 왕인 리가스의 목이었다. 그를 발견하기만 하면 모든 전력을 동원해 죽여야만 했다.

“리가스, 어디 숨어 있는 거지!!!”

일부러 그를 자극하듯 더욱 크게 소리를 쳤을 때였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제트성 곳곳에 말라쿤에게 잡힌 채 묶여 있는 포로들이 보였다. 예상보다 포로의 수가 훨씬 많았다. 곡물 창고가 텅 비어 버린 말라쿤이 오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새삼 팔에 소름이 돋았다.

“아, 신이시여!”

“드디어 살았어!!!”

목에 줄줄이 밧줄을 건 채 가축 취급을 받고 있던 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일라는 그들을 풀어내며 입술을 씹었다.

‘도주인가…? 벌써?’

성 뒤편, 도주로로 예상되는 길목에는 이미 혜미와 리비에르가 매복해 있는 상황이었다. 출정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았다.

리비에르가 이 전투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리가스가 제트성을 뒤로한 채 도주할 거라는 예상이 반, 리가스의 자존심에 성에 남아 정면 승부를 할 수도 있다는 예상이 반이었다.

“여긴 없다! 2층으로 가자, 아일라!”

“네!”

빈센트의 외침에 아일라는 서둘러 계단을 튀어 올랐다. 1층에서 그랬던 것처럼 왼편, 오른편으로 갈라지려 했을 때였다. 슬쩍 열린 문 사이로 비릿한 피 냄새가 흘러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지. 이 방은…?

[날 찾았나?”]

어두운 방 안에서 짐승 같은 눈이 번뜩인다 싶었다. 문이 확 열리는 순간 그녀에게 날아오는 두 개의 검을 보며, 아일라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날렸다.

“흣…!”

리가스.

길게 자라난 머리는 여러 갈래로 뭉쳐서 뱀처럼 꼬여 있고, 눈은 샛노란 색이었다. 커다란 덩치, 온통 새까만 치아와 길게 자라난 손톱이 마치 인간이 아닌 것처럼 징그러웠지만, 그녀를 얼어붙게 만든 것은 그의 외모만이 아니었다.

열린 문 사이로 주르륵 걸려 있는 시뻘건 고깃덩어리. 목덜미가 꿰어진 채 머리를 푹 숙이고 있는 인간들이었다. 아일라의 푸른 눈이 경악으로 크게 뜨였다.

[살이 여려 맛있겠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어도 소름이 쫙 끼쳤다. 장검을 빼 들고 다가오는 그를 보며 아일라가 딱딱 떨리는 이를 간신히 붙였을 때였다.

“아일라!!!”

황급히 달려와 그녀를 막아선 것은 빈센트였다. 간신히 일어선 아일라가 떨어져 나간 그녀의 검을 집어 들었다.

“뭐야. 넌.”

눈을 번뜩인 리가스가 커다란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덩치에서는 밀리지 않는 거구의 빈센트가 휘청할 정도의 괴력이었다.

“흐으….”

그의 일격을 애써 막아 낸 빈센트는 리가스와 본격적으로 맞붙었다. 커다란 칼이 쉴 새 없이 부딪칠수록, 빈센트는 리가스의 힘에 밀려나고 있었다. 아일라가 도우려 달려들었지만 리가스가 휘두르는 공격에 밀려 뒤로 거칠게 나동그라졌다.

“하아…. 하아….”

“아일라, 피… 피해라…. 군사들을 불러와.”

빈센트가 숨을 몰아쉬며 낮게 내뱉었다. 장난이 아니었다. 리가스가 말라쿤 일족을 어떻게 휘어잡았는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갈고리에 꿰인 시체들이 삐걱, 삐걱, 소리를 내며 천장에서 흔들렸다.

“두려운가…?”

리가스가 그를 보며 킬킬거렸다. 빈센트가 눈을 꽉 감았다 떴다. 검을 고쳐 잡고 달려가는 순간, 리가스의 검이 그의 칼을 쳐내더니 배를 푹 찔러 사선으로 갈랐다.

“크흑…!”

“빈센트!!!”

아일라가 푸른 눈을 홉떴다. 그의 공격을 막아내는 빈센트의 동작이 늦은 것이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리가스의 칼은 세르노티에서 가장 강력한 합금으로 만들어진 빈센트의 방패를 뚫었던 것이다.

“안 돼!”

일어서서 칼을 미친 듯이 휘두르면서도 그녀의 신경은 몽땅 그에게 가 있었다.

[계집 주제에 꽤 하는 구나. 하지만 놀아 주는 것도 마지막이다.]

아일라의 목에 검이 날아오기 직전, 상처를 부여잡은 빈센트가 뒤에서 다시 리가스를 공격했다. 리가스의 커다란 검날이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어 그의 어깨를 찔렀다.

“아, 아아악!!!”

아일라의 비명을 듣고 발터가 달려온 것은 그때였다.

“가주, 빈센트가…!”

그녀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발터의 몸이 날듯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리가스가 고개를 휙, 돌며 빈센트의 어깨에서 칼을 뽑아내는 순간, 붉은 피가 발터의 몸에 뿌려졌다. 빈센트가 휘청거리며 숨을 격하게 몰아쉬었다.

“가, 가주….”

“…빈센트….”

아일라가 달려가 빈센트를 부축했다. 옷을 찢어 상처를 단단히 압박해 출혈을 멈추게 했다.

“빈센트, 조금만 참아요…!”

“난, 괜찮아…. 하아….”

발터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그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문이 열린 방 안에서 피가 완전히 빠진 채 천장에 걸려 흔들리고 있는 시체들이 보였다. 리가스가 그를 보며 히죽이고 있었다.

“너도 저기 걸어 주랴…?”

“할 수 있다면 해 봐.”

“일단 네 동료들을 먼저 걸고 생각해 보지.”

발터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킬킬거리는 리가스를 강하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두꺼운 검끼리 공중에서 강하게 부딪칠 때마다 금속성이 강하게 튀었다.

“흣…!”

발터의 일격에 주춤한 리가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눈앞의 사내의 힘과 기술이 그에게 밀리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탓이었다. 가죽 샌들에 쇠를 덧대어 신은 리가스의 투박한 발이 바닥에서 뒤로 밀리고 있었다.

“두려운가?”

세르노티 기사단이 쓰는 칼 중 가장 무거운 발터의 검이 다시금 리가스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성에는 비가 흩뿌리고 있었지만 여기저기서 불타오르는 횃불은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와아아아!!!”

이미 바깥은 승리를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제트성의 내부에까지 쳐들어온 리비에르의 군사들이 성의 중앙부를 장악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항복해라, 리가스…!”

발터가 그와 칼을 마주 대고 잇새로 내뱉자 리가스가 코웃음을 쳤다.

“나중에… 다시 볼 때는 제대로 죽여 주마….”

거센 힘으로 간신히 발터를 밀어낸 그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휘릭!

리가스의 손에서 표창이 날았다. 발터는 재빨리 몸을 날렸지만 그가 공격한 상대는 발터가 아니었다. 표창은 천장을 한 바퀴 빙 돈 후, 벽에 부딪혀 아래로 떨어졌다. 줄이 잘리자 천장에 고깃덩이처럼 매달려 있던 시체가 바닥에 후드득 차례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젠장…!”

그가 떨어지는 시체를 이리저리 헤치고 달려갔을 때, 이미 리가스는 성의 열린 발코니로 도주하는 중이었다.

“히럇…!”

발터는 황급히 그의 뒤를 따라붙었다. 성 전체를 감싸듯 길게 이어진 발코니의 코너를 돌자 밖으로 뛰어내려 말을 타고 달려 나가는 리가스가 보였다. 그의 뒤를 말라쿤의 군사들이 주르륵 따르고 있었다. 그 자리에 말과 군사들을 배치해 놓은 이유는 명확했다. 리가스는 끝까지 성을 지키다 세가 약해지면 마지막 상황에 도주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발터의 몸이 창밖을 향해 휙, 날았다.

말을 잡아타고 멀어지는 리가스와 말라쿤을 미친 듯이 쫓았지만 그들이 더 빨랐다. 그들이 기병전에 강하다는 것은 모두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성 뒤편에서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두 무리로 갈라져 흩어졌다.

강이 있는 서쪽과 산이 있는 동쪽이었다. 발터는 굵어지는 빗줄기에 흐려지는 시야를 찌푸리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들 중 선두에 섰던 리가스가 어느 쪽이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도주하기는 서쪽이 쉬웠지만 강 바로 밑은 세르노티의 군사들이 쫙 깔려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 동쪽은 험준한 랑켈 산맥을 통과해야 하는 탓에 도망치는 것은 어려웠지만 그들이 지형을 이용해 반대로 역습을 노릴 수도 있다.

내가 리가스라면 궁지에 몰린 지금 어떤 선택을 할까.

서쪽? 아니면, 동쪽?

확률을 따지며 인상을 구기는 발터의 머릿속에 스친 것은 발트리의 흐릿한 목소리였다.

“네가 누구인지 기억해라, 발터.”

짙은 갈색 눈동자가 뜨겁게 이글거렸다. 발터는 얼굴에 쏟아지는 빗물을 손으로 훔쳤다. 짧은 고민은 흔적도 없이 휘발되어 사라졌다. 아니. 처음부터 고민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혜미가 매복해 있는 곳은 동쪽, 그녀는 지금 랑켈산에 있다.

그는 리비에르가 아니었다. 그에게 리가스의 목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죽음의 강을 넘어 겨우 찾아온 단 하나의 상대 앞에서, 확률을 따지던 수평 저울은 의미를 잃는다. 내 생에 너를 두고 저울질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버지가 그토록 바랐던 세르노티의 가주로서도. 그리고, 그리고….

차마 내뱉을 수 없는 속내를 시커멓게 타 버린 심장 안으로 다시금 밀어뜨린 후, 발터는 말고삐를 거칠게 그러쥐었다. 그리고 동쪽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리던 리비에르의 얼굴에 흐릿한 미소가 걸렸다.

“슬슬 시작인 것 같은데?”

흥분과 긴장이 뒤섞인 말투였다.

“응.”

작게 내뱉는 그녀의 곁에서 혜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

성에서 도망치는 말라쿤이 달려오고 있었다. 무기를 손에 들고 떼로 달려오는 모습은 아무리 전투를 거듭해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마치 좀비 떼처럼 달려오는 그들을 향해 혜미는 칼을 빼 들었다.

“하아…. 하아…!”

칼을 휘두르는 리비에르의 초록빛 눈동자가 번쩍번쩍 기이한 빛을 냈다. 리가스를 드디어 발견했다. 그와 정면 승부를 하고 싶어 속임수까지 써 가며 매복한 결과였다. 리비에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그의 목을 따야 했다.

“저 새끼가 바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상대를 말라쿤 사이에서 찾아내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매복하던 그녀의 군사들이 리가스의 손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이제껏 제트성에 눌어붙어 한 번도 얼굴을 비치지 않은 야만족의 왕은 달아나면서도 닥치는 대로 그녀의 병사들을 잡아 죽이고 있었다.

확실히 무섭게 강한 존재였다. 살려 두면 그는 분명히 다시 쳐들어온다.

“리가스…!”

이를 뿌득 간 리비에르가 말고삐를 거칠게 잡아당기며 그를 따라붙었다.

“…네년은… 뭐냐….”

“내가 지젤 리비에르다, 이 짐승 같은 새끼야…!”

말발굽이 거칠게 땅을 박찰 때마다 흙탕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리비에르가 말을 타고 달리는 그의 곁에 바짝 다가서며 소리치자 리가스의 샛노란 눈이 묘하게 바뀌었다.

“호오라…. 네년이… 날 골치 아프게 한 원흉이구나….”

그가 말머리를 돌려 절벽 위에서 그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챙!

리가스의 말이 들이받는 힘에, 리비에르를 태우고 있던 말이 놀라서 앞다리를 치켜들었다. 리가스가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리비에르의 머리칼을 잡아채고 그녀를 제 말 위에 앉혔다. 그녀의 가슴이 리가스의 손에 우악스럽게 꽉 잡힌 것은 그다음이었다.

살점이 터져 나가는 것 같은 고통도 심했지만 수치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리비에르가 이를 갈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흐윽…!”

“쓸 만한 얼굴이니… 데려가서, 박제를… 해 주마….”

리비에르는 미친 듯 달리는 말 위에서 두피가 찢겨 나갈 것 같은 고통에 발버둥을 쳤다. 나란히 달리는 리가스에게 칼을 휘둘러 보았지만 허사였다.

“크흐….”

젠장…! 제기랄…!

그녀의 머리채를 잡은 리가스가 장검을 치켜드는 것이 보였다. 벗어나야 한다. 낙마해 다리가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말에서 떨어져야 했다. 리비에르가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어냈을 때였다.

휙!

당장이라도 그녀의 목을 자르려던 리가스가 움직임을 주춤했다. 리가스의 팔뚝에 화살이 날아와 박힌 탓이었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고개가 휙 돌아갔다.

휙! 휙!

말을 빠르게 달리면서도 정확히 활을 조준한 레나의 화살이 수차례 날아 리가스가 걸친 가죽옷을 연신 뚫었다. 공격을 방해받은 리가스의 성대에서 마치 짐승이 으르렁대는 것 같은 잔인한 목소리가 흘렀다.

[이 썅년들이….]

“피해요!!!”

리비에르는 리가스의 신경이 분산된 틈을 타, 발을 박차고 말에서 아래로 몸을 날렸다.

“아흑…!”

흙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는 리비에르의 발목이 뒤틀렸다.

“레나, 피해!”

달려드는 말라쿤을 베며 혜미가 울부짖었다. 멀리 떨어진 레나를 향해 리가스가 무거운 도끼를 던진 것은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흣…!”

레나가 주춤했다. 촘촘한 비늘처럼 세심하게 제작된 레나의 갑옷은 그녀의 가슴을 강타한 도끼날을 막아냈지만 둔기로 인한 충격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마치 커다란 통나무가 몸을 강타한 기분이었다. 갈비뼈가 다 부러지는 것 같은 고통에 숨이 턱, 막혀 레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레나!!!”

악을 쓰며 달려오는 혜미를 보며 레나가 말갈기를 꽉 그러쥐었다. 흥분한 말은 자칫하면 절벽에서 곧 떨어질 듯 위태로웠다. 혜미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난 괜찮아, 혜미…. 괜찮아…! 그러니까 이쪽으로 오지 마…!”

바닥을 뒹구는 리비에르에게 병사들이 달려왔다.

“리비에르 님, 괜찮으십니까!”

그녀가 부러진 발목을 질질 끌며 일어서려다 고통에 울부짖었다.

“안 됩니다, 진정하십시오!”

“리가스를 죽여야 해!!! 저놈의 목을! 아악!”

죽여야 한다. 제트성의 탈환만으로는 모든 것이 원점. 부족해도 한참은 부족했다. 리가스의 목을 베어 황제에게 헌상하지 않으면 목숨을 걸고 싸워 온 그녀와 병사들의 지난 반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나는 그럴 수 없어.

“흐으…. 흐으윽….”

리비에르가 분함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뚝뚝 흘렸지만 리가스의 기에 질려 선뜻 나서는 병사가 없었다. 리비에르는 그들 중 가장 강한 기사였다. 그런 그녀를 단번에 제압한 리가스를 보고 공포에 질린 것이다.

“당장 가라! 누구든 당장 저놈을 쫓으라고!”

리비에르와 혜미의 눈이 마주친 것은 그때였다. 고통과 억울함이 눈물이 되어 줄줄 흘러나오는 리비에르를 보며 혜미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래. 내가 갈게.’

혜미가 검을 빼 들고 소리를 쳤다.

“내가 간다! 아무도 따라오지 마! 남은 말라쿤을 처리하고 부상당한 리비에르 님을 호위하라!”

그녀는 말고삐를 그러쥔 채, 자세를 한껏 낮추고는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 리가스와 말라쿤을 빠르게 따라붙었다.

“이든, 안 돼!!!”

날뛰는 말을 간신히 진정시킨 레나가 급박하게 소리쳤지만 혜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챙!

그녀의 검에 한 놈이 말에서 낙상했다.

휙!

또 한 명의 목이 날아가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이제 리가스에게 닿기까지는 다섯 명만 죽이면 된다.

리가스가 날린 도끼에 목이 잘릴 뻔한 레나 그리고 발목이 부러졌음에도 리가스를 죽여야 한다고 울부짖는 리비에르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그녀의 몸 안에서 타올랐다.

저 자식이 뭔데. 대체 저딴 새끼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아야 하나.

그녀의 보랏빛 동공이 시퍼런 빛으로 일렁였다.

채챙!

마지막 놈이 피를 토하며 엎어졌다. 시체를 태운 말이 제멋대로 사라지자 이제 그녀의 눈에는 리가스가 똑똑히 보였다.

“죽어…. 죽어…!”

힐끗 뒤로 시선을 주는 리가스를 향해 그녀가 칼을 휘두르며 말의 뱃가죽을 강하게 걷어찼을 때였다.

휘릭!

리가스가 말안장에 걸린 밧줄을 그녀에게 던졌다. 커다란 올가미처럼 생긴 그것은 정확하게 혜미의 몸에 걸렸고, 그가 줄을 세게 당기자 목을 강하게 압박했다.

“하윽…!”

말에서 떨어진 혜미는 목에 밧줄이 걸린 채 바닥을 질질 끌려갔다. 나뭇가지에 몸이 쓸리고 돌부리에 어깨가 사정없이 부딪쳤다. 밧줄을 끊어 내려 했지만 줄에서 손을 떼면 그대로 질식할 것 같아 그것도 불가능했다.

“흑…!”

말을 달리는 리가스는 그녀를 죄는 밧줄에 더욱 힘을 주고 있었다. 이대로 목이 졸려 죽는 걸까. 숨이 막혀 정신이 아득했다.

“하윽…!”

산소가 부족해 한계점에 치달은 숨이 턱턱 막혔다. 숨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 절벽의 모퉁이를 돌며 리가스가 손에서 밧줄을 놓았다. 방해물을 달고 이동하는 것이 거추장스러웠던 탓이었다. 이쯤 되면 죽었을 거라는 판단이 서기도 했다.

“허억…. 하아…!”

절벽 아래로 떨어지려던 혜미는 간신히 돌부리를 잡아 낙상을 면했다. 핏발 선 눈에서 뜨끈한 눈물이 저절로 줄줄 흘러내렸다. 밧줄에 졸린 목은 쓰라리고 온몸은 두들겨 맞은 듯 아팠다. 그녀는 흐려진 시야로 멀어지는 리가스를 바라보며 바닥을 기었다. 절대 놓치면 안 되는 상대가 또다시 멀어지고 있었다.

안 돼. 지금 저놈을 끝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끝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허리에서 팔뚝 길이만 한 단검을 빼 들었다. 대마법사의 돌이 박힌 검에 부러진 날을 바꾸어 나뭇잎 모양의 단도로 만든 칼이었다. 손잡이에 박힌 붉은 보석이 핏빛으로 번쩍거렸다.

“하아…. 아아….”

혜미는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검을 조준했다. 빠르게 멀어지는 리가스를 잡을 수 있는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망설일 여유는 없었다. 그녀는 안간힘을 쓰며 어깨를 들었다. 그녀의 손에서 검이 빠르게 날았다.

휙!

히이잉!

그녀의 검이 맞춘 곳은 리가스가 아니라 그를 태운 말이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말의 뒷다리가 푹, 꺾이자 리가스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져 나뒹굴었다.

“…….”

퍽!

이번에는 공중에서 돌이 날아와 그의 뒤통수를 세게 맞추었다. 리가스가 노란 눈동자를 이글거리며 분노에 숨을 몰아쉬었다. 목에 밧줄이 걸린 그대로 그에게로 비틀거리며 달려오는 혜미를 보고 그는 짐승처럼 포효하며 분노를 터뜨렸다.

[이런 씨팔년이…!]

그가 혜미의 얼굴만 한 주먹으로 머리통을 강하게 후려쳤다. 그녀의 몸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리가스가 말라쿤의 언어로 욕설을 지껄였다. 왼쪽 귀의 고막이 터졌는지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것처럼 소리가 먹먹했다. 혜미는 허리춤을 더듬어 자신의 검을 찾았다. 없었다. 밧줄에 묶여 바닥을 질질 끌려오다가 어딘가로 떨어진 것이다.

휙!

칼이 날아오는 것을 보며 몸을 피했다. 연달아 날아오는 공격을 간신히 피해 내자 분노가 극에 달한 리가스가 그녀의 가슴을 커다란 발로 짓밟았다.

“하아…. 흐윽…!”

“주… 죽어라….”

리가스가 몸부림치는 그녀의 심장을 향해 칼을 수직으로 치켜든 순간이었다. 커다란 말발굽 소리와 함께 기다란 창이 날아들어 리가스의 가슴을 갑옷 채로 꿰뚫었다.

“흣…!”

“이든!!!”

다급하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는 상대는 발터였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선명한 그의 목소리.

네가 와 줬구나. 발터.

부릅뜬 혜미의 눈에서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리가스의 몸이 휘청, 중심을 잃었다. 칼을 든 손에 힘을 주려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말을 박차고 뛰어내린 발터가 그의 몸을 붙잡고 바닥을 뒹군 까닭이었다.

“흣…!”

목에 밧줄이 칭칭 감겨 있는 혜미를 발견한 순간, 발터는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는 듯한 분노를 느꼈다.

“흐윽…!”

그의 검에 리가스의 팔이 날아갔다. 그의 팔이 가슴에 꽃힌 창을 거칠게 비틀어 빼내자 피가 분수처럼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의 피를 뒤집어쓴 채, 발터의 검이 다시금 빠르게 움직였다. 이번에는 다리가 잘렸다

“으아아!!!”

팔과 다리가 한쪽씩 잘렸음에도 킥킥거리며 혜미에게로 팔을 뻗던 리가스의 허리가 반으로 잘렸다. 인간의 몸을 거침없이 썰어 내는 그의 동작은 마치 악에 받친 듯했다. 상대를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게 죽이려 작정을 한 사람 같았다.

“하아…. 하아….”

혜미는 발터가 리가스의 사지를 갈기갈기 도륙 내는 광경을 보며 흐려진 눈을 깜빡였다. 몸이 반으로 잘리고도 꿈틀거리는 리가스의 머리를 붙잡고 발터가 도끼로 머리를 찍어 몸과 분리했다.

“바… 발터….”

잘린 목을 들고 발터가 휙, 고개를 돌렸다. 미치광이처럼 시커멓게 변한 그의 눈동자에 바닥을 기고 있는 혜미가 보였다. 그는 리가스의 목을 내팽개친 후, 휘청거리며 그녀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늦었다. 용서해.”

발터가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서 엉망으로 쉰 목소리로 간신히 내뱉었다. 그녀의 목에 걸린 밧줄을 풀어내는 커다란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혜미가 그의 팔목을 잡았다. 그리고 발터를 향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넌… 늦지 않았어.”

핏발이 선 눈으로 그녀의 뺨을 손에 가두는 발터의 몸은 아직도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채였다. 리가스를 미친 듯이 찢을 때는 언제고 지금은 마치 건드리기만 해도 무너질 사람처럼 위태로웠다.

“안 늦었어, 발터.”

혜미가 엉망으로 긁힌 얼굴을 한 채로 양팔을 들어 그의 너른 등을 감쌌다.

“시간 맞춰 와 줘서 정말 고마워… 흣!”

팔을 내민 것은 그녀였는데 정작 그에게 세게 안겨 버렸다. 그녀를 품 안에 와락 끌어안은 채로 발터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짐승같이 괴로운 숨소리만 내뱉고 있는 그는 차마 말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울고 있는 것도 같았고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는 것도 같았지만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었다.

“괜찮아, 발터.”

혜미가 그의 품에 안겨 나직하게 속삭였다. 터질 듯 뛰고 있는 발터의 심장 박동 소리가 고막이 터져 먹먹한 귓가에도 선연했다. 그가 얼마나 두려웠는지, 또다시 눈앞에서 그녀의 죽음을 목도하게 될까 얼마만큼이나 공포에 질렸었는지 그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난 괜찮아, 발터.”

그녀가 그를 위로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혜미는 그의 품에서 간신히 얼굴을 떼어냈다.

“난… 괜찮아. 안 죽었잖아.”

엉망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그녀를 직시하고 있는 발터의 입술에서 말 대신 떨리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흐으읏….”

“…발터… 정말 나는 멀쩡하니까….”

톡. 톡. 톡.

발터의 피 묻은 손가락이 그녀의 뺨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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