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72)
  • “아, 어디서 파리가 들어왔나….”

    “발터, 우리 세르노티의 의무를 설명해 보아라.”

    세르노티의 가주 발트리가 있지도 않은 파리를 잡는 이든을 못 본 체하며 그의 아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발터가 딱딱하게 들릴 만큼 건조한 말투로 답을 읊었다.

    “영지를 관할하며 사람들의 생활과 안전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전시 상황에 출정하여 클라웨 제국의 기사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그것뿐이냐?”

    매번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데 지겹지도 않은지. 이든은 진심으로 이 자리에서 멍 때리고 있는 모두에게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비상시 황제 폐하의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여러 가지 위험을 감지하고 상황을 타개할 행동을 취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며언?’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발트리의 근엄한 얼굴을 흉내 내며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이는 이든을 본 세드릭이 입술을 깨물며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이든은 발트리의 먼 친척의 딸로,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사고로 사망하는 바람에 세르노티성에 보내지게 되었다.

    골 때리는 성격 탓에 어릴 때부터 헛간 신세를 가장 많이 지기도 했지만, 그녀의 단짝이자 성주의 아들인 발터 덕분에 간신히 넘어간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기가 곤란합니다.”

    “이유는?”

    발터가 차분하게 대답을 이었다.

    “황제 폐하의 그림자가 되어 행하는 일은 그 경계와 한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철이 들기 한참 전부터,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그 뜻을 정확히 몰랐던 어릴 때부터 늘 기도문처럼 외워야 했던 말이었다.

    “그러하다.”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성주 발트리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설교를 시작했다.

    “근본이 없어 떠돌이 용병에 불과했던 우리 세르노티가 대대로 클라웨 제국의 영광스러운 임무를 다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든은 죽을힘을 다해 졸음을 참으며 허벅지를 아프게 꼬집었다. 발트리의 기나긴 설교가 다 끝나야지만 저녁 식사를 할 수가 있었다. 오늘은 세르노티의 정예 기사단이 되기 위한 훈련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결속을 다지고 제국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날이었다.

    세르노티 성지 안에서 검을 단련하는 기사들의 수는 총 300명이 넘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의 수는 약 스무 명. 모두 세르노티의 수장인 발트리의 엄격한 테스트를 통과한 실력자들로 매일 같이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배워야 하는 것은 비단 승마와 검술뿐만이 아니었다. 달리기와 격투, 레슬링은 기본이었다. 나무 타기와 외줄 타기는 물론, 땅굴 파기와 은신 그리고 독극물 제조에 이르기까지 훈련의 종류는 다양했다.

    여름에는 탈진할 때까지 검을 휘둘렀으며, 눈이 내리는 겨울에는 산속에서 아무런 식량도 없이 수렵만으로 한 달을 버티다 내려온 적도 있었다.

    그들은 황실 근위대와는 달랐고, 귀족 작위를 받고 전쟁의 선두에 서는 기사들과도 궤를 달리했다. 용병이라 해도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 영웅이 될 수 있었지만 그들은 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움직여야 했다.

    세르노티 정예 기사단의 또 다른 이름은 ‘매의 수호자’.

    황제의 그림자라고도 불리는 그들의 비공식적인 임무는 암살이었다. 제국이 크기를 늘려 감에 따라 각 지방 귀족들의 힘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00년 전, 클라웨 4세는 강력한 황권을 위해 여러 개의 암살단을 조직하기에 이르렀고 그들은 분란의 씨앗을 자르기 위해 비밀리에 움직이며 반역을 계획하는 귀족을 처단했다.

    세르노티도 그렇게 탄생한 가문이었다.

    ‘아…. 졸려 죽겠네….’

    하지만 하품을 간신히 참고 있는 이든에게는 전쟁도, 암살도, 모두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소리였다.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젊은 기사들은 모두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는 있지만, 그들이 제국을 위해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과연 있을지는 누구도 쉽게 장담하지 못했다.

    황제의 그림자는 황제의 명령 없이 스스로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선대 황제 클라웨 7세가 타계한 이후, 세르노티 가문은 12년째 성 바깥을 벗어나지 않고 숨죽이며 살아가는 중이었다.

    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암살단의 특성에 따라, 현재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암살단 가문이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제 곧 정식으로 즉위식을 치를 황태자 크리스티앙을 돕는 암살단이 세르노티가 아니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크리스티앙이 그들을 궁으로 불러들이지 않는 이상, 그들에게는 죽을 때까지 검을 휘두를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세르노티의 가주인 발트리는 지난 12년간, 정예 기사단을 만드는 데 목숨을 건 사람처럼 굴었다.

    “성주님, 이 태평성대에 과연 우리가 할 일이 있을까요?”

    처음 정예 기사단 후보로 뽑히고 그들의 임무를 들었을 때, 이든이 맨 처음 한 질문이었다.

    “차라리 우리도 전쟁에 출정하는 게 어떨까요? 그렇다면 크리스티앙 태자께서 저희에게 큰 상을 내릴지도 모르잖아요! 폐하께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전쟁이니까요! 그럼 전리품도 많이 받을 테고, 영지 사람들도 더 이상 배를 곯지 않아도 되잖아요?”

    발트리는 그날, 이든에게 처음으로 매를 들었다. 모든 훈련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든은 채찍으로 온몸을 맞아야 했다.

    “전쟁이 장난이라고 생각하느냐?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미소 짓는 것은 죽음뿐이다.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는 자를 반기는 것은 배신뿐이다. 이든.”

    “아버지…! 그만 하세요, 아버지!”

    발터는 발트리에게 매달려 빌었다. 그 이기적인 세드릭마저 이든을 위해 선두로 무릎을 꿇었을 정도였다.

    “지금의 고통을 잊지 말거라, 이든. 죽음의 고통은 이보다 더할 것이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세르노티는 오직 황제의 뜻을 위해 존재한다. 우리의 존재 의미를 결정지을 수 있는 이는 단 한 사람, 황제 폐하뿐이다!”

    발트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마어마한 분노를 뿜어냈던 날을 떠올리자 이든은 갑자기 한기가 들어 몸이 부르르 떨렸다.

    ‘으으. 꽉 막힌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평소에는 온화하게만 보이는 성주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눈으로 목격하고 난 후, 이든을 포함한 모든 훈련생들의 기강에 바짝 날이 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설교 시간을 딱 반으로만 줄이면 너무 좋을 텐데.’

    허벅지를 꼬집으며 애써 자세를 고치는 이든의 시야에 발터의 손이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는 동작이 눈에 들어왔다.

    탁. 타탁.

    소리도 나지 않게 두드리는 움직임. 얼핏 봐서는 발트리의 설교에 집중하며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버릇으로 보였지만 이든에게는 아니었다. 이든의 보랏빛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오늘.]

    아홉 살 때, 프랑크 아저씨의 정육점에서 파테를 몰래 훔쳐 먹은 죄로 발터와 함께 헛간에 보름 동안 갇혔던 때가 있었다. 한창 뛰어다닐 나이에 갇혀 있는 것은 좀이 쑤셔 죽을 노릇이었다.

    가위바위보, 손가락으로 주사위를 만드는 놀이,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죽는 게임과 눈치로 숫자 맞추기 게임까지 반복해서 되풀이하고 나니 그들은 정말로 할 일이 없었다. 그때, 그녀와 발터가 머리를 싸매고 만들었던 수신호가 이어지고 있었다.

    타악. 타라락.

    [저녁 메뉴.]

    뒷말을 기다리는 이든의 눈이 기대에 반짝였다. 그들이 가장 처음 만들었던 수신호는 음식에 관한 것으로, 물론 이든의 아이디어였다.

    탁탁탁.

    [거위 로스트.]

    오 신이시여! 이든은 발터의 기다란 손가락을 붙잡고 크게 환호하고 싶은 것을 애써 참았다. 수전노 같은 요리장 카트리나가 드디어 거위를 잡다니! 고기로 배 속에 기름칠을 했던 게 대체 언제였을까.

    여름이 끝나자마자 겨울을 대비해야 한다며 매일 희멀건 병아리콩 스튜와 거칠거칠한 호밀 빵만 줄기차게 내놓았던 그녀가 혈기 왕성한 훈련생들을 위해 오래간만에 인심을 써 준 모양이었다.

    [카트리나 아주머니께.]

    이든의 길쭉한 손이 기쁨을 안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랑한다고.]

    기다란 중지와 약지가 경쾌하게 세 번, 테이블 위를 두드렸다. 주먹을 쥔 후, 중지와 약지만 펴고 바닥을 세 번 두드리는 건 사랑한다는 뜻이었다.

    [고백할 거야.]

    고백의 수신호는 엄지로 바닥을 꾹 비비듯 누르는 것. 이든이 탁상을 엄지로 몇 번이나 눌렀다. 발터가 굳게 다문 입술을 소리 없이 씰룩였다.

    이걸로 이든의 잠은 다 달아난 걸로 보였다. 입까지 작게 헤 벌리고 실실 웃고 있는 그녀의 머릿속은 지금 기름을 노릇노릇하게 두르고 구워진 거위 고기로 꽉 차 있을 게 분명했다.

    행복해하는 이든을 곁눈으로 슬쩍 바라보는 발터의 입술이 조금 더 위로 호선을 그렸다.

    벨 상대를 찾지 못하는 검을 죽어라 휘두르고, 온몸이 땀에 젖어 녹초가 되는 훈련이 끝없이 이어지고,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는 발트리의 설교를 매일같이 들어야 한다고 해도 바보 같은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웃을 수 있는 한 사람과 함께라면 발터는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바로 지금처럼.

    ***

    클라웨 제국의 중앙에 위치한 트리바산은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한 긴 산이었다. 빼곡한 협곡으로 이어진 산맥의 남쪽을 넘으면 이제껏 험하게 우거진 산이 거짓이었다는 듯 그림같이 조용한 평원이 나왔는데, 이곳이 바로 황제의 그림자라 불리는 세르노티의 영지였다.

    특수한 임무를 가진 모든 암살단 가문이 그러하듯 세르노티 역시 세대를 거치며 자신의 거처를 옮겨 다니며 살았다. 하지만 오래도록 황가의 부름을 받지 못한 탓에 현재의 영지에서 이동할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철들기 전부터 이곳에서 자란 발터와 이든에게 세르노티는 그들의 세상 전부였다.

    여름이면 노란 산수유 꽃잎이 흐드러지게 피고 가을이면 붉은 산수유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 가는 호젓한 마을.

    영지 뒤편에는 에바론 강으로 이어지는 저수지가 흘렀고, 긴 저수지는 크고 작은 산에서 흐르는 계곡물과 이어지며 곳곳에 호수를 만들었다.

    그중, 세르노티성과 가장 가까운 킬다 호수는 특히나 물이 차가웠다. 더운 여름에 훈련생들이 한데 모여 헤엄을 치며 놀거나, 땡볕에 고된 훈련을 마치고 땀에 전 몸을 씻으며 피로를 풀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푸하아….”

    정수리까지 물속에 푹 집어넣고 있던 이든이 길게 숨을 내뱉으며 수면 위로 고개를 들었다. 한밤중에 혼자 하는 목욕처럼 기분 좋은 것은 없었다. 여름이 지나자 날씨가 서늘해진 탓에 해가 저문 후에는 호수를 찾는 이들이 적었다. 늘 땀 냄새 풀풀 풍기는 녀석들로 북적거리는 곳을 전세 낸 기분에 마음껏 첨벙거리고 있을 때였다.

    “아, 뭐야.”

    새벽닭이 울 때까지는 한참이나 남은 깊은 밤이었다. 기척도 없이 언제 왔는지 발터가 나무 아래에서 웃통을 훌렁 벗어 던졌다. 그런 그를 보며 이든이 물속에서 인상을 찌푸렸다.

    “너 왜 왔어?”

    “보면 몰라? 씻으러 왔잖아.”

    발터가 힐끗 그녀에게 시선을 던지고선 가죽신을 차례로 벗었다.

    “아, 그러니까 왜 하필 지금! 이 야밤에 굳이 씻으러 나온 거냐고.”

    “같은 질문을 본인에게 해 보는 건 어때? 혼자 있고 싶었던 건 나도 마찬가지야.”

    바지를 훌렁 내리고 아랫도리를 가리고 있던 속옷까지 벗어 던진 후, 발터가 호숫가로 걸어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기 네가 전세 내기라도 했어?”

    이든은 돌덩이 같은 근육으로 쫙쫙 갈라진 양 허벅지 사이에서 흔들리는 발터의 물건을 발로 한 대 차 주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야. 발터.”

    “왜.”

    “너 말이야. 달릴 때 그거 덜렁거려서 불편하지 않아?”

    “그거? 그게 뭔데.”

    발터가 설렁설렁 호숫가로 걸어왔다. 걸을 때마다 무성한 음모 사이에서 육중하게 흔들리는 거대한 성기를 보며 이든이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프랑크 아저씨가 만드는 특제 햄보다도 더 큰 것 같은 발터의 물건을 볼 때마다 참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 살 때까지만 해도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깨가 벌어지고 목소리가 지금처럼 낮아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발터의 육체는 급속도로 남성화되었다.

    “됐다. 말을 말자.”

    “왜, 내가 좆 큰 게 부러워?”

    “퍽이나.”

    “근데 왜 자꾸 보지? 더 크게 만들어 달라는 건가?”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가랑이 사이에 방망이 달고 있는 주제에.”

    이든이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때부터 발터의 나체는 수도 없이 보았고, 그것은 발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성별의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한 후부터, 손잡고 사이좋게 같이 씻으러 가는 것은 자제하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우연히 마주쳤을 때 서로의 나체를 보며 어색해할 관계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요즘은 자꾸 그의 신체 곳곳이 눈에 거슬리는 건지, 이든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아. 시원하다.”

    철퍽!

    그녀의 옆으로 단번에 유영해 다가온 발터가 물속에서 그녀의 몸을 휘감아 물귀신처럼 아래로 끌어당겼다.

    꼬르르륵.

    대비도 하지 못한 이든은 단박에 물속에 머리끝까지 잠겼다가 떠올랐다.

    “야, 진짜 죽을래!”

    켁, 하고 물을 토해 내며 이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발터가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젖혀 털어 낸 후 그녀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오랜만에 한 판 할까?”

    “…흠.”

    “우리 안 한 지 오래됐잖아.”

    이든이 그를 보며 잠시 망설였다. 며칠 있으면 반갑지 않은 달 손님이 찾아올 예정이었다. 지금 몸 컨디션으로는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은데.

    “왜, 자신 없어?”

    발터가 그녀를 슬슬 약 올리자 이든이 발끈했다.

    “웃기지 마!”

    발터가 자신을 향해 온몸으로 뛰어드는 나체의 이든을 감싸 안았다.

    철썩!

    거친 파열음을 내며 얽힌 두 몸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둥그런 궤적이 사라진 호수 위로 바람에 불어 흩날린 낙엽이 수면 위로 떨어졌다.

    퐁.

    퐁.

    퐁.

    퐁.

    고요한 수면 위로 물방울이 올라왔다.

    누가 오래 잠수하나 같은 게임은 어릴 때 질리도록 했지만 승자는 늘 발터였다. 두꺼운 흉통만큼 폐의 크기도 엄청난 모양인지, 그는 숨 참는 데는 1인자였다.

    이번만큼은 절대 지지 않을 거라 다짐하며 이든은 캄캄한 물속에서 발터와 뒤엉킨 채, 최대한 긴장을 풀었다. 온몸이 묵직한 근육 덩어리인 발터 덕분에 그녀의 몸은 수면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스르륵.

    해초가 몸에 감기듯, 그녀의 짤막한 머리카락이 발터의 얼굴에 휘감겼다 풀리길 반복했다. 이든은 눈을 감고 자신의 심장 박동에 정신을 집중했다. 차가운 물 속에서도 그녀를 끌어안고 있는 발터의 체온이 느껴졌다.

    워낙에 뜨거운 녀석이다.

    퐁.

    퐁.

    퐁.

    아아. 이제 슬슬 한계인데.

    대체 물속에서 몇 분이 지난 건지 감이 오지도 않았다. 부피를 최대한으로 늘려 팽창한 폐는 잔뜩 쪼그라들어 빨리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으라 가슴을 쥐어짜고 있었다. 그 와중에 그녀를 휘어 감고 있는 발터는 움직임도 없었다.

    워낙에 괴물 같은 녀석이었다.

    퐁.

    퐁.

    퐁.

    젠장. 안 되겠다.

    포기.

    물속에서 눈을 번쩍 뜬 이든이 발터의 몸을 떠밀었다. 어서 빨리 수면 위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발터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가 그녀를 결박했다.

    이 자식이 정말 나를 죽이려는 건가?

    힘에 부친 이든이 몸부림치는 순간, 그녀의 입술에 무언가가 닿았다.

    …뭐야.

    그게 뭔지 알기까지는 찰나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훅, 하고 뜨거운 호흡을 불어넣는 발터의 딱딱한 어깨를 부여잡은 이든이 물속에서 눈을 번쩍 뜬 채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대체 이 자식은 인간인지 물고기인지, 혹시 아가미로 숨을 쉬는 건 아닌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녀의 뒤통수를 꽉 움켜쥔 발터가 그녀의 혀를 쭉 빤 탓이었다.

    쿵! 쿵!

    갑자기 머리가 하얘져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캄캄한 수면 밑에서 발터의 비웃음이 들리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이든은 몸부림을 치며 그에게서 벗어난 후, 수면 위로 머리를 쳐들었다.

    팟!

    “하아…. 하아….”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곁에서 발터의 몸 역시 두둥실 떠올랐다. 수면에 뒤통수를 대고 누운 자세로 호숫가를 둥둥 떠서 유영하는 그에게는 힘든 기색도 보이지 않아 더욱 짜증이 났다.

    “…너, 뭐냐?”

    “하늘에 달 좀 봐라, 이든.”

    느릿한 목소리가 발터에게서 흘렀다.

    “뭐?”

    “오늘따라 끝내주게 크고 예쁘지 않아?”

    설핏 붉은색을 띠고 있는 달이 아름다운 건 사실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야. 딴소리하지 말고.”

    대꾸가 없는 발터를 향해 이든이 물방개처럼 빠르게 헤엄친 후, 그를 붙잡아 거칠게 일으켰다.

    “방금 그거 뭐냐고.”

    “뭐.”

    “무, 물속에서…!”

    “아, 그거?”

    발터가 이제 막 생각났다는 듯 태연하게 대꾸하자 기가 찬 이든이 그의 말을 따라 하며 말꼬리를 올렸다.

    “아아, 그거?”

    “한계점을 늘려 준 거잖아. 내 덕분에 너 오늘 잠수 신기록 세웠을걸?”

    “누가 너 따위 도움 필요하다고 했어?”

    발터가 그녀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젖은 머리카락을 타고 물이 뚝뚝 떨어져 홈이 팬 그의 이마를 타고 흘렀다.

    “고마우면 고맙다고 인사를 하지 그래?”

    이든이 주먹을 꽉 쥐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치는 발터를 보니 속에서 열이 부글부글 끓었다.

    “좋은 말 할 때 그냥 사과해라.”

    “이든, 억지 좀 부리지 마.”

    지금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게 누군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였다. 이든이 눈을 부라렸다.

    “억지?”

    그녀 역시 이성 간의 육체적 접촉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몇 해 전 가을이었나. 평소에는 앙숙인 프랑크 아저씨와 카트리나 아주머니가 남몰래 양조장 뒤에서 진하게 키스하는 것도 목격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발터와 함께. 그때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한 그녀의 입을 틀어막으며 발터가 뭐라고 했던가.

    “둘이 좋아하는데 방해하지 말자.”

    “저게… 좋아하는 거라고?”

    “그럼 싫어하는 걸로 보여?”

    “그… 그건 아니지만… 헉!”

    허겁지겁 키스하던 그들은 곧 다음 단계를 밟았다. 카트리나 아주머니와 프랑크 아저씨가 선 채로 마치 동물처럼 서로 붙어서 정사하는 모습을 보며 이든은 얼굴이 시뻘게져 발터에게 물었다.

    “아줌마랑 아저씨… 지, 지금 뭐하는 거야?”

    “…섹스하는 것 같은데.”

    “섹, 섹스? 너 어떻게 알아? 혹시 해 봤어?”

    “미쳤냐. 내가 누구랑… 그런 걸 해. 맨날 너랑 붙어 있는데.”

    낮게 중얼거리던 발터의 목덜미도 붉기는 마찬가지였다. 매일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사실은 저런 관계라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남녀가 뜨겁게 몸을 섞는 광경이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들이 처음 목격한 남녀의 사랑 행위는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화끈 달아오르는 은밀하고도 비밀스러운 어떤 것이었다.

    “네가 나한테 입 맞췄잖아! 빨리 사과 안 해?”

    목덜미가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느낌에 이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녀에게 입맞춤은 이딴 식으로 장난처럼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이성에게 관심이 없다고 해도, 그게 아무와 입 맞춰도 상관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사과 안 할 거면 그냥 한 대 맞든가.”

    그녀가 부글부글 끓는 화를 애써 삭이며 잇새로 내뱉었다. 이든으로서는 그 상대가 발터이기 때문에 이만큼이나 참아 주는 거였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예를 들어 만일 세드릭이 그랬다면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피 터지게 싸웠을 것이다.

    백번 참고 많이 양보해 주는 이든을 향해 고마워하기는커녕, 발터가 그녀를 노려보며 작게 코웃음을 쳤다.

    “너랑 나랑 그러고 논 게 하루 이틀이야?”

    “…뭐?”

    “누가 들으면 너와 내가 물속에서 열렬히 키스라도 한 줄 알겠군.”

    뭐라고? 이든이 커다란 눈을 부릅떴다. 지금 그게 이 녀석이 할 수 있는 말인가. 입술을 비틀며 조소하는 발터의 머리통을 한 대 후려갈기기 일보 직전이었다.

    “너한테는 입술을 비비든 가랑이를 비비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거 아닌가? 그랬으니까 그날도 내 얼굴에 그따위….”

    발터가 말을 하다 말고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고개를 가로 털었다. 푹 젖은 머리카락에서 자잘한 물방울이 공중에 흩어졌다.

    “그날? 그날이 언젠데.”

    “하…. 됐다. 너한테 말해 봤자 내 입만 아파.”

    이든은 아까부터 주체할 수 없는 속도로 뛰고 있는 그녀의 심장이 짜증 나 죽을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이든을 더욱 열 받게 하는 것은 엄청난 짓을 해 놓고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행동하는 발터의 태도였다.

    “아니! 죽여 버리기 전에 당장 말해. 내가 뭐? 대체 뭘 어쨌는데!”

    숨을 씩씩 몰아쉬는 그녀를 노려보던 발터가 말을 할 듯 말 듯 입술을 비틀다가 마침내 후, 하고 거친 숨을 내뱉었다.

    “됐어. 짜증 나니까 꺼져.”

    그녀보고 꺼지라고 해 놓고선 정작 먼저 뒤를 돈 것은 발터였다. 휙 물을 헤치는 그를 이든이 따라잡았다.

    “어딜 도망치냐…. 아!”

    “손대지 마라.”

    마치 벌에 쏘이기라도 한 듯 흠칫 놀라며 그녀의 손을 내치는 발터의 손길이 거셌다. 어찌나 세게 뿌리치는지, 한 대 잘못 맞으면 어금니 한 대는 손쉽게 부러질 만한 힘이었다.

    “이게 진짜…. 사람을 벌레 취급해!”

    이든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그의 어깨를 퍽, 한 대 때렸다. 그리고 발터의 머리칼을 거칠게 잡아챘다. 아몬드 형태로 기다랗게 쭉 찢어진 그의 눈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뭐 하는 짓이야.”

    “너 아까 그거 한 번 더 해 봐.”

    말없이 노려보는 발터의 숨이 거칠었다. 앞뒤로 두꺼운 가슴이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부피를 급격하게 늘렸다 줄이기를 반복했다.

    “사과도 못 하겠고 맞는 것도 싫고.”

    낮게 내뱉는 이든을 향한 그의 암갈색 눈동자에 시뻘건 불꽃이 일렁였다.

    “그럼 아까 물속에서 나한테 한 거 한 번 더 해 보라고, 이 자식아.”

    이든에게 뒷머리를 잡아채인 발터는 딱딱하게 굳은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시커먼 눈동자로 마주한 이든을 노려볼 뿐이었다.

    “못 해?”

    코웃음 친 이든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머릿속이 분함과 억울함으로 꽉 차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럼 내가 하면 되지.”

    이든이 일그러진 발터의 얼굴에 그녀의 젖은 입술을 문대듯 가져간 순간이었다.

    “…제기랄.”

    몸을 딱딱하게 굳힌 발터가 이를 뿌득 갈았다.

    “후회하지 마라, 너.”

    엉망으로 갈라진 목소리로 그가 작게 중얼거리나 싶었다. 이든이 보란 듯이 그의 아랫입술을 꽉 물었을 때였다. 낮게 신음을 내뱉은 발터가 그녀의 뒤통수를 잡아채듯 제게로 끌어안았다.

    철썩!

    두 육체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물이 거친 파열음을 내며 부서짐과 동시에 뜨겁고 두툼한 살덩이가 그녀의 입술 새를 거침없이 비집었다.

    그에게 안긴 이든의 눈동자가 소리 없이 크게 뜨였다. 발터가 그녀의 입 안을 격하게 빨기 시작한 탓이었다. 길어진 발터의 눈매 안에서 불꽃이 타들어 가는 듯 짙은 눈동자가 부들부들 떨렸다. 치솟는 욕망이 터지는 그의 눈 안에 그녀가 있었다.

    “흡…!”

    숨이 막히는 느낌에 이든이 그의 어깨를 그러쥐었지만 발터는 물러나기는커녕 더욱 강하게 그녀를 끌어안고 빨았다.

    발터의 혀가 더욱 깊숙이 그녀의 입 안을 휘저었다. 물속에서의 짧았던 입맞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찔한 감각에 이든의 입술에서 흐릿한 신음이 샜다.

    “흐읏…!”

    이든의 등을 지탱하던 발터의 커다란 손이 본능적으로 아래로 향해 그녀의 엉덩이를 쥐어짜듯 움켜쥐었다. 이든이 몸을 딱딱하게 굳혔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왼손이 그녀의 유방을 터뜨릴 듯 움켜쥔 것은 그다음이었다. 부드럽게 짓뭉개는 감각에 머리가 아찔하고 숨이 턱턱 막혔다.

    이 자식이 나를 죽이려고 작정을 한 것일까.

    “흐으, 하으….”

    이든은 자신을 노려보며 입 안을 멋대로 휘젓고 있는 발터의 혀를 강하게 쭉 빨았다. 뜨거운 호흡과 함께 타액이 딸려 왔다. 그에게서 그녀가 모르는 발터의 맛이 났다.

    “흐읏….”

    발터가 몸을 부르르 떨며 그녀의 유방을 쥐자 툭 불거진 손가락 마디 사이에서 꼿꼿이 선 유두가 꼬집히듯 눌렸다. 아찔한 고통에 비례하는 찌릿한 감각. 생소한 쾌락이 이든의 온몸을 휩쓸었다.

    “흐응!”

    이든은 그의 목에 팔을 감은 채, 몸서리를 쳤지만 맞붙은 입술의 결합은 점점 더 강해질 뿐이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뒤섞이는 혀가 게걸스레 서로를 핥았다. 이든이 발터의 타액을 빨면 그 역시도 그렇게 했다. 혀뿌리에서 치솟아 입 사이로 흐르는 타액을 발터가 개처럼 빨며 이든의 볼을 핥았다.

    “아윽!”

    핥고 빠는 걸로도 모자라 그녀의 뺨을 잘근잘근 씹는 발터의 머리통을 이든이 주먹으로 세게 후려쳤지만 그는 상관도 하지 않았다.

    “흣!”

    발터의 뜨거운 혀와 입술은 이제 그녀의 예민한 귓가로 움직였다. 그가 며칠 전 씹었던 귓불이 그의 입 속에서 쭉 빨리는 순간 이든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흐읏…!”

    꿈쩍도 할 수 없는 느낌. 그녀가 공부한 수많은 급소 중 귀 아래도 아닌 귓불은 해당 사항이 없었다. 당황한 이든이 목을 움츠리며 반사적으로 손을 아래를 향해 뻗었다. 공격을 당하면 곧바로 돌려준다. 몸에 밴 습관 탓에 확실한 급소인 발터의 아랫도리를 꽉 움켜쥐었을 때였다.

    “제기랄…. 이든…!”

    발터가 거친 숨을 탁, 토해 내며 그녀에게 이마를 붙였다. 손안에서 뚜렷하게 느껴지는 그의 커다란 성기가 강하게 박동하며 불끈거렸다. 이든은 뜨거운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그를 마주한 채, 성기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서 환장했어…?”

    발터가 이를 꽉 깨물며 그녀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꽉 잠겨 허스키한 목소리는 마치 누가 그의 성대에 불이라도 지른 것 같다.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싸움이라면 지겹도록 했다. 이든은 발터와 이제껏 붙어서 이긴 만큼 졌고, 진 만큼 이겼다.

    “당장 손 떼지 못해?”

    “싫어.”

    “제기랄…. 이든….”

    발터의 말끝이 흔들리며 흩어졌다. 그녀의 목을 단박에 틀어쥘 거라 생각했던 커다란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그녀의 아랫입술을 어루만지나 싶었다.

    “흡…!”

    발터의 입술이 다시 그녀에게 붙었다. 혀를 뜨겁게 휘감으며 발터가 허리를 움직이자 그의 성기가 그녀의 손안에서 스륵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

    어스름한 붉은 달빛이 이든의 커다래진 동공으로 흘러들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의 아랫도리를 움켜쥔 것은 이든, 자신이었음에도 그녀는 발터가 보이는 생소한 움직임에 어쩔 줄을 몰라 얼어붙었다.

    “하아…. 발… 흐읍….”

    쪽, 쪽. 발터의 입술이 그녀의 얼굴에 습하고 뜨거운 키스를 흩뿌리다 다시금 진하게 입술을 머금었다.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이든의 다리 사이가 찡하게 젖어 들며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을 선사했다. 물에 온통 젖어 있는데도 입술이 마르고 목이 탔다. 막힌 것은 입이지 코가 아니었음에도 숨이 가빠왔다.

    “발터, 하아, 이,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야…?”

    “하, 제발 손 떼지 마. 이든.”

    이든이 그의 성기를 쥔 손을 떼려 하자 발터가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그녀에게 몸을 붙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손을 떼라고 하더니 이제는 애원하듯 그녀를 끌어안는다. 도저히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왜, 왜 이래…. 발터.”

    “조금만, 흣, 더.”

    그는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를 떠올리며 늘 제 손으로만 몰래 달랬던 곳을 이든이 맨손으로 붙잡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정감이 치밀었다. 발정이 난 수캐처럼 허리를 흔들자 철퍽거리는 잔물결이 점점 격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흣, 하아…. 아흣….”

    “발터…?”

    괴로운 듯 신음하는 발터를 보며 당황한 이든이 손을 떼자 발터가 그녀를 제 품에 강하게 끌어안았다. 딱딱해진 성기가 그녀의 복부와 옆구리를 사정없이 찌르나 싶었다.

    “손 떼지 말라고!”

    “바, 발터….”

    “흣, 아…. 이든, 젠장…!”

    발터가 그녀의 입 안을 강하게 빨며 위로 번쩍 쳐들린 성기를 그녀의 살갗에 엉망으로 비벼 댔다. 이든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어쩔 줄을 몰라 그저 아래로 가라앉지 않으려 애를 쓸 뿐이었다.

    “흐읏…!”

    그녀의 아랫입술을 쭉 빨며 발터가 몸을 경직해 부르르 떨었다. 한 번이 아니었다. 허스키한 신음이 몇 번이나 그에게서 터져 흘렀다.

    “아아…! 아흣…! 이든!!! 젠장…. 아아!!!”

    발터가 짐승 같은 숨소리를 내뱉었다. 그의 양손이 탄력적으로 올라붙은 이든의 엉덩이를 터뜨릴 듯 쥐어짰다. 그녀를 끌어안고 밭은 숨을 헉헉 내뱉는 그의 눈가와 목, 귀가 정신없이 붉었다.

    “…바, 발터.”

    수차례의 사정을 마치고 발터가 마침내 그녀의 몸에서 천천히 떨어졌다. 영문을 모르는 이든이 어색함을 깨며 물었다.

    “…뭐야?”

    이마에서 물방울인지 땀방울인지를 툭, 떨어뜨리기만 할 뿐, 발터는 아무 말도 없었다.

    “야, 너… 괜찮아?”

    괴롭게 신음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든이 염려 섞인 시선으로 그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가 이제껏 발터와 수없이 많이 싸워 오면서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적나라하고 야하게 신음하던 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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