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은 다소 강압적인 관계를 포함하여 호불호가 나뉘는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용에 참고 바랍니다.
제1 장
제국력 175년, 겨울.
세르노티 영지
“숨이 완전히 끊어졌군요.”
여자의 시체 앞에서 교황 베네딕트가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깨끗한 아마포를 덮고 고요히 누워 있는 여자의 시체. 얼핏 봐서는 마치 편안히 잠든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살려 내.”
금실이 수놓인 베네딕트의 옷깃을 누군가가 붙잡았다. 괴로움을 억누르며 간신히 말을 내뱉는 남자의 눈빛이 시커멓게 일렁였다.
“…….”
베네딕트는 잠시 그를 응시하며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에 누군가 손을 댄 적이 언제였는지를 떠올렸다. 생각이 나지 않았다.
황족 이외의 사람이 그에게 손을 댄다면 사형이었다. 아니. 범인은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를 코앞에서 대면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한정되어 있었다.
“황가를 치유하는 것, 그게 당신의 의무 아닌가?”
옷을 움켜쥔 커다란 주먹에 핏줄이 불거졌다. 남자의 시선에 깊은 절망이 가득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의 눈빛은 처절했다.
그러니 잃기 전에 잘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베네딕트는 남자의 눈동자에 실린 한 줄기의 간절한 기대감을 싹둑 잘라 버리고 싶은 은밀한 충동을 느꼈다.
“그러려고… 이곳에 온 거잖아…?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 이든은 황가의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살려 내.”
완전히 꺼진 불씨를 품에 안고 있는 정신 나간 이를 보는 느낌이었다. 침묵을 지키던 베네딕트의 입술이 마침내 천천히 열렸다.
“나의 치유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죽기 직전의 사람을 치유할 수는 있지만 이미 사망한 이를 살릴 수 있다면 내가 바로 신이겠군요.”
스르릉.
잘 벼려진 날카로운 검의 날이 베네딕트의 목을 향했다. 동시에 어깨 아래로 드리운 베네딕트의 은발 한 줌이 소리 없이 잘렸다.
빠르다.
보통 사람과는 다른 눈을 가지고 있는 그조차 움직임을 감지할 수 없을 만큼 민첩한 동작이었다.
“신이 아니라면 인간인 내 손에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겠지.”
팔랑, 팔랑 은실처럼 아래로 떨어지는 베네딕트의 머리칼을 보며 발터가 이를 갈듯 속삭였다.
“그녀를 살려 내. 무슨 수를 다하든. 아니면 넌 죽어서 여길 나가게 될 것이다.”
베네딕트가 조금 웃었다.
“설마 날 죽이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교황이기 이전에 대마법사인 그의 가장 강력한 능력은 치유력이었다. 발터에게 아무리 치명적인 공격을 받는다고 해도 그가 성력을 끌어 올려 스스로를 치료하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작은 부락에 모여 사는 마법사 일족에 불과했던 베네딕트의 가문이 조상 대대로 황실의 관리를 받으며 갇혀 살아야 하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제국의 권력자는 마법사들의 능력을 독점하고 싶어 했다.
“가능한지 아닌지는 직접 겪어 봐.”
발터가 그에 목에 칼을 겨누며 거친 숨을 내뿜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요.”
베네딕트가 미소를 지으며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날카로운 칼날이 하얗고 주름 하나 없는 그의 목에 닿았다.
검날을 타고 흐르는 붉은 피를 보며 발터가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툭.
벌어진 상처는 칼을 타고 흐르는 피가 바닥에 닿기도 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베인 살갗에는 상흔조차 없었다. 발터의 눈동자에 스러져 가던 희망의 빛이 다시금 일렁였다. 베네딕트를 겨누었던 발터의 검이 순식간에 검집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를 살려 줘.”
교황의 치유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이상, 그는 이든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무엇이든 하겠다. 제발… 제발 그녀를 살려 줘.”
애원하는 발터에게 답하는 베네딕트의 목소리는 서늘하리만큼 건조했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미 숨이 완전히 끊어진 자를 치유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베네딕트는 말을 아꼈다. 일을 시도하기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눈앞의 남자, 발터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술을 씹었다.
“그럼 대체 여긴 뭣 하러 온 거지…?”
“황녀의 죽음을, 제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제국에 속한 교황청의 의무이기도 하니까요.”
베네딕트는 자신이 말이 끝나자마자 발터의 두 눈에 번지는 새카만 절망감을 확인했다. 발터가 무릎에 힘이 풀린 듯, 비틀거리며 시체가 누워 있는 침상을 붙잡았다.
“…이든.”
그는 감히 시체에게 손을 댈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침상을 잡은 커다란 손에 핏줄이 터질 듯 불거져 부들부들 떨렸다. 한 줄기 희망마저 날아간 그는 완전히 무너진 자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기다란 아몬드 같은 눈매에 담긴 어두운 갈색 눈동자에 물기가 차올라 아래로 툭, 떨어졌다. 한 방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또 한 방울. 눈물이 채 흡수되기도 전에 또 한 방울.
마른 뺨이 소리 없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로 흠뻑 젖었다. 베네딕트는 울고 있는 남자의 옆모습을 응시하며 자신이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렸을 때가 언제였는지를 생각했다.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자 기분이 조금 더 가라앉았다.
“돌아가기 전에 한 가지 확실히 해 두어야 할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색이 옅은 베네딕트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세르노티의 전대 가주인 발트리가 사망하였으니 하나뿐인 아들인 그대를 가주로 불러야 하겠군요. 발터 세르노티.”
이름이 불린 발터가 베네딕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눈물에 젖은 얼굴로 그를 응시하는 발터의 눈동자는 빛을 잃은 채 텅 비어 있었다. 베네딕트가 나타났을 때, 그는 지옥 불 속에서 천사의 손을 잡은 기분이었다. 그라면 이든을 분명히 살릴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다 끝났다.
“주군을 위해 존재하는 빛의 그림자. 전설의 세르노티 가문의 가주여. 제국의 교황으로서 묻습니다. 그대가 과연 빛의 그림자라 불릴 만한 자격이 있습니까?”
아마포 밑에 누워 있는 시체는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베네딕트의 눈에는 그녀의 상처가 고스란히 보였다.
왼쪽 가슴에 둘. 어깨에서 배까지 길게 가로로 하나, 마지막으로 목덜미를 날카롭게 찔린 자상은 그녀가 죽을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피의 맹세로 지켜야 할 주군이 이 꼴을 당하고 죽었는데, 감히 그림자 따위가 살아 있다니.”
색소가 옅은 베네딕트의 하늘색 동공이 서늘한 빛을 내뿜으며 확장되었다. 주위를 오싹하게 만드는 눈이었다. 대마법사인 그가 치유력만 가진 것은 아니었다. 사람을 꼼짝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의 눈동자. 보통 사람이라면 그가 내뿜는 마력에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당신의 말이 맞아. 나는 그녀와 함께 죽었어야 했다.”
발터가 검을 다시 뽑아 들며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누워 있는 그녀가 지금이라도 당장 눈을 뜨고 그의 이름을 부를 것 같았다. 장난이라고, 놀랐느냐고, 겁쟁이라고, 멍청이라고, 예전처럼 그를 보며 입을 크게 벌리고 하하 소리 내어 웃을 것만 같았다.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당신을 기다렸다. 하지만 가망이 없다면 당신의 말대로 나의 존재도 의미가 없는 것이겠지.”
빛이 없는 곳에 그림자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 발터가 칼을 공중에 치켜드는 것을 바라보며 베네딕트가 확실하게 덧붙였다.
“나는 황족이 아닌 자는 치유하지 않습니다. 나의 자비심에 기대어 자살을 시도할 생각이라면 어리석다는 뜻입니다.”
“하하….”
발터가 흐릿한 눈동자로 낮게 웃었다. 죽어가는 이든을 들쳐 업고 돌산의 마법사에게 간신히 도달했을 때 그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늙은 마법사는 빛을 잃어 가는 황가의 보석, 온몸이 난도질당해 시체가 되어 나타난 이든을 보며 기절할 듯이 놀랐다.
“대마법사를 불러야 합니다…. 아니, 베네딕트 님이라면 벌써 알고 계실 수도….”
늙은 마법사의 말은 맞았다. 베네딕트는 이미 비밀리에 교황청을 떠난 후였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발터는 가슴속이 숯처럼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황족이고 싶었던 적은 이제껏 단 한 번도 없지만….”
눈뜨지 않는 그녀를 곁에서 바라보는 것은 숨 막히는 고통이었다.
“지금만큼 그 사실에 감사하기는 처음이군.”
마지막 중얼거림을 끝으로 발터의 검이 공중에서 한 바퀴를 휙 돌았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이든.’
잘 벼려진 검이 빠르게 움직이며 환영 같은 푸른빛을 만들어 냈다.
‘심장을 찌를 수 없는 것은 네가 이해해 줘. 네 심장은 너의 것이니까. 죽어서 다시 만났을 때, 네가 직접 내 심장을 찔러 줘.’
베네딕트는 발터의 검이 주인의 목을 깔끔하게 잘라 내는 광경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과연 세르노티의 가주다운 모습이었다. 발터는 망설이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려 왔던 사람처럼, 마지막까지 눈을 감지도 않고 제 검으로 자신의 목을 쳐 냈다. 살아남을 수 있는 일말의 기회조차 남기지 않는 선택이다.
툭.
깔끔하게 잘린 목에서 분수같이 피가 뿜어져 나왔다. 잘린 후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던 발터의 머리가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시체의 어깨 위로 정확하게 안착한 발터의 얼굴에서 희미한 미소가 흘렀다. 만족한 듯한 표정. 이제까지 그가 보인 모습 가운데 제일 편안한 얼굴이었다.
“…이토록 강직한 그림자를 가졌는데, 어째서 이 꼴이 나셨습니까.”
조용히 상황을 관망하던 베네딕트가 마침내 피로 물든 바닥을 저벅저벅 걸었다. 침상에 걸쳐진 발터의 시체와 머리를 차례로 밀어 아래로 휙 떨어뜨렸을 때였다. 말없이 잠든 그녀를 보는 베네딕트의 단정한 눈썹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지금 동요하는 겁니까?”
이미 숨이 끊어진 지 오래. 그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영혼이 희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빛을 잃은 황가의 보석을 보고 상황을 감지한 베네딕트가 세르노티 영지까지 오는 데는 사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매일 그의 동향을 체크해 보고하는 황실 근위대의 감시를 피해 교황청이 위치한 별궁 전체에 마법을 걸어야 했고, 그 때문에 출발이 더뎌졌다. 지금 그의 눈앞에 보이는 몸속에 있는 영혼은 그녀가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베네딕트는 고개를 아래로 떨구어 제 목에 걸린 조그마한 보석을 바라보았다. 반으로 잘린 보석 안에서 빛이 흐리게 점멸하고 있었다. 잠시 미동 없이 침상을 응시하던 베네딕트가 마침내 결정을 끝냈다. 어차피 이러려고 이곳까지 온 것이다.
하얀 손에서 푸른 성력이 뿜어져 나왔다. 발터의 잘린 머리가 저절로 움직여 그의 몸에 붙었고 멈추기 직전의 심장이 다시 느리게 박동했다. 강인한 육체에 빠른 회복력을 가졌다면 눈을 뜨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반나절은 지나야 할 테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그녀를 살려야 할 시간이었다. 베네딕트는 왠지 모를 긴장감에 느리게 입술을 축였다.
당신이 알면 노하시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그의 옷이 저절로 움직이며 소리도 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얗게 빛나다 못해 푸른빛을 띠는 그의 나신이 공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번쩍.
발터는 베네딕트의 예상보다도 훨씬 빨리 눈을 떴다. 자신에게 아직도 숨이 붙어 있다는 사실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흐릿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이었다.
피로 범벅이 된 침상 아래에 구겨진 아마포와 풀어져 내린 붕대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컴컴한 공간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빛의 원천은 전라의 상태로 이든을 안고 있는 베네딕트였다.
그녀의 몸에 길게 드리운 은발은 마치 반딧불이 수만 마리가 내려앉은 것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그의 몸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처나 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의 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빛나는 나체였다. 발터가 깨어난 것을 인지한 베네딕트가 그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지금 대체 이든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발터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억눌린 신음뿐이었다.
“…흣…!”
자리에서 일어나려 발버둥을 쳤지만 역시나 무리였다. 베네딕트가 느리게 숨을 몰아쉬며 차가운 이든의 몸을 어루만졌다. 그의 손이 닿는 곳마다 푸른빛이 감돌았다. 베네딕트의 몸 아래 누워 있는 나체의 이든은 여전히 미동이 없었다.
“그녀의 영혼이 격렬하게 반응하는군요. 나를 그대라 착각하고 있습니다. 가엾게도.”
“흐…. 으…. 으으윽…!”
발터의 몸이 고통스레 꿈틀거리는 것을 보며 베네딕트가 흐릿하게 웃었다. 그가 한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녀의 영혼은 치료를 격렬하게 거부하고 있어 오히려 시간이 걸리는 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움직임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었다.
이제야 알았다. 죽음을 기꺼이 감수하는 강력한 ‘그림자’를 가졌음에도 그녀가 죽어야 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사랑을 하셨던 겁니까.”
이든의 귓가에 작게 속삭이는 베네딕트의 입술이 그녀의 목에 난 자상을 훑었다. 길게 찢긴 그녀의 가슴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낮게 조소했다.
“어리석기도 하지요. 황가의 사람으로 태어나 사랑 따위를 바라다니.”
“흑….”
발터가 그를 향해 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바닥을 짚은 손이 엉망으로 떨리지만 그는 확실히 움직이고 있었다. 놀라운 힘이다.
치명상을 겪다 살아난 이는 아무리 회복력이 빠르다 해도 손을 까딱하는 데만 반나절이 넘게 걸렸다. 목이 잘렸다가 붙은 발터를 움직이게 하는 것도, 완벽하게 숨이 끊어지고 나서도 영혼이 사라지지 않는 것도 모두 같은 이유일 테다.
“괴롭습니까? 무엇이?”
베네딕트의 입술이 상처 난 몸에 키스를 뿌리며 점점 아래로 향했다. 자상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몸은 여기저기 흐릿한 상처가 가득했다. 그동안 얼마만큼 힘든 삶을 살았는지 보여 주는 증거였다.
“그대의 간절한 바람대로 나는 그녀를 치유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것이 감당하기 버겁습니까?”
당신이 한 사랑이 고작 그 정도입니까.
베네딕트는 뒷말을 삼키며 긴 은발 사이로 고개를 들었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입술을 꽉 깨문 발터는 더 이상 앞으로 다가오지 않고 있었다. 베네딕트가 그를 향해 젖은 숨을 내쉬었다.
“기억하십시오. 그녀가 운명을 거스르려 했을 때 일어났던 끔찍한 일을.”
베네딕트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발터에게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가장 소중한 이가 품 안에서 숨을 거두는 모습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녀는 제국의 황제가 되어야 할 사람입니다. 이런 곳에서 초라한 죽음을 맞이해야 할 이가 아닙니다.”
“으흐…. 흐으….”
발터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어금니를 부서지도록 사리물었다. 이든을 살릴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고 맹세했다. 그녀의 죽음은 그에게 자신의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베네딕트가 이든의 몸을 차가운 손으로 어루만지고, 입술과 혀로 느릿하게 핥았다. 치유에 완전히 열중한 베네딕트는 더 이상 목소리로 말하지 않았다. 싸늘했던 그녀의 시체에 온기가 돌기 시작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몸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뿐으로, 영혼을 붙잡는 것까지는 제 능력의 범주 밖입니다.’
베네딕트는 입을 열지 않았지만 발터의 머릿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그의 입술이 입 맞추고 지나다니는 자리마다 상처가 조금씩 흐릿해지고 있었다.
교황이 가진 치유력이 얼마만큼 대단할 수 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이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순간.
발터는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고통을 느꼈다.
‘이 정도의 부상이라면 매일 몸을 마주 닿아야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오래 자리를 비울 수가 없습니다.’
그 때문에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그녀의 상처를 치료해야 했다. 베네딕트는 잠시 눈감은 이든의 얼굴을 보았다. 다행히도 오래전 기억 속의 그녀가 겹쳐지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주저했을 것이다.
베네딕트의 손이 그녀의 다리를 잡아 느리게 벌렸다. 그가 빛나는 상체를 천천히 세우자 이든의 몸에 드리웠던 하얀 은발이 걷히며 상처가 사라져 매끈해진 그녀의 나체가 드러났다.
숨을 천천히 몰아쉰 베네딕트가 앉은 채로 자신의 몸을 그녀의 몸 안에 천천히 밀어 넣었다. 합일하는 순간, 베네딕트는 고개를 들고 소리 없이 신음했다. 부상자가 겪어야 했던 모든 고통을 그대로 느끼는 것은 치유자의 숙명이었다.
베네딕트가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미동 없던 이든의 손이 미약하게 움찔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발터의 심장에서 푸른빛이 넘치듯 뿜어져 나왔다.
“저런. 성력을 낭비하면 곤란합니다.”
베네딕트가 그녀의 가슴을 손에 쥔 채, 그녀의 안을 느리게 왕복하며 꽉 잠긴 목소리를 내뱉었다. 은발 사이로 드러난 그의 얼굴은 불그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발터는 그와 결합한 이든에게 시선을 두지 않으려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다.
“그대의 몸에 내 성력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녀가 깨어날 때까지, 그대의 성력을 조금씩 주입하십시오. 방법은… 지금 두 눈으로 보고 있으니 잘 아시겠지요.”
베네딕트가 그녀의 유두를 돌려 핥으며 입술을 올렸다. 심장에서 뜨거운 것이 폭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발터는 가까스로 참아 냈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괴로워하는 발터를 내려다보며 베네딕트가 땀에 젖은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녀의 영혼도 그대만큼이나 흥분하는 것 같군요.”
실체 없이 일렁이는 그녀의 영혼이 날뛰듯 커다래지고 있었다. 불꽃이 넘실거리듯 커다랗게 확장되는 영혼을 통해 베네딕트는 그녀가 얼마만큼이나 이 순간을 괴로워하는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살아나는 것보다 차라리 죽기를 원하는 것이다.
‘재미있군.’
베네딕트는 그녀에게 흥미가 일었다. 상처 입은 자를 치유할 때 몸을 마주 대면 상대의 모든 기억을 얻게 된다.
“황제 자리 따위는 관심 없다, 발터.”
거짓이라고는 한 톨도 담기지 않은 그녀의 목소리는 숨기지 않는 흥분을 띠고 있었다. 반짝이는 보라색 눈동자가 웃음을 담고 가늘어졌다.
“난 이대로, 여기서 너와 함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거야. 여기, 세르노티가 내 집이니까.”
초라한 이곳을 집이라 칭하는 그녀의 심장은 따스함을 안고 건강하게 뛰고 있었다. 베네딕트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두 육체의 결합이 더욱 진득해지고 격렬해졌다. 손으로 쓸어내리면 도자기 가루가 묻어날 것같이 하얀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베네딕트는 몰입하고 있었다. 결합한 곳에서 정념을 담은 흔적이 뜨겁게 흘러내렸다.
“사랑해, 발터.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어.”
넘실거리는 영혼이 마침내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영혼이 그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달아날지도 몰랐다. 치유를 거부하는 영혼의 몸을 함부로 손댔다가 육신과 영혼이 영원히 분리된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베네딕트는 움직임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 네가…. 왜…?”
죽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상대에 대한 비난이나 원망도 없었다. 단지 의문만이 있을 뿐이었다.
베네딕트는 더욱 거칠게 몸을 움직였다. 그녀의 몸속에 성력을 넘치게 주입했다. 과하게 흘러 들어간 성력을 미처 흡수하지 못한 그녀의 몸이 튀듯이 움찔거리며 반응하고 있었지만 베네딕트는 그녀의 기억을 엿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아는 황족이란 모두 이기적인 존재였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타인을 희생양 삼는 것을 당연하다 생각하는 클라웨의 피가 그녀의 혈관 속에도 흐르고 있을 터였다.
대체 어째서.
왜.
그녀가 황제가 된다면 피로 얼룩진 클라웨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었을 텐데. 베네딕트는 그녀의 허망한 죽음에 진심으로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녀를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어떤 희생이 치러져야 했는지를 떠올리자 베네딕트의 심장이 미친 듯한 속도로 뛰었다. 그의 가슴속에서 불꽃이 희미하게 타오르기 시작했지만, 베네딕트는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다.
“하아…. 하아….”
자리에서 일어난 발터가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을 때에야 베네딕트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직… 입니까…?”
스스로의 이에 짓눌려 엉망이 된 발터의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의 어깨를 쥔 손에서 발터의 고통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녀를 위해 자기 자신의 목을 벤 남자였다. 베네딕트는 이토록 강한 이를 사로잡은 그녀의 실체가 더더욱 궁금해졌다.
그녀는 황궁을 떠나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이대로라면 차라리 기억이 없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과거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채 그녀가 돌아온다고 해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끝났습니다.”
이든의 이마에 길게 키스한 후, 베네딕트가 마침내 몸을 떼어 냈다. 칼자국이 가득하던 그녀의 몸은 긁힌 흔적 하나 없이 매끈했다. 차가운 시체에 온기가 돌았다. 왼쪽 가슴 안에서는 심장이 편안한 속도로 박동했다.
“남은 건 그녀가 눈을 뜨는 것뿐.”
발터가 비틀거리며 이든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눈물 젖은 그의 뺨에 여릿한 숨결이 닿아 오는 순간, 발터는 오열하며 무너지고야 말았다.
“이든… 아아, 이든….”
발터는 사흘 밤낮 꼬박 이든의 곁을 지키며 잠든 그녀가 눈을 뜨기를 기다렸다. 그의 바람과는 달리 이든은 쉽사리 눈을 뜨지 않았다.
제국력 175년.
클라웨 제국의 황태자 크리스티앙이 성대한 계승식을 치르며 제국의 9번째 황위에 오른 해였다.
***
20xx년 대한민국.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딸, 생일 축하합니다.”
“아빠! 감사합니다!”
혜미가 손뼉을 치며 붉은 촛불을 훅, 불어 껐다. 거실에 전등이 환하게 켜짐과 동시에 엄마가 그녀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퍽, 하고 후려갈겼다.
“대체 뭘 잘했다고 생일상을 받아?”
“아야, 아파라….”
엄마 손은 역시나 맵구나, 생각하며 혜미가 숨을 몰아쉬었다.
“당신은 왜 생일날 애를 패고 그래.”
딸이 측은해진 아빠가 엄마를 나무랐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속상하니까 그렇지! 또래 애들은 얼마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고 있는데, 이건 공부는 일찌감치 포기한 데다 잘하는 것도 하나도 없고, 낙하산으로 간신히 알바 꽂았는데 사흘 만에 때려치우고 나와? 박 사장한테 내가 창피해서 뭐라고 말도 못 해!”
케이크를 박스 안에 도로 집어넣으며 잔소리를 이어 가는 엄마를 향해 혜미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치킨집 주방 아저씨가 좀 이상했다니까. 엄마 근데 케이크는 지금 먹으면 안 돼?”
엄마의 단골 미용실에서 만난 친구인 박 사장 아줌마는 큰길 상가 건물 1층의 치킨집 사장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집에 처박힌 혜미를 홀 서빙으로 꽂아 준 것까지는 좋았다.
“난 네가 세상에서 제일 이상해!”
혜미의 바람을 무시하듯 엄마가 냉장고 문을 탁 닫으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고작 텃세 하나도 못 이겨 내는 정신머리로 세상을 어떻게 산다는 거야?”
닭을 튀기면서도 흘깃흘깃 혜미를 바라보던 주방 담당이 은근슬쩍 그녀의 뒤에 다가와 아랫도리를 엉덩이에 쓱 문지르고 지나갔을 때가 아르바이트 3일째였다. 혜미는 한숨을 감추며 작게 중얼거렸다.
“텃세가 아니라니까.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맨날 나만 가지고 그래.”
이런 대우를 받을 거면 박 사장 아줌마와 엄마의 관계 따위 생각하지 않을 걸 그랬다. 그가 박 사장의 시동생이건 말건 변태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망신을 주고 나오는 건데.
“모르긴 뭘 몰라. 안 봐도 딱이지. 한 소리 들었다고 귀찮아하면서 ‘에이 씨, 몰라. 때려치워.’ 이랬겠지. 너 정말 앞으로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래? 평생 엄마 아빠한테 붙어서 살래!”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나오기까지 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엄마의 타박뿐이었다. 혜미는 갑자기 억울해져 눈물이 핑 돌았다.
“얼씨구? 잘한 게 뭐 있다고 울어! 아후, 열통 터져!”
“여보, 그만하라니까.”
아빠가 엄마를 만류했다. 아침부터 식탁에서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의 주원인은 늘 이 집의 하나뿐인 딸이자 청년 실업자, 엄마의 말대로라면 골칫거리인 그녀였다.
“내가 일류 대학에 붙으라고 쪼길 했어, 아님 호강시켜 달라고 노랠 부르길 했어. 그냥 제 앞가림만 하라는 거 아냐! 맨날 집에서 휴대폰이나 붙들고 뒹굴거릴 시간에 나가서 사람이라도 만나라고!”
친구도 돈이 있어야 만난다. 긴축재정에 돌입한 탓에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서 얌전히 살고 있는데. 그런 그녀의 마음도 모르고 엄마가 푹 끓인 미역국을 국자로 뜨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남들은 연애도 잘만 하던데. 어디 모자란 것도 아니고…. 아니다. 저건 어디가 모자라도 많이 모자란 거야. 허우대만 멀쩡하면 뭐해? 도둑고양이 밥이나 주러 쏘다니지 말고 좀 생산적인 일을 하면 안 되겠니?”
혜미가 눈매를 일그러뜨리며 미간을 중앙에 모았다.
“걔네들은 나 없으면 죽어, 엄마.”
매년 여름이 얼마나 덥고 겨울은 또 얼마나 추운지 몰랐다. 씩씩하게 길 생활 하는 고양이들을 챙겨 주면 쓰레기봉투를 뜯을 일도 없어지게 된다. 동네 평화를 위해 이토록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그녀의 노고는 엄마의 눈에는 딱 헛짓거리로만 보일 뿐이었다.
“너 때문에 내가 딱 죽겠어!”
“여보, 이제 그만해. 응? 혜미, 얼른 밥 먹고.”
늘 다정한 아빠지만 엄마에게 꼼짝 못 한다는 것이 이럴 때면 더욱 서러웠다.
“엄만… 내가 없어지면 속 편하겠지?”
머리를 거치지 않고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앞치마를 매고 한 손에 국자를 든 엄마의 눈이 가늘어졌다. 미간에 ‘내 천’자를 깊이 새긴 엄마는 까딱했다간 국자로 그녀의 머리를 내려치기라도 할 기세였다.
“뭐라고?”
여기서 한마디만 더하면 일이 커진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도저히 억울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혜미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크게 뜨고 엄마를 노려보았다.
“그렇잖아. 내가 죽어 버리면 속 편할 거잖아.”
“이게 지금 어디서 반항이야! 그게 부모 앞에서 할 소리야 지금!”
탁.
결국 선을 넘은 그녀는 국자로 머리를 맞았다. 주르륵. 참기름방울이 자잘하게 녹아든 국물이 이마에서 뺨을 타고 내려왔다.
“여보!”
참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혜미는 눈썹에 미역 건더기를 붙인 채, 식탁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찾지 마세요.”
“안 찾아!”
뜨거워지는 콧잔등을 손등으로 세게 비빈 후, 현관을 향해 걸었다. 맨발을 운동화에 구겨 넣는데 엄마의 새된 소리가 뒤통수에 내리꽂혔다.
“너 지금 나가면 집에 들어올 생각 하지도 마!”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안 온다. 진짜 안 들어올 것이다.
혜미는 뜨거워진 숨을 씩씩 몰아쉬며 아파트 3층 계단을 빠르게 내려왔다. 집에서 15분 거리에 한강 다리가 있는 게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하하하하하. 크게 웃어 봐요. 세상은 아름다워요.
자살 방지를 위해 교각 난간에 주르륵 붙은 캐치프레이즈는 완벽한 역효과로 오히려 그녀를 비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생일날, 부모에게까지 이런 모욕을 받으며 세상에 살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혜미는 물에 콱 빠져 죽어 버리기로 했다.
***
혜미는 결국 죽지 못했다.
한강 다리에서 바람을 맞으며 막상 아래를 내려다보니 넘실거리는 푸른 물이 너무 깊어 보였다. 이런 물에 빠지면 익사는 당연할 것 같았다. 자살하려고 갔는데 무서워서 그만두었다는 건 조금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어차피 그녀의 결심은 그녀 빼고는 아무도 모르니까 상관은 없었다. 혜미는 늘 자신에게 관대했다.
운동화를 짝짝이로 신고 나온 것도 죽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였다. 죽을 때까지 칠칠치 못한 성격을 광고하고 떠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내 딸아! 속옷도 짝짝이, 양말도 짝짝이, 결국 마지막까지 짝짝이로 살다가 덤벙대며 가는구나!”
엄마의 잔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탓에 구천을 떠나지도 못하는 귀신이 될지도 모른다.
죽지 않을 이유를 떠올리니 생각이 끝도 없이 퐁퐁 샘솟았다. 그녀가 밥 주는 길고양이 다섯 마리의 예후도 걱정이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콧수염 주변에 짜장 국물이 튄 것 같이 귀여운 무늬를 가진 턱시도는 지금 임신 중이지 않은가. 짜장이가 몸 푸는 것까지는 보고 떠나야 했다.
결국 혜미는 이 외에도 수없이 많은 이유 때문에 자살 시도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문제는 지갑도 안 가지고 뛰쳐나온 바람에 어디 따로 갈 곳도 없다는 데 있었다. 어차피 지갑이 있다고 해도 통장의 용돈은 이미 바닥이었지만.
결국 그녀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와 엄마는 이미 일하러 나가고 없었다. 그들은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목욕탕을 운영하고 있었고, 명절에도 한 번도 쉰 적이 없는 성실한 이들이었다. 그런 부모의 눈에 하나뿐인 자식인 그녀가 어떻게 비칠지, 예상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세상에 자식처럼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냉장고에 국 있다. 데워 먹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