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들만의 웨딩-29화 (완결) (29/29)
  • 29. 결혼 부케

    스티브는 그녀가 품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춤을 추자고 한 것을 후회했다. 그의 품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그녀의 부드럽고 섬세한 몸은 그가 경험해 본 고문 중에 가장 지독한 것이었다.

    스티브는 눈을 감았다. 이건 천국이었다. 아니, 지옥이었다. 그는 할리에게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으면 싶었다. 하지만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꿈에 나타났고, 그것만으로 부족한지, 낮에도 나타났다.

    음악은 느리고 부드러웠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필요없다고 느꼈다. 무슨 말을 해야 했다고 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할리를 다시 품 안에 안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황홀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할리는 그를 향해 마음의 문을 닫고 집까지 팔고 이사를 가버렸다. 늦기 전에 그만둔다고! 그녀는 그를 내동댕이쳐 버린 것이다. 별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남자에게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다. 그녀에게 기어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절대, 나는 절대 그런 짓은 못한다.

    또한 문제의 기미가 보이자마자 달아나는 여자라니! 가장 화가 나는 것은 그들의 싸움이 전부 메리 린과 관련되었다는 사실이다. 일이 생긴 지 며칠 후에 메리는 한결 편안한 상태로 전화를 걸어 킵은 이혼했고 증명서류도 보여 주었다고 했다. 메리 린이 중혼자와 같이 살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그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이미 할리를 잃은 후였다.

    음악이 끝나고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다음 두어 시간 동안 스티브는 할리가 몇 명의 다른 파트너들과 춤을 추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여섯 명까지 세다가 포기했다.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어진 그는 의자를 벽 쪽으로 돌려 앉았다. 그리고 샴페인을 한 잔 더 마시고, 누군가의 고모라는 여자와 춤을 추었다.

    [할리 누나하고 춤 안 춰?]

    케니가 물었다.

    [응.]

    그는 단숨에 샴페인 잔을 비웠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웨이터에게서 새로 한 잔을 더 받았다. 가슴의 통증이 둔화되고 아랫도리의 통증이 더욱 커질 만큼 마셔댔다. 할리와 같이 잔 적이 없었다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녀를 너무나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대해서 자기 자신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도, 또 하지도 않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잠자리를 같이 했다면 그녀가 떠나가도록 놔줄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볼링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물어 봤어?]

    스티브는 고개를 저었다. 케니가 실망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이는 할리를 사랑했다. 아이만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남자는 물러설 때를 알아야 하는 법이었다.

    [할리 누나는 아무하고도 데이트 안 한대. 내가 물어 봤어.]

    케니는 중요한 비밀을 얘기하듯이 소근거렸다.

    [우리 다른 이야기하자, 응?]

    [엄마는 재혼했어.]

    아이는 그의 소매를 끌었다.

    메리 린이 그의 인생에서 떠나갔다는 사실을 환기시켜 줄 필요가 없었다. 그가 원하고 열망하는 사람은 할리였다.

    그는 샴페인 잔을 내려놓고 그녀가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느린 발라드 음악이 시작되었다.

    아무 말 없이 그는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 손을 잡았다.

    [우린 이미 췄잖아요?]

    그녀는 불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두 번이나.]

    [알고 있소, 그 두 번은 사람들 이목 때문이었고 이번엔 나를 위해 추는 거요.]

    스티브는 그녀의 가슴이 자시에게 꼭 맞닿도록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녀가 그에게 미친 강한 영향력을 말없이 알려 줄 수 있을 만큼......

    그녀는 긴장했다.

    [당신을 위해서요? 이해할 수가 없군요.]

    [당신과 같이 잘 수 있는 기쁨을 거부당했다는 사실을 잊었나 보군.]

    할리는 턱을 치켜 올렸다.

    [기회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니었죠.]

    [그게 내 잘못이었다는 건 인정하지. 아마도 이것이 나한테는 마지막 기회인 것 같군.]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요. 아무래도 그만 하는 게 좋겠어요.]

    [절대로 안 돼.]

    그는 혀 끝으로 그녀의 목에 키스하고는 그 반동이 할리의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스티브........이러지 않는 게 좋아요.]

    그녀의 반항은 미약했다. 그는 그녀가 눈을 감고 고개를 자신을 향해 파묻고 있는 것을 보며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특히 그의 아이가 보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2백 명이 앞에 있다는 사실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상상력을 동원하면 문제 없었다. 그는 그녀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어떻게 그녀와 사랑을 나눌지 조목조목 속삭였다. 그리고 매일 밤 침대에 누운 그녀를 생각하며 꿈을 꾸고 그녀와 같이 있는 것외에는 거의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귓볼을 자극했다.

    두 사람은 음악에 맞추어 움직였고, 그는 속삭이며 그녀를 취하게 만들었다.

    얼굴에 파묻은 그녀의 숨소리가 들릴 때까지 그는 자기가 하는 말이 어떤 효과를 내고 있는지 몰랐다.

    음악이 끝났지만 그들은 댄스 플로어에 그대로 서 있었다. 지금 할리를 잃으면 영원히 후회할 것을 알기에 그는 팔을 더욱 세게 조였다.

    그는 음악이 다시 흐르기를 고대했지만 그 대신 도널리가 부케를 던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할리는 시선을 아래로 떨군 채로 스티브의 팔에서 빠져나왔다.

    여러 명의 젊은 여자들이 도널리의 주위로 몰려들어 부케를 받을 자세를 취하는 게 보였다.

    도널리는 발끝을 들었다.

    [할리, 어디 있니?]

    [나....가야 해요.]

    [그런 것 같군.]

    할리는 신부를 둘러싼 무리들과 합류했다. 할리는 두 팔을 들며 가까이 다가갔고 도널리는 가장 친한 친구를 확인하고는 뒤로 돌아 부케를 살짝 던졌다.

    스티브가 볼 때 도널리는 할리를 향해 던진 것 같았다. 그러나 할리가 아니라 10대로 보이는 어린 소녀가 껑충 뛰어서는 공중에서 부케를 움켜 쥐었다. 그 소녀는 부케를 쳐들고 신나게 흔들어 보였고 스티브는 그 소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할리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가버린 것이다.

    아마 공항으로 향한 도널리와 같이 갔으리란 짐작이 들었다.

    돌아올 거야. 그는 자신을 달랬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자. 지금까지 기다려온 것을 생각할 때 몇 분 정도 더 기다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할리는 피로연장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스티브는 참담한 기분으로 케니와 앉아 있었다. 이게 최선이라고 자신을 달래려고 애썼다. 이제 끝났다. 할리가 원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서로 다시 만날 필요도 없었다.

    스티브는 믿을 수 없었다.

    스티브는 마침내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떠났다. 피고하고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였다. 할리를 다시 찾는 일이 수포로 돌아갔지만 결혼식은 훌륭했다. 할리와의 춤은 최고였다.

    수많은 추억과 희망, 가능성에 대한 회상을 불러일으켰다. 타드의 행복은 그를 즐겁게 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고독은 더욱 깊어갔다. 그것은 또한 그에게 용기를 주기도 했다.

    어쩌면 아직 늦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나 잘래.]

    케니는 집에 오자마자 양복을 벗고 넥타이를 풀었다.

    [아빠는 나간다.]

    스티브가 소리쳤다.

    [어디 가?]

    결정은 내려졌으므로 스티브는 주저하지 않았다.

    [할리 누나하고 이야기하러.]

    케니는 손가락 두 개를 입에 넣고는 크리스털이 달가닥거릴 정도로 크게 휘파람 소리를 냈다.

    [잘 해봐, 아빠.]

    그리곤 넥타이를 깃발처럼 휘둘렀다.

    [아빠가 누나랑 결혼하면 좋겠어.]

    [결혼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단다.]

    스티브는 기대를 하지 않도록 이렇게 다짐했다.

    [얼마나 오래 가 있을지 모르겠다.]

    [걱정 말고 천천히 와. 얼마든지 늦게 와도 돼.]

    케니가 어른처럼 덧붙였다.

    페드럴 웨이까지 가는 얼마 안 되는 동안에 스티브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궁리했다. 꽃집에 잠깐 들른 그는 그녀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차를 댔다. 그녀의 아파트를 찾기까지 거의 10분이 걸렸다.

    머리가 어지러워,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고 심장은 심하게 두근거렸다. 초인종을 누른 후 문이 열렸을 때 열심히 준비해 둔 인사말은 목에 걸려 나오지가 않았다.

    문을 열어 준 사람은 어떤 남자였다.

    [네?]

    그는 키가 크고 할리보다 한참 어렸다.

    [아, 집을 잘못 찾아온 것 같군요.]

    스티브는 이맛살을 찡그리며, 종이 쪽지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혹시 할리 매카시를 찾으십니까?]

    스티브의 얼굴이 밝아졌다.

    [네.]

    [그럼 들어오십시오. 지금 아기와 함께 침실에 있거든요. 난 제이슨 이라고 합니다. 줄리의 남편이죠.]

    [아, 네.]

    스티브는 자기 소개를 하고 손을 내밀었다. 할리는 엘렌의 엄마인 여동생 줄리 이야기를 했었다.

    [줄리와 나는 지금 하와이로 가는 길이죠. 아침에 비행기를 타야 해서 오늘 밤 할리 집에 머무르기로 한 겁니다.]

    [아, 그렇군요.]

    스티브가 중얼거렸다. 타이밍이 전혀 맞지 않았다.

    [할리는 나중에 만나야겠군요.]

    들고온 노란 장미꽃 다발은 텔레비젼 위에 내려놓았다.

    주차장에 이르렀을 때 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그대로 가버리면, 값비싼 대가를 치를 줄 알아요, 스티브 매리스.]

    할리는 팔장을 끼고 멀찍이 서서 소리쳤다.

    [꽃을 사다 준 이유가 있나요?]

    [그렇소.]

    그는 태연한 척 말했다.

    [결혼식 부케요. 뒤쪽에 있다가 부케를 받지 못했잖소. 부케를 받아 볼 기회를 주려고.]

    [부케와 함께 남편도 줄 건가요?]

    [그건 경우에 따라 다르지.]

    그가 대꾸했다. 축구 운동장 반 만큼의 거리를 두고 이렇게 소리를 지르고 있으니 바보 같이 보였다. 그는 할리 쪽으로 다가갔다.

    [왜 왔어요?]

    그녀의 아름다운 눈은 그에게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해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만약 볼링 파트너가 필요해서라면, 이대로 지옥에나 들어가시죠.]

    [사랑한다고 하면 당첨금으로 2백 달러쯤은 줄 건가?]

    [방향은 맞았군요.]

    그는 빙긋이 웃었다.

    [왜 나를 사랑하죠?]

    [왜냐고?]

    그녀가 물을 것으로 예상했던 말들 중에 이 말은 없었다. 그는 목뒤를 손으로 쓸면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시험을 보게 될 거라는 말을 아무도 안해 주던데.]

    [그게 그렇게 힘들어요?]

    [아니오.]

    하지만 그는 정답을 말해야 했다. 어떤 의심의 여지를 남겨 놓고 싶지 않았다.

    [케니 때문인가요?]

    [아니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몇 가지나 되나 세어 볼까?]

    [좋아요.]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때문에. 내 아이를 사랑해 주는 것 때문에. 흥분했을 때 빛나는 눈 때문에. 볼링 공을 웃기게 던지면서도 핀을 넘어뜨리기 때문에. 초코칩 쿠키를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만들기 때문에.]

    [로스트 치킨 얘긴 왜 빠졌어요?]

    [그것도 아주 훌륭했소, 당신처럼. 당신은 익살스럽고, 고집불통이고, 의지가 강하고, 멋있소. 당신을 미치도록 사랑하오.]

    [얼마만큼?]

    [내 평생 당신만을 사랑할 거라는 사실,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라는 사실을 알 만큼. 결혼해 달라고 할 만큼......]

    [결혼?]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신부 부케를 사온 거요.]

    스티브는 웃음을 터뜨렸다.

    할리는 달려나와서 그의 품에 안겨 열렬히 키스를 퍼부었다.

    부드러움이나 섬세함이 없이 격하고 거친 키스였다. 쌓였던 갈망을 달래주기 위한 듯 키스는 그칠 줄 몰랐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는 그녀를 바닥에 뉘고 머리카락 속으로 손을 넣었다. 할리의 거친 숨결이 그의 피부 아래서 따뜻하게 퍼졌다. 그는 그녀의 상큼하고 독특한 체취를 들이마셨다.

    [그건 내 생애에 가장 저속하고 더러운 수법이었어요.]

    그녀는 그의 목에 손을 깍지낀 채 속삭였다.

    [뭐가?]

    [댄스 플로어에서 말이에요. 도대체 나한테 어떻게 한 건지 알기나 해요?]

    [나도 거의 환상에 빠졌었소. 용서해 주겠지?]

    [우린 결혼할 거예요. 또다시 당신이 메리 린과 자는 것을 상상이라도 하는 날에는 눈을 못 뜨게 해줄 거예요.]

    [같이 잔 게 아니오.]

    [좋아요. 그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다면으로 바꿀게요.]

    [좋소.]

    [난 전부가 아니면 안 가져요, 스티브 매리스.]

    [문제가 생기자마자 짐 싸서 나가 버린 사람이 누군데 그래?]

    할리는 그것을 후회하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를 지키려고 그랬던 거예요. 당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눈앞에서 빼앗기고 싶지 않았어요. 나도 콘도가 그렇게 빨리 팔릴 줄은 몰랐어요.]

    [나를 빼앗겨?]

    [메리 린한테요.]

    [그런 일은 없소.]

    [난......당신이 나와 결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난 그렇게 중요한 책임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소, 할리. 나도 전보가 아니면 아무 것도.....]

    할리는 그의 턱을 잡고 그의 얼굴에 마구 키스를 퍼부었다. 조준이 잘 맞지는 않았지만 효과는 있었다. 스티브가 그녀를 바짝 안았을 때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할리는 얼굴을 들고 그의 눈을 빤히 응시했다. 그녀의 눈은 어느새 어둡게 변해 있었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죠?]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을 했었다.

    [난 기저귀를 잘 갈거든. 새 아이가 태어나면 그 기술을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할리는 작은 소리로 행복에 찬 고함을 질렀다.

    [지금은 그보다 먼저 새 아기를 만드는 일에 신경을 써야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윙크를 했다.

    할리는 온몸으로 행복의 절정을 느꼈다. 그녀는 깔깔거리면서 머리를 뒤로 넘겼다.

    [오, 스티브, 사랑해요. 당신을 너무나 원해요. 하지만.......]

    그녀는 어깨 너머로 아파트 쪽을 쳐다보았다.

    [당신 집으로 가요. 동생이 오늘 밤 우리 집에서 자고 있거든요.]

    그는 신음 소리를 냈다.

    [우리 집엔 케니가 있소.]

    할리는 얼굴을 찡그리며 이마로 그의 어깨를 쳤다.

    [믿을 수 있소?]

    그가 말했다.

    [우리가 결국 같이 잘 수 있게 되었는데 그럴 장소가 없다는 게?]

    할리는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면서 그의 목에 키스를 했다.

    [참아요. 앞으로 평생이라는 시간이 있잖아요.]

    스티브는 눈을 감고, 평생이라는 시간이 할리를 --침대 안과 밖에서--사랑하는 데 충분할까 생각해 보았다.

    에필로그

    1월 1일 -- 2년후

    금년에는 시나 명상하곤 멀어질 것 같다. 이제 나는 결혼했고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또 행복하다. 트래비스가 1주일 일찍 태어났다.

    우리 아기는 너무 예쁘다. 스티브는 이제 그 말을 그만 하라고 했다. 사내아이는 예뻐서는 안 된다나. 그 말말고 아기에게 맞는 말은 완벽하다는 말뿐이다. 스티브는 아들이 또 하나 생겨 남자들 용품을 같이 쓸 수 있게 되어서 좋다고 했다.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는 정말 자상한 아버지이다.

    진통을 시작한 날의 오후를 생각할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스티브는 어떤 일에는 늘 태평했다. 그는 자기가 다 잘 알고 있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고 몇 번씩 안심을 시켜 주었다. 그는 호흡 테크닉을 잘 알고 있어서 볼링 리그 임원들 전원에게 그 훈련을 시켜 주기도 했었다. 뿐만 아니라, 관련 서적을 거의 열 권 정도 읽고는, 그 책 내용을 자주 얘기해 주곤 했다. 나는 그저 그가 하는 얘기를 듣는 것이 전부였다.

    마침내 D 데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준비가 잘 되어 있던 남편은 내가 몹시 아파하는 것을 보자, 아기가 태어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 가지도 기억해 내지 못했다. 나도 진통에 대해 읽기도 많이 읽고 듣기도 많이 들었지만, 나의 진통은 예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갑자기 아파왔다. 서서히 진통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트래비스는 세상 구경을 가능한 빨리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첫 번째 수축--그건 마치 뱃속을 걷어채인 것 같았다--이 왔을 때 나는 허리를 펴지도 못한 채 구부리고 신음을 했다. 스티브는 산부인과 의사처럼 명령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는 케니와 내 짐가방을 차에 싣고 가다가 잊어버린 것이 생각나 돌아왔다.

    바로 나였다. 그 사실에 더욱 당황한 나머지 그는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차를 몰아 버렸다. 스티브는 병원까지 갈 시간이 없다고 판단하고는 차를 길 옆에 세우고 자기가 아기를 받겠다고 했다. 내가 그냥 병원으로 가자고 설득을 하기도 전에, 그는 고무 장갑을 끼고 의사 가운까지 입었다. 그런 걸 어디서 구했는지 나도 모르겠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케니는 아빠와 함께 뒷좌석에 앉아 응급 출산을 위한 준수 사항을 알려 주고 있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이 있다. 일단 병원에 도착하자 모든 일이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출산은 교과서에 나온 것처럼 정확했다. 트레비스는 5시간 후에 태어났다. 그리고 스티브와 케니는 마치 누가 더 크게 소리를 지르는지 시합이라도 하듯 탄성을 질렀다.

    케니는 동생이 생겨서 신이 난 모양이다.

    케니와 스티브는 아기 기저귀를 서로 갈아 주겠다고 싸운다.

    엄마가 되고 보니 정말 좋다. 어제 아침에는 트래비스를 안고 있는데 그 작은 것이 주는 경이감과 기쁨 때문에 눈물이 났다. 그 아이가 정말 나와 스티브의 일부라고, 진짜 내 몸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니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가 첫 손자인 트래비스를 보지 못해서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트래비스라고 지은 사실을 알면 기뻐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조그만 아이한테 트래비스 더글라스라는 이름은 약간 무겁고 큰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이제 나는 완전해진 기분이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생겼던 공허함도 이제는 그렇게 깊어 보이지 않는다. 이제 나에게는 스티브와 우리 가족이 있다.

    2년 전에 처음으로 남편과 가정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는 그 모험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을 그렇게까지 지연시켰던 것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안 그랬다면 스티브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고, 또 케니의 새엄마가 될 수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우리 트래비스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없는 나의 삶은 이제 상상할 수도 없다.

    오늘 아침, 시애틀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남편이 가져다 주었다--를 마시며 계획표를 쓰고 있다. 매년 1월 1일이면 하는 것처럼. 이제 내 목표는 사업에서 가정생활로 바뀌었다. 지금으로서는 그렇다.

    너무 좋다. 결혼이라는 것과 엄마가 된다는 것.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테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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