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들만의 웨딩-28화 (28/29)

28. 결혼식

9월 7일

여름이 다 가버렸다.

벌써 9월이 되었는데 아직 남편 후보는 한 명도 없다. 기가 막혔다. 슬프게도 이젠 관심도 없어졌다.

도널리 일이 계속 생각난다. 샌포드는 완벽한 것 같았다. 하지만 도널리는 옳은 결정을 했다. 지금처럼 도널리가 행복한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샌포드와 헤어질 땐 고통스러웠겠지만, 결국엔 평생 사랑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난 것이다. 미래에 대한 생각이 같은 남자를........

도널리가 만약 샌포드와 결혼을 했다면, 아이를 볼 때마다 자기도 아이를 가졌으면 하고 부러워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 소망은 둘을 갈라놓았을 것이다.

나와 스티브도 잘 헤어진 것이다. 불필요한 고통을 막기 위한 것이면 좋겠다. 그는 메리 린을 사랑했으며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지도 않았다. 그의 첫사랑인 것이다.

정말 힘들다. 거의 매일 부딪히고 있으니 더욱 힘들다.

어제 오후는 너무나 창피했다. 은행에서 줄을 서 있는데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났다. 너무나 창피했다. 처음엔 아버지가 그리워서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아니다. 아버지가 그립기는 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버지 생각이 난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음을 받아들였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눈물이 스티브 때문이었다. 누구를 사랑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멈춘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제 그가 메리 린과 계속 만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사를 가고 나면 좀 나아지겠지.

콘도가 팔려서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어서 떠나고 싶다. 어서 내 인생을 시작하고 싶다. 새 입주자의 지불 문제가 정리되었으므로, 앞으로 1주일만 더 있으면 계약이 완료될 것이다.

1주일 정도는 견딜 수 있겠지.

그보다 더 큰 걱정은 10월의 도널리 결혼식이다. 나는 도널리의 들러리고, 스티브는 타드의 들러리인데. 은행에서 벌였던 해프닝을 다시 재현하지 않아야 할 텐데....

숨을 헉헉거리며 할리는 침실에서 상자를 끌어다가 거실에 놓았다. 이번 이사는 그 어느 때보다 힘들었다.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탈진이 된 상태였다.

이제는 작별 인사만 남았다.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 스티브를 그리워할 것이다. 벌써부터 그가 그리웠다. 몇 주일 동안 놀려대고, 도와주고, 같이 웃어주던 그가 없으니 온 세상이 황막하고 텅 빈 듯했다.

내가 그를 생각하는 만큼 그도 나를 가끔 생각할까? 내가 있는 이 콘도를 쳐다볼 때가 있을까?

이사가 바로 유일한 답이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다.

그게 사실일까?

그녀는 창밖으로 스티브의 집을 계속 흘깃거렸다. 머리에 볼링 신발을 쓰는 남자를 사랑하다니! 그 생각을 하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니면 둘 다, 알 수 없었다.

이삿짐 트럭이 왔다. 그녀는 문을 열고 망문을 고정시켰다. 이제 할일은 옆으로 비켜서서 건장한 젊은이들이 짐을 나르게 하는 것 뿐이었다.

할리는 사람들의 일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잔디밭을 덮고 있는 낙엽들 사이로 이리 저리 걸었다.

잠시 후 케니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이삿짐 센터의 사람들을 흘낏 보고는 두 팔을 벌리고 쏜살같이 할리에게로 달려왔다.

할리는 케니를 와락 끌어안았다. 케니는 두 팔을 그녀의 목에 감았다.

[꼭 가야 돼요, 누나?]

케니는 애걸을 했다.

[응.]

그녀는 목소리에 담긴 울먹임을 케니가 알아채지 못하기를 바랐다.

[이제 아파트를 구했어.]

콘도가 생각보다 일찍 팔렸기 때문에 적당한 새 집을 구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촉박해지자 할리는 괜찮은 집을 살 때까지 몇 달 동안 아파트를 임대하기로 했다.

[누나 가는 거 싫어요.]

케니는 그녀의 목을 더 세게 조이며 울먹였다.

할리는 케니를 안고 감정과 싸우며 몸을 펴고 한 팔로 아이의 어깨를 감아 옆으로 바짝 당겼다.

[앞으로 다시 못 만나요?]

[아니, 다시 만날 거야!]

[언제? 어디서?]

[언제든지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얘기해. 내가 찾아갈 테니까.]

할리의 이 말은 진심이었다.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케니는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여기.]

그녀는 종이 한 장을 케니에게 건네주었다.

[여기 주소와 전화번호가 있어. 나는 패드럴 웨이에서 살 거야. 여기서 멀지 않아. 언제든지 전화해도 좋고, 놀러와도 좋아.]

케니는 주소를 읽었다. 그러나 마음을 흡족케 해주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전 같지는 않겠죠.]

할리도 그 점에 대해서는 논쟁할 수 없었다.

[그래, 똑같지는 않을 거야.]

몇 분밖에 안 지난 것 같았는데 벌써 이삿짐은 트럭에 다 실렸다. 그녀는 빠진 것이 없나 살피기 위해 마지막으로 집 안을 점검했다. 집을 다 살폈을 때, 밖에 서 있는 스티브를 발견했다.

그녀는 잔디밭에 서 있는 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케니, 지금 여기 있어요.]

[알고 있소, 나도 작별 인사를 하러 왔소.]

[아.]

할리는 단 한 마디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의 품 안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녀는 스티브의 위로를 아프도록 갈망하고 있었다. 눈물을 참느라 목구멍이 아파왔고 억눌린 갈망으로 온몸이 떨려왔다.

이건 지옥이었다. 스티브와 그의 아이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 도널리와 타드의 결혼식이 끝나면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떠나가는 것은 지옥이었다.

[이제 준비 다 됐습니다.]

이삿짐 센터 사람이 재촉했다.

할리는 얼른 주의를 돌렸다.

[금방 갈게요.]

[걱정 마십시오. 우린 시간당으로 받으니 시간이 필요하다면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다른 남자가 끼어들었다.

스티브는 호주머니 깊숙이 손을 넣고 있었다.

[가는 게 좋겠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케니가 그녀 앞을 막아섰다.

[누나가 새 아파트로 언제든지 놀러오라고 했어. 가도 돼, 아빠?]

그는 계속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누나가 괜찮다고 하면.]

[좋아요, 스티브......다 보고 싶을 거예요.]

처음에는 아이의 이름만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건 거짓말이다. 아이보다는 스티브가 더 보고 싶을 테니까. 그로 인해 신음하고, 울고, 갈망할 것이다.

[잘 가시오, 할리.]

[잘 있어요, 스티브.]

아직 용기가 남아 있을 때,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문을 잠갔다. 그리고 아이의 머리에 키스하고 스티브의 옆을 지나서 차로 다가갔다.

도널리의 들러리용으로 할리를 위해 준비한 드레스는 지금껏 본 옷중에 가장 아름다웠다. 드레스는 단순하면서 우아한 디자인이 돋보였고 연한 장밋빛으로 그녀의 피부색에 아주 잘 어울렸다. 그 옷을 입은 할리는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볼 때마다 스티브가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항상 스티브 생각에 골몰하곤 했다. 강박관념 같았다. 매일 밤 스티브 생각을 했고 아침에 깨어날 때도 그를 떠올렸다.

[황홀해서 넋이 나갈 거야.]

도널리가 소근거렸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기를 보면 타드가 넋이 나갈 것이라는 뜻이라는 걸 한참 후에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 그럴 거야.]

할리도 인정했다.

결혼식은 간단히 치뤄졌다. 들러리는 스티브와 할리밖에 없었다. 하객도 가족들과 몇 명의 친구들뿐이었다. 음식과 술, 댄스파티가 준비된 피로연에는 도널리와 타드가 초대한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것이다.

할리는 2주일 동안 스티브를 못 만났다. 14일. 짧은 시간이지만, 14년처럼 느껴졌다. 할리는 이 결혼식을 열렬히 고대했지만 한편으로는 하루하루 결혼식이 다가올 때마다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스티브에 대한 사랑이 다시 살아나 더 강렬해지고 그리고 다시 외로움에 빠지게 될까 봐 두려웠다.

결혼식 연단에 네 사람이 모여 섰고, 그녀는 스티브와 눈이 마주쳤다. 할리는 어렵게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가 답하기도 전에 얼른 시선을 돌렸다.

결혼식은 짧았지만 할리는 감격스러워 눈물을 흘렸다. 사랑에 휩싸인 눈으로 서로를 마주 보는 도널리와 타드를 보며 할리는 아픔을 느낄 지경이었다.

스티브는 결혼식 내내 뻣뻣하게 서 있었다. 식 시작 후 몇 분을 제외하고 그는 할리를 완전히 무시했다. 결혼 증명서에 서명을 할 때, 할리는 떨리는 손으로 서명했지만 스티브는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은 채 힘차고 대담한 필체로 이름을 적었다.

박수와 환호 속에 도널리와 타드가 차에 타자, 케니가 급히 할리의 옆으로 왔다.

[할리 누나! 할리 누나!]

케니는 두 팔을 할리의 허리에 감았다.

[누나 아주 예쁘다. 그치, 아빠.]

아이는 얼마 안 떨어져 있는 스티브에게 외쳤다.

[응.]

이렇게 대답하는 그의 눈빛에는 감탄이 서려 있었다.

그 표정에 할리는 기운이 나는 듯했다.

피로연이 열리는 호텔은 하객들로 꽉 들어찼다. 화려하게 장식된 방안으로 도널리와 타드가 들어오자 박수가 터져나왔다.

할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었고 이름은 기억도 할 수 없었다.

할리와 스티브는 도널리와 타드의 테이블에 같이 앉게 되었고 할리는 두 사람 사이의 긴장이 풀어지기를 바라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구운 연어 요리 때문인지 아니면 샴페인 때문인지 스티브는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음악이 시작되었고 도널리와 타드는 서로를 바짝 끌어안고 첫 댄스를 장식했다. 전통에 따라서 스티브가 할리를 이끌고 플로어로 나갔다. 하지만 그녀를 느슨하게 잡고 여동생쯤으로 다루고 있었다.

그들은 한 번도 춤을 춰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동작은 마치 몇 년 간 파트너가 되어 왔던 것처럼 너무나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마치 둘은 한 몸처럼 움직였다.

음악이 끝나고 그녀는 스티브의 안도의 한숨 소리를 들었다.

[스티브, 그 정도면 괜찮았죠?]

그는 할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나랑 같이 춤춘 거 말이에요.]

할리는 덧붙였다.

그는 샴페인 잔을 집어들었다.

[전혀 안 괜찮았소.]

[한 번도 발을 안 밟았는데요?]

[내 가슴을 밟았지.]

[내 가슴은 어떻구요?]

그녀는 그의 반응에 화가 나서 발끈했다.

[그 드레스 입으니까 아주 좋은데, 누가 골랐는지 맞춰 볼까? 도널리, 맞지?]

그는 할리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덧붙였다.

[어서 입닥치고 앉아 있지 않으면 더 바보가 되겠군.]

그리고 나서 그는 플로어를 뚜벅뚜벅 나가 버렸다.

대체 무슨 말인지 다지기 위해 그를 따라 가던 할리는 중년 남자의 손에 팔을 잡히고 말았다. 대머리가 벗겨진 타드의 삼촌이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댄스 파트너도 없는가?]

술에 취한 그는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

[죄송해요. 해리 아저씨, 이미 친구하고 댄스 약속이 있어서요.]

[친구?]

할리는 케니에게 윙크를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이 곡을 같이 추자고 했었지?]

케니는 벌떡 일어나 그녀의 손을 잡고 댄스 플로어로 나갔다. 빠르고 경쾌한 곡에 맞추어 캐니는 매끄럽게 윤이 나는 바닥에 미끄러지지 않으려는 듯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아빠가 볼링 파트너가 필요하대요. 내가 누나한테 부탁해 보라고 했어요.]

케니가 눈을 빛냈다.

[그래?]

할리는 어떻게 대답을 해주어야 할지 망설여졌다.

[아빠가 누나는 관심 없을 거래요.]

[아빠가 그러셨어?]

[누나, 아빠랑 같이 갈래요?]

[글쎄, 잘 모르겠어.]

[새 애인이 생겼어요?]

할리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케니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킵 아저씨 과거 알아요?]

[잘 몰라.]

[엄마는 아저씨가 다른 여자랑 결혼하고서 또다시 엄마랑 결혼한 건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었대요.]

[그래?]

그것은 스티브가 사라졌던 날의 위기를 설명해 주었다. 할리는 그날 아침 자신이 과잉 반응을 보였던 것에 대해 다시 미안한 감이 들었다.

[아빠한테 재혼할 거냐고 물어 봤어요. 뭐라고 대답했는지 알려 줄까요?]

[아니.]

케니는 할리의 대답을 못 들은 척했다.

[누나 외에 다른 여자는 관심 없다고 했어요. 대신 금년에는 남자 볼링 리그에 출전하기로 했대요.]

할리는 남자 볼링 리그가 어떤 건지 몰랐다. 하지만 케니의 말은 흥분으로 들뜨게 하기에 충분했다.

[실례합니다.]

스티브의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케니는 아빠에게 얼른 함박 웃음을 지어 보이고 댄스 플로어에서 뛰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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