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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웨딩-27화 (27/29)
  • 27. 안녕, 내 사랑

    할리는 그렇게 비참한 밤은 평생 처음이었다. 거의 매시간마다 그녀는 스티브의 차 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침대에서 일어나 뛰어나갔다. 3시가 넘어서야 그녀는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가 메리 린과 밤을 지내는 것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전 부인은 필요할 때마다 그를 불러냈고, 그는 단번에 그녀에게로 달려가면서 할리를 내팽개쳤다. 항상 이런 식일 것이라는 것은 로켓 과학자가 아니어도 알 수 있었다. 스티브와 긴밀한 관계가 되려면, 전 부인에 대한 그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게 낫다. 하지만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일이다. 할리는 메리 린의 존재를 평생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3시가 넘어서는 차 소리가 들려도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지만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노력은 했다. 똑딱거리는 시계 초침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줄곧 뒤척거리기만 하며 그녀는 일평생 최대의 실수를 한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5시가 되자 그녀는 잠을 자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일어났다. 샤워를 하고, 출근을 위해 옷을 입고, 커피를 끓였다.

    부엌 식탁에 앉아서 그녀는 일기에 자신의 슬픔과 분노를 써내려갔다. 그때 현관에서 요란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스티브였다.

    자기가 얼마나 태연한지 그녀 자신도 놀랐다. 그를 향해 남아 있던 감정은 끝없이 길었던 지난 밤 동안 타버린 것이다.

    스티브는 그녀를 보고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벌써 일어났군. 아직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가 자고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것은 금방 알아 볼 수 있었다.

    [할리, 미안하오.]

    그는 손을 내밀었다.

    [화가 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오, 하지만 설명할 기회를.........]

    [화나지 않았어요.]

    그녀는 그의 말을 끊었다.

    [화가 안 났다고?]

    그는 말을 멈추고 코를 킁킁거렸다.

    [이거 커피 냄샌가? 한 잔 했으면 좋겠는데.]

    [그러세요.]

    할리는 부엌을 가리켰다.

    그는 그녀를 지나 걸어가 선반에서 잔을 꺼냈다. 그는 커피를 따른 후 뒤로 돌아 카운터에 기대어 섰다. 그의 눈이 그녀의 시선을 잡았다.

    [뭘 생각하는지 알아.]

    [글쎄요.]

    그와 육체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그녀는 팔장을 끼고 반대편에 섰다.

    [메리 린이 킵에 대해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되었어. 메리 린이 그렇게 정신이 나가 있는 건 처음 보았소.]

    [그래서 밤을 같이 지냈군요.]

    할리는 뻔한 사실을 둘러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같이 잤죠.]

    그건 그의 말이 충분히 입증한 사실이었다.

    [아니오!]

    그가 얼마나 무섭게 말을 했는지 그 짧은 한 순간 그녀는 그를 믿을 뻔했다.

    [맞아.]

    그가 정정했다.

    [하지만 같이 잔 건 아니오.]

    그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화가 난 듯 고개를 흔들었다.

    [좋아, 같은 침대에는 있었어. 하지만.......]

    [됐어요, 세부적인 건 생략해 주세요.]

    그녀의 가슴엔 이미 매듭이 맺힐 대로 맺혔다. 아무리 그럴듯한 설명일지라도 그의 장황한 변명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전처와 같이 밤을 보낸 것이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아니라 메리 린과 같이 있었다. 그 사실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아무 일도 없었소.]

    스티브는 그녀의 시선을 붙들며 설명했다.

    [그렇겠죠.]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했다.

    [나로서는 우리가 중대한 실수를 면할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실수?]

    [그래요. 사람들이 친구와 애인에 대해서 하는 말이 있죠. 섹스는 우정을 파괴한다고. 우린 안 되겠어요, 스티브. 나를 잘 알잖아요.....]

    [왜 안 된다는 거요?]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커피 잔을 감아 쥐고 있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 관절이 하얗게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당신은 메리 린을 사랑해요. 그 사실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잖아요.....]

    [난 당신을 사랑하오.]

    이 말이 전 아내에 대한 감정을 부인하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바꿀 수 없었다.

    [알아요.]

    그녀는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친구 사이가 그런 거죠. 친한 친구 말이에요.]

    [우린 친구 이상이오.]

    억지 미소를 짓는 것도 이제 불가능해졌다.

    [잠깐 그랬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스티브는 커피 잔을 카운터에 쾅 내려놓았다. 커피가 잔 밖으로 튀며 바닥에 떨어졌다.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오?]

    그의 눈은 그녀가 이 말을 반박해 주기를 애원했다.

    할리는 거짓말에 능숙하지 못했다.

    [이해를 못 하는 군요, 스티브. 난 메리 린한테 고마워요. 우리가 한계를 넘어 두 사람 모두에게 큰 불행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 주었으니까요.]

    [고맙기도 하겠군.]

    [눈에 보이죠. 당신이 메리 린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

    [난 긴 세월 메리 린하고 살았소. 내 감정을 수도꼭지 잠그듯이 꺼버릴 수는 없는 거요. 어제 메리는 겁에 질려 정신이 나갈 정도였어. 난 안아 준 것뿐아라고! 그렇게 했다고 나를 십자가에 처형하려면 그렇게 해.]

    [난 당신이 메리 린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알아요.]

    할리는 그의 분노를 평정한 고요함으로 맞섰다.

    [그녀는 당신의 첫사랑이었고, 고교 시절의 연인이었고, 전 아내였죠. 그녀가 당신의 가슴 속에서 특별한 자리를 계속 차지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에요.]

    그의 눈은 그녀의 눈을 꿰뚫었다.

    [사랑해.]

    목이 울컥거렸다. 그 말은 너무나 진실되고 진지하며 분명했다.

    [하지만 메리 린이 당신의 생각........당신의 가슴 속에서 항상 가장 먼저라는 사실이 이제 분명해졌어요.]

    [기회를 한 번만 주면........]

    그녀는 그가 말을 끝내지 못하도록 얼른 가로챘다.

    [메리 린은 언제나 당신에게 첫 번째가 될 거예요, 스티브......우리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말이에요.]

    [그럼 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나?]

    그는 소리를 질렀다.

    [케니가 어떻게 할지를 몰라서 전화를 걸었소. 그 앤 아직 어린 꼬마요. 제 엄마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를 몰랐소. 메리 린은 히스테리 상태였고.]

    정확히 할리가 말하는 요점이었다.

    [그래서 당신은 그녀에게 달려간 거죠.]

    메리 리이 그를 조종했다는 사실을 간파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스티브가 그녀의 조종에 말려 들어갔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깊은 분노가 몰려오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할리는 자신이 질투가 많다거나 유치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감정 그리고 행동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런 자각을 하자 불편해졌다. 할리는 스티브의 첫 번째 결혼이 자기에게 불러일으키는 부정적인 감정을 어쩔 수가 없었다.

    [우린 안 돼요, 스티브. 나도 당신만큼 안타까워요, 하지만 우린 안 돼요.]

    [도대체 왜 안 된다는 거지?]

    [난 남편을 원하지........]

    그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결국 그거였군.]

    그녀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하던 말을 끝냈다.

    [전 남편을 원하는 게 아니에요.]

    이 말이 그의 기를 꺾었다. 그는 말을 가늠하려는 듯 머리를 뒤로 젖혔다.

    [전 남편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오?]

    [난 평생에 결혼을 한 번만 할 계획이에요.......]

    [최고의 계획 말이지. 나도 이 바보 같은 이혼을 원하지 않았소. 결혼생활이 불행하다고 한 건 메리 린이었다구. 혼자 살아 보지도 못하고, 대학고 못 다니고, 다른 남자와 자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인생에서 잃은 게 많다고 주장하면서.]

    그는 점점 더 화가 나서 격해지고 있었다.

    그가 말을 멈추어 침묵이 두 사람을 감쌀 때를 기다린 할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결혼 이야기를 꺼냈을 때 당신 눈에 나타난 표정을 봤어요, 스티브. 몹시 덴 사람 같더군요. 이해해요. 그리고 다시 결혼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이유도 알아요.]

    그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서 있었다. 할리는 그가 자기 감정을 부인하지 않는 것이 고마웠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난 나한테 온 마음을 다 바쳐 줄 남자를 원한다는 것이에요........]

    [이혼한 적도 없고 도움이 필요한 아이도 없는 홀가분한 남자 말이지.]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이 일을 끝내는 데 가장 쉬운 길인것 같았으므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는 주먹을 폈다가 다시 쥐었다.

    [알아 두시오. 당신이 찾고 있는 완벽한 남자는 이 세상에 없소. 이상적인 남자가 아니라 현실 속의 남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면 그때 알려 주시오.]

    그는 눈길 한 번 주지도 않고 밖으로 나갔다.

    할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여전히 친구라고, 여전히 서로를 의지한다고 생각하려 애썼다. 애인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우정만은 지켰으면 싶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출근길에 스티브와 맞닥뜨렸다. 예상치 못한 대면에 잠깐 놀랐지만, 그녀는 밝게 웃었다.

    [날씨 좋죠?]

    [좋군.]

    그는 짧게 답하고 이내 돌아서 가버렸다.

    자신의 차에 탄 할리는 운전대를 잡고서 밀려오는 슬픔의 파도와 싸워야 했다.

    그리고 나서는 목요일에 스티브를 만났다. 쾅, 그녀는 슈퍼에서 스티브와 마주쳤다. 그들은 억지로 대화를 나누었고, 반가움은 위장된 것이었다.

    그후 그녀의 가슴에 휑하게 뚫린 구멍은 더욱 커진 것 같았고 앞으로도 치유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루지 못한 가능성에 가슴 아팠고 스티브의 반응으로 보아 그 역시 같은 기분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사를 갈까?

    일 주일 내내 고민하다가 부동산을 하는 친구--할리에게 이 콘도를 찾아 준 친구--에게 의논을 했다. 그 친구 말로는 지금이 집을 팔기에 좋은 때라고 했다.

    스티브와의 끔찍한 긴장은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점점 더 어색해 지기만 할 것이고, 그들의 우정도 억지가 될 것이다. 결혼할 남자를 찾으려면, 사랑하는 남자의 옆집에 살아서는 안 된다.

    또한 메리 린에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달려가는 그를 보기 너무 괴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그를 개줄로 묶어 당기고 싶어질 것이다. 승산이 없는 전투를 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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