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들만의 웨딩-26화 (26/29)
  • 26. 성인군자 나으리

    [금방 간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할리는 믿을 수가 없었다. 또다시 스티브는 그녀를 버리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좌절과 분노가 점점 밀려오면서 가슴이 조여들었다.

    [할리, 내가 원해서 가는 게 아니오.]

    충분하지 않은 대답이었다.

    [왜요? 이번엔 또 뭐죠?]

    할리는 이 일이 메리 린과 관련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스티브가 그녀에게 갖는 감정은 할리도 아는 바였고, 아마도 그는 영원히 그녀의 뒷꽁무니만 쫓아다닐 모양이었다.

    [메리 린의 집에 문제가 생겼소.]

    그는 망설였다. 그 순간 할리는 분명 메리 린과 관련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무릎이 떨려와서 그녀는 부엌 의자에 앉았다.

    [메리 린이죠?]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머뭇거리면서 대답했다.

    [그렇소.]

    최소한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고마웠다.

    [알았어요.]

    [할리, 믿어 주시오. 이런 식으로 당신을 떠나는 건 정말 하고 싶지 않소.]

    [그럼 가지 말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높았고 약간의 히스테리마저 섞였다.

    [가야 하오. 케니는 겁에 질려 있어. 흔히 있는 일이 아니오. 사실 이런 일은 전에는 한 번도 없었소.]

    그는 무릎을 꿇고 손을 꼭 잡았다.

    돌아오겠소, 약속하지. 갔다 와서 이야기하겠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할리 당신뿐이오.]

    할리는 그 말을 믿고 싶었다. 하지만 전에 한 번 바보꼴이 되었는데, 같은 실수를 또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이 일을 가지고 싸우고 싶지는 않아요. 만약........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럼 가야겠죠.]

    그는 안도의 빛이 완연했다.

    스티브는 일어났다. 아니, 떠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떠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는 물어 보아야 했다. 그녀는 황급히 일어섰다.

    [스티브.]

    그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지금은 그런 걸 물어 볼 때가 아니었지만 알고 싶었다. 그가 메리 린에게 가기 전에 그들의 관계에 대해 알아야 했다.

    [내게 청혼할 건가요?]

    그는 눈에 드러나는 두려움을 숨길 수가 없었다.

    [지금 그 이야기를 해야겠소?]

    이런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다니,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그의 반응을 미리 짐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이야기를 미루는 것 자체가 답이었다.

    [아니요.]

    그녀는 용감한 얼굴로 답했다.

    [나중에 이야기하죠.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

    [내가 갔는지도 모르게 빨리 돌아오겠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할리는 그가 떠나자마자 칼로 도리는 것처럼 그의 부재를 실감했다. 그가 떠난 뒤 할리는 다시 앉아서 눈을 감았다. 깊게 숨을 쉬면서 그녀는 자기가 떨고 있음을 알고 다시 한 번 놀랐다.

    메리 린의 집에 도착했을 즈음 스티브는 격노해 있었다. 그녀의 타이밍은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때 할리를 두고 떠나는 것은 세상에서 그가 가장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녀는 저녁을 준비하고 환영파티를 마련하기 위해 그렇게 수고를 했다.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증명하려 했는데, 버려 두고 떠난 것이다.

    그는 차 문을 쾅 닫고, 성큼성큼 가서는 한 번에 두 계단씩 올라갔다. 그는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갈 뻔하다가--이 집에서 살았었기에 자꾸만 잊었다.--초인종을 눌렀다.

    케니는 문을 열자마자 그를 꽉 안았다.

    [아빠......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괜찮아, 케니. 정말 괜찮아.]

    그는 거짓말을 했다. 할리가 이번에는 쉽게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메리 린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처리를 한 후 즉시 돌아가서 할리를 달랠 수 있기만을 바랐다.

    [엄마는 어디 있니?]

    [침실에.]

    아이는 아빠가 어딘지 모르는 것처럼 손가락으로 침실 쪽을 가리켰다.

    [킵 아저씨는?]

    [몰라, 오늘 아침부터 못 봤어......엄마랑 사이가 안 좋은 것 같아.]

    그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피곤하고 짜증이 났다. 지금은 메리 린의 기분을 맞추어 줄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

    그는 부엌을 지나 메리 린의 침실로 갔다. 땅콩 버터와 젤리가 밖에 나와 있었고, 식빵 봉지가 벌어져 있었다.

    [저녁 먹었니?]

    [아니.]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엄마가 너무 걱정돼서.]

    [다 잘될 거야. 이제 뭘 좀 먹어. 아빠가 엄마하고 이야기를 할 테니까.]

    그는 냉장고를 뒤지는 케니를 둔 채로 침실로 갔다.

    메리 린은 침대에 엎드려 울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를 보자, 큰 소리를 내면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품 속으로 달려들었다.

    [와줘서 고마워요.]

    메리 린은 울먹였다.

    [오, 스티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메리 린하고 같이 사는 동안 스티브는 그녀가 이렇게 정신없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두 팔로 그녀를 안고 침대 끝에 앉았다.

    [무슨 일이야?]

    그녀의 울음은 이제 부드러운 훌쩍임으로 잦아들었다.

    [난....난 바보야. 스티브, 어쩌면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요?]

    [당신은 어리석지 않아.]

    그는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자, 뭐 때문에 이러는지 이야기를 해봐.]

    [킵 때문이에요. 나한테 거짓말을 했어요.]

    스티브는 억지로나마 긴장을 풀려고 노력했다. 킵이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그것이 아이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스러웠다.

    [그 사람이 결혼을 두 번이나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두 번째 아내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거든요.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어떤 편지를......내가 뜯어 봤어요. 그 사람의 전 아내, 두 번째 아내한테서 온 거였어요. 그 여자에게 딸이 있어요. 겨우 두 살밖에 안 됐대요.]

    스티브는 계속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좋다, 킵이 메리 린이 안 것외에 한 번 더 결혼을 했었다고 하자. 그러나 메리는 그 일을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놀랐을 거라고 이해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구요.]

    그녀가 그의 말을 막았다.

    [또 다른 일이 있어요.......]

    스티브의 셔츠는 그녀의 눈물로 젖어들었다. 그녀는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보며, 마치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는 것처럼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말이든 해도 돼, 메리 린, 알잖아.]

    [난.....어쩌면 법적인 문제에 휘말릴지도 모르겠어요.]

    [법적인 문제라니?]

    [난 기혼자와 결혼을 했으니까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까지는 좀 시간이 걸렸다.

    [킵이 두 번째 아내와 이혼을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맞아요, 이혼을 하지 않았어요. 그 여자가 직접 나한테 그 말을 했어요. 그 말을 믿고 싶지 않아서 킵한테 물어 보니까 그 여자는 교활하고 못돼서 우리들의 행복을 망치기 위해서는 무슨 말이든, 무슨 짓이든 할 거라고 하더군요.]

    [어쩌면 그 여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잖아.]

    메리 린은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킵한테 이혼 서류를 보여 달라고 했더니 그걸 찾을 수가 없다더군요. 그래서 내 친구한테, 켈리 기억하죠? 법원에 가서 조회를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거긴 아무 것도 없었어요. 아무것도요.]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다시 눈물을 쏟았다.

    [킵한테 다시 물어 봤어?]

    [네, 킵은 내가 자기 뒷조사를 하고 다닌다고 화를 냈죠. 그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이혼을 했다고 했어요. 그게 사실이라면 서류를 뗄 수 있지 않느냐고 했지만....서류를 못 떼오는 거예요.]

    [오, 메리 린, 그럴 수가......]

    [우린 대판 싸웠죠. 그는 나가 버렸어요. 돌아올 것 같지 않아요. 그가 돌아오길 바라는지도 확실히 모르겠어요. 오, 스티브, 이제 친구들 얼굴을 어떻게 보죠? 가족들한테 뭐라고 하죠?]

    [그걸 언제 알았어?]

    [켈리하고는 금요일 오후에 이야기를 했어요. 하지만 킵이 출장갔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가 없었죠. 주말 내내 살이 타는 것 같았어요........킵은...... 두 번째 결혼에 대해서는 말도 안 해 줬었어요. 두 번째 결혼 얘기를 들은 후에는 이혼했겠지 그저 생각하고 있었어요. 킵이 돌아오자마자 우린 대판 싸웠어요. 그리고 그는 화를 내면서 나가 버린 거예요.]

    [돌아올 거야.]

    스티브는 킵의 옷이 가득 든 옷장--예전의 그의 옷장--쪽을 보면서 말했다.

    메리 린은 애걸하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당신은 나한테 이런 짓 같은 건 절대 안 했을 거예요. 당신은 늘 좋은 남편이었으니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왜 그렇게 쉽게 이혼하고 싶어 안달했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그는 그녀가 그렇게 해주길 바라는 것 같았기에 계속 그녀를 안고 있었다. 사실 그가 달리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해줄 수 있는 말도.

    메리 린은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팔로 그의 목을 감고 머리를 그의 어깨에 기댔다.

    [안아 줘요, 스티브. 조금만 더 오래.]

    메리 린은 그에게 한 번도 안아 달라고 조르지 않았었다.

    [다 잘될 거야. 킵은 돌아올 거고, 둘이서 잘 해결해 낼 수 있을 거야. 결혼을 할 만큼 사랑한 사람이잖아, 안 그래?]

    [내가 바보였어요.]

    그는 그녀에게 동조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했다.

    메리 린은 침대에 누웠다. 팔을 그의 목에 감고 있었기에 스티브도 옆에 누운 꼴이 되었다.

    [스티브, 당신을 원해요, 스티브........]

    그는 신음했다. 욕정 때문이 아니라 분노와 좌절감 때문이었다. 몇 달 전만 해도 그녀는 언제 어디서든 그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내동댕이치고 킵에게로 사랑의 눈길을 돌렸다. 지금 그녀는 다시 돌아온 것처럼 행동했다. 그는 평생 가장 길고 가장 고통스러운 몇 달 동안을 힘겹게 지내야 했었다. 그런데 오늘 하루, 두 여자가 그를 원하다니.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야.]

    그는 이미 처참한 지경에 있는 그녀를 더 비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부드럽게 말했다.

    그와의 결혼생활에서 배운 모든 지식과 모든 이점을 다 이용해서 메리 린은 베개에서 머리를 쳐들고 그에게 키스를 했다.

    스티브는 그녀를 밀쳐냈다.

    [안 돼, 메리 린.]

    그는 단호하게 꾸짖었다.

    [우린 이제 끝났어. 지금 당신은 슬프고 괴로워서 그러는 거야. 나를 정말 원하는게 아니야.]

    [그렇지 않아요, 스티브. 당신을 너무너무 원해요.]

    그녀는 몸을 꿈틀거리며 자신의 몸을 그에게 부벼댔다.

    [지금 나를 거부하지 말아요. 제발. 이 세상이 꺼진 것 같은 지금 나를 거부하지 말아 줘요.]

    그녀가 원하는 것은 그가 아니라 그의 사랑이 보장했던 안정감인 것을 스티브는 깨달았다.

    [메리 린. 당신은 지금 다른 남자와 관계하고 있잖아.]

    그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다'고 말할 뻔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지금 킵과 결혼한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스티브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메리 린은 더 큰 소리로 울면서 그를 놓지 않고 매달렸다.

    [나랑 같이 누워요, 스티브. 제발. 그게 그렇게 무리한 요구예요? 난 언제 잠을 잤는지 기억도 못해.]

    그는 그녀에게 끌려 다시 침대 쪽으로 딸려갔다. 그녀는 훌쩍이면서 그의 품 속으로 기어 들어왔다. 스티브는 그녀가 금방 잠이 들 것으로 생각하고 그녀를 안고 있는 한 팔을 그대로 두었다. 그녀가 잠이 들자마자 빠져 나가리라.

    [킵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요.]

    메리 린은 처량하게 말했다. 메리 린이 괴로워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옷을 가지러 와야 하잖아, 안 그래? 그때 이야기를 해보면 돼잖아.]

    메리 린은 몸을 일으켜 휴지를 뜯어 코를 풀었다.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을 시켜 가져갈지도 모르죠. 내가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했거든요. 그 사람도 내가 보고 싶지 않을 거예요. 정말 그럴 거예요.]

    [공연한 걱정 하지 마.]

    [킵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죠?]

    그녀는 점점 더 겁에 질린 어린 소녀처럼 말했다.

    [쉿.]

    스티브는 그녀의 머리를 자기 어깨에 기대게 했다.

    [어서 자.]

    그녀가 빨리 잠을 잘수록 어서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안고 싶은 사람은 메리 린이 아니라 할리였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와 장미꽃잎이 덮인 침대, 그녀의 맛, 생각만 해도 느껴지는 기쁨은 어서 빨리 그녀에게로 돌아가고 싶어지게 만들었다.

    [난 너무 피곤해요.]

    그건 스티브도 마찬가지였다. 열 명의 소년들과 같이 한 텐트 안에서 밤을 지낸 터

    라 그는 기진맥진했다. 그 아홉 살짜리 꼬마들은 2시까지 깨서 돌아다녔다. 스티브는 2시간도 못 잔 것 같았다.

    메리 린은 조용히 울었다.

    [잘될 거야.]

    그는 다시 말했다.

    [얼마 안 가서 다 잘될 거야.]

    몇 달 전이라면 믿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믿었다. 메리 린이 이혼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아내를 사랑했다. 그의 일부분은 영원히 그녀를 사랑할 것이다. 지금 그가 그녀와 같이 있다는 사실이 그녀에 대한 그의 감정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려 주는 증거였다. 그녀는 그의 첫사랑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은 매장된 것이었다.

    또 다른 사랑 할리를 만난 지금 다시 재혼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없었지만, 할리는 결혼 외에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곧 둘이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메리 린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마치 그가 떠날까 봐 두려워 하는 것처럼 그를 꼭 잡았다.

    그녀가 잠든 후에 떠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는 밀려오는 피곤과 싸우며 눈을 감았다. 1분만이다. 꼭 1분만이다.

    그 다음 순간 케니가 그를 내려다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빠?]

    스티브는 눈을 번쩍 떴다.

    [여기서 뭐해?]

    케니가 작은 소리로 소곤거렸다.

    [킵 아저씨는 어디 있어?]

    메리 린은 옆에서 담요를 어깨까지 덮은 채 잠들어 있었다.

    [내 신발이 어디 갔는지 찾고 있어.]

    케니가 다시 소곤 거렸다.

    [엄마와 다시 같이 살 거야?]

    [네 신발?]

    스티브는 일어나 앉아 손목시계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

    [지금 몇 시니?]

    [6시.]

    [아침?]

    케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티브는 속으로 욕을 하면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할리에게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