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들만의 웨딩-25화 (25/29)
  • 25. 사랑은 초콜릿 보다 좋은 것

    8월 17일

    스티브 매리스를 이렇게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화가 나서 이글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화나지 않았다. 처음엔 물론 부글거렸다. 실크 잠옷을 폼나게 차려 입고 바람을 맞다니!

    그런데 오늘 아침, 문에 평생 받아 본 적 없는 달콤한 편지가 스카치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불쌍한 스티브. 나보다 더 실망했을 것이다. 스티브는 거의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케니와 같이 캠핑을 가기로 약속까지 했던 것이다. 그는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느라 어젯밤에 오지 못했고 나는 그런 그를 더욱 사랑한다.

    나는 사랑에 빠졌다! 진실된 사랑에......스티브 매리스와 사랑에 빠졌다. 그렇게 뻔한 것을 깨닫는데 그렇게 오래 걸렸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사랑의 이 느낌. 이런 기분일 줄은 정말 몰랐다. 스티브 생각만 해도 눈이 시큰하다. 그런가 하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첫 장면에서 줄리 앤드류스처럼 두 팔을 벌리고 노래를 부르고 싶다. 스티브와 함께 평생을 보내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재미있고, 위트가 넘치는, 내가 언제나 결혼하고 싶어한 그런 남자!--내가 왜 이 사실을 진작에 깨닫질 못했을까??--한심한 놈들을 만나며 숱하게 시간을 낭비했는데 이젠 꿈에 그리던 남자를 만났다.

    스티브를 위해 근사한 음식을 만들어야겠다. 가슴이 깊게 파인 블라우스를 입고 음식을 내는 거야. 그리고 그 다음엔..........

    스티브는 메리 린의 차 옆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에서 아들의 슬리핑 백을 꺼냈다. 등이 아파왔다. 간밤에 겨우 세 시간밖에 못 잤고, 배도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어서 할리를 보고 싶은 마음으로 케니에게 작별 인사도 않은 채 떠나 버릴 뻔했다.

    케니는 가는 팔로 아빠의 목을 잡고 꽉 껴안았다.

    [아빠, 고마워요. 정말 재미 있었어.]

    [안녕, 스티브.]

    메리 린이다. 그녀는 이상하게 핼쓱해 보였고 팔장을 끼고 선 그녀의 입은 축 늘어져 있었다. 그건 보통 돈이 떨어졌거나 아니면 돌아오는 1일까지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의 표정이었다. 스티브는 다시는 그녀에게 놀아나는 일이 없으리라 결심을 다졌다.

    [안녕, 메리 린.]

    스티브는 어서 집으로 가고 싶기는 했지만 아들과의 이런 시간도 소중했다. 특히 이젠 아이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주말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랬다.

    [둘이 좋은 시간 보냈다니 좋네요.]

    멀리서도 메리 린이 억지 미소를 띠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 나 그만 가보겠어.]

    케니가 캠핑 장비를 집 안으로 들여가는 것을 보고 그가 말했다.

    [잠깐 들어왔다 갈 수 없어요? 커피가 좀 필요한 얼굴인데.]

    그렇게 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시간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바지 뒷주머니에서 수표책을 꺼냈다.

    [얼마나 필요해?]

    아이들 양육비를 지금 받아야 하는 이유를 장황하게 듣는 것보다는 차라리 돈을 내주고 빨리 끝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녀는 모욕을 당한 것처럼 상처 받은 표정을 지었다.

    [돈 달라는 게 아니에요.]

    [그럼, 좋아.]

    그는 다시 차로 다가갔다. 샤워와 면도와 할리가 필요해. 그 순서대로. 할리가 너무나 그리웠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그는 그 리스트를 수정했다. 샤워, 면도, 음식 그 다음에 할리.

    [나한테 늘 이러죠.]

    메리 린이 갑자기 그를 비난했다.

    [뭘 이런다고 그래?]

    그는 버릇대로 되물었다.

    [바로 그거. 당신한테 할 말이 있어요. 중요한 일이에요. 그렇지만 당신은 나는 안중에도 없고 바보 같은 야구나 볼링을 한답시고 달아나서는 가족들을 살피지도 않죠.]

    [좋아, 메리 린.]

    그는 인내심을 최대한 발휘했다.

    [이번엔 뭘 원하는 거야?]

    [그런 톤으로 말할 때가 난 싫어요.]

    그는 침착을 잃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다.

    [문제가 있으면 언제 시간을 정해서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

    다시 말해서 지금은 아니었다. 절대로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서 있어야 하겠어요? 동네 사람들이 다 듣게 소리를 질러 댈 건가요?]

    스티브가 집에 발을 들여놓으면 몇 시간이 걸릴 것이다. 메리 린은 언제나 그랬다.

    그는 잔디를 가로질러 걸어가 계단 아래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제 됐어?]

    [아니요.]

    [잘 들어. 메리 린. 난 시간이 없어. 원하는 게 뭔지 그 이야기만 해.]

    [또 그런 톤으로 말하고 있잖아요.]

    그는 마치 똑같은 말만 하는 인형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중요한 일이란 게 뭐야?]

    그가 물었다.

    [당신은 나나 아이들을 도와줄 마음이 없는 게 분명해요.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스티브 매리스. 당신은 감정이 없는 차가운 인간이에요.]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며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른 때 같았으면, 스티브는 그녀를 따라 달려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이제는 그녀도 달래줄 남편이 있다. 그는 더 이상 책임이 없었다. 그의 책임은 이제 케니밖엔 없다.

    그 사실을 되새기면서 그는 그곳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의도, 그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그녀의 위치와 상관없이, 그는 메리 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건 습관, 아니면 아직 남아 있는 죄책감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신경을 쓰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제 새 삶을 시작한다. 메리 린이 없는 삶을. 할리와 함께하는 삶을.

    할리에게 사랑한다고 한 말은 사실이었다. 그 말을 할 때 그는 의식했던 것보다도 더 확실하게 깨달았다. 다시 열일곱 소년이 된 기분이었다. 자기가 정확히 언제부터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면 우리의 사랑이 우정에서부터 서서히 자라난 것일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사랑이 시작되었고, 그는 할리에게 미쳐 있었다.

    메리 린이 집에서 나가 달라고 한 이후 처음으로 그는 살아 있는 느낌이 들었고 행복했다. 그건 온몸을 관통해 나가는 듯한 행복감이었고 남자로 하여금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온 미소가 겉으로 터져나오게 만드는 그런 행복이었다.

    집이 가까워지면서 그의 마음은 더욱 급하게 할리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는 차를 주차하고 곧장 할리의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캠프 파이어의 연기 냄새, 땀 냄새, 하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할리에게 키스하고 싶었다. 잠깐이라도 그녀를 안아야 했다.

    마침내 그녀가 문을 활짝 열었다.

    [나 용서하는 거지?]

    그는 지체하지 않고 물었다.

    두 사람 사이엔 아직 망문이 놓여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

    [어떤 경우?]

    [키스를 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는가에 따라서, 이 바보!]

    그는 망문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급한 기세로 문을 열어젖혔다. 할리는 그를 환영하는 부드러운 외침 소리와 함께 그의 품에 안겼다. 그는 두 팔로 그녀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는 그녀의 따스함과 여성적인 체취를 호흡했다.

    캠프에서 숲 속을 걷는 동안 내내 그는 이 순간만을 그렸다. 자연에 묻혀 있는 것을 좋아하는 그였지만, 이번에는 온 정신과 마음이 할리에게만 가 있었다.

    그들의 키스는 길고 느리며, 새로이 발견한 사랑에 대한 경이감으로 차 있었다. 그의 피는 생동했고, 바로 그 자리에서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모든 자제력을 끌어모아야 했다.

    그는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고, 그녀의 사랑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천국에 가까운 것이라고 느꼈다. 이미 그 사랑은 그를 치유하고 있었다. 그녀의 사랑은 그가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선물이었다.

    [저녁 준비했어요, 로스트 치킨.]

    [정말 배가 고프오.]

    그는 그녀의 코 끝에 키스했다.

    [요리 강습에서 배운 실력을 발휘한 거예요.]

    [그럼 어서 먹어 보지.]

    그들은 다시 두 사람을 거의 소진 상태로 몰고간 강렬한 키스를 나누었다. 얼굴을 마주 보고 섰을 때 그는 수염이 그녀의 얼굴에 자국을 낸 것을 알아차렸다.

    [잠깐만, 금방 돌아오겠소.]

    [지난 번에도 그렇게 말했잖아요.]

    [걱정하지 마시오. 또다시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믿을게요.]

    그녀는 그를 들뜨게 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곳으로 먼저 온 게 실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10분이나 15분이라도 그녀를 떠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다.

    그가 집으로 향해 반쯤 걸어갔을 때 할리가 소리를 쳤다.

    [전에 로스트 치킨을 잘 만드는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했었죠.]

    그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결혼?]

    그녀는 두 손을 허리에 얹고 눈을 가늘게 떴다.

    [스티브 매리스, 당신은 나와 결혼할 거예요. 내가 당신 발을 묶어 끌고 목사님 앞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는 억지로 짧게 웃음을 짓고는 서둘러 집으로 들어갔다. 가슴이 철렁했다. 할리는 남편을 원하고 있었다. 그건 그도 늘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지금 그녀는 그를 남편으로 원하고 있었다. 결혼, 이렇게 놀라서는 안 되겠지만, 그는 놀라고 있었다.

    결혼은 심각한 문제였다.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그는 한 번 그 경험을 했고, 한 아이의 아버지이다. 이제 할리도 자기 아이를 갖겠다고 할 것이다. 케니에게 느끼는 책임도 이미 무거웠다. 그런 책임을 더 맡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은 그를 두렵게 했다.

    그는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기 시작했다. 따뜻한 물줄기가 피부에 닿았다. 그들은 의논할 이야기가 많다. 그는 할리를 사랑했다. 30분 안에 그들의 관계를 정의내려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결정을 지금 당장 내릴 필요는 없다.

    샤워를 끝내고 타월을 허리에 두른 채 그는 욕실 거울 앞에서 이틀 동안 자라난 수염을 깍았다. 할리 생각을 하며 미소를 짓다가 면도날에 살을 베었다. 할리 생각을 할 게 아니라 면도날에 집중해야 한다.

    할리에게 로스트 치킨 이야기를 했던 것이 생각났다. 할머니가 매주 일요일, 교회에 다녀와서는 온 가족에게 로스트 치킨을 만들어 주시곤 했던 이야기였다. 메리 린과 사는 동안 그녀는 한 번도 로스트 치킨을 만든 적이 없었다. 그는 할리가 자기를 위해 애쓴다는 사실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는 냉장고에서 백포도주 한 병을 들고 다시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그는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할리는 식탁 옆에 서 있다가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행복감으로 환하게 빛나는 미소를 보냈다. 그에게는 태양의 온기처럼 느껴졌다.

    [왔군요.]

    그녀는 약간 수줍어하면서 말했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샌달에 목선이 둥글게 파인 긴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는 양옆으로 넘겨 데이지 모양의 핀을 꽂았다.

    그녀가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금세 알 수 있었다. 테이블 한가운데에는 꽃병과 크리스털 와인잔, 린넨 냅킨이 놓여 있었다. 그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준비했다니, 감격할 일이었다.

    그러나 부엌을 들여다보고 스티브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안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난장판이었다. 쌓여 있는 남비와 후라이팬으로 보아, 그녀는 있는 그릇이란 그릇은 모조리 다 꺼내서 음식을 만든 것 같았다.

    [디저트도 있어요.]

    그녀의 낮고 섹시한 목소리에 피가 요동치는 듯했다.

    [애플 파이는 아닌 것 같군.]

    [곧 알게 되겠죠. 안 그래요?]

    그는 포도주 마개를 열다가 식당에서부터 복도로 장미꽃잎이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저게 뭐지?]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디저트.]

    그녀는 조심스럽게 웃었다.

    그는 향기나는 마른 꽃잎을 따라서 침실까지 다가갔다. 그녀의 침대는 꽃잎으로 덮혀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그가 본 중에 가장 섹시한 크림색의 실크 잠옷이 펼쳐져 있었다.

    [정말 저 잠옷을 입을 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아뇨, 최소한 보기라도 하라고.]

    그는 그녀를 안고 당장에 침대로 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저녁을 준비하느라 들인 노력을 생각하면 안 될 말이었다.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소, 할리.]

    그는 소근거리며 키스했다.

    [지금 할리를 얼마나 갖고 싶은지 바지가 터질 것 같소.]

    [당신은 최고로 로맨틱한 남자는 아닐지 몰라도 여자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줄은 안다니까요.]

    그는 내키지 않은 걸음으로, 뒤를 돌아보면서 침실을 나왔다. 일을 빨리 하려는 마음에서 그는 식탁 차리기를 거들려고 했지만, 할리가 말렸다. 그녀는 그린 샐러드를 준비하고 오븐에서 닭고기와 감자를 꺼냈다. 향긋한 음식 냄새가 집 안을 감돌았다.

    그는 과자 그릇에서 몰래 꺼냈던 과자를 다시 집어넣었다.

    [남자의 마음은 위를 통해 온다는 옛말이 사실이라고 말한 게 당신아니었나요?]

    그녀가 물었다.

    [당신은 이미 내 마음을 가져갔잖소.]

    그녀는 손을 내밀어 식탁으로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와서 앉아요.]

    그는 마법에 취한 사람처럼 할리가 서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는 포도주를 따르고, 할리는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그가 먼저 한 입 먹을 때까지 기다리며 유심히 지켜보았다. 스티브는 그녀가 숨까지 죽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기까지 했다. 그로서는 맛이 없더라도 상관 없었다.

    닭고기 요리는 그의 할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것만큼 맛이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손가락을 빨아먹는 시늉을 했다.

    [완벽해. 내가 먹어 본 중에 가장 맛있소.]

    그가 선언했다.

    [정말이에요? 너무 바싹 구워지지 않았나요?]

    [아니, 직접 먹어 보시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작은 조각을 집어 먹었다. 그녀의 눈이 빛났다.

    [정말 맛있네.]

    그녀는 놀란 듯이 말했다.

    [정말 맛있어.]

    [패스트 푸드 점에서 파는 닭고기 요리와는 맛이 다르죠? 속에 넣는 양념까지 하나하나 모두 다 내가 만들었어요. 엄마한테 세 번이나 전화를 걸어야 했지만, 하여간 만들긴 했잖아요.]

    [자랑스럽소, 할리.]

    정말이었다.

    그는 두 접시나 먹고 테이블을 치웠다.

    아무리 안 그러려고 해도, 그녀가 커피를 따르고 있는 동안 그는 그녀에게서 손을 떼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부엌 싱크대 쪽을 향해서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그는 그녀의 뒤로 바짝 다가가서 손으로 가슴을 안으며 목에 자신의 목을 비볐다. 그녀에게서는 장미꽃과 여러 가지 허브와 향료 냄새가 났다.

    [스티브!]

    [참을 수가 없소, 미치겠소.]

    [침대에 가고 싶어 미치겠다는 거죠.]

    그는 그 사실을 부인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졌다.

    [유죄를 인정하오, 근데 우리 그 커피 꼭 마셔야 하나?]

    [특별히 혼합해서 만든 건데......]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뒤로 돌아 그를 마주보았다.

    [맞아요, 안 마셔도 돼요. 내가 필요한 건 당신뿐이에요.]

    신음과 숨막히는 경이감이 섞인 미친 듯한 깊은 키스가 이어졌다. 스티브가 그녀를 안아들고 침실로 가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그들은 걸음을 멈추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받지 말.]

    [엄마예요.]

    할리가 그의 어깨에 이마를 댄 채 말했다.

    [엄마는 닭고기 요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할 거예요. 지금 받지 않으면, 나중에 또 걸걸요. 10분마다.]

    스티브는 그 전화벨이 문제를 일으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녀가 수화기로 손을 뻗는 순간 받지 말라고 애걸을 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여보세요.]

    할리의 눈이 그에게 향했다.

    [케니예요.]

    그녀는 수화기를 넘겨주었다.

    [당장 아빠한테 할 말이 있대요.]

    스티브는 수화기를 받았다.

    [케니, 무슨 일이 있니?]

    [아빠, 방해해서 미안해. 아빠 집에 전화를 안 받아서 누나가 혹시 아빠 있는 곳을 알지 몰라서 거기로 걸었어.]

    [괜찮아, 케니. 어서 무슨 일인지 얘기해 봐.]

    [엄마 때문이야.]

    스티브는 아들의 목소리에서 걱정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왜?]

    [나도 몰라. 말을 안 해. 계속 울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빠 외에는 아무하고도 얘기하지 않겠대.]

    스티브는 신음을 삼켰다.

    [아빠, 어떻게 해?]

    [그냥 있어. 내가 금방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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