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들만의 웨딩-19화 (19/29)
  • 19. 다시 게임으로 돌아가다

    스티브 매리스는 여자를 꼬실 줄 모른다고, 할리는 책상앞에

    앉아서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그녀와 섹스를 하는 데 정말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권유--그런 유치한 행동에

    이 단어를 쓸 수 있다면--는 순전히 불안정한 상태에서

    나온 우발적인 행동이었다. 전 아내가 재혼을 해서 허전하고

    외로웠던 것이다. 그는 옆에 따뜻한 육체가 있어 아픔을 달래

    주길 원한 것이다. 그 육체가 어떤 여자의 것이든 상관이 없었다.

    할리는 달력에서 두 장--월요일과 화요일--을 떼내었다. 이틀 동안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왔기 때문이다. 뜯어낸 달력을 휴지통에 던져 버리려다가 멈추었다. 메리 린은 이제 킵과 결혼을 했으니 스티브는 두 주일 동안 아이를 보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녀가......

    그녀의 생각은 전화벨 소리에 끊겨 버렸다. 아놀드 밴스였다. 오늘 저녁 데이트를 취소하자는 것이었다. 일 때문에 오늘 출장을 간다고 했다. 할리는 아무런 유감도 없었다. 조건상으로는 아놀드는 완벽한 남편감이었다. 따라서 그런 사람과 데이트를 한다는 사실은 짜릿한 흥분으로 다가와야 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는 따분하다고도 할 수 없었다. 아놀드는 사려 깊고, 성공도 했으며 또 관대했다. 결혼을 한 번 했었지만 아이는 없었다. 그녀처럼 그 역시 아이들을 키우며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고 싶어 특별한 여자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번쩍 하는 것이 없었다. 그가 왜 그렇게 따분하게 느껴지는지, 또 그녀 역시 왜 그렇게 따분하게 느껴지는지 아무리 따져 봐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가장 실망스러운 사실은 이런 문제가 그녀에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이었다.

    퇴근을 해서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지치고 짜증이 났다. 스티브와 케니가 베란다에 나와 있는 것을 보자 기분이 좀 나아졌다. 보아하니 그들은 바비큐 햄버거를 구워 먹으려는 것 같았다. 케니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주방장 앞치마를 입고 있었다. 스티브가 잔디밭에 펼쳐 둔 피크닉용 테이블에 저녁상을 차렸다.

    [같이 하겠소?]

    할리를 보고 스티브가 외쳤다.

    [케니가 요리를 하는데.]

    [케니가요?]

    그녀는 놀라 소리쳤다.

    아홉 살짜리 소년은 입이 찢어져라 웃으면서 손잡이가 기다란

    주걱을 들어 보였다.

    [케니가 샐러드도 만들었소.]

    스티브는 아들의 머리를 토닥이며 자랑했다.

    [근사하게 만들었지.]

    케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하지만

    할리 눈에는 아이가 아빠의 칭찬에 기분 좋아하는 것이 보였다.

    [옷만 갈아입고 금방 갈게요.]

    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아놀드가 저녁 약속을 취소한 것이 반가웠다.

    근사한 레스토랑에 앉아 시시한 이야기나 하는 것보다는 스티브

    부자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편이 훨씬 즐거웠다.

    케니가 그녀의 집으로 건너왔다.

    [엄마는 이제 킵 아저씨하고 결혼했어요.]

    할리는 우편물을 점검해 가면서 대부분을 쓰레기통 속으로

    던져 넣었다.

    [그래.]

    할리가 편안한 청바지와 빨간 체크무늬 나시 블라우스로 갈아입는

    동안 케니는 할리의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있었다.

    [결혼식은 멋졌어요. 사람들도 많이 왔고요.]

    스티브는 지난 주말에 종적을 감추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등산을 가서 회사 동료와 캠핑을 했다고 했다.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다는 나았지 싶다. 그랬다면 주말 내내 시무룩하고 울적하게 지냈을 것이다.

    [엄마와 킵 아저씨는 지금 하와이에 있어요.]

    케니가 계속 말했다.

    [엄마는 전화도 안 해요, 한 번도.]

    할리는 케니의 목소리에서 아픈 상처를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네 생각을 안 하고 있어서 그런 게 아냐. 넌 아빠하고

    같이 있잖아. 그러니 엄마가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안 그래?]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리는 아이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 밖으로 나왔다.

    스티브는 도움이 절박한 상태였다. 버거 하나가 불 속으로 떨어진 걸 주걱으로 접어내려고 하다가 나머지 버거마저도 불 속으로 빠뜨리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 스티브는 손가락 두 개를 데었다. 케니가 스티브에게 얼음을 가져다 주는 동안 할리는 버거를 구제했다.

    그들은 먹으면서 이 사건을 두고 웃음을 터뜨렸다. 저녁 식사를 하는 내내 그들은 웃고, 놀리고, 이야기를 했다. 할리는 아놀드와 같이 데이트를 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고 또 한 번 생각했다.

    [오늘 밤 야구 시합에 올래요?]

    식사가 끝난 후 케니가 물었다. 탄 햄버거하며 모든 음식이 놀라울 정도로 맛이 있었다.

    스티브의 눈이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다른 계획 없으면 같이 가지.]

    [아놀드가 약속을 취소했어요.]

    [그럼 같이 가자구. 가서 보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놀랄 거요.]

    아이들의 야구 시합이 스티브 부자가 바비큐 만드는 것을 보는 것보다 더 재미있을 수는 없겠지만, 할리는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저녁 먹은 설거지는 순식간에 끝났다. 종이 접시는 쓰레기통으로 갔고, 남은 음식은 냉장고에 넣으면 되었다. 할리는 카운터를 치우고, 스티브는 그릴을 닦았다. 케니는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같이 가는 거죠?]

    케니가 기대에 찬 눈으로 다시 물었다.

    [그럼.]

    [야! 신난다!]

    어린이 야구 경기가 열리는 운동장은 할리가 요리 강습을

    받았던 켄트 문화회관 건너편에 있었다. 넓은 대지에 8개의

    다이아몬드형 경기장과 휴대용 관람석이 설치되어 있었다.

    스티브는 코치를 보조하는 것 같았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홈 플레이트로 가서 아이들에게 플라이 볼을 던져주기 시작했다.

    스티브가 어린아이들과 같이 어울리는 것을 보며 할리는 감탄스러웠다. 케니의 친구들이 그를 좋아하는 것이 눈에 역력했다.

    잠시 뒤 시합이 시작되었고, 스티브는 관람석으로 왔다.

    케니가 타순이 되자 할리는 긴장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케니는 처음번 공을 때리고 1루로 달려갔다. 2루수가 케니를 아웃시키려고 했지만 심판은 두 팔을 들어 세이프를 선언했다. 그때서야 케니는 관람석을 쳐다보았다. 케니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던 스티브는 아들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할리는 휘파람 소리를 내며 환호성을 질렀다. 너무 흥분해서 펄쩍펄쩍 뛰다가 관람석 밖으로 떨어질 뻔하기까지 하면서, 스티브가 잡아 주지 않았더라면 정말 떨어졌을 것이다. 그의 웃음기 있는 눈이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그는 한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았다. 또 떨어질까 봐 걱정돼서 그러는 거지 다른 이유는 없어, 할리는 자신에게 말했다.

    시합은 케니의 팀이 6대 3으로 이겼다. 아이는 환한 얼굴로

    운동장에서 달려왔다.

    [이제 우리가 1위야.]

    케니가 엄지손가락을 머리 위로 높이 쳐들어 보이면서 소리쳤다.

    [축하한다.]

    스티브는 케니의 모자 챙을 잡아 얼굴 아래로 쑥 잡아뺐다. 그는 잠깐 코치에게 가서 장비 모으는 일을 거들었다.

    팀 선수 한 명이 케니의 옆으로 왔다.

    [너네 아빠 애인이니?]

    소년은 노골적인 호기심을 드러내며 할리를 쳐다보았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결혼은 안 할 거야.]

    케니가 대답했다.

    할리는 이 말에 근처에 앉아 있던 부인이 호기심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다.

    [아주 잘했다, 라니.]

    스티브가 와서 소년의 머리를 부비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라니는 빙글거리며 좋아했다. 그리고는 어깨 너머로 자기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가 아저씨의 애인에 대해 궁금해해요. 케니가 그러는데 결혼은 안 할 거라면서요?]

    [라니.]

    관람석 뒤쪽에서 소년의 이름이 희미하게 들렸다.

    [집에 가야지.]

    [엄마한테 가서 그래라, 라니, 할리와 아저씨는 아주 가까운 친구라고.]

    스티브는 할리 쪽으로 와서 그녀의 어깨에 팔을 얹고 꽉 껴안았다. 그는 할리를 내려다보았다. 사랑에 굶주린, 그리고 완전히 넋나간 시선으로......

    [스티브.]

    할리는 팔꿈치로 그의 갈비뼈를 쳤다.

    스티브의 멍한 시선은 흔들릴 줄 몰랐다.

    [난 지금 이 여인한테 빠져 있다고.]

    [도가 지나치시군요, 매리스 씨.]

    말은 그렇게 해도 그녀는 온화하게 웃으며 그의 위험천만한 게임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것은 스티브와 그렇게 가까이 있는 것에 자신의 육체가 흥분한다는 사실이었다.

    [완전히 제정신을 잃고 빠져 있다고.]

    그는 또다시 말했다.

    그만 하지 않으면, 할리는 그에게 육체적인 해를 가할 참이었다.

    라니가 뛰어가자 스티브는 팔을 내렸다.

    [도대체 지금 뭐 한 거죠?]

    할리가 물었다.

    [로리타 라슨. 그 여자는 늘 나를 잡아도 좋을 사냥감으로

    생각했었지. 이제 메리 린도 재혼을 했겠다. 바야흐로 행동을

    개시할 때가 된 거지. 솔직히 난 관심 없소.]

    '이제 메리 린도 재혼을 했겠다.' 그래! 왜 진작 그걸 몰랐을까. 스티브는 이제 전 아내를 기억에서 지웠기 때문에 앞으로 나가는 도리밖엔 없었다. 데이트도 다시 학, 어쩌면 결혼도 할 것이다. 그건 새로운 여자를 만난다는 말이었다. 할리는 바로 그 여자를 알고 있었다.

    [이야기 좀 해요.]

    주차장으로 가면서 할리가 말했다.

    [단둘이서.]

    [그래?]

    그들은 도로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뭐에 대한 거요?]

    [아빠, 아이스크림 먹으로 가는 거야?]

    케니가 아빠의 소매를 끌면서 끼여들었다.

    [그럼.]

    [야!]

    케니는 야구 글러브를 겨드랑이에 끼고, 신호가 바뀌자

    쏜살같이 길을 건너 자동차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케니가 있으면 못할 이야기요?]

    [없을 때 말하는 편이 낫겠어요.]

    [좋아, 알았소.]

    하지만 썩 반가운 눈치는 아니었다.

    그들이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진 뒤였다. 케니는

    텔레비젼을 보는 중이었고, 할리와 스티브는 테라스 의자에

    앉아 별을 올려 다보고 있었다.

    [무슨 중요한 일이 있기에 이렇게 한밤중에 밖으로 끌어내는 거요?]

    [도널리 말이에요!]

    할리가 흥분해서 말했다.

    [도널리가 뭐?]

    [도널리는 나랑 제일 친한 친구잖아요. 도널리를 만나 봐요.]

    [왜?]

    그는 의심스럽게 물었다.

    [왜냐고요? 몰라서 물어요?]

    [그렇소.]

    이 남자는 앞이 깜깜했다. 하기야 그녀도 한때 그랬으니까.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무슨 생각?]

    그는 답답하다는 듯이 물었다.

    [당신과 도널리 말이에요. 도널리는 당신한테 완벽한 여자라고요.]

    [나하고?]

    [이제 다시 데이트를 시작해야 하잖아요. 안 그러면 로리타 라슨 같은 여자가 들들 볶을 거라고요.]

    [언제부터 내 사교생활을 챙겨 주게 됐소?]

    [오늘 밤부터. 나하고 싸울 생각은 말아요. 그래 봤자 이길 수 없으니까. 당신과 내 제일 친한 친구의 데이트를 주선하겠어요.]

    스티브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타드도 있소.]

    [타드가 누구예요?]

    그녀는 왜 갑자기 생판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 나온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가장 친한 친구요. 할리한테 완벽한 남자지.]

    [정말?]

    웃기는 일이었다. 왜 타드에 대해 진작 이야기를 안 했는지.

    [금요일 밤에 우리 넷이 만나기로 하지. 동의하오?]

    그는 손을 내밀었다.

    할리는 그의 손에 자기 손을 얹었다.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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