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들만의 웨딩-17화 (17/29)
  • 17. 다시 준비 태세 돌입

    6월 22일

    래리는 이제 내 인생에서 지워졌다. 그 때문에 이를 갈지는 않았지만 실망을 했다는 건 인정한다. 한 발자국앞으로 나갔다가 다시 뒤로 처져 결국엔 계곡으로 떨어진 기분이다. 탐 페더스와 아크 프리랜더는 혐오감을 주었고 래리 맥도널드는 실망을 안겨 주었다. 나한테는 왜 그런 사람밖에 안 걸리지? 내 꼴이 너무 한심하지 않은가.

    좀 밝은 이야기를 해볼까? 도널리는 몇 년 동안 알고 지내던 어느 부동산 중개업자와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도널리가 몇 년씩이나 같이 일해 온 사람과 결혼을 한다면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남자와 결혼으로 골인하지 못하더라도 자기 짝을 만나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도널리는 똑똑하고 매력적이고, 또 스티브 말에 의하면 여자로서 필요한 걸 두루 갖췄다. 외적인 면에선 말할 나위도 없고, 따스하고 정도 많다.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니었다면, 아마 도널리를 질투했을지도 모른다!

    스트비는 정말 따스한 사람이다. 지난번에 아팠을 때 집에 와서는 부엌 청소까지 해주고, 차도 옮겨 주었다. 가끔 우리 둘이 연인이 되는 상상을 해보지만, 아직도 그는 전 아내를 못 잊는 것 같다. 자기 말로는 안 그렇다고 하지만, 믿을 수 없다.

    데이트라인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다. 다시 사람을 찾아봐 준다고 했다. 전화 통화한 여자가 이번주 말까지는 다른 남자를 찾아 줄 수 있다기에 서둘지 말라고 했다. 아직은 누굴 서둘러 만날 기분이 아니었다. 한 두 주일 정도 시간을 갖고 다시 열의를 충전시키고 싶다. 나도 도널리처럼 데이트 라인을 통하지 않고 데이트를 해야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사무용품점에 새로 들어온 남자가 참 귀엽던데. 나이가 몇이나 됐을까, 결혼은 했을까.

    독감이 낫자 이것저것 의욕이 솟구쳐 마사 워싱턴 제라늄을 샀다. 이쁘고 진한 빨간색이다. 오늘 오후엔 그 제라늄을 심을 것이다.

    스티브가 회사 트럭을 세차하고 있을 때 할리는 제라늄을 심으러 밖으로 나왔다. 할리는 스티브처럼 트럭을 그렇게 깨끗하게 간수하는 남자는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긴 녹색 정원용 호스를 끌어다 물을 뿌리다가 할리를 보곤 멈추었다.

    [많이 나아진 것 같군.]

    그가 말했다.

    그는 너무 좋아 보였다. 셔츠 단추를 전부 풀어 놓아서 탄탄한 가슴 근육이 드러났다. 구릿빛 피부는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물론 난 제외하고, 할리는 얼른 토를 달았다. 몇 달째 옆집에 살면서도 그녀는 스티브가 육체적으로 얼마나 매력적인 남자인지를 처음 깨달은 것이 놀라웠다.

    [거의 나았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커다란 밀짚모자를 머리에 맞춰 쓰고 팔에 선크림을 발랐다. 물기 있는 부드러운 잔디밭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할리는 봄에 꽃을 피웠던 튤립과 수선화 사이에 공간을 만들었다.

    [뭘 심는 거요?]

    스티브가 물었다.

    그녀는 그가 알고 싶어하는 것 이상으로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심지어는 튤립과 수선화의 줄기와 잎을 쳐내서 영양분 흡수를 촉진시켜 줘야 한다는 말까지도 했다.

    스티브는 지루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공손하게 들어주기는 했다. 할리는 왜 자기가 그렇게 말이 많은지 알 수 없었다. 날씨가 좋아서일까. 1주일 내내 집 안에서 끙끙 앓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그의 풀어헤친 셔츠 때문일 수도 있다.

    플래스틱 화분에서 제라늄을 화단에 옮겨 심은 뒤 그녀는 호스를 마당으로 끌어왔다.

    [난 여자들이 뭣 때문에 꽃을 가지고 법석인지 모르겠소. 나한테 하라면, 그냥 플래스틱 수선화를 땅에 심어 버릴 텐데 말이오.]

    할리는 눈을 굴렸다.

    [난 남자들이 왜 무시무시한 트럭을 몰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더라.]

    [여자들은 도대체 왜 로맨스 소설을 읽는 거지?]

    할리는 이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리모콘을 들고 출근하는 남자들도 있던데.]

    할리는 자기가 스티브한테 고의적으로 호스를 갖다댄 건지 어쩐 건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호스를 든채 웃고 있었는데 호스가 갑자기 젖혀지면서 그의 청바지 가랑이로 물줄기가 솟구친 것이다.

    스티브는 천천히 할리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사과를 하려고 입을 열다가 문득 미안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말로 하시지.]

    그는 험악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섰다.

    할리는 그가 커다랗게 한 발자국 가까이 올 때마다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호스에서 졸졸거리는 물은 그가 트럭을 세차하는 데 쓰는 강력 스프레이와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난 내 믿음대로 살아요.]

    그녀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래?]

    그는 할리가 자기 바지에 물을 뿌린 것과 똑같이 그녀의 청바지 가락에 물을 뿌렸다. 하지만 그의 호스에서 나오는 수압이 훨씬 더 높아 할리는 바지 속까지 쫄딱 젖고 말았다.

    [내가 아팠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시죠. 밖에도 나와선 안 됐는지도 몰라요.]

    그녀는 괜시레 콜록거리는 시늉을 했다.

    [이 물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그런 생각을 하시지 그랬소?]

    [물 전쟁이라고요? 설마? 내가 얼마나 아팠는 줄 알면서.]

    그녀는 다시 기침을 했다.

    할리의 전략이 통했는지, 그는 뒤로 돌아갔다. 그 사이에 그녀는 얼른 정원에 있는 수도로 가서 꼭지를 더 틀었다. 자신이 시작한 일이 어떤 일인지를 생각할 여유를 가졌다면 이런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혹이 너무 강했다. 아무 경고도 없이, 그녀는 그의 등에 대고 물줄기를 쏘았다.

    스티브의 반응은 번개처럼 민첩했다. 그 즉시 총력전이 시작되었다. 협박과 보복의 설전까지 완비한 총력전이었다.

    몇 초 만에 그들은 둘 다 온몸이 흠뻑 젖고 말았다. 할리의 젖은 머리카락에서 목과 어깨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모자는 이미 오래 전에 온데간데 없었다. 블라우스가 몸에 찰싹 들러붙어 있었다.

    [정말 나쁜 사람이야.]

    봐달라고 사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이르자 그녀는 말했다.

    [믿을 수 없는 여자야.]

    스티브도 반박했다.

    그녀는 이런 말장난이 재미있어서 웃음이 나왔다.

    [내가 이성을 잃었나 봐요.]

    그건 사실이었다. 그의 태도가 충동을 일으킨 것이다. 그의 풀어헤친 셔츠는 말할 것도 없고......남자가 그렇게 섹시해 보일 권리는 없으니까.

    [들어가서 옷 갈아입어요, 또 감기 걸리지 않게.]

    그가 말했다.

    [당신도요.]

    그 역시 할리만큼 흠뻑 젖어 있었다. 여성을 몰아붙인 그에게 호된 맛을 보여준 것이 속시원하고 고소했다. 스티브의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따 뭐 할 거지?]

    집으로 막 들어가려는데 그가 뒤에서 물었다.

    [몸 말리는 것말고는 별로.]

    그는 빙긋 웃었다.

    [자전거 타고 그린 강에 갈까 하는데, 같이 가겠소?]

    할리도 미소로 응답했다. 좋은 생각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그린 강가를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맑은 오후에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생각했었다. 운동을 하되 전말을 즐기면서 하는 것이다. 지루하지도 않겠지.

    [좋긴 하지만 자전거가 없어요.]

    할리는 애석하게 말했다. 자전거를 타본 게 10년은 되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케니의 자전거를 타면 되오. 케니도 뭐라고 하지 않을 거요.]

    스티브는 이번 주말에 기분이 울적했었다. 케니는 외갓집 일로 엄마와 함께 있어야 했기 때문에 아이가 없는 주말을 허전하게 보내고 있던 터였다.

    [이건 뭐 그렇게 힘든 결정도 아닌데 그러오, 할리.]

    [글쎄요......자전거 타본 지가 하도 오래 돼서.]

    그녀는 약간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상관 없을 거요.]

    그가 단정지었다.

    [그건 한 번 배워 두면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는 거요. 섹스하고 마찬가지지.]

    그녀는 그를 쏘아보았다.

    [정말 웃기네요, 매리스.]

    [복습을 시켜 주겠소. 자전거 타는 법 말이오.]

    그는 싱긋 웃었다.

    [10분이면 될 거요, 약속해.]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약속했어요. 옷 갈아입고 금방 나올게요.]

    그녀는 얼른 옷을 갈아입고 주차장 앞에서 스티브를 만났다.

    [안장을 좀 올려야겠군.]

    그는 할리의 다리를, 그 다음엔 자전거 페달을 보고 말했다.

    [자, 한 번 앉아 봐요. 얼마나 올리면 되나 보게.]

    [하지만....]

    [걱정 마시오. 내가 자전거를 붙들고 있을 테니까. 넘어지지 않게 해주겠소.]

    할리는 스티브가 하라는 대로 안장에 올라 앉아 다리를 페달에 얹었다. 무릎이 가슴까지 올라왔다. 자기 꼴이 우스꽝스러운 것을 의식하고, 할리는 스티브를 보았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길 아래쪽에서 다가오는 어느 자동차에 박혀 있었다.

    할리도 그의 시선을 따라서 진한 청색 자동차를 보았다.

    [메리 린이요.]

    그가 숨죽여 말했다. 그의 목소리엔 놀라움과 기쁨이 섞여 있었다. 메리의 차가 와서 섰다.

    스티브는 할리는 완전히 잊어버린 채 잡고 있던 자전거에서 손을 떼고 메리 린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할리가 미처 페달에서 발을 떼기도 전에 자전거는 잔디밭으로 쓰러졌다.

    스티브는 그것도 알지 못했다. 할리는 젖은 잔디밭 위에서 대자로 나동그라졌다. 할리는 자신이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등이 완전히 젖었다. 그제서야 스티브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것도 메리 린이 말해 주지 않았다면 돌아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괜찮아요?]

    할리가 낑낑거리며 몸 위로 넘어진 자전거를 치우고 일어섰을 때 메리 린이 물었다.

    그들은 몇 번 잠깐 만난 적이 있었다. 케니를 사무실로 데려갔던 날도 만났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늘 어색했다. 그 후로 메리 린이 아이를 데리고 올 때나 아니면 데려갈 때 잠깐씩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 적이 있었다.

    할리는 바지에 묻은 풀을 털어냈다.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힌 팔꿈치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그녀는 팔을 비틀어 얼마나 다쳤는지 살폈다. 살갗이 조금 벗겨졌을 뿐이었지만 그걸 보자 화가 치밀었다.

    그녀는 스티브를 노려보았다. 스티브는 절절한 눈으로 메리 린만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도 아내가 마음이 바뀌었다며 다시 돌아와 달라는 말을 해주기만 바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어요?]

    메리 린은 더할 수 없이 달콤한 목소리로 스티브에게 물었다.

    [물론이지.]

    그는 서두르느라 넘어질 뻔하면서 메리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메리 린은 미안한 듯 할리 쪽을 흘끔거렸다.

    [지금 곤란하면 다음에.....]

    메리 린이 계속 할리를 살피자, 이윽고 스티브도 할리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안 것 같았다.

    [할리, 미안하오, 괜찮소?]

    [하늘을 날 것 같아요!]

    그는 그 냉소를 간파하지 못했든가 아니면 무시하기로 한 것 같았다.

    [자전거는 다음에 타지, 응?]

    그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돌아섰다.

    분명 그에게 할리는 그렇게도 별 볼 일 없는 존재였던 모양이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그녀를 두고 가 버렸으니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내 감정은 전혀 아랑곳 없이 버려두고 가다니. 마치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녀는 손을 허리에 짚은 채 씩씩거리며 서 있었다. 스티브 매리스 역시 여느 한심한 남자들과 다를 게 없었다. 무례하고, 남을 생각할 주 모르고, 몰인정했다. 그에 대해 로맨틱한 연정을 품지 않은 게 다행이지!

    할리는 좀처럼 화를 가라앉히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와 상처 난 곳에 약을 발랐다. 반창고를 붙일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갖고 있는 것 중에 제일 큰 반창고를 붙였다.

    사실, 그녀는 스티브와 자전거를 타러 간다는 생각에 신이 나 있었다. 앞으로 열대지방에 서리가 내리기 전에는 저 남자와 무슨 일이든 같이 하나 봐라.

    20분 후에 초인종이 울렸다. 스티브였다.

    [믿을 수가 없어.]

    그는 역겨운 듯이 말했다.

    [동감이에요.]

    그녀는 냉랭하게 받아쳤다.

    보아하니 그는 할리의 말은 듣지도 못한 모양이다.

    [메리 린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좀 들어 보시오.]

    이젠 할리가 자기 말을 들을 건지 아닌지 까지도 직접 정해주고 있었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문을 막아섰다.

    [가족들이 모인 자리를 떠나 여가까지 와서는 글쎄 그 바보 천치랑 신혼여행 가 있는 2주일 동안 아이를 맡아 줄 수 있냐더군.]

    그는 할리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끝내 주지 않소?]

    그는 세상에서 가장 말도 안 되는 일이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흔들었다.

    할리는 그가 그녀의 부탁을 들어줬을 것에 한 달 월급을 몽땅 걸수 있었다. 소중한 메리 린을 위해서라면 그가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럴 건가요?]

    [그거야 물론이지.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소.]

    [그럴 줄 알았어요.]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왜, 무슨 일 있소?]

    [무슨 일이 있을 게 있나요?]

    이 남자는 자기가 얼마나 그녀를 모욕했는지 정말 모르는 걸까.

    그는 할리를 잘 보려는 듯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메리 린도 꼭 그랬소.]

    그는 집게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나한테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해봐요. 알아맞춰 보라는 식으로 사람 시험하지 말고.]

    [불만?]

    그녀는 그 단어가 몹시 재미있었다.

    [방금 전에 나한테 한 행동은.....]

    그에 걸맞는 나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비열했어요.]

    이 단어로 결정을 내렸다.

    [메리 린의 차가 나타나니까 난 보이지도 않았죠? 내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저 바보 같은 자전거에서 넘어지게 해요? 당신은 날 완전히 무시했어요!]

    [오, 할리.....]

    [날 그렇게 창피한 꼴로 만들다니, 날 벌레만도 못하게 취급하다니. 옛날 아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허둥대며 달려가기나 하고!]

    할리는 침착하게 멸시감만 표현하려고 했지만 목소리는 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의 눈이 놀라움으로 휘둥그레졌다.

    [친구라면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아요.]

    그녀는 이제 어느 정도 냉정을 되찾았다.

    그는 그녀의 말이 끝난 후 잠깐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 사과하겠소. 하지만 솔직히 난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곤 생각하지 않소.]

    [나한텐 중요해요.....]

    그는 그녀가 이 사건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고 있음을

    암시하려는 듯 눈을 감았다.

    [이제 그만 하고 자전거나 타러 가지.]

    [그만 하라고?]

    그녀는 씩씩 거렸다.

    [날 땅바닥에 엎어지게 해놓고서! 말했죠, 친구한테 그러는

    게 아니라고. 그만 하라고요?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신 같은 친구는 필요 없어요.]

    [좋아, 나도 할리 때문에 더 고통당하고 싶진 않소.

    한 명으로 충분해. 또 딴 여자로 인해 내 인생을 고달프게

    만들 필요는 없지.]

    말을 끝내고 그는 뒤로 돌아 자기 집으로 향했다.

    [메리 린과의 결혼은 끝났다는 사실을 이제 그만 받아들이시죠!]

    그녀는 그이 등뒤에 대고 소리쳤다. 너무 화가 나서 말을

    고를 처지가 아니었다.

    [아직도 모르겠어요? 메리 린은 다른 남자하고 약혼했다고요.]

    스티브가 홱 돌아섰다. 그의 눈은 강렬하고 차가웠다.

    [자기 일이나 잘 하시지. 아직 결혼도 못해 놓고선.]

    그의 말은 뺨을 후려친 것처럼 쓰라렸다. 그녀는 갑작스런

    아픔에 숨이 막혀 오는 것을 느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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