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들만의 웨딩-14화 (14/29)

14. 빵 굽는 여자

6월 2일

래리와 벌써 한 달째 만나고 있다. 자주는 아니지. 기껏해야 1주일에 한 번. 솔직히 말해서 난 1주일에 한 번 정도도 좋다. 마크와는 모든 것이 너무 빨랐었다. 그는 하루 동안 내가 어디서 누구와 같이 있는지를 알아야 직성이 풀렸다. 그래서 둘은 마치 늘 같이 있는 것 같았다.

래리는 조용한 편이고 주로 내가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아무 말 없이 있으면 왠지 불편하기 때문이다. 어쨌건 기본적으로는 괜찮은 남자라고 할 수 있다. 좀더 편한 사이가 되면 내 감정을 정확히 분별할 수 있겠지. 지금은 아직 좀 어색한 상태니까.

지금까지는 박물관 몇 군데를 같이 가보았다. 평소에도 늘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못 갔던 곳이었다. 책방에도 종종 간다. 지금까지 제일 재미있었던 데이트는 모로토 레스토랑에서였다. 래리는 수학과 교수이다. 수입이 그리 많지는 않겠지만 상관없다. 2천 달러를 바칠 만큼 결혼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남자면 됐지 뭐.

지난 주일에 그가 처음으로 키스를 했다. 우리가 세 번째 만났을 때였다. 키스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새삼 내가 얼마나 로맨틱한지를 깨닫고 좀놀랐다. 난 남자가 나를 원해서 안달했으면 좋겠다. 내 실크 잠옷을 어서 벗기지 못해 조급해하는 그런 남자. 지금도 맨 마지막 서랍 안에 고이 개켜져 있는 내 잠옷을. 래리가 안달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

가끔 그 잠옷을 꺼내서 과연 언제나 입어 볼까 생각해 본다. 래리하고 그렇게 될까? 아무리 노력해도, 래리가 흥분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가 알몸인 것도 상상할 수가 없다. 잠자리에 들 때 안경을 쓰고 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엄마는 언제나 깊은 물은 고요하다고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래리의 속은 얼만 깊은 걸까? 너무 깊어서 그 바닥을 칠 수 있을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다행스런 일도 있다. 래리는 내가 만든 과자를 좋아한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지만, 스티브는 여전히 서류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회계 업무는 비서와 회계사한테 시킬 수 있으니까 그냥 둔다 해도 다른 개인적인 일이 있었다.

타드가 문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오늘 밤에도 늦게까지 일하려나?]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스티브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 자기가 한 말이 사실인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먼저 퇴근해. 내가 문 걸고 갈 테니까.]

[시원한 맥주 한 잔 어때? 기다려 줄 테니. 사실 나도 정리해야 할 일이 좀 있어.]

시원한 맥주라.....구미가 당겼다. 힘든 하루였다. 앞에 쌓여 있는 서류 더미를 처리하고 나면 더 힘든 하루로 끝날 것이다.

[좋지!]

새로워진 의욕으로 스티브는 1시간 안에 일을 다 마쳤다. 그는 타드를 찾아 각각 자기 차를 타고 부근의 바로 갔다. 가장 친한 친구이기는 했지만 둘이서 같이 어울릴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1주일에 닷새는 만나니까. 스티브가 이혼한 후에 타드는 마음을 털어놓고 의논할 수 있는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때야말로 스티브에게 친구가 가장 절실할 때였으니까.

한동안 메리 린으로부터 소식을 듣지 못해서 그것이 마음이 쓰였다. 최근엔 케니도 킵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메리 린이 그 치를 만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최근에 알았는데, 킵은 자동차 세일즈맨이라고 했다.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타드가 말했다. 서부 복장을 한 웨이트리스가 맥주 피처와 차가운 잔을 가져왔다. 축음기에서 컨트리 뮤직이 왕왕거렸다. 뭔가 잘못한 남자의 변명하는 소리에 섞여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쟁쟁거렸다.

스티브는 잔을 채우며 두 사람이 이런 선술집에 마주 앉아 본 것이 7, 8개월 가까이 됐음을 깨달았다. 때로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놀라웠다. 케니의 기저귀를 갈아 주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기만 한데, 기금은 어느새 10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기 기저귀 생각을 하니 할리 생각이 났다. 며칠 전 할리로부터 급한 전화가 걸려왔었다. 6개월 된 조카를 주말 동안 봐주기로 했는데, 혹시 도움이 필요할 경우 케니가 도와줄 수 있도록 집에 있어 달라고 했다. 스티브는 할리가 갓난아이를 어떻게 보겠다는 건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스티브도 일부러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

몇 년 전 스티브는 아이를 하나 더 갖자고 메리 린에게 졸랐다. 메리는 아이를 더 원하지 않는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 당시엔 실망이 컸지만, 둘이 헤어지고 나니 그때 그렇게 된 게 잘된 일이었다.

[그래,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

타드가 맥주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잘 지내, 자넨?]

스티브는 자동적으로 말했다.

[잘 지내. 너무 잘 지내지. 주말은 거의 내내 호수에서 지냈어. 오두막집을 수리했거든. 언제 케니 데리고 한 번 오게. 얼마나 달라졌는지 놀랄걸.]

[그러지.]

타드는 할아버지에게서 여름 별장을 유산으로 상속받았다. 스티브의 기억이 맞다면, 그것은 카르 호수변의 키 센터 부근에 있었다. 이따금 타드는 갓 잡은 굴을 가지고 왔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혔다.

[모든 일이 잘되고 있다는 건가?]

타드가 말했다.

[그럼, 케니가 미술을 배우고 싶어한단 말 했던가? 몇 주일 전에 우리 옆집 여자 회사에 갔다오더니 자기도 상업 미술가가 되기로 했다네.]

[정말?]

[그래, 케니가 생각해낸 아이디어를 할리가 사용했나 봐. 케니는 자기도 그 길에 소질이 있다고 확신하는 거야.]

그는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싱글벙글했다. 케니가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을 못 믿어서가 아니었다. 할리와 하루 같이 지낸 후 케니가 얼마나 달라졌는지가 놀라워서였다. 그는 할리의 격려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할리, 그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그들은 몇 주일 전에 실갱이 비슷한 것을 했었다. 어느 토요일 오후에 아무 생각 없이 세차를 하고 있는데, 그녀가 시무룩한 얼굴로 집에서 나왔다. 그날 아침 저울을 달아 봤더니 1킬로그램이 더 늘었더라는 것이다. 그녀는 그게 스티브 때문이라고 우겨댔다. 과자 굽는 법을 배우도록 자기를 꼬셔댔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스티브는 그 일을 타드에게 말했다. 그리고는 목이 빽빽해질 때까지 웃어댔다. 1킬로그램이라, 고걸 갖고 그녀는 마치 20킬로그램은 되는 것처럼 말한 것이다.

[둘이 친구 이상은 아니라는 게 사실인가?]

타드가 뜬금없이 물었다.

왠 엉뚱한 질문이람.

[물론이지. 메리 린에 대한 내 감정이 어떤지 잘 알면서 그러나.]

[글쎄.....]

타드는 두 손으로 맥주잔을 잡았다.

[할리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네 눈에 빛이 돈단 말이야.]

스티브는 어깨를 으쓱했다. 눈에 빛이 돈다고? 아무래도 타드가 텔레비젼을 너무 많이 본 것 같았다.

[할리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

지금까지 할리 같은 여자친구는 없었다.

[똑똑하면서도 엉뚱해.]

그는 계속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자기가 얼마나 엉뚱한지를 모른다는 사실이야. 남편을 구한답시고 데이트 대행사에 2천 달러나 바쳤는데, 지금껏 밥맛 같은 녀석들하고 데이트했다네.]

[자네 정말 할리한테 관심 없어?]

스티브는 고개를 저었다.

[없다니까. 할리가 지금 데이트하는 녀석을 한 번 만나 봐야 해. 이마에다 '난 바보'라고 쓰고 다니는 놈이야. 자하고 굵은 안경만 있으면 완벽하게 떨어지는 남자 있지? 할리 말로는 그린 리버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친다더군. 뭐, 사람이야 괜찮다고 해야겠지, 하지만 할리와 그런 작자가 결혼을 한다? 할리가 그런 작자와 행복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 데이트 대행사도 알아볼 조 아니겠어?]

타드는 싱긋이 웃으며 등을 기대고 앉아서 듣기만 했다.

[케니가 할리를 아주 좋아해. 그럴 만도 하지. 할리는 메리 린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와 보내니까. 게다가 요리 강습을 받은 후부턴 얼마나 요리를 잘하는지 그렇게 맛있는 음식은 먹어 본 적이 없는걸.]

[과자말고도 더 만들 줄 안단 말인가?]

[그래, 식빵, 시나몬 롤서부터 시작해서, 지난 주말에는 메이플 바를 한 접시 갖다줬는데 마리야, 케니랑 같이 점심 전에 다 먹어치웠어. 지금까지 먹어 본 중에 제일 맛있었어.]

[난 집에서 만든 음식을 먹어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

타드는 스티브가 그런 이웃을 두고 있는 것이 은근히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점 한 가지만 갖고도 남자가 결혼하고 싶어지겠군.]

스티브는 몸을 똑바로 하고 노골적으로 웃어댔다.

[내가 그렇게 말했다니까.]

[결혼하자고 했단 말인가?]

타드는 그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반신반의하며 눈을 굴리고 그를 쳐다보았다.

[바보 같은 소리.]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할리는 나한테 관심이 없어. 또 나도 그렇고. 할리가 남편감을 찾고 있어서, 내가 좀 도와준 거지.]

[할리가 자네 충고를 들었다고?]

스티브는 그 말을 기분 나쁘게 듣지 않기로 했다.

[얼마 전에 남자가 결혼할 여자한테 뭘 원하느냐고 묻더군. 그래서 말해 줬지.]

[뭐라고?]

타드는 점점 더 못 믿겠다는 어조였다.

[사실 그대로.]

스티브는 여자의 육체적 조건에 대해서 한 말은 빼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솔직하게 말했지. 그랬더니 내 충고를 받아들인 거야.]

스티브가 그런 말을 한 후 체중이 는 사람은 할리 하나가 아니었다. 스티브도 옷이 끼는 것으로 보아 2, 3킬로그램은 족히 늘었다고 봐야 했다. 스티브로서는 그런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기 손으로 식사를 차려 먹기 시작한 지난 2년 반 동안 그는 그만큼의 체중이 줄었었다.

타드는 피처를 들어 스티브와 자기 잔을 채웠다.

[케니는 잘 있나? 자네 이혼에 이젠 적응을 한 것 같아?]

[내가 보기엔 그런 것 같아. 주말은 거의 나하고 같이 지내. 매일 내 주위에서 귀찮게 얼정거리던 시절이 그립네.]

타드는 몸을 앞으로 내밀고 나무 탁자에 팔꿈치를 괴었다.

[메리 린 이야기를 한동안 못 들었는데, 아직 둘이 보기는 하는 건가?]

[보긴 하지.]

스티브는 방어적인 자세로 답하고 있었다.

[매주 아이들을 데려올 때 보고, 가끔씩 전화도 걸어.]

그건 대개 메리가 돈이 떨어져서 다음번 부양비가 나올 때까지 돈을 꿔달라고 할 때였다. 그녀는 스티브가 생일에 보내 준 장미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스티브가 먼저 말을 꺼내자, 웃으며 마지못해 고맙다고 했지만 마음은 딴 데 가 있었다. 꽃을 보내서 실망을 했고, 지난 몇 달 동안 자기 쪽에서 진전한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요전 날 메리를 만났어.]

타드가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의 어조는 즉각적으로 스티브에게 의심에 불꽃을 당겼다. 그는 친구를 너무 다그치지 않기로 했다.

[혼자가 아니었겠지?]

타드가 훅 숨을 들이쉬는 것으로 보아 스티브의 말이 기습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은 그랬어.]

[킵이었을 거야.]

스티브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속으로는 지난 몇 달 동안 회피해 왔던 일을 대면하는 것이 즐겁지는 않았다. 메리 린은 아직도 그 한심한 세일즈맨을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금년 초에 만나던 그 남자인가?]

[맞아.]

스티브는 마지못해 인정했다. 그는 메리가 그 놈팡이한테 넌더리가 나기만 기다려 왔지만,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생겼던가?]

그가 아이에게는 차마 못 물어 봤던 질문이었다. 그가 확실히 아는 것 한 가지는 킵이란 놈은 손톱 밑에 기름이 껴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쳇, 내가 어떻게 알겠나. 세련돼 보이더군. 양복을 입고 있었어.]

타드가 대답했다.

[토크 쇼 진행자 같이 말인가?]

스티브는 킵을 그렇게 상상했다. 번지르르하고, 사근사근한, 메리 린의 새 남성 취향에 꼭 들어맞는 타입으로.

[그래. 그 말이 아주 적절하군.]

타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서 만났는데?]

저도 모르게 입술을 굳게 깨물면서 그가 물었다.

[사우스 센터에서. 스패너를 바꿔 주러 시어즈 백화점에 갔다가 보게 된 거야. 쇼핑을 했는지, 킵이 꾸러미들을 잔뜩 들고 있었어.]

스티브는 코방귀를 뀌었다.

[마침내 쇼핑을 좋아하는 남자를 만났군. 잘해 보라지. 난 어느 쇼핑센터에 가든 10분, 15분 이상은 있을 수가 없어. 오번에 있는 수퍼몰을 예로 들어 볼까? 아이들이 몇 주일 동안 거길 가자고 졸라대서 한 번 갔더니, 장난이 아니더군. 차라리 자동차 엔진을 뜯었다가 다시 조립하는 게 낫지.]

스티브는 화제 전환이 너무 노골적이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메리 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킵에 대해서는 더욱 더 듣고 싶지 않았다.

[메리 린이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에 대해 이젠 마음을 정리한 것같군.]

스티브는 한숨을 쉬었다.

[하다마다.]

그 말은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었다. 메리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생각을 할 때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킵과 데이트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땐 그녀에게 압력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그 남자의 팔 안으로 곧장 안겨 들어갈까 봐서였다. 그래서 오래지 않아 그 남자에게서 관심이 없어질 것이라 확신하며 시간을 두었었다. 결국 그건 계산 착오였다. 지금이라도 전략을 바꿀 수는 있었다. 지금부터.......

스티브는 일어나서 10달러짜리를 테이블에 놓았다.

타드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올려다보았다.

[벌써 가려구?]

[응.]

그는 맥주잔을 비웠다.

[어디로 가나?]

[어디겠나? 메리 린하고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그는 등뒤에서 타드가 끙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가트 브룩스의 노래를 뒤로 하며 그는 술집을 나왔다.

트럭 타이어가 자갈길을 미끄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는 주차장을 나섰다. 1시간 정도 달리며 그는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포장이 되는 음식을 사들고는 잠시 메리 린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그는 아이가 잠자리에 들 시간을 기다렸다가 집으로 갔다. 아이를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다.

그는 아직도 자기가 산 집을 노크하는 일에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지금은 법적으로 메리 린의 집이지만 아무리 그렇다라도......

메리 린이 문을 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티브! 왠일이죠?]

[시간 좀 있어?]

그가 물었다. 그녀의 섬세한 이목구비와 윤기나는 검은머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는 오랜만에 다시 보고 속이 울컹했다. 그녀를 여러 가지로 그리워했지만, 무엇보다 가장 그리운 것, 무엇보다 되돌리고 싶은 것은 결혼 초기에 나누었던 친구 같은 관계였다. 결혼생활 중에 그가 저지른 실수도 많았지만, 또 그녀의 실수도 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다시 시작해 볼 때가 되었다. 메리 린이 왜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는지 스티브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좀 머뭇거리더니 밖으로 나와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들은 이 현관 계단에 앉아 별을 바라보곤 했었다. 현관 등은 꺼져 있었고, 여름 하늘에서 별들이 웃으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과 똑같이.......

스티브는 그것이 길조라고 생각했다. 그는 길조가 필요했다.

메리 린은 계단 맨 위에 앉았다. 스티브는 그 옆에 앉았다. 그는 메리 린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지 않고 이렇게 자기 충동에 이끌려 온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대화를 진작에 했어야 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

메리가 물었다.

[케니는 잘 있지? 학교에서 말썽 안 피우고?]

[물론이죠. 알면서 왜 묻죠?]

[그냥. 메리, 당신은 아이를 참 잘 키우고 있어.]

[고마워요. 그런 칭찬이나 하자고 이렇게 달려온 거예요?]

그는 망설였다.

[내 아내로서도 정말 잘했었지.]

메리는 그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오래 전 일이에요.]

[그렇게 오래지도 않아. 우리 일을 모두 다 기억하고 있어. 특히 당신을 안았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그리고.....]

[스티브.]

그녀는 그의 말을 막았다.

[그만 하세요.]

[왜?]

그는 메리에게 할 말을 아주 신중하게 생각해 두었다. 과거 좋았던 시절에 대해 상기시키고, 아이들에게 온전한 가정이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 말한 후, 그녀가 원하는 남편이 되기로 약속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다시 가정을 찾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우린 끝났어요, 스티브. 벌써 여러 해 된 일이잖아요.]

[난 안 끝났어.]

[그렇다면 이제 당신도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가 되었어요.]

그녀가 일어섰다. 스티브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가지 마.]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제발.]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다시 앉았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녀는 뻣뻣하게 몸을 긴장시키면서 그를 거부했다. 그러나 그가 목과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자 조금씩 긴장을 풀었다.

[우리 전에 이렇게 나와 앉아서 별을 보던 생각 나?]

[오래 전 일이죠.]

[그래? 엊그제 같은데.]

그는 그녀의 목에서부터 귀까지 잔잔한 키스를 부어갔다. 그녀의 귓볼을 이빨로 살짝 깨물었을 때 그녀의 저항이 조금 녹아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같이 사랑을 나눈 지도 너무나 오래 된 일이어서 그는 벌써 흥분해 있었다. 그는 손으로 그녀의 블라우스를 열기 위해 더듬어갔다.

[이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요.]

그녀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그러나 그의 손을 막지는 않았다.

[그 반대야. 이건 몇 달 만에 해보는 최고의 생각이야.]

그녀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이러지 말아요.]

그는 손을 치웠다. 그러나 그녀의 목에 댄 입술은 떼지 않았다. 그녀가 이 정도를 허락한 것을 보면, 침대까지 갈 수 있는 가능성은 백배로 커질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거였다. 침대에 가는 것, 그리고 그의 아래에서 부드럽고 순순하게 응대하며 두 팔로 그를 안아 아래로 끌어내려 주는 것. 그를 사랑하고, 그의 지난 고독의 아픔을 씻어 내 주는 것. 그 후에 이야기를 하리라......

[키스하게 해줘.]

그는 욕정으로 허스키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애걸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애걸하고 있었다. 마치 손에서 빠져나가는 소중한 보물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절박하게, 그는 메리 린을 사랑했다. 그녀가 필요했고, 그들의 가정이 필요했다.

[난.......들어가 봐야 해요.]

[같이 들어가.]

그가 속삭였다. 그는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안고 입술을 가져갔다. 그녀의 저항은 미약했다. 형식적인 노력일 뿐. 스티브는 희망을 가졌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키스는 거의 동물적이었다. 이내 그의 혀는 그녀의 혀와 같이 엉켰고, 그녀는 그의 몸 아래에서 꿈틀거렸다. 키스를 끝낸 이유는 오로지 숨을 쉬기 위해서였다. 그것도 마지못해 한 일이었다.

[우리 얼마나 좋았는지 생각 안 나?]

스티브가 속삭였다.

[같이 들어가.]

그는 신음 소리까지 내면서 애걸했다.

메리 린은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스티브는 일어나서 그녀를 일으켰다. 그가 문으로 반쯤 갔을 때 그녀가 그를 막았다.

[안 돼요.]

[왜 안 돼?]

아이들이 아직 안 자고 있다면, 어서 재우면 되었다.

메리 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스티브는 또 한 발자국을 갔다.

[안 된다니까요.]

그녀는 그에게서 빠져나오면서 외쳤다.

[왜 안 된다는 거야?]

그녀는 어깨를 반드시 하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킵이 와 있어요. 텔레비젼 앞에서 지금 잠들어 있어요. 저녁 식사에 초대했었거든요.]

스티브는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다른 남자가 집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와 집 앞에 앉아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오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녀는 화난 소리로 말했다.

[다신 오지 마세요, 스티브. 우린 이혼했어요. 부디 그 사실을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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