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들만의 웨딩-10화 (10/29)
  • 10. 총각 No.3

    [마크?]

    할리는 마크가 이렇게 흥분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그는 아예 할리의 팔을 잡고 끌다시피 하며 그녀의 집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뭐 때문에 이러는지 말을 해줘야 알 것 아녜요.]

    그녀가 바둥거렸다.

    그의 손에 더욱 힘이 가해졌다. 명령에 감히 거역하지 말라는 듯이 그가 차갑게 내뱉었다.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해.]

    할리는 스티브에게 사과조의 시선을 보냈다. 그는 차 옆에 선 채로 굳은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도와달라고 말해 주길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꽉 쥔 주먹을 보아하니 그럴 태세가 되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케니는 그의 옆에 서서 불안스레 서성였다.

    너무 당황해서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할리는 현관문에 열쇠를 넣어 돌렸다. 마크가 재촉하는 바람에 손이 떨려서 잘 열리지가 않았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도와준다는 친구가 남자라는 말은 왜 안 했지?]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마크는 질투에 불타는 천치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녀가 화를 낸다 해서 득이 될 것이 없었다. 적어도 두 사람 중 한 명은 침착을 유지해야 했다. 이런 행동을 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겠지.

    [무슨 상관이라니! 당연히 상관이 있고 말고.]

    그는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집게 손가락으로 그녀를 찌를 듯이 손가락질했다.

    [내 여자가 다른 남자와........]

    [잠깐, 내가 당신의 여자라고요?]

    할리에게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발상이었다.

    [널 만나자고 2천 달러나 갖다 바쳤는데, 당연히 내 여자지! 여우처럼 다른 남자를 만나다니!]

    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할리는 너무나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분명히 해두는데, 나하고 만나는 한 다른 남자는 절대 만나면 안 돼. 알아들었어?]

    할리는 정신을 차리고 이글거리는 마크의 표정에 지지 않게 성난 표정으로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분명히 들어 둬. 난 당신 여자도 아니고, 당신 친구도 아니야. 지금이 순간부터 우린 끝났어. 그러니까 나가!]

    그가 문을 못 찾을 리도 없지만, 할리는 손가락으로 단호하게 문을 가리켰다.

    [말귀를 알아들을 때까지는 못 나가.]

    마크도 계속 고집했다.

    [오호, 누구 맘대로? 당장 저 문으로 나가서 두 번 다시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마!]

    [누구 맘대로?]

    [우린 끝났어. 그러니 그만 얌전히 나가 주시지.]

    할리는 두 손을 허리춤에 얹었다.

    [잠깐만.......]

    그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두 사람은 서로 노려보며 그대로 무시해 버렸다.

    [할리?]

    스티브가 문 밖에서 소리쳤다.

    [문 좀 열어요! 지금 괜찮아요?]

    마크가 할리에게서 눈을 떼고 현관문 쪽으로 주의를 돌렸다.

    [둘이 같이 자기도 하겠지? 그래서 그 날 날 거절한 것 아닌가?]

    그의 생각이 너무나 유치해서 할리는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사태가 더 추해지기 전에 나가 주시죠.]

    그녀는 아무 감정 없이 내뱉었다. 겉으로는 냉정하게 보였지만, 심장은 미친 듯이 쿵쿵거렸다.

    [우리 조용히 해결하도록 하지.]

    마크가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할리는 더 이상 그를 대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가서 문을 열었다.

    [당장 나가.]

    이제 스티브는 부엌 쪽에 있는 테라스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할리, 괜찮아요?]

    그가 외쳤다.

    [마크는 이제 곧 나갈 거예요, 맞죠?]

    마크는 홱 몸을 돌려 걸어나가다가 돌연 걸음을 멈추었다.

    [좋아, 좋아.]

    목소리가 조금 전보다는 침착해져 있었다. 그는 사과의 뜻으로 두 손을 쳐들었다.

    [좋아요. 내가 과민반응을 한 것 같소.]

    [귀가 어떻게 되셨나 보군요.]

    할리가 조용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나가 주시죠, 당장!]

    마크는 눈을 껌벅거렸다. 그때 스티브가 집을 한바퀴 돌아 다시 앞마당 잔디밭으로 걸어왔다.

    [들으셨죠? 나가 주시죠.]

    스티브는 마크가 나갈 것을 종용하며 문을 잡았다.

    [좋아.]

    마크가 나가면서 볼멘 소리로 말했다.

    [정 그렇다면야 가주지.]

    [다시 올 생각도 마세요.]

    할리가 계단 위에 서서 소리쳤지만 속으로는 당혹감과 씁쓸한 실망감을 떨쳐버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제는 스스로의 판단력에 대해서도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늘 이런 일이 있기 전까지 마크는 완벽한 남자 같았는데......

    마크는 성난 걸음걸이로 자기 차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반쯤 가다가 그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그는 스티브를 무시한 채 할리를 바라보았다.

    케니는 몇 미터 떨어져서 잔디밭에 서 있었다.

    [결국 저 작자와 관계가 있었던 거지, 안 그렇소? 저 자와 같이 있는 것을 본 순간 알아차렸다고.]

    [소설을 쓰시는군.]

    불과 며칠 전에 소파에서 그와 키스를 나눴다는 사실, 심지어  그와 침대에 갈 생각까지 했다는 사실이 소름 끼쳤다. 자신이 그렇게도 어리석었다니, 속이 메스꺼웠다.

    [지가 무슨 공주쯤 되는 줄 아는 모양인데, 할리. 거울을 한 번 들여다보시지. 남자를 구하기 위해 데이트 서비스에 거금을 내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가 소리쳤다.

    [아빠, 저런 사람을 그냥 놔둬?]

    케니가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하면서 소리쳤다.

    마크는 급히 차 속으로 들어가서는 문을 쾅 닫았다. 그리고 붕 하는 엔진 소리를 뒤로 하고 떠나가 버렸다.

    할리는 계단에 앉아서 눈을 감았다. 진이 탁 빠졌다. 방금 일어난 일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마크는 그녀의 친구가 누구인지 염탐하기 위해 느닷없이 그녀의 집에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스티브와 같이 있는 것을 보고는 질투의 화신이 되어 미친 듯이 폭발해 버렸던 것이다.

    [괜찮아요?]

    스티브는 다정하게 말을 걸었고 할리는 가슴이 뭉클하며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그럼요, 멀쩡해요.]

    사실은 전혀 멀쩡하지 않았다.

    케니가 쏜살같이 그녀 옆에 와서 앉았다.

    [지금 그 남자가 누나 애인이에요?]

    케니는 어떻게 그런 남자와 데이트를 할 수가 있느냐는 듯이 물었다. 할리도 할 말이 없었다.

    [이젠 아니야.]

    그녀는 간신히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잘됐어요, 아주 나쁜 사람이에요.]

    그녀는 바보였다. 그의 지나친 소유욕은 여러 징후로 나타났었는데 여태 그것을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 주에 출장을 가 있었을 때에도 그는 엉뚱한 시간에 전화를 걸어 그녀가 어디 갔었는지 누구와 같이 있었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가 전화를 건것은 그녀가 보고 싶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를 체크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그녀가 마크의 결점을 보지 못한 것은 남편을 구하고 싶은 욕심 때문도 있었지만 또한 데이트라인에 투자한 돈 때문이기도 했다. 그와의 일이 잘되도록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아니 잘될 수밖에 없다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다. 도널리의 경우는 너무나 잘되지 않았던가........

    [누나 기분 안 좋은가 봐.]

    케니가 자기 아빠에게 소곤거렸다.

    할리는 눈을 떴다. 스티브와 아이는 마치 그녀가 수백만 개의 조각으로 부서지기라도 할 것처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할리?]

    스티브가 물었다.

    용감한 척 했던 할리는 마크가 사라지고 나자 한순간 무너지는 듯 했고 눈에 띄게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가지. 좀 쉬는 게 좋겠소.]

    스티브는 할리를 부축해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케니도 따라 들어갔다.

    케니는 얼른 앞으로 달려가 소파에 놓인 쿠션을 손으로 탁탁 쳐서 부풀렸다. 그리고 찬 물을 떠다가 할리에게 가져왔다.

    [근데 그 이상한 남자는 누구였어요?]

    케니가 물었다.

    [엉덩이를 한 방 차서 날려보내지 않은 걸 고마운 줄 알아야 해.]

    [케니!]

    [아빠도 그렇게 하고 싶었잖아.]

    스티브는 반박하지 않았다.

    [넌 집에 가 있어라.]

    아이는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꼭 그래야 해?]

    케니가 눈치를 살피면서 물었다.

    스티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도 금방 갈게.]

    할리는 너무 창피해서 얼굴이 뜨거워졌다.

    [얼마나 미안한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군요, 스티브.]

    아이가 가고 둘만 남았을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뭘 잘못했다고 미안하다는 겁니까?]

    [마크 프리랜더와 데이트를 한 거죠.]

    그의 이름을 말하면서 그녀는 몸서리를 쳤다.

    [그런 사람인 줄 몰랐잖소.]

    할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얼마나 바보였던가. 오늘 밤. 이런 일이 없었더라면 마크와 결혼했을 수도 있었다.

    [당신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소.]

    스티브가 다시 위로했다.

    [난 장님이었어요.]

    [자신을 너무 자학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에요!]

    그녀는 날카롭게 부인했다. 가만히 앉아 있기도 힘이 들었다.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나 거실 안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사람을 잘 본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가 않은가 봐요.]

    [할리, 당신 탓이 아니요.]

    [왜요? 내 잘못인걸요.]

    스티브는 앉아서 케니가 조금 전에 가져다 놓은 물잔을 집어 벌컥 벌컥 마셨다.

    [나 좀 봐요, 스티브. 내 얼굴을 좀 봐요.]

    할리는 스티브 옆에 앉아 몸을 똑바로 펴고 어깨를 반드시 했다. 그리고 스티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스티브만은 진실을 말해 줄 것이다. 그 사실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대답 좀 해봐요. 내 기분 따위는 걱정하지 말고 솔직하게 대답해 줘요. 내가 뭐 잘못 됐어요?]

    [잘못 되다니요?]

    [내가 어때 보여요? 못생겼나요?]

    [원 세상에, 아니오.]

    [내가 순진하게 보여요? 아님 바보 같은가요?]

    [아니오.]

    하지만 그 대답은 아까보다 확신이 덜 담겨 있었다.

    [그런데 왜 난 바보 같은 남자들만 걸리는 거죠?]

    [할리, 말은 똑바로 해야지. 처음 두 번은 소개팅이었잖소.]

    [날 잘 안다는 리타도 내게 마브 같은 남자를 소개해 줬잖아요.]

    [저녁 값을 내게 하고 또 고속도로 위에 내버리고 간 남자 말이오?]

    그런 세부적인 일들까지 기억해 내야 하는 건 고역이었지만,

    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남자는 소개팅으로 만날 남자의 직장 동료라면서요.

    그러니 그랬겠죠, 그렇죠?]

    할리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마크 일도 당신 탓으로 돌릴 수는 없소. 데이트 중개업소에서는 서로 성격이 맞는 사람들을 연결해 준 건데, 그 마크라는 자가 자기 성격을 거짓으로 기록했을 수도 있잖습니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이제 끝났으니까요.]

    할리는 비참하게 팔을 흔들었다. 지난 3개월을 그녀의 일생에서 지워 버리고 싶었다. 체중 5킬로그램 준 것만 빼고.

    [끝나다니요?]

    스티브가 물었다.

    [남자하고요.]

    할리는 갑자기 더블 펏지 마카다미아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다.

    [그건 너무 심하지 않소?]

    [더블 펏지 마카다미아 아이스크림 먹는 게요?]

    [아니오.]

    그는 당황했다.

    [남자랑 데이트를 안 하겠다는 것 말이오.]

    [지금으로서는요.]

    그녀는 부엌으로 달려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까치발을 하고서 냉동칸을 들여다보았다. 다이어트용 냉동 요리를 한 옆으로 치우고 팔을 더 쑥 집어넣어 여기 저기 휘저어 보았지만 아이스크림 통은 없었다.

    그녀는 야채 라자냐 통에 이마를 기대고 탄식했다.

    [안 돼. 안 돼.]

    아, 인생은 얼마나 잔인한가. 아이스크림으로 위로를 받는 복조차도 없다니. 고개를 들어 보니 스티브가 옆에 와서 서 있었다.

    [아무래도 친구를 불러 줘야 할 것 같군요. 지금은 여자 친구가 있어야 할 것 같으니 말입니다.]

    스티브의 말이 옳았다. 도널리에게 올 때 배스킨 라빈스에 들러서 아이스크림을 사오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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